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형의 계절
온다 리쿠 지음, 임경화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시골의 작은 마을, 그곳에 갑자기 괴 소문이 퍼진다. 4개의 고등학교 연합동아리에서 그 소문의 출처를 밝히려고 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고등학생 시절에 한번쯤 이상한 주술을 모여서 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분신사바같은 것도 있었고, 반지점도 있었고, 남학생들은 여학생의 방석 훔치기도 했었다. 대학에 갈 수 있다더라, 남자친구가 생긴다더라, 뭐 이런 그 당시 가장 흔하게 하던 고민들이 그런 이상한 것들에 빠져들게 만들었다고 생각된다.

이곳에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좀 더 독특하게 이곳에서는 오랜 세월 사라진 사람들이 있고 마치 차원이 다른 세계로 뛰어 넘어가는 것 같은 환타지를 부여하고 있다. 아주 단순하고 간단한 이야기, 고민, 누구에게나 있고 누구나 간직한 것들을 지방색으로 꾸미고 고등학생들 사이에 있을 법한 설렘으로 포장을 했다는 것만 다를 뿐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같다.

지금과 같은 아름다운 날들이 다시는 오지 않으리라는 두려움, 지금과 같은 답답하게 사육당하는 것 같은 학교생활의 끔찍함, 같은 사람들을 계속 만나는데서 오는 지겨움,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데 그것이 어떤 것인지 모르는데서 오는 망설임 등등 이 나이라서 겪을 수밖에 없는 그런 것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래서 마지막은 그렇게 끝을 맺을 수밖에 없었으리라. 누구나 알고 있지만 그것이 모든 것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고 독자인 우리도 어떤 결말을 원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여름이라 그렇다고 작가는 자꾸만 말을 하고 있다. 작가에게 여름은 독특한 소재임에 분명하다.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에서 신기루를 보듯 작가의 여름은 그런 형태가 아닌가 싶다. 또한 여름은 젊음이다. 하지만 작가가 등장시키는 주인공들은 아직 봄인데 여름으로 밀어 넣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너무 이른, 잘 알지 못하는 산다는 것에 대한 고민을 서둘러 진지하게 하게 만들고 난 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일상으로 돌아와 가을을 맞이한다.

작가의 작품을 보면 아, 내 고등학교 시절도 이랬었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가끔은 이건 너무 깊게 들어가는 거 아냐? 하는 반발심을 갖게 만든다. 그것은 균형의 문제다. 구형의 계절에 균형을 이야기하니 좀 그런데 구형에도 균형은 있어야 하는 거니까. 나는 항상 가장 진지한 시절은 중, 고등학교 시절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진지함은 그 당시에 가질 수 있는 최대한의 그 또래의 진지함이지 삶에 대한 모든 것을 아는, 경험한 사람의 진지함은 아니다. 다 살아 보지도 못한 인생을, 인간사를 그 나이 아이들이 너무 심하게 끼어들고 있다. 뛰어넘고, 진화하고, 인간이란 왜 태어났을까는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들의 반복은 돌림노래를 듣는 느낌을, 회전목마를 타고 아까 본 풍경을 또 보게 만드는 것 같이 느껴진다. 그래서 동화되었다가 다시 튕겨져 나가는 것이다.

이 작품이 좀 더 다듬어지고 작품 속 미노리의 순수한 행복은 <굽이치는 강가에서>에서의 마리코의 모습에서 다시 등장하고 있다. 순수함과 어른스러움, 영리함과 신비스러움이라는 구형(球形)을 만들어 끊임없이 그 속에서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 온다 리쿠의 패턴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 조화가 때론 어울릴 때도 있고 때론 부자연스럽게 느껴질 때도 있다. 역시 아름다운 구형을 만들어내기가, 그것을 아름답게 보기가 만만찮은 일이 아닌가 여겨진다.

언젠가 모두 산다는 건 다 그런 거라고 말하는 것, 그저 산다는 것만을 행하는 것도 하나의 수행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면 이 아이들은 어떤 생각을 갖게 될지, 온다 리쿠의 아이들의 자란 모습이 그의 다른 작품 <흑과 다의 환상>과 오버랩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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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책 2007-09-11 1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오래간만에 인사드려요. 잠수 타는 동안 온다리쿠가 휩쓸고 있네요.
온다 리쿠 책 딱 한 권만 추천해 주세요. 지르게요^^

물만두 2007-09-11 10:21   좋아요 0 | URL
삼월은 붉은 구렁을
이 책이죠^^
잘 지내시죠~

가시장미 2007-09-11 1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리뷰를 보니, 책의 내용이 무지 궁금해지네요. ^^ 성장기의 주인공들의 너무 진지한 고민을 다루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그것이 작가의 인생관이 반영된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받아들이기 쉽지 않게 표현되었을 것 같기도 하고... 그렇네요.

요즘은.. 제 머리가 너무 아파서, 책을 읽는 게 너무 힘드네요. 언니는 안 그러세요? ^^:

물만두 2007-09-11 18:49   좋아요 0 | URL
난 여기서 머리까지 아프면 워쩌라고~
머리만 살아있어서 아직까지 읽을 수 있음에 좋아.
근데 뇌가 늙는지 이해력 부족이 넘 슬퍼.
이것도 내가 제대로 읽은 건지 의심스러워서리^^;;;

icaru 2007-10-08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땡스투요~~

물만두 2007-10-08 13:07   좋아요 0 | URL
감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