-
-
해신의 바람 아래서 - 프랑스 추리소설의 여왕 프레드 바르가스
프레드 바르가스 지음, 양영란 옮김 / 뿔(웅진)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이 출판되었을때부터 읽어야지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요즘 워낙 추리소설이 많이 출판되는 통에 정신이 없었고 읽을 기회는 언젠가 오겠지 하며 조금 뒤로 미뤘더랬다. 그런데 어느 분이 이 책 읽기를 강력하게 권하셨다. 추리소설에 있어서만큼은 팔랑귀인 내가 그 말씀을 안들을 수는 없었다. 책을 읽는 내내, 책을 덮은 지금 그 분께 감사드렸다. 나오자마자 읽었어야 할 책이지만 이제라도 읽을 수 있어 좋았다. 늘 내 독서의 길잡이가 되어 주시는 분들이 있어 내 책읽기가 즐겁다는 생각을 한다. 감사, 또 감사드릴 뿐이다.
프레드 바르가스의 아담스베르그 시리즈는 프랑스에서는 유명한 작품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제야 출판되었고 반응도 미미하다. 프랑스 스릴러는 꽤 많은 독자층이 그래도 있는데 미스터리는 약한 것이 의아할 뿐이다. 더 좋을 수 없는 고전과 현대가 어울어진 프랑스만의 독특한 추리소설을 읽을 수 있는 작품인데 말이다. 안타까움에 서론만 길어지고 있다.
아담스베르그는 영감이 뛰어난 경찰 서장이다. 발로 뛰는 것도 아니고 뜬구름 잡는 식으로 무언가 자신의 뇌를 강타하면 그것을 믿고 밀고 나가는 보기드문 타입의 경찰이다. 그런 아담스베르그의 머리가 또 따끔거린다. 자신도 모르게 무언가 생각난 것이다. 그것을 더듬어보니 30여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자신의 동생이 연관되어 있는 소위 자신이 이름붙인 '세발작살' 살인마가 다시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아담스베르그가 범인으로 지목한 잘생기고 권위적인 판사는 이미 죽은지 꽤 되었다. 아담스베르그의 오른팔인 논리적으로 생각하며 혼자 다섯 아이를 키우고 알코올 중독이지만 모르는 것이 없는 당글라르는 그런 아담스베르그를 이해하지 못해 답답해하며 질책한다. 그런 상황에서 캐나다 퀘벡주로 연수를 떠나게 되고 거기서 다시 '세발작살'의 살인사건이 일어나는데 범인으로 아담스베르그가 지목되어 아담스베르그는 졸지에 도망자 신세가 된다. 정말 아담스베르그의 몽상은 편집증에 불과한 것일까, 아니면 유령의 탈을 쓴 제 2의 '세발작살' 모방범, 또는 후계자의 출현일까.
프레드 바르가스는 인물들을 잘 묘사해서 작품을 읽는 재미를 더하고 있다. 아담스베르그뿐 아니라 당글라르, 거대한 자신의 몸으로 아담스베르그를 감춰주고 이상한 연줄을 이용해서 그를 빼돌리는 르탕쿠르, 프랑스어를 쓰지만 프랑스 사람들은 싫어하는 퀘벡 경찰들의 자유분방함과 다른 문화에서 오는 언어적 표현, 아담스베르그를 숨겨주는 클레망틴과 결정적으로 도움을 주는 할머니 해커 클레망틴의 친구 조제트까지 살아 숨쉬는 인물들과 파리와 퀘백을 넘나들며 그곳을 한눈에 보는 듯이, 그리고 비교가 확실하게 그려내고 있는 점은 읽는 내내 즐거움을 선사한다.
여기에 작가는 곳곳에 상징들을 넣어 독자의 길잡이를 하고 있다. 넵튠에게 가는 길, 해신의 바람 아래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하기에 아담스베르그와 독자는 상징을 잘 따라가야 하고 상징을 생각해내야 한다. 그런 상징들을 작가는 언어로, 문화로, 놀이로 보여주고 있다. 그 길을 아담스베르그는 상실된 기억을 찾아가듯 조심스럽게 움직인다. 그 상징들의 절묘함과 언어적 유희, 표현의 다양함 또한 이 작품을 읽는 매력 포인트다.
고전추리소설의 특징인 범인은 누구일까에서 시작해서 현대범죄소설의 특징인 연쇄살인사건이 일어나는 패턴 구조를 절묘하게 합쳐서 매력적인 추리소설을 만들어냈다. 작품 속에서 잔인하지 않은 동화는 없다고 말을 한다. 그 말처럼 잔인하지 않은 추리소설 또한 없다. 하지만 현대 추리소설이 가지고 있는 스피디함과 교묘한 반전, 눈길을 사로잡은 피가 난무하는 과도한 잔악함없이도 충분히 서스펜스와 스릴러, 지적인 미스터리를 만끽할 수 있음을 이 작품은 알려주고 있다. 한마디로 고전추리소설의 뼈대위에 현대범죄소설이라는 살을 제대로 붙여 하나의 걸작을 만들어냈다. 이 작품을 읽지 않고 현대 프랑스 추리소설을 읽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프레드 바르가스! 우리가 오랫동안 기억해야 할 이름이다. 또한 아담스베르그 시리즈도 계속 읽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