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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하녀 마리사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9월
평점 :
언제 이만큼 나이를 먹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런 때면 서러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는 것을 어쩔 수가 없다. 갑자기 안개 낀 도로에 떠가는 거대한 배를 보고 내가 탄 조그만 자동차 안에서 두리번거리게 되는 그 막연하면서도 따라가고 싶은 심정. 하지만 <세일링>에서의 주인공처럼 멍하니 보고만 있을 뿐이다.
가끔 아무에게라도 ‘안아주세요.’ 라고 말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 아니 내가 그런 말을 하지 않더라도 누군가 가만히 와서 살짝 안아주고 어깨를 토닥여줬으면 싶을 때가 있다. <자동차 없는 인생>의 그이가 그렇고 <농장의 일요일>에서의 그가 그렇다. 또한 <비행기>에서의 그녀가 그렇다. 나를 안아주는 이 없으니 내가 안아 토닥여주고 싶은 이들. 이들의 삶이 또한 내 삶과 그리 다르지 않음에.
뭐 하나만 잘 됐으면 지금의 나보다 더 근사한 내가 되었을 텐데 하는 생각을 늘 한다. 스무 살 적에 나도 어떤 꿈 하나 가졌더라면 좋았으련만 그때는 아무 것이 없어도 남은 날들이 많을 거라는 생각에 정말 아무 생각이 없었고 그래서 <二十歲>의 나는 후에 <숟가락아, 구부러져라>를 외치다가 <더 멋진 인생을 위해>서의 그 남자처럼 밀려오는 후회를 주체하지 못하고 눈물짓는다. 부질없게도.
잔인한 <13홀>을 지나 <유쾌한 하녀 마리사>의 평범한 수다를 건너 <프랭크와 나>에서 처음인 냥 비로소 이 정도라도 다행이다 하며 슬며시 웃음 짓지만 그 웃음이 커지면 커질수록 서글퍼 역시 행복한 건 아니었구나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불행하지 않음에 족하다는 걸 알아버린 까닭에 <프랑스혁명사>야 어찌되었든 나하고 상관없는 것들은 모두 불쏘시개에 던져 버리고 그래도 누군가를 따뜻하게 해줄 수 있었음에 족하다 생각하리라 다시 한 번 다짐한다.
그래, 그렇게 나는 천명관이라는 작가의 작품을 읽었다. 처음의 낯설음을 지나니 그의 글은 익숙해졌다. 그래서 진부하게 들릴 누구에게도 해본 적 없는 ‘안아주세요.’라는 말도 할 수 있었다.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나는 <13홀>이나 <프랑스혁명사>, <더 멋진 인생을 위해>와 <비행기>가 마음에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유쾌한 하녀 마리사>와 <프랑스혁명사>, <더 멋진 인생을 위해>를 작가는 마치 외국 작품을 툭 던져 놓듯이 써 놨다. 작가가 글재주가 보통이 아니라는 얘기는 들었지만 좋았다. 책 뒤에 평론가는 <고래>에 대한 이야기만 잔뜩 써 놓았다. 안 읽고 이 책을 읽게 돼서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떠나버린 고래를 어쩌라고 다시 잡으려 빈 손짓을 하는 것인지. 고래 없이 읽어도 좋기만 하더이다.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라는 노래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이제와 새삼 이 나이에 실연의 달콤함이야 있겠냐마는’ 나이가 들면 시련도 달콤해진다는 걸 그 노래를 듣고 비로소 알았다. 그리고 책을 읽는 내내 작가가 말하고자 한 것은 주인공들이, 우리들이 잃어버린 낭만에 대하여는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낭만에 대하여~ 다시 못 올 것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