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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취미들
김도언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9월
평점 :
악취미들이란 결국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인간의 근원적 결핍을, 고통을, 집착을 말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재목이 말해주듯 열편의 단편 하나하나는 지독한 악취미를 보여주고 있다. 그 하나하나마다 다르게 표현되고 있지만 결국 그 단편들을 모두 아우르는 것은 우리의 내편을 파고들어 저마다 하나씩은 가지고 있을 법한 것들을 저자가 악취미스럽게 파고들고 있다는 것이다.
아름다움이란 근본적으로 무엇인가를 묻는 작품에서 아마도 모두 뜨끔했을 것이다. ‘네가 사랑한 것은 무엇이냐?’라고 묻는 것 같은 작품을 읽으며 인간의 속물적 뒤틀리는 창자가 보이는 것 같고 교수가 된 친구를 부러워하는 안 팔리는 소설가의 끊임없는 전화 속에서 버리지 못하는 성공의 집착이 보여 저 모습이 내 모습은 아닌가 하는 자각을 하게 된다. 아니라고 하면서 우린 성공을 원하니 말이다.
저자는 작품 안에 시들을 삽입하고 있다. 그 시어가 시로써 읽을 때와는 다르게 그러면서도 잘 어우러진다. 같은 창작의 고통의 산물이라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이것 또한 작가의 악취미적 발상인지는 모르겠지만 답답하고, 들쩍지근하면서,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내게는 악취 속에서 창문 열고 신선한 공기 한 모금 마시는 느낌을 주었다.
종일,
살아야 한다는 근사한 이유를 생각해 봤습니다.
근데 손뼉을 칠 만한 이유는 좀체
떠오르지 않았어요.
소포를 부치고,
빈 마음 한 줄 같이 동봉하고
돌아서 뜻모르게 뚝,
떨구어지던 누운물.
저녁 무렵,
지는 해를 붙잡고 가슴 허허다가 끊어버린 손목.
여러 갈래 짓이겨져 쏟던 피 한 줄.
손수건으로 꼭, 꼭 묶어 흐르는 피를 접어 매고
그렇게도 막막히도 바라보던 세상.
그 세상이 너무도 아름다워 나는 울었습니다.
흐르는 피 꽉 움켜쥐며 그대 생각을 했습니다.
홀로라도 넉넉히 아름다운 그대.
지금도 손목의 통증이 채 가시질 않고
한밤의 남도는 또 눈물겨웁고
살고 싶습니다. 나는,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 있고 싶습니다.
뒷모습 가득 푸른 그리움 출렁이는 그대 모습이 지금
참으로 넉넉히도 그립습니다.
내게선 늘, 저만치 물러서 저 혼자 살아가는 세상이여,
풀빛 푸른 노래 한 줄 목청에 묻고
나는 그대 생각 하나로 눈물겨웁습니다.
여림의 <살아야 한다는 근사한 이유>라는 작품이 어째 이 작품에 대한 역설적 울림 같다. 작가는 이런 악취미들 속에서도 알아야 한다는 근사한 이유를 발견하고자, 말하고자 한 것은 아닐까? 어떤 이유 같지 않은 이유를 붙여서라도, 아니 어떤 이유가 존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악취미를 가지고라도 사는 삶, 고통과 결핍에 허덕이고 자학과 집착으로 이루어진 삶과 우리가 고고하게 바라보는 삶과 그리 다르지 않음을, 이것이 바로 우리의 삶의 한 편린임을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닌지. 내 삶도 잘 뒤져보면 이런 것들이 사이사이 끼어 있을지 모른다. 그럴싸하게 포장하고 있는 너덜거리는 포장지를 벗기고 나면 말이다. 그러니 악취미들은 결국 우리가 침잠시킨 우리 안의 한부분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