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 THE WORLD CHANGE YOU...AND YOU CAN CHANGE THE WORLD



"그래. 모든 것에는 이면이 존재하지"  
 "네루다의 시야?"   "아니 마르티"                                                                                    "빈 그물 같은 허공에서 허공으로 나는 거리를 대기를 거닌다"   "마르티의 시야?"    "아니 네루다"
그렇게 퀴즈 아닌 퀴즈놀이를 하며 두 사람은 낡은 노턴 오토바이 '포데로사 '와 함께 남미횡단의 여정에 있었다.

체 게바라를 '20세기의 가장 완전한 인간'이라고 했던 이가 사르트르였나. 아무튼 내게도 그러한 관념이 머리 깊숙이 박혀 있는 탓인지 영화 시작 전부터 괜시리 숙연해져 있었다.

그러나 왠걸 대책없이 떠난 그들의 여행은 시종일관 풋풋한 웃음을 들춰내는, 우리도 한 두번 해봤음직한 그런 무대뽀 여행이었다.

그와의 차이라면 여행으로 가슴에 절망이 아닌 희망을 일궈낸 남자와 기껏 사진만 박다가 돌아와서 앨범에 장사 지낼뿐이었던  나의 근성없음 일것이다.

모든 것에는 이면이 존재하고, 세상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바뀌는 것이다.  으흥. 수긍만 하고,오히려 무임승차 하려는 근성아닌 본능만 남은 내가 부끄러워진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에르네스토 게바라의 『나의 첫 대 여행;Mi Primer Gran Viaje』 과 『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즈-남미여행에 관한 기록』, 알베르토 그라나도의 여행일지인 『체와 함께한 남미여행;Con El Che Por Sudamerica』를 원작으로 했기에  익숙한 일화들이 틈틈히 등장하며, 두 사람의 여정을 내게도 대신 밟게 해주는 성의를 보인다.

 아르헨티나
일명 '푸셰'라고 불린 에르네스토와
그의 사촌 형 알베르토 그라나도는 걱정스런 눈빛의 어머니와 권총을 찔러주는 아버지를 위시한 사랑스런 가족의 배웅을 받으며 아르헨티나의 집에서부터 출발해 푸셰가 사랑했던 코르도바의 갑부 딸인 치치나의 집을 경유한다. 
사회주의자인 그를 질색하는 부모의 못마땅한 눈치와
치치나의 지켜지지 않을 약속을 뒷 꽁무니에 달고 떠난다.

 

 
칠레
화전을 일굴때마다 지주에게 번번히 빼앗기며 살아논 산자락의 인디오, 페론주의자의 목장주에게 종양 진단을 내리고, 들판에서 먹을 것을 해결하며 도착한 커다란 거울의 호수 나우엘우아피.

치치나 수영복을 사줄 달러 때문에 번번히 입씨름을 벌이면서 여정을 계속해서
칠레의 신문에 자작 기고한 덕에 유명세와 배고픔을 동시에 해결하며,
마을 댄스파티에 몰려가 애정행각(^^;)을 벌이려다 줄행랑을 치기도 한다.


종종 말썽을 피우던 오토바이가 소떼에 받히면서 운명을 다한다.
시골의 한 촌락에서 오토바이 장례를 치른 후 두 사람은 터덜 터덜 걸어서 여행을 계속한다.


치치나와 이별로 상처를 입었던 푸셰의 마음 한 켠에 추키카마타 구리광산에서 만났던 착취당하던 사람들과 물 한모금 마시지 못하던 부부의 비탄 어린 얼굴이 자리하게 된다.

 


페루
아따까마 사막, 그리고 쿠스코 도착.

그리고 그의 마추픽추.
과거 찬란했던 잉카 제국의 향기와 '세월을 아는 안내인'을 만나고,
폐쇄된 산 속의 마을에서 삶을 연명해 나가는 아낙네들의 주름을 만나고,
웅장한 운명을 피웠음에도 절망적인 삶을 감내해야만 하는지를 고민한다.


체 게바라 그의 생애에서 가장 아름다운 추억 중의 하나라고 기록하였던 마추픽추.
네루다의 시를 즐겨 암송하고 내일의 희망을 얘기하는 두 사람.
이 때 낙관론을 펼치는 알베르토에게 에르네스토는 예의 유명한 말을 던진다.
'무기도 없이 혁명을 이룰수 있다구?

형은 제정신이 아닌 모양이군'

 나환자병원이 있는 산 빠블로로 가는 배 안에서 있는 자와 없는 자, 양극화된 풍경을 목도한다.
그 와중에도 아름다운 여자에 혹해 너스레를 떨어대는 알베르토.
강을 사이에 두고 환자와 의사,직원들로 양극화된 또 만나는 풍경.
나병환자들은 일상의 조그만 기쁨 하나 없이 그저 죽어가고 있었다.
머무르는 동안 정성껏 돌봐준 두 의사에게 생일 겸 환송 파티를 열어준다.

하나 된 라틴 아메리카에 대한 건배를 외치며 에르네스토는 감회어린 연설을 한다.

 

환자들이 만들어 준 뗏목, 일명 'MAMBO-TANGO'를 타고 콜롬비아로 향한다.
그들의 배에는 과일에 끼니거리인 닭들까지 승선해 있다.

일렁이며 그들의 뗏목에 참견을 해대는 파도를 보는 두 사람의 눈에는 그들의 여정 속에 있던 사람들의 스틸 컷이 펼쳐진다.
Gustavo Santaolalla의 " LA SALIDA DE LIMA" 는
흑백 스틸 속에 황망하게 자리잡은 민중의 얼굴들처럼 가슴을 덜컹덜컹 내려앉게 만든다.

 
그렇게 보고타를 지나 베네주엘라에 도착하고,
비행기를 타기 전에 에르네스토와 알베르토는
그들이 꾸려왔던 여행에 안녕을 고하고, 자신들의 달라질 꿈과 미래를 토닥거린다.

아르헨티나로 향하는 비행기안에서의 푸셰는 이미 성장기를 끝내고 체 게바라의  얼굴로 변하고 있었다.

 

<<아모레스 페로스>>의 옥타비오, <<이투마마>>의 훌리오로 분했던 Gael Gargia Bernal는
에르네스토 게바라의 스물두살을 우리에게 가감없이 보여준 듯 했고,

우리와 푸셰를 즐겁게 해주기 위한 사명이라도 타고 난듯 했던 Rodrigo De La Serna
내게 Gael Gargia Berna보다 더 큰 감흥을 주었다.
우리 곁의 친숙한 형이자 사랑스런 친구이자 행복을 주고자 했으며, 더도덜도 없이 솔직한 한 인간을 보여줬지만, 그런 웃음 뒤에 조용한 내면의 출렁임이 있는 듯 느껴지는 배우였다.

조금 아쉬웠던 점이라면 산 빠블로의 나환자촌에서 있었다던 게바라가 칭찬했던 그 연설을 듣지 못한 점이랄까, 물론 게바라는 힌트를 줬었지만.

Gustavo Santaolalla의 음악이 우리의 귀에 아주 적절하면서도 아름다운 배경음을 깔기를 주저하지 않는 가운데,
남미의 아름다운 풍광이 스쳐 지날 때는 조금이라도 그 아름다운 순간에 머물러있고 싶었다.


그러나 무심하게도 포데로사는 너무나 빨리 스쳐지나간다. 아마 '이것은 놀라운 영웅들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고, 냉소적인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다'라고 했던 체 게바라와

영화의 운을 떼면서, 그리고 영화를 닫으면서 같은 말을 했던 감독의 의도를 반영한 것인지도 모른다.


아르헨티나, 칠레, 펠루, 콜롬비아, 베네주엘라의 풍경에 도취되어 머물러 있기보다,
체 게바라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었던 길위의 시간들, 사람들, 절망과 희망을 같은 눈으로 볼 수 있기를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엑스트라 같지 않았던 고산지대의 인디오, 멸망한 잉카 제국의 소년, 산 빠블로의 나환자들,
퀘차어 밖에 모르던 아낙들과 자연스럽게 여정 속에 머물러 있었다.

이러한 효과는 대륙에 특별한 애정을 가진 Robert Redford와 Walter Salles의 영감이 십분 발휘 되었기 때문일 것이며,
체 게바라가 우리에게 우상으로, 닮고 싶은 희망으로 남아 있는 까닭이며,
그리고 거기가 바로 남미이기 때문이다. 50년전이나 지금이나 우리와 같은 상황이 재현되고 있는.

* 개인적으로 모터사이클 다이어릴 보기 전에 기대한 것이 있었다.

안데스 산맥을 가로지를 때쯤 비올레따 빠라나 아타우알파 유판끼의 노래를 한 토막이나마 들을 수 있지 않을까 했지만
그런 섭섭함이 들새도 없이 만들어 준 Gustavo Sataolalla. <<아모레스 페로스>>때도 그랬고, <<21그램>>에서 처럼 왠지 영혼을 건드리는 특별한 공기가 그의 음악에 있다.
그의 주옥같은 스코어들은 두 젊은이의 내면과 남미의 아픔과 아름다움을 녹여내기에 거침이 없고,
Maria의 "Chipi Chipi"와  Prado의 "Que Rico El Mambo"가 어깨를 들썩이게 만드는 댄스홀이 되고,
엔딩 크레딧의 "Al Otro Lado Del Rio"는 마추픽추, 산 빠블로,아따까마의 그 곳으로 연거푸 데리고 간다.
아마 한 동안은 길 위에서 이 OST만 돌리게 될 것 같다.

 ORIGINAL SOUNDTRACK "THE MOTORCYCLE DIARIES" 전곡을 들을 수 있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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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04-11-22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OST리뷰 보고 왔습니다. 좋은 글 , 잘 읽고 갑니다.
 

누군가 그랬지. 가족을 집 아닌 밖에서 만나면 그렇게나 왜소해 보일수가 없다고. 그래서 순간적으로 가족을 못 알아본다고. 

오늘 단지 앞 지하도에서 나도 못 알아봤다, 동생을. 그런데 내 옷 만큼은 알아봤다.  길 바닥에서 옷 내놔!라고 땡깡 부릴 수도 없고, 뒤늦게야 알아보고 우물쭈물 하는 사이에 저만치 달아났다. 징한 것.

요즘은 이상하게 옷 가지고 시비거릴 만드는 듯하다. 아침에도 그 아래 동생이 내 바짓단을 꼬매 입었기에 투덜거렸는데. 드라이 클리닝도 안 해주면서 옷에 구멍을 슝슝 뚫어 놨다면서 퍼붓고 나왔으니까.

 예전에 동생들과 같이 살 땐 그런 일이 없었다. 취향도 다 들 제각각인데다 사이즈도 몇 인치씩이나 차이들이 났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왜 그럴까? 곰곰히 생각해봤다. 아! 알 것도 같다. 

이젠 우리 모두 별 수 없다. 다들 '어려보이는 옷'을 선호하게 됐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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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4-12-02 2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서른 아홉인데 이제서야 어려보이는 옷만 골라입는데요. 그래서 갈수록 더 젊어지고 이뻐지는 것 같단 소리를 요즘 많이 들어요. ^^ 반갑습니다.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음반 리뷰보고 단숨에 달려왔어요. 참 좋더군요. 영화만큼 님의 리뷰가요 ^^ 즐찾 하고 갑니다.
 


이름 조차 생소한 인도 감독의 작품을 집어 들게 된 것은 <<오르>> 예매에 실패한 후 다른 영화 관람시간을 맞추기 위해 그냥 찍었기 때문이다.제목만 보고.

아침 10시, 제일 작은 상영장에서 단촐하니 모인 관객들을 보니 사정은 대략 비슷한 듯 했다.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보는 내내 위장이 들썩거리는 듯한 고통으로 앉은 자리가 불편해지긴 했지만. 미하엘 하네케 만큼이나 보는 이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곤란한 취미를 가졌다, 이 감독은.

드룸. 그는 이 영화의 화자인 동시에 주인공이다. 어머니는 세살 때 바다에서 익사, 아버지는 정부의 토지 점유에 저항하다가 교통사고로 위장되어 사망한다. 평소 아버지의 정치관과 종교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드룸은 아버지의 존재가 사라지자 필연적으로 도시로 나와버린다. 도시에서의 그는 피가 낭자한 폭력의 현장 사진을 전문으로 담는 사진기자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소 도살장을 운영하던 아버지의 직업과 개인적인 비극의 이력들의 영향으로 여자를 난도질하는 연쇄살인범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쓰자, 곧 베스트셀러가 된다.

그 후 드룸은 자신과는 별개로 아버지의 유지를 이어오던 아버지 친구와 벙어리 사촌이 정부측 관리에게 잡혀가자 우연히 만난 변호사 엔젤에게 도움을 구한다. 그러나 엔젤은 드룸의 책과 사진들이 사회를 오염시키고 신앙의 힘을 조롱한다고, 그에게 구원의 방법은 종교에 있다고 말하지만, 정작 드룸은 그저 엔젤을 사랑하게 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드룸이 최근 담아오던 아녀자 연쇄살인 사건이 차이나촌에서 발생하게 되고, 거기서 그는 난도질당해 죽은 자신의 연인을 발견하게 된다. 그 후 그가 한 일은 사진을 찍는 일. 그 사진은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정도를 넘어 오히려 폭력적이다.

한편 드룸의 책으로 그의 가치관이 궁금해진 연구생 에어가 논문을 쓰고자 하는 목적으로 드룸의 곁을 기웃거리게 된다. 엔젤이 죽은 후 혼자 남은 벙어리 사촌과 집에 돌아와 있던 드룸은 자신의 생애 전체를 좀 먹었던 비극적인 역사로 되돌아가 있다. 그런 드룸을 찾아와 그가 찍은 사진들과 사진에서 나타난 인격만으로 현대 사회의 도덕을 무너뜨리고, 폭력 산업의 활성화를 도우며 그 밑에 기생하는 벌레 취급을 하게 된다. 주위의 위협 속에서도 나름대로 적응해왔던 드룸은 자신의 삶이 부정당할 입장이 되고, 폭력을 고발하는 자신의 역할이 폭력을 산업화시킨 주범인양 취급당하자 자신에게 내재해있던 폭력을 불러내 에어에게 앙갚음하는 것으로 화를 돌린다.


어떻게 보면 영화를 보고 와서 드는 감상이 줄거리의 나열일 뿐이라니. 이 정도도 나 스스로 흐뭇할 정도로  영화에서는 모호한 연출 투성이였다. 영화에서 'Be the Reds'티셔츠나 우리나라에선 이두 아이콘 총서로 나왔던 '무엇이 세계를 바꾸는가' 시리즈들이 등장해 주의를 환기시키기도 했지만, 영화는 철저히 혼잣말처럼 일방적인 얘기를 할 뿐이었다.
주인공 드롬에 있어서 바다는 아버지고, 어미니였지만, 치유랍시고 반복적으로 나열할 뿐이어서 그런 억지가 지겨워질 정도였는데, 그 순간 순간을 폭력적인 이미지들로 메꿔 관객의 사고를 일시정지 시켜 버린다.


관객을 의식을 혼돈시켜 놓고 감독이 하려고 했던 것은 어쩌면 따로 있었다. 신체의 모든 부분에 대해 보험을 파는 시장통의 상인,  선정적이고 가장 잔인한 사진을 파는 언론인들,  평범한 현대인의 일상속에 우후죽순처럼 돋아나는 폭력의 모습들, 착하기만 하던 벙어리가 도끼로 부숴버린 타인의 머리, 그러한 것들을 우리는 어디로부터 배워 왔을까?
영화에서 내도록 보여준 그 선혈 범벅인 사진들, 충격적인 교통사고 장면에 도살장에서 신음을 흘리던 소, 흐르는 피, 찢어지는 고깃덩어리들이 영화속에 구겨져 있는 형태가 아니라 감독의 의도대로 수동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나를 공격한다. 오죽하면 빈 속에 마신 블랙커피가 걱정되었을까.

최근 만들어지는 뉴스를 포함한 모든 문화적 상품들을 보면 찰나의 시선을 잡기 위해 더 선정적이고, 더 폭력적이고, 더 참혹해지는 양상을 띠고 있다. 그런 홍수 속에 우리는 변별력 하나 없이 무뎌지고만 있는 것이다. 이 세계 한 모퉁이, 아니 바로 우리의 곁에도 그런 일이 비일비재한다.
이 시대의 공포가 부른 폭력 때문에 참수당하거나 유린 당한 주검들이 안전한 자신의 방에서 모니터로, 다시 안전한 우리들의 방으로 유린당한채 돌아다니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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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 프랑스 CG를 본 다음이라 비교도 할겸해서 일본 애니메이션 <<APPLE SEED>>에 대한 기대는 굉장히 컸다. 더구나 공각기동대의 SHIROW Masamune 원작이 아닌가. 나를 그냥 죽여주라 하는 심정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SHIROW Masamune의 메카닉들이 3D CG로 내 눈앞에서 그 위용을 화려하게 떨친다.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공각기동대>>의 다대포차 비슷한 탱크도 출연하고,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반가운 탄성이 나오더라.
초반 부폐지구에서 듀난과 싸우는 그 정체모를 랜드 메이트들도 멋있었지만, 캐릭터 듀냔은 과연 2D인가 싶을정도로 부드럽기 그지없었다. (나중 가이드를 대충 보고서 모션 캡쳐를 이용한 3D 인걸 알았다)
얼핏 본 TV 시리즈에서의 캐릭터보다 훨씬 폼났다. 예쁘기도 하고.  바이오로이드로 나오는 히토미는 완전 공주병 바이오로이드^^ 고개를 옆으로 살짝 틀면서 인살 하거나 눈웃음을 짓는다. 그 큼직한 순정만화 모드 눈동자에 옆에 앉은 남정네는 숨을 몰아쉴 정도였다. 히토미는 로봇이라 그렇다 그래, 그렇지만 인간 듀난은 너무 이쁘잖아. 씻지도 못하고 대전중에 거리를 헤메고 다녔을 법한데, 먼지 한톨, 검댕 하나 안 묻었다. 그래. 너무 예뻐 보인다는데 문제가 있다. 움직임은 유려하지만 깎아 놓은 듯 너무 깔끔한 것이 영화내내 불편하다면 불만일까. SHIROW  Masamune의 그 터푸한 듀난의 이미지 때문인지 영 서먹하기도 하고, 영화 내내 몰아치는 화려한 CG때문에 2D를 그냥 갖다 붙여 놓은 어설픈 레터링 느낌이 나기까지 하는 거였다.

그래도 헬리콥터까지 출연하니깐 원망은 어디가고 감탄사만 절로 나왔다. 그리고 미려한 메카닉 기술로 압승을 보인 사이보그 브리아레오스 출연! 만화책보다 훨씬 근사해졌지만 <<바블검 시스터즈>>가 왜 생각났는지는 아직도 미스테리.근사한 올림푸스 시가지, 가이아 시스템이 있는 돔의 설계 또한 멋지다.
시가지에서 가는 광섬유로 로봇들을 작살내는 바이오로이드와 듀난, 브리아레오스의 전투 씬은 조금은 지루하게 흘러가기 시작한 이야기에 탄력을 줬다. 등장 캐릭터들의 이름이 입법원의 칠현노와 히토미를 빼고는 신화에서 따 온 것들도 내용의 이해를 돕는다. E S.W.A.T의 브리아레오스, 듀난, 행정원의 행정원 아테나와 니케, 올림푸스 정규군의 우라노스 장군과 하데스 등이 그들이다.(랜드메이트를 정비하는 대원의 이름은 기억이 안난다-_-)
 그리고 종반의 기갑전차들과의 격투씬은 손에 땀을 낼 정도로 긴장감 어린 연출과 1호~8호(맞나?)기들이 다리를 쩔꺽거리며 돔을 오르는 장면은 매트릭스3에서 APU가 등장한 시온 전투씬 만큼이나 멋진 장면이었다. 그러나 내가 <<APPLE SEED>>에 쏟아붓고 싶은 감탄과 박수는 기술수준에 머무를 뿐이었다.

3차 세계대전 발발후 황폐해진 2131년의 지구. 홀로 끝나지 않은 전쟁을 치르고 있던 듀난은 지구 재건 계획을 추진중인 올림푸스 시티로 본의 아닌 스카웃을 당한다.히토미라고 불리는 바이오로이드와 죽은 줄 알았던 연인 브리아레오스가 사이보그가 되어 나타나고,올림푸스 시티에서는 자신을 향한 영문 모를 공격에 듀난은 당황스럽기만 하다. 인간의 유전자 조작에 의해 태어난 바이오로이드로 대부분의 주민이 구성되어있고, 도시는 완벽한 낙원처럼 보인다.


그러나 감정도 없고, 생명 잉태의 기능도 제거된 바이오로이드의 신인류화 염원과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바이오로이드를 부정하는 올림푸스 정규군,  유토피아아 올림루스의 반대편에 있는 부폐지구의 테러리스트들, 올림푸스 내의 방위 책임을 맡아버린 E.SWAT 대원들, 가이아 시스템을 빙자해 세계에서 인간과 바이오로이드를 해체시키고 재편성하려는 야심으로 뭉친 입법원의 7명의 노인들의 암투가 얼기설기 엮여있다.
거기에 개인적인 복수를 위해 군을 움직이는 하데스, 연인 듀난을 돕기에 희생양이 되려는 브리아레오스, 사랑이라는 감정에 의문을 가진 채 소멸해 가는 히토미, 주인의 사명과 신인류 지향을 위해 가이아 시스템과 대치중인 행정원의 아테나 등 무수한 소망과 감정의 충돌들이 <<APPLE SEED>>의 스토리다.

사실 이러한 줄거리는 ARAMAKI Shinji의 <<APPLE SEED>>의 중심축이 되지 못한다.  SHIROW MASAMUNE의 만화 <APPLE SEED>를 접하지 못했더라면 도대체 뭔 소린가 할 정도로 짧은 시간안에 사건의 전개가 아니라 대사와 해설로 (자막으로^^) 쏟아붓기 때문이다. 중반부터는 마구 의외의 비밀들이 하나 둘씩 터지게 된다. 가이아 시스템을 둘러싸고 듀난이 올림푸스로 초대된 이유와 듀난의 존재가 화근이 되는 모든 비밀 말이다.
급기야는 APPLE SEED의 행방을 둘러싸고 기가 막힌 촌극이 나온다. <<스타워즈>>의 '네가 니 애비야'씬에 버금가는 '네가 니 에미야'씬이 홀로그램으로 나온다. 크윽.뭐, 다행히 약간의 신파조 뉘앙스가 있기에 많은 사람들이 신음을 흘리면서 동화되는 것이 보였다. 물론 나도.


인간과 바이오로이드가 아니라 인간과 신인류가 공존하는 세계를 지향하면서 영화는 끝이나는데,

화려한 CG에 다운된 내게도 불평은 산처럼 쌓인다.  한편의 애니메이션으로 담기엔 너무 방대한 스토리 때문이었는지,

피규어나 그딴 것들을 팔아먹기 위한 술책인지,

미래의 세계는 디스토피아로 각인되어 버린 그간의 간접적인 경험치들 때문인지 단언하긴 어렵지만

숙제가 남지 않는 단편적인 해피 엔딩으로는 성에 안 찬다는 것이다.

사이보그가 된 브리아레오스의 감정의 정리가 그다지 되어 있지 않고, 하데스는 복수의 화신이 되어버린 듯 구는데, 그 동기가 너무 부족해 보였다.

가이아 시스템을 멈추는 패스워드 입력 씬은 딸에 대한 모정이었는지, 인간에 대한 희망이었는지 알 수 없게 되버렸고, 정작 엄마였던 사람은 딸 보다 바이오로이드의 신인류화 계획이 더 중요한 거였는지 말이다. 사실 이 장면은 <<APPLE SEED>>의 또 다른 하이라이트기도 하였다. 뻔하긴 하지만 관객을  숨죽인 채로 조금만 조금만 더 하는 심정으로 매달리게도 했거던.

거기다 면면이 멋진 음악들이 많이 나오긴 했는데, 음악과 장면의 매칭이 너무 작위적이었다. 
내가 써놓고도 오리무중인 표현이 되어 버렸는데, 한 마디로 하면 왠지 뭔가 벌어질 법한 분위기에는 어김없이 쨔~잔 하는 음악이 등장한다는 것이었다. 엔딩 크레딧 때 나온 정보를 보고 배가 아플 정도였다.
음악은 SAKAMOTO Ryuichi가 맡고,  Paul Oakenfold, Basement Jaxx, Carl Craig Vs Adult, Akufen들의 이름이 주루룩 나왔으니 말이다. 뭐, OST로 나오면 그건 죽여주겠지만, 영화에는 영~ 아니었다.
메인 주제곡은 Boom Boom satellites의 "Dive For You".

그래도 <<애플 시드>>를 보고 난 뒤 지금까지 나의 머리에 진득하게 남은 것이 하나 있다. 가이아 시스템을 꺼놓고 자기들이 현지자인척 굴던 입법원의 그 일곱 노인들에 관한 것이다. 죽어가는 노인인 까닭에 올림푸스에서 바이오로이드를 걷어내고 남은 인류 자체와 함께 자살하려던 것은 자신들을 대리인이 아니라 신(神)으로 착각한데서 나오는 행동이었다. 만화에서든 현실에서던 자신의 권위를 무제한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다. 갓이든 마호멧이든 부처든 간에 신의 존재 유무를 놓고 가타부타하고 싶은 생각도 없고, 종교를 떠나 어디의 누구라도 흠 잡으려고 안달나지도 않았지만 어쨋든 덧붙이고 싶은 한 마디.
혼자의 논리만으로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구원하려고 맹목적으로 애쓰지 말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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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박한 공기 속으로
존 크라카우어 지음, 김훈 옮김 / 황금가지 / 1997년 11월
평점 :
절판


내 기억력을 탓할 수  밖에 없는데,  제목이 <<나의 청춘 아르카디아>>였나 모르겠지만 경비행기를 타고 자신을 끌어당기는 한 고지대의 산으로 돌진해나가는 파일럿의 얘기가 담긴 애니메이션이 하나 있었다.그 높은데 위치한 산은 마치 팜므 파탈처럼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면서도 죽음의 계곡으로 유혹하는 여신의 모습이기도 했었다.거기서 기다리는 것은 어쩌면 죽음일지도 모르는데, 왜 털컥거리는 기체를 다그쳐라서도 달려가게 만드는 걸까?
그러한 보이지 않는 힘을 여실히 느끼게 해주는 이 책 『희박한 공기속으로』를 나는 이제서야 접했다. 베스트셀러라고 하면 무조건 덮어놓고 질색을 하는 몹쓸 성미 때문에 뒤늦은 감이 있긴 하지만, 모 등산 패키지 TV광고토막이 등장한 요맘때쯤 읽어버린 것은 어쩌면 다행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광고를 보면 괜시리 뭉클해지면서 되새김질이 가능하니까 말이다.

1996년 5월 10일. 에베레스트 죽음의 지대를 겪은 한 기자의 후일담으로 살아 남은 자의 변명으로 치부하기엔 너무나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준다. 에베레스트. 티베트 어로는 '초모룽마', 네팔어로는 '사가르마르타'의 에베레스트에 대한 지형과 역사, 그와 관련한 국가들의 경제정책, 셰르파와 그 가족들의 생계, 그를 이용한 상업적인 등반대들의 융성과 오직 돈을 이용하여 명예를 획득하려는 사람부터 시작해서 그 짧은 에베레스트 등정을 위한 오랜 준비와 열정, 인내의 시간들을 보았다.

그들이 무엇을 위해 에베레스트를 오르는지, 죽음이 확연히 보이는데도 그들이 돌아설 수 없던 것은 무엇 때문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을 정복하려는 인간의 오만은 어디 까지인지, 월터 미티인 나로서는 절대 알 수 없는 것들이겠지만, 조금이나마 체험할 수 있었던 것은 크라카우어의 이 기록들 덕분이었다.
그렇지만 책을 덮을 때는 죽음을 불사하고도 에베르스트를 오르는 그들의 대단한 용기에 고무되는 것이 아니라, 잘못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누구도 죽고 싶어하지 않았을 거라는 희생자 누이의 편지 글귀와 자신의 고국에 돌아가지 않겠다는 세르파 족 고아의 편지가 잊혀지지 않고,
에베레스트 정상을 할퀴는 강풍에 일렁이는 깃털 구름만을 눈앞에 있는 양 보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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