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박한 공기 속으로
존 크라카우어 지음, 김훈 옮김 / 황금가지 / 199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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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 기억력을 탓할 수  밖에 없는데,  제목이 <<나의 청춘 아르카디아>>였나 모르겠지만 경비행기를 타고 자신을 끌어당기는 한 고지대의 산으로 돌진해나가는 파일럿의 얘기가 담긴 애니메이션이 하나 있었다.그 높은데 위치한 산은 마치 팜므 파탈처럼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면서도 죽음의 계곡으로 유혹하는 여신의 모습이기도 했었다.거기서 기다리는 것은 어쩌면 죽음일지도 모르는데, 왜 털컥거리는 기체를 다그쳐라서도 달려가게 만드는 걸까?
그러한 보이지 않는 힘을 여실히 느끼게 해주는 이 책 『희박한 공기속으로』를 나는 이제서야 접했다. 베스트셀러라고 하면 무조건 덮어놓고 질색을 하는 몹쓸 성미 때문에 뒤늦은 감이 있긴 하지만, 모 등산 패키지 TV광고토막이 등장한 요맘때쯤 읽어버린 것은 어쩌면 다행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광고를 보면 괜시리 뭉클해지면서 되새김질이 가능하니까 말이다.

1996년 5월 10일. 에베레스트 죽음의 지대를 겪은 한 기자의 후일담으로 살아 남은 자의 변명으로 치부하기엔 너무나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준다. 에베레스트. 티베트 어로는 '초모룽마', 네팔어로는 '사가르마르타'의 에베레스트에 대한 지형과 역사, 그와 관련한 국가들의 경제정책, 셰르파와 그 가족들의 생계, 그를 이용한 상업적인 등반대들의 융성과 오직 돈을 이용하여 명예를 획득하려는 사람부터 시작해서 그 짧은 에베레스트 등정을 위한 오랜 준비와 열정, 인내의 시간들을 보았다.

그들이 무엇을 위해 에베레스트를 오르는지, 죽음이 확연히 보이는데도 그들이 돌아설 수 없던 것은 무엇 때문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을 정복하려는 인간의 오만은 어디 까지인지, 월터 미티인 나로서는 절대 알 수 없는 것들이겠지만, 조금이나마 체험할 수 있었던 것은 크라카우어의 이 기록들 덕분이었다.
그렇지만 책을 덮을 때는 죽음을 불사하고도 에베르스트를 오르는 그들의 대단한 용기에 고무되는 것이 아니라, 잘못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누구도 죽고 싶어하지 않았을 거라는 희생자 누이의 편지 글귀와 자신의 고국에 돌아가지 않겠다는 세르파 족 고아의 편지가 잊혀지지 않고,
에베레스트 정상을 할퀴는 강풍에 일렁이는 깃털 구름만을 눈앞에 있는 양 보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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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 - 명화이야기 시리즈
부르스 버나드 지음 / 디자인하우스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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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a darling kindersley book』브루스 버나드 / 김택. 디자인 하우스.1997.

 빈센트의 임파스토 기법이나 보색 사용, 조명, 채광을 중요시 한 그의 화법 위주로 일대기를 대략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책의 내용과는 별개로 책을 건성으로 읽어 온 나에게 큰 꾸짓음을 들려준다.

국내외의 책들마다 인쇄된 색감의 차이가 있어서인지 그의 그림들이 다르게 보이는 일이 많았다. '고품격'지향의 탓인지 알 수 없지만, 왠일인지 그의 색깔들이 더욱 우울해 보이도록 어두운 색조로 출판되었던 그림도 있었고, 임파스토 기법인지 한눈에 알 수 없을 정도로 희마하게 출판한 책도 있었는데, 그 중 나를 가장 난감하게 한 것은 <아를의 침실>이다. 벽과 의자, 장식장의 색들이 성기게 채색된 것과, 내가 기억하는 한 충실히 면을 메꿔 밝은 분위기가 가득 찬 따뜻한 그림이 그것이었는데, 다른 그림이겠지 하다가도 출판사마다 틀린가 보다 하고 수긍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 책에 인쇄된 그림을 보다가 지금까지 의문을 이제서야 깨쳤다. 제기랄. 지금까지 고흐를 봐오면서 대체 뭘 봤던 거냐.
<1888 아를1>, <1889 생 레미의 복사본2>과 함께 총 3장의 그림이 있는 것이다.
『후기 인상주의』에 실린 <아를의 침실>은 볼때(문외한인 나의 기준일 뿐)색들을 성기게 칠하고, 무엇보다 바닥의 초록색의 넓은 면처리가 눈에 띄인다. 반면 『고흐』편에 실린 그림은 꽤 정성스레 면을 메꿨고, 더 짙게 밝은 색들을 채색했으며, 바닥은 엷은 바이올렛과 팥앙금색이다. 그리고 침대에 걸린 옷이 초록이 아닌 파란색이며, 수건 모양이 틀리고, 결정적인 것은 그림 속의 사물들이 틀렸다. 자신의 자화상의 수염과 다른 여인들.
 

화가 관련 서적 중 가장 양이 많아서인지 고흐 관련 책자들을 읽다 보면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중복되는 부분이 많다. 그래서인지 그런 부분들은 대충대충 봐 넘기는 버릇이 생겼는데, 전작을 하고 싶으면 이것이 가장 지양해야 할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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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da78 2004-06-22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합니다.. (안녕하세요- 인사도 없이 그냥 코멘트부터 남깁니다. <(_ _)> )
 
바틀비 이야기
허먼 멜빌 지음, 이정문 옮김 / 문화사랑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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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출근을 할 때면 매일 느끼는 단상과 먼저 인사하게 된다. 그 단상이란 바틀비에 관한 것이다. 나는 커다란 회사 정문 보다는 뒷문으로 드나들길 좋아하는 때문인지, 다른 사무실이 끼어 있는 복도를 통해 출근한다.
그러면 미국산 맥주 브랜드와 유사한 상표를 가진 사무실의 문이 빼꼼히 열려있는 것을 어쩔 수 없이 보게된다.
자동으로 눈에 들어오는 사무실 풍경. 복충 구조로 되어 있는 그 사무실은 하필이면 계단이 입구쪽으로 나있다. 그 계단 끝의 2층에는 한 남자와 책상이 있는데, 그는 항상 등허리를 숙이고 일을 하고 있다.

근무 중에 허리라도 좀 펼려고 바람 쐬러 나가면 자연스레 그 복도로 향하게 된다. 그러면 항상 똑같은 그림이 펼쳐진다. 환하지 않아 컴컴하다고 해도 좋을 폐쇄적인 조명아래, 언제나 책상에 앉아 일하는 남자. 화장실은 가는 걸까? 담배도 피지 않나? 커피 마시는 핑계로 노닥거리는 때는 있을까? 그런 의문이 들 정도로 내가 아는 한 그 남자의 모습은 책상과 셋트다.
나도 하루 종일 책상에서 하루를 다 보내지만, 내 편견으로 그는 '고독한  사람'이다. 부양의 책임 때문에 '책상에 웅크린  남자'가 전부인 것 처럼 느껴졌으므로.
그래서 나는 그를 속으로만 '바틀비'라 부른다. 

나 또한 다른 사람의 고독을 조롱하고 걱정할 여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나 또한 싱글싱글 웃으며 직장 동료나 친구, 가족들에게 협조적인 사람으로 보여도 속으로는 언제나 '그렇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라는 독백을 뇌까리고 있으니까.
언제가 본 <<About a Boy>>에서 '인간은 섬이 아니다'라는 행복한 격언에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현실에선 언제나 '인간은 섬이다'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는 경우가 더 많으니까.
다 읽은 후엔 여러 꿀꿀한 감상을 송두리 채 던져주긴 하지만, 사실 읽는 동안만은 제법 유쾌한 소설이 있다.
HERMAN MELVILE의 『바틀비 이야기』다.

특별한 정의감도 없이 안정적인 생할을 추구하며, 성실하게만 회사를 꾸려가려고 노력하는 늙은 변호사, 오전은 열심히 일하고 오후엔 술고래가 되어 사무실을 들썩이는 늙은 필경사, 오후엔 열심히 일하고오전엔 책상 높이 때문에 스트레스를 주체 못하는 젊은 필경사. 이렇게 세 사람이 일하던 사무실에 한 직원이 입사한다. 이름은 바틀비. 칸막이로 되어 있는 그의 자리에서, 창 밖으로는 반대편 건물의 벽돌 밖에 보이지 않는 그의 자리에서 그는 하루종일 움직이지 않는다.
자본주의 속에서 연명해 나갈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 노동도 하지 않고, 그에 따른 보상으로 물질의 소유도 그에겐 아무 상관 없는 얘기다. 일을 시켜도, 해고를 해도, 사무실을 옮겨 버려도, 그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로 일축하고 외부와 전혀 소통하려 하지도 않고, 소통되지 않는데서 오는 고독에 전혀 괴로워하는 기색도 없이 스스로 방치된다. 방치되어 있는 인간, 타의와 자의로 스스로의 고독에 절어 있는 한 인간에 대한 유쾌한 해부.
고독하고 싶어서 현실을 피해 자신 속으로만 파고 드는 사람이 있다면 꼭 권하고 싶은 책이다.
다행히 내가 이름 붙인 '바틀비'는 퇴근은 하는 것 같다. 내가 퇴근할 때면 그 사무실 문이 잠겨 있으니까.
그러나 틈만 나면 벽을 향해 앉다 못해 아예 벽 속으로 침잠하고 싶어 하는
내 속의 처치 불가능한 바틀비는 어떻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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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프리다 칼로 - 프리다 칼로의 편지와 자화상들
프리다 칼로 지음, 이혜리 옮김 / 다빈치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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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프리다 칼로/프리다칼로/이혜리/2004/다빈치
다빈치에서 나온 다른 인물들의 평전을 읽고 느꼈던 감흥에 비하면 왠지 실망한 느낌.
출판사의 상술이 바로 보이는 책.
게다가 헤이든 헤레라의 [프리다 칼로]에서 삽입되었던 내용들의 중복이기도 하고.
프리다 칼로의 그림과 사진들이 좀 더 보기좋게, 몇 장 더 삽입 된것을 구경할 수 있다는 것뿐이다.
손쉽게 들고 다니며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걸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괜찮지만, 프리다 칼로를 더 깊이 알고 싶은 독자에게 추천할 만한 책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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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da78 2004-06-22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기 작가가 쓴 게 아니라, 화가 자신이 쓴 글 일부, 화가의 주변인이 쓴 글 일부 등을 짜집기 한 책들은 다 재미없더군요.. 모딜리아니도, 뭉크도 다른 출판사의 책들보다 별로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