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근두근. 프랑스 CG를 본 다음이라 비교도 할겸해서 일본 애니메이션 <<APPLE SEED>>에 대한 기대는 굉장히 컸다. 더구나 공각기동대의 SHIROW Masamune 원작이 아닌가. 나를 그냥 죽여주라 하는 심정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SHIROW Masamune의 메카닉들이 3D CG로 내 눈앞에서 그 위용을 화려하게 떨친다.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공각기동대>>의 다대포차 비슷한 탱크도 출연하고,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반가운 탄성이 나오더라.
초반 부폐지구에서 듀난과 싸우는 그 정체모를 랜드 메이트들도 멋있었지만, 캐릭터 듀냔은 과연 2D인가 싶을정도로 부드럽기 그지없었다. (나중 가이드를 대충 보고서 모션 캡쳐를 이용한 3D 인걸 알았다)
얼핏 본 TV 시리즈에서의 캐릭터보다 훨씬 폼났다. 예쁘기도 하고. 바이오로이드로 나오는 히토미는 완전 공주병 바이오로이드^^ 고개를 옆으로 살짝 틀면서 인살 하거나 눈웃음을 짓는다. 그 큼직한 순정만화 모드 눈동자에 옆에 앉은 남정네는 숨을 몰아쉴 정도였다. 히토미는 로봇이라 그렇다 그래, 그렇지만 인간 듀난은 너무 이쁘잖아. 씻지도 못하고 대전중에 거리를 헤메고 다녔을 법한데, 먼지 한톨, 검댕 하나 안 묻었다. 그래. 너무 예뻐 보인다는데 문제가 있다. 움직임은 유려하지만 깎아 놓은 듯 너무 깔끔한 것이 영화내내 불편하다면 불만일까. SHIROW Masamune의 그 터푸한 듀난의 이미지 때문인지 영 서먹하기도 하고, 영화 내내 몰아치는 화려한 CG때문에 2D를 그냥 갖다 붙여 놓은 어설픈 레터링 느낌이 나기까지 하는 거였다.
그래도 헬리콥터까지 출연하니깐 원망은 어디가고 감탄사만 절로 나왔다. 그리고 미려한 메카닉 기술로 압승을 보인 사이보그 브리아레오스 출연! 만화책보다 훨씬 근사해졌지만 <<바블검 시스터즈>>가 왜 생각났는지는 아직도 미스테리.근사한 올림푸스 시가지, 가이아 시스템이 있는 돔의 설계 또한 멋지다.
시가지에서 가는 광섬유로 로봇들을 작살내는 바이오로이드와 듀난, 브리아레오스의 전투 씬은 조금은 지루하게 흘러가기 시작한 이야기에 탄력을 줬다. 등장 캐릭터들의 이름이 입법원의 칠현노와 히토미를 빼고는 신화에서 따 온 것들도 내용의 이해를 돕는다. E S.W.A.T의 브리아레오스, 듀난, 행정원의 행정원 아테나와 니케, 올림푸스 정규군의 우라노스 장군과 하데스 등이 그들이다.(랜드메이트를 정비하는 대원의 이름은 기억이 안난다-_-)
그리고 종반의 기갑전차들과의 격투씬은 손에 땀을 낼 정도로 긴장감 어린 연출과 1호~8호(맞나?)기들이 다리를 쩔꺽거리며 돔을 오르는 장면은 매트릭스3에서 APU가 등장한 시온 전투씬 만큼이나 멋진 장면이었다. 그러나 내가 <<APPLE SEED>>에 쏟아붓고 싶은 감탄과 박수는 기술수준에 머무를 뿐이었다.
3차 세계대전 발발후 황폐해진 2131년의 지구. 홀로 끝나지 않은 전쟁을 치르고 있던 듀난은 지구 재건 계획을 추진중인 올림푸스 시티로 본의 아닌 스카웃을 당한다.히토미라고 불리는 바이오로이드와 죽은 줄 알았던 연인 브리아레오스가 사이보그가 되어 나타나고,올림푸스 시티에서는 자신을 향한 영문 모를 공격에 듀난은 당황스럽기만 하다. 인간의 유전자 조작에 의해 태어난 바이오로이드로 대부분의 주민이 구성되어있고, 도시는 완벽한 낙원처럼 보인다.

그러나 감정도 없고, 생명 잉태의 기능도 제거된 바이오로이드의 신인류화 염원과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바이오로이드를 부정하는 올림푸스 정규군, 유토피아아 올림루스의 반대편에 있는 부폐지구의 테러리스트들, 올림푸스 내의 방위 책임을 맡아버린 E.SWAT 대원들, 가이아 시스템을 빙자해 세계에서 인간과 바이오로이드를 해체시키고 재편성하려는 야심으로 뭉친 입법원의 7명의 노인들의 암투가 얼기설기 엮여있다.
거기에 개인적인 복수를 위해 군을 움직이는 하데스, 연인 듀난을 돕기에 희생양이 되려는 브리아레오스, 사랑이라는 감정에 의문을 가진 채 소멸해 가는 히토미, 주인의 사명과 신인류 지향을 위해 가이아 시스템과 대치중인 행정원의 아테나 등 무수한 소망과 감정의 충돌들이 <<APPLE SEED>>의 스토리다.
사실 이러한 줄거리는 ARAMAKI Shinji의 <<APPLE SEED>>의 중심축이 되지 못한다. SHIROW MASAMUNE의 만화 <APPLE SEED>를 접하지 못했더라면 도대체 뭔 소린가 할 정도로 짧은 시간안에 사건의 전개가 아니라 대사와 해설로 (자막으로^^) 쏟아붓기 때문이다. 중반부터는 마구 의외의 비밀들이 하나 둘씩 터지게 된다. 가이아 시스템을 둘러싸고 듀난이 올림푸스로 초대된 이유와 듀난의 존재가 화근이 되는 모든 비밀 말이다.
급기야는 APPLE SEED의 행방을 둘러싸고 기가 막힌 촌극이 나온다. <<스타워즈>>의 '네가 니 애비야'씬에 버금가는 '네가 니 에미야'씬이 홀로그램으로 나온다. 크윽.뭐, 다행히 약간의 신파조 뉘앙스가 있기에 많은 사람들이 신음을 흘리면서 동화되는 것이 보였다. 물론 나도.

인간과 바이오로이드가 아니라 인간과 신인류가 공존하는 세계를 지향하면서 영화는 끝이나는데,
화려한 CG에 다운된 내게도 불평은 산처럼 쌓인다. 한편의 애니메이션으로 담기엔 너무 방대한 스토리 때문이었는지,
피규어나 그딴 것들을 팔아먹기 위한 술책인지,
미래의 세계는 디스토피아로 각인되어 버린 그간의 간접적인 경험치들 때문인지 단언하긴 어렵지만
숙제가 남지 않는 단편적인 해피 엔딩으로는 성에 안 찬다는 것이다.
사이보그가 된 브리아레오스의 감정의 정리가 그다지 되어 있지 않고, 하데스는 복수의 화신이 되어버린 듯 구는데, 그 동기가 너무 부족해 보였다.
가이아 시스템을 멈추는 패스워드 입력 씬은 딸에 대한 모정이었는지, 인간에 대한 희망이었는지 알 수 없게 되버렸고, 정작 엄마였던 사람은 딸 보다 바이오로이드의 신인류화 계획이 더 중요한 거였는지 말이다. 사실 이 장면은 <<APPLE SEED>>의 또 다른 하이라이트기도 하였다. 뻔하긴 하지만 관객을 숨죽인 채로 조금만 조금만 더 하는 심정으로 매달리게도 했거던.
거기다 면면이 멋진 음악들이 많이 나오긴 했는데, 음악과 장면의 매칭이 너무 작위적이었다.
내가 써놓고도 오리무중인 표현이 되어 버렸는데, 한 마디로 하면 왠지 뭔가 벌어질 법한 분위기에는 어김없이 쨔~잔 하는 음악이 등장한다는 것이었다. 엔딩 크레딧 때 나온 정보를 보고 배가 아플 정도였다.
음악은 SAKAMOTO Ryuichi가 맡고, Paul Oakenfold, Basement Jaxx, Carl Craig Vs Adult, Akufen들의 이름이 주루룩 나왔으니 말이다. 뭐, OST로 나오면 그건 죽여주겠지만, 영화에는 영~ 아니었다.
메인 주제곡은 Boom Boom satellites의 "Dive For You".
그래도 <<애플 시드>>를 보고 난 뒤 지금까지 나의 머리에 진득하게 남은 것이 하나 있다. 가이아 시스템을 꺼놓고 자기들이 현지자인척 굴던 입법원의 그 일곱 노인들에 관한 것이다. 죽어가는 노인인 까닭에 올림푸스에서 바이오로이드를 걷어내고 남은 인류 자체와 함께 자살하려던 것은 자신들을 대리인이 아니라 신(神)으로 착각한데서 나오는 행동이었다. 만화에서든 현실에서던 자신의 권위를 무제한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다. 갓이든 마호멧이든 부처든 간에 신의 존재 유무를 놓고 가타부타하고 싶은 생각도 없고, 종교를 떠나 어디의 누구라도 흠 잡으려고 안달나지도 않았지만 어쨋든 덧붙이고 싶은 한 마디.
혼자의 논리만으로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구원하려고 맹목적으로 애쓰지 말란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