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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들, 자살하다 ㅣ 민음사 모던 클래식 65
제프리 유제니디스 지음, 이화연 옮김 / 민음사 / 200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한 집안에 딸이 다섯이 있다. 그런데 그 딸들이 모두 십대에 자살을 한다. 그것도 일 년이라는 기간을 두고 막내가 먼저, 일 년 후 네 명의 딸들이 자살을 하고 살아남은 마지막 딸이 다시 자살을 해서 모두 자살로 생을 마감한, 어떻게 보면 잔인한 이야기를 화자인 소년과 친구들이 그들의 자살 전에서부터 그들이 왜 자살을 했는지 알기 위해 조사를 하는 나이가 든 뒤인 지금까지를 담아내고 있다.
무엇이 이들을 자살하게 만들었을까 에 대해서는 아무도 밝혀내지 못한다. 살아서 주목받지 못한 아이들이 죽어서 주목받게 되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며 이들은 얼떨떨해하지만 분개하지도 않는다. 그들의 마음은 소녀들로 인해 뜨겁게 달아오른 듯 보여 지지만 사실 미지근한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고 담담하게 사실만을 쓰고 있다.
그 집에 대한 묘사, 학교에서의 묘사, 마을에 대한 묘사가 오히려 소녀들의 내면에 대한 표현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세밀하게 등장하고 소년들의 눈과 어른이 된 눈으로 바라보는 하나의 사건을 자신들의 성장통처럼 여겨지게 만들어 소녀들의 자살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소년에서 어른이 되는 과정이 마치 수많은 하루살이가 살다 죽고 다시 계절이 돌아오면 다시 찾아와 온 마을을 뒤덮는 것처럼 그런 일련의 인간이 자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처럼도 느껴졌다. 그들은 그렇게 그녀들의 자살과 함께 성장하고 그 자살의 실체를 조사하며 아직도 자라는 현재진행중이기 때문이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그녀들은 왜 그렇게 어린 나이에 자살을 선택한 것일까? 자살이라고 하기보다는 한 집안의 한순간의 몰락으로 그려지는 모습은 마치 한 세대의 실패, 한 나라의 추락, 하나의 문명의 붕괴를 나타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들의 자살이기 때문이다. 여자들, 처녀들의 사라짐은, 자발적 사라짐은 인간의 종말과 맞닿아 있다. 말하자면 크게 보면 인류의 멸망이라고 볼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그 원인을 찾아 나서는 이들이 소년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위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작가는 소녀들의 자살과 그 집안의 붕괴, 이웃들의 시선과 소년들의 조사를 약간 거리를 두고 바라보게 만들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든 그것은 읽는 독자의 몫이라는 듯이. 하지만 책을 덮은 뒤에도 마지막에 어떤 말을 했던 간에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왜 그 아이들은 자살을 한 것일까? 그렇게 산다는 것에 어떤 미련도, 희망도 없었을까? 언제나 늦은 뒤에 이웃은 손길을 뻗다가 만다. 친구들의 눈물도, 자책도 뒤 늦게 찾아온다. 소년들이 소녀들의 자살을 통해 알고자 한 것은 정말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그것은 자신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려는 것은 아니었을까?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