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역사 뫼비우스 서재
케이트 앳킨슨 지음, 임정희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작품 속에서 우리는 세 가지 사건을 따라가게 된다. 첫 번째 사건은 자고 일어났더니 어린아이가 감쪽같이 사라진 실종 사건이고, 두 번째 사건은 백주 대낮에 아버지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하게 된 첫 날 이상한 남자에게 살해당한 딸의 사건이고, 세 번째 사건은 산후 우울증이었는지 갑자기 아이를 울게 만들었다고 남편을 살해한 여인의 사건이다.

이 사건들을 처음 독자들에게 사건 번호가 적혀 있는 파일을 나열하듯이 보여준다. 그 뒤 잭슨 브로디라는 전직 경찰관 출신이 이혼하고 딸을 가끔 만나는 탐정에게 그 사건들이 어떤 형태로 의뢰되는지를 이야기한다. 그와 동시에 잭슨의 사생활도 보여준다.

아버지의 임종으로 완벽한 해방을 맞은 아멜리아와 줄리아는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아버지의 책상 서랍에서 그 옛날, 세 살이라는 나이에서 더 이상의 아무 것도 알 수 없게 된 사랑스러웠던 동생 올리비아의 인형을 발견하고 경악한다. 그들은 잭슨에게 아버지가 범인이었는지, 동생은 어떻게 된 것인지 아직 종결되지 못하고 이제는 그들 자매 이외에 기억하는 이도 드물어진 사건을 다시금 파헤치게 만든다.

테오는 결코 딸 로라를 잊을 수가 없어서 로라를 죽인 남자를 찾아달라고 잭슨에게 의뢰한다. 그에게는 단서가 거의 없었다. 단지 범인이 입고 있었던 옷만 알뿐이다. 그는 어쩌면 딸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면서 그저 딸이 아이처럼 사랑스러운 존재라고만 믿었던 아버지였을지 모른다. 잭슨이 알아내야 할 것은 범인 찾기보다는 그쪽이 더 쉬울 것 같았다.

언니가 유명한 도끼 살인마라는 낙인을 달고도 이름을 바꾸지 않은 셜리는 언니가 자신에게 맡긴 딸 탄야를 찾아달라고 잭슨을 찾아온다. 하지만 잭슨은 그 의뢰를 맡고 싶지 않다. 그녀의 눈동자가 말할 때 오른쪽으로 올라갔기 때문이다. 그건 그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잭슨은 탄야를 찾아야 하는 건지 셜리의 거짓말을 알아내야 하는 건지 이 건은 흐지부지된다.

이런 잭슨에게 의뢰하고 잭슨이 찾아내는 성과와 상관없이 사건은 시작과 끝은 잭슨이 참여하든 안하든 모두 알려준다. 하지만 그건 독자에게 알려주는 것이지 비밀은 비밀인 채 더 묻히는 경우가 많고 해결이 됐는지 안됐는지 알 길이 없이 끝나기도 해서 기존의 추리소설과는 많이 다른 형식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모두 하나의 사실이다. 사랑을 받은 아이이건, 사랑을 받지 못한 아이이건 여자들에게 세상은 너무도 위험한 곳이라는 것이다. 가족도, 학교도, 이웃도 아는 사람이건 모르는 사람이건 피해자가 된 여자들, 아직 살날이 너무도 많아 보이는 아이들에게는, 또한 가해자가 되어 버린 여성에게도. 그들의 순진함과 순수함, 그리고 세상에 대한 오만과 무지만큼 아니 그보다 더 세상은 무섭고 그래서 딸을 가진 아버지인 잭슨은 이제 여덟 살인 딸을 걱정하고만 있다. 그의 누나가 어린 나이에 살해당했던 것 때문에 그는 희생자 가족에게 공감하는 것이다.

작품은 과거에서 시작해서 현재에 도달한다. 하지만 잘 들여다보면 몇 십 년 혹은 몇 년이 아닌 하루 또는 몇 시간을 현재에서 과거로, 다시 과거에서 현재로 인물들의 관점을 달리해서 교묘하게 짜 맞출 수 있도록 쓰고 있다. 하나의 작은 사건이 잭슨에게 갔다가 다시 아멜리아에게로 오는 그런 일들 속에서 인물들의 심리 묘사를 극대화하고 있다. 사건 자체만을 다루고자 했다면 그 나름대로 괜찮은 추리소설이 되었을 수도 있지만 작가가 다루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준다. 그것을 캐롤라인의 등장에서 알 수 있고 부랑아 릴리-로즈에서도 알 수 있다.

작가의 이 작품은 범죄의 고발과 살인자를 찾아내는데 있는 것이 아니다. 진실을 알아내는 데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작품이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 희생자의 가족이 오랜 세월 가족의 실종과 살해의 피해자 또는 가해자였기에 안고 있어야만 했던 슬픔과 괴로움에 대한 치유에 대한 이야기다. 그것도 범죄자를 찾아내는 것과 진실을 밝혀내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과 자신의 딸을 걱정하는 생생한 느낌을 전달하는 잭슨의 모습이 이 작품을 높이 평가하게 만들고 있다. 서스펜스 스릴러 반전 미스터리도 좋지만 잔잔한 여운 속에 다른 시각으로 미스터리를 바라보게 만든 것이 이 작품을 ‘범죄소설의 한계를 뛰어넘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는 한 원동력이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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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7-12-20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왕, 제목에서부터 확 끌리는군요. 기억하고 있겠슴다!^^

물만두 2007-12-20 11:29   좋아요 0 | URL
넵. 추리소설로써 보다는 그 이면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니 보시기 그렇게 나쁘지 않을겁니다^^

보석 2007-12-20 1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나 물만두님 리뷰가 출판사 책소개보다 더 재미있어요..ㅜ_ㅜ

물만두 2007-12-20 15:52   좋아요 0 | URL
캄사합니당^^

모딘 2007-12-20 1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거의 물만두님 스토커 수준이 되어가네요. 이번에도 낚였습니다. 저 책임지세요.

보석 2007-12-20 18:00   좋아요 0 | URL
물만두님 저도 같이 책임져주세요.ㅡ_-

물만두 2007-12-20 18:52   좋아요 0 | URL
님들 아깝습니다.
허경영 후보가 대통령이 됐다면 책임질 수 있었는데요.
정말 안타까워요=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