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
오츠이치 지음, 김수현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열일곱이라는 나이에 이런 작품을 썼다니 라는 생각보다 열일곱이기에 이런 작품을 쓸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시절을 생각해보면 무언가 잘못을 저질러 놓고 그것이 발각되지 않게 하기 위해 어디서 그런 꾀를 내는지 나중에 생각하면 어이없고 기가 막히던 일들이 하나씩은 아마도 있을 것이다.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말이다.

나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친구 집에서 친구와 배구공을 가지고 놀다가 꽃병을 깨트린 적이 있었다. 우린 너무 당황했지만 어떻게든 감춰야 한다는 생각에 깨진 꽃병을 다행히 잘게 조각난 게 아니어서 본드로 붙여놨었다. 그리고 한동안 친구 집에는 얼씬도 못했다. 혹 탄로가 나서 혼나는 건 아닐까 싶어 학교에서 제일 먼저 물어보는 말이 “들켰니?”였다.

이건 아주 작은 일이지만 어린 아이들은 이런 일을 감추고 싶어 한다. 그것이 아이들의 본능인지 모르겠지만 <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에서는 그런 아이들의 극단적인 면이 드러나고 있다. 9살, 11살 어린 아이들이 무의식적으로 친구를 나무에서 떠밀어 죽이고 그 시체를 감추기 위해 오빠와 여동생은 고군분투를 한다. 좀 더 큰 오빠는 그것을 일종의 게임이나 자신의 성숙함을 나타내는 것처럼 여기는 것 같다. 어린 아이들만이 지닌 잔인함으로, 그것을 이승을 떠나지 못한 죽은 친구가 화자로 나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런 일이 가능할까? 하는 생각보다 어린 아이들이기에 더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은 작품이라 가슴이 싸했다.

죽었음에도 자신이 좋아하는 친구 오빠에게 신발이 벗겨진 발을 보이는 것이 부끄럽고, 엄마를 더 그리워하기보다는 자신의 죽음을 이해하지 못한 듯 새로 나온 아이스크림을 같이 먹고 싶고, 친구 오빠에게 자신을 감추는 걸 들키지 말라고 힘내라고 하는 9살에 죽은 아이의 말들이 마지막 장면까지 이어지면서 공포보다는 놀라운 슬픔이 남는 그런 작품이었다. 우리에게 타인에 대한 미안함의 감정은 언제 생기는 것일까? 배우는 것일까? 타고나는 것일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처음 작품을 이렇게 매끄럽게, 독특하게 쓰다니 놀랍다. 그 이후 작가의 작품은 발전을 했다. 아마도 나이와 더불어 세상을 보는 눈이 더 커진 것 같다. 하지만 그 모든 작품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누가 제 말 좀 들어주세요.”하는 것 같은 속삭임이다. 쓸쓸하고 공허하고 우리가 산다는 게 이런 일의 반복이라는 것이 새삼 느껴지게 만드는 신비한 재주가 있어 내가 남기고 온 그림자들을 뒤적이게 한다. 소통과 단절이라는 극단적인 두 소재를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잘 이끌어낸 작품이었다.

<유코>는 더 극단적인 소통 부재를 보여준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마님 유코의 존재를 의심하게 된 하녀 키요네의 이야기는 전설 속 이야기처럼, 예전에 이런 이야기가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들게 한다. 짧지만 강렬한 작품이었다.

두 작품뿐이었지만 알차게 읽었다. 열일곱의 소년은 많이도 자랐다. 꾸준히 자라서 글이라는 끈을, 자신만의 색깔을 잃지 않고 여기까지 와줘서 고맙게 생각한다. 첫 작품만으로 끝나는 작가들이 많고 첫 작품만큼 다음 작품이 별로여서 실망하게 되는 경우도 있고 계속 다른 시도를 해서 독자를 서운하게 하는 작가도 많은데 아직 남은 날이 많고 쓸 것이 많은 작가가 꾸준히 써준다는 것, 그 작품들이 마음에 든다는 사실이 참 여름날의 불꽃놀이처럼 다음을 기약할 수 있는 기다림을, 설렘을 갖게 해주고 있다. 계속 전진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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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 2007-08-27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7살에 쓴 글이라..궁금하네요.

물만두 2007-08-27 10:04   좋아요 0 | URL
읽어보세요. 이 작가 괜찮아요^^

2007-08-27 10: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물만두 2007-08-27 10:37   좋아요 0 | URL
통하였네요^^

뽀송이 2007-08-27 1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제 주위 분들이 몇이 읽고 있더군요.^^
저도 한 번 읽어 보고 싶어요.
친구들의 실수로 죽은 친구가 화자라니 꽤나 독특하잖아요.
타인에 대한 미안한 감정은 도대체 언제부터 생기는 걸까요?
저도 궁금합니다.^^;;

물만두 2007-08-27 14:48   좋아요 0 | URL
나이에서 오는 폭력적 공포가 슬픈 작품입니다.

짱꿀라 2007-08-27 1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두님, 오래간만에 들어와 리뷰를 천천히 읽기 시작했습니다. 참 오래동안 안들왔는데 참 많은 리뷰를 올려놓으셨네요. 퇴근하고 마저 읽으려고 합니다. 리뷰 잘 읽고 갑니다.(이곳만) 꾸욱~~~

물만두 2007-08-27 18:48   좋아요 0 | URL
산타님 바쁘시잖아요^^
저도 요즘은 마실을 잘 못다니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도넛공주 2007-08-27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만두님 리뷰 읽고 보관함에 쌓아둔 책만 해도 한아름인데 또 하나 늘었습니다.

물만두 2007-08-28 10:16   좋아요 0 | URL
다 피가 되고 살이 된다지요^^

향기로운 2007-08-28 14:21   좋아요 0 | URL
저도요...^^;;

물만두 2007-08-28 16:52   좋아요 0 | UR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