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한계를 아름답게 메꿔주는 영화.


내가 있었던 공간, 들었던 음악, 보았던 공간, 맡았던 냄새, 보았던 사람, 느꼈던 기분을 시간이 흐른 뒤 그대로 추억한다는 것은 정말 가능할까? 
보통의 방법이라면 사진을 찍거나 필름을 남기고 녹음을 하거나 기록을 하는 정도겠지.
그렇다면 그 기록물을 다시 들추어본다고 해서 인상이 남았던 그 지점을 얼마쯤이나 복구할 수 있을까?
입맛도 변하고, 청각도 변하고, 혹시나 연출 되었던 경우라면 자신의 기억력을 얼마나 믿을 수 있을까?
기억의 한계를 넘어서는 일이란 현재로선 정말 불가능해보인다. 또 잊지 않으려는 것은 욕심일 뿐이다.



그런 욕심을 버리고 호우 샤오시엔의 야스지로 속으로, 요코의 기록과 하지메의 녹음 속으로,
장 웬예를 추억하는 사람들의 기억 속으로, 2003년의 도쿄와 야마노테 선의 기억 속으로 그들의 얘기와

내 일상이 속삭이는 소리를 들으러 갔다.

상영시간을 턱 앞에 두고 당도했으나 안심은 커녕 볼멘 소리만 나왔다.                  

예정에도 없던 호우 샤오엔의 깜짝 무대인사가 있었다.
마스터 클래스와 강연은 포기하고 있던 차에 얻은 횡재였건만, 벌써 마무리 멘트다. 조금 더 일찍 도착할 걸.

 


'날 좋은 날 카페에 앉아서 몽롱한 기분으로 앉아 추억을 회상하는 기분으로 만든 영화라 스토리가 강하지 않고, 리듬도 느려서 보면서 조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고 덧붙여 잘 주무시고 좋은 꿈꾸라고 빌어주기 까지 했다.

그래서일까? PIFF 홍보 필름의 아기 웃음소리 까지 흉내내며 부산스레 움직이던 내 옆 관객은 영화가 시작되고 첫 씬의 요코가 빨랫줄에 옷을 두개째 널 때 부터 머리를 접고 졸기 시작했다.

처음 등장하는 요코의 방은 빛이 환하게 들어오는 야스지로의 그런 방이다. 요코는 친구와 통화를 하며 빨래를 널고 있고 요코의 통화를 통해 대강의 짐작을 하느라 머릿속이 부산스레 움직였지만, 나중에 가선 끼어맞추기 놀이는 그만해버릴 걸 하는 후회를 하고 말았다.  스릴러도 아닌데 나름대로 조합을 맞추느라 열심이었다. 오즈 야스지로와 이 영화의 상관관계 말이다.

그냥 편하게 즐기면서 보면 되는데, 궁리하면서 보는 이상한 습관이 뭐냔 말이다. 전철이 지나가고, 딸의 사정이 있고, 식구들과 방에서 식사를 하고, 이웃이 찾아오는 일들에 굳이 무릎을 칠 필요도 없는데 말이야.

대만에 애인과 함께 있다 임신을 한 채로 집에 돌아온 요코(HITOTO Yo )는 자신의 친구 하지메(ASANO Tadanobu)가 일하고 있는 고서점을 찾아가 하지메가 구한 시디를 들으며 장 웬예라는 음악가의 얘기를 한다. 

일본에 살았던 대만 가수로 독학으로 성악을 터득했으며, 그가 자주 가곤 했던 카페
와 주변부 이야기를 쓰고 싶어하고, 하지메는 도쿄의 모든 종류의 지하철과 전철, 발차 소리, 안내 방송, 사람들이 말 소리 까지 모두 녹음하는 틈틈이 요코가 말하는 카페 찾기를 돕는다.

 

한편 요코는 아버지(KOBAYASHI Nenji)의 마중으로 집에 돌아가 평소와 다름없이 잠을 자고 밥을 먹고나선 임신을 했으며  미혼모가 될거라고 말하지만, 아버지와 새어머니(YO Kimiko)는 요코에게 아무런 다그침이나 조언도 없다. 옛날 마음이 있었던 친구 세이지(HAGIWARA Masato)와의 추억을 꼽씹으며 평화롭게 시간을 보내고, 요코는 다시 도쿄로 돌아온다.

요코는 간밤에 아기를 뺏기고 대신 얼음아이를 얻는 꿈을 꾸고, 하지메에게 전화를 하고, 자신이 그 동화를 본 적도 없는데 고블린의 동화와 유사한 꿈을 꾼것에 감탄한다.

 

카페에서 우유를 마시고 고즈넉히 시간을 돌아다보면서 세이지와도 다시 재회하지만, 그는 요코의 주위에 변함없이 편히 머물러 있는 친구일 뿐이고,
하지메와도 기차를 타고 장 웬예의 카페를 찾아 함께 다니지만 자신에게 마음 써 주는 좋은 친구일 뿐이다. 미래에 대한 설계도 없이 요코가 매달리는 것은 장 웬예의 카페 뿐이다.

그동안 자신이 좋아하는 감자조림을 가지고 도쿄로 찾아 온 부모님과의 한때도 일상처럼 흘러간다. 어떻게 보면 가족의 위기에 직면한 시점에도 유쾌한 해프닝들이 일어나는 자잘한 순간들이 있다. 요코의 어머니가 요코와 요코의 이웃에게서 술과 잔마저 빌리는 그런 장면들은 언제나 일상의 무거움에 숨통을 트이게 한다. 예전의 도쿄 지도를 기억하는 카페 주인의 도움으로 장 웬예를 기억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고, 평소와 변함없이 타고 가는 지하철 안에서 녹음작업에 여념이 없는 하지메와 변함없이 마주친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 다음으로 ASANO Tadanobu가 직접 그래픽 작업한 기차들의 이미지처럼 도쿄의 지하철들이 제각기 스크린을 가로지르며 지나간다.

기차, 지하철. 참으로 이 영화엔 많이 등장하는 소재다. 야마노테 선은 물론 전철, 경전철, 소형 열차 등 많은 종류의 열차가 등장인물과 기억들을 실어 나른다.

하지메에겐 실어 나르는 기억보다는 생활의 편리와 일상의 기억이 함께 담기는 기록이 된다.

그리고 감독에게는 오즈 야스지로에게 이르는 촉매제가 되고, 뤼미에르 형제의 그 까페에 가 닿는 시오타역의 기차와도 같다. 영화 내내 무수히 많이 나오는 역의 모습과 소리들은 하나도 똑같은 것이 아니었다.

 

기차를 타면 목적지와 경유지가 틀리고,  오즈 야스지로와 호우 샤오시엔이 표현과 시대가 틀리듯, 영화를 보는 우리의 일상도 그 빛을 달리한다.

역시나 영화를 보는 사람들의 모습도^^; (카페 뤼미에르를 보고 나올 때 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주무시고 나왔던 것 같긴 하더라)

커피 향기 가득한 카페의 창가에 앉아, 따뜻한 볕을 등지고 나의 기억과 다른 사람의 기억을 훑어가며 만끽하는 오후의 심심한 여흥에 꽤 기분이 좋았다.


일상을 꼼꼼히 기록할 수 없겠지만, 흘러가 버려도 추억할 수 있는 그런 기억으로 채워 보려는 욕심은 괜찮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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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입맛이 돌아 왔다.  그래서 최근 요리를 등한시 하셨던 엄마는 당신을 위해 부지런히 냉장고를 채우셨나보다. 간만에 집에 돌아가니 주루룩 나와있는 냄비들엔 찌개며 국이 종류별로 담겨있고, 냉장고엔 재료가 아니라 만들어진 반찬들이 가득하다. (ㅎㅎ 사실 재료들은 엄마의 온리 러블리한 김치냉장고에 다 들어가 있긴 하지). 당신이 술을 조금 자제하시는 덕분에 엄마는 연신 웃음을 띄신다.  당신의 그 썰렁한 농담 몇 마디에도 자지러지시고. 거기에 필 꽂히신 아버진 설겆이며 청소를 도와주시며 사랑받는 남편 역할을 톡톡히 하려 하신다. 당신께서 술을 끊는게 아니라 조금만 자제를 하셔도 엄마에겐 그게 낙인데, 사실 이 맘때 쯤의 해피 무드는 날씨가 추워지면 또 사라지겠지. 

그래도 간만에 집안 분위기가  상승모드를 타자 덩달아 나도 즐거워져 "요리"를 해보고 싶어 꼼지락거렸는데, 역시나 실패다. 이름 붙였던 것은 "새우 완자 버섯 전골"이었는데, 양도 가늠 못하고 커다란 전골 냄비에 가득 채워서 뭔가 만들었는데, 몇 숟갈 들더니 다들 나가 떨어졌다. 핑계는 가지각색. 밥을 먹고 와서라든지, 오늘은 느끼한 것이 안 받는다는 둥. 거기에 굴하지 않고 '잘 맛봐봐. 그래도 전골 맛이 나는 거 같지 않아'라며 주위를 독려하였지만, 냄비의 내용물은 전혀 줄지 않았다.  제철 버섯들이 아까워서 동생이 스프로 용을 써 봤지만, 실패는 실패. 우리의 입맛 만큼은 여전하지만, 그 시원 쌉싸름하고 구수하고 달콤한 전골은 이미 운명을 달리한 것이었다. 

엄마, 아빠한테만 엄마가 필요한 게 아니고, 우리도 엄마가 필요하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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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신님의 붉은 혀 1 - 모험개시
우요스케 지음 / 북박스(랜덤하우스중앙) / 2004년 10월
평점 :
절판


『가면속의 수수께끼』에 비할까만은 기호와 재미를 만족시켜 좋은 인상을 남겼다.
공원에서 아이들이나 즐겁게 해주며 최고의 삐에로가 되겠다던 주인공은
어느 날 사라진 애인 리카가 태국과 캄보디아의 국경지대에 있는 사원에서
아시아를 석권하고 있는 괴종교 집단인 한 교단의 여교주라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자마자
눈물을 흘리며 달려가서 겪게 되는 모험을 그리고 있다.

컬트^^하면서도(컬트 종교 집단을 다루고 있어서가 아니라^^;;) 꽤 웃기다.
개그컷이나 일반 컷에서도 장면 연출이 꽤 인상적이면서도 재밌었다.
예를 들면 삐에로의 공중 묘기를 지상에서 올려다보는 사람들의 표정과 구도는
만화의 힘이 십분발휘되는 장면이랄까.
또한 일반적인 삽화체와 개그 컷이 오가는 도중에
한번 씩 등장하는 점묘화법 스타일 삽화와 판화 스타일의 삽화는
피안도에서 잠깐씩 보여줬던 임팩트 강했던 그림들 보다 한수 위다.
힌두 신화를 만화적 스타일로 재창조해낸 이미지들도
개성적이면서 대표적인 캐릭터가 잘 살아난 듯 보인다.

『쿠니미츠의 정치』를 보면 퀭한 얼굴로 항아리를 들고 다니는 이색 광신교 집단이 나오는데,
여신님의 붉은 혀에서는 혀를 허리까지 늘여뜨린 광신도들이 등장한다.
여신님을 환영하는 표현은 이 긴 혀를 휘두르거나 손을 잡듯 서로 비비대는데,
이거야 말로 만화를 보는 이를 기겁하게 만드는 장치이다.
혀를 내어갖고 몇초만 있어도 침이 질질 흘를 것 같은 불편함이 드는데,
이 만화는 혀를 집어내어 휘두르는 장면이 연이어 이어지니
보는 것만으로 굉장히 불편하며 더러운 느낌까지 함께 제공한다.
특히 2권 마지막의 자질 테스트 장면은 프리메이슨에 전혀 꿀리지 않을정도의 박력이 있다.

그럼에도 이 만화를 재밌게 볼 수 있는 것은
납치된 것으로 보이던 리카가
파르바티, 두르가, 칼리의 세 모습으로 인격이 변한다는 설정이 추가 되면서
힌두 신화와 판타지, 그리고 오락과 서사의 요소를 충분히 만끽할 수 있다는 것에 있다 하겠다.
신화의 용어들만 버무려된 셀 수 없는 판타지 만화들에 비하면 군계일학이다.
만화 표지가 그걸 말해주는 듯 하다.

튀는 소재와 감각으로 2권까지 흥미를 끌어왔다면 진정한 판가름은 다음권에서일 것이다.
신선한 아이디어와 탄탄한 스토리를 기대한다. 『꼭두각시 서커스』처럼 장수하길 빌며.


요주의 : 이 만화를 읽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혀를 주욱 내밀게 된다. 침 흘리지 않게 조심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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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 이야기가 지금은 더 이상 특별한 사랑의 이야기가 아니다. 어디서나 일어나고 있다. 영화나 드라마던가, 또는 현실이던가 아니면 개똥 밭이던가. 그런 흔하디 흔하고 지겹도록 굴려먹고 있는 연인의 이야기를 켄 로치가 한다면 이런 것이다.
켄 로치를 익히 알아 온 팬들이라면 의외라고 단박에 말하겠지. 사실 <<빵과 장미>>에서 노조원 샘과 멕시코 이민자 마야의 사랑 이야기가 나왔었지만, 왠지 불편했었다. 연대에서 자연스럽게 뻗어진 친밀감인지, 동정에서 시작된 이타애인지 의문이 갈 정도였니까.하지만 계속 바닥으로 떨어지는 인권에 떠밀려 에피소드 같은 것이 되고 말았다.
그런 켄 로치가 연인을 소재로 사랑의 떨림을 웃기지만 로맨틱한 연출로 살려내고 있지만  연인의 이야기로 단정싶고 싶지 않은 많은 것들이 욕심나게 담겨 있는 영화 <<다정한 입맞춤>>

사랑은 익숙한 단어만큼도 간단하지 않다. 나와 같아서 사랑하고, 나와 달라서 사랑한다. 그렇다면 두 사람이 오래 사랑하기만 하면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 오래라는 것은 각각의 타인에게 얼마쯤의 시간을 말하는걸까? 얼마쯤 이라는 약속을 사랑이라는 감정에 묶어두기 위해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묶여 온 제도에 서로를 갖다 맞춘다. 그리고 그 제도는 형식마저 제각각 틀리다. 인종, 나라와 역사, 문화와 관습, 가치관, 그리고 기호에 이르기까지.
사랑하는 연인이 결혼을 한다. 내가 아닌 타인을 끌어 안을 수 있다면 얼마까지 가능할까? 혹시나 내가 버랴야 하는 것들이 있다면 그것은 얼마만큼 일까? '당신을 사랑해, 목숨까지 다 바쳐서' 그러나 우리에겐 목숨을 다 바쳐도 사랑과 흥정할 수 없는 일들이 많기에 일어나는 많은 갈등을 알고 있다.
그 대표적인 몇몇을 들추는 두 연인의 다정한 입맞춤에서 발견한다.

카심의 여동생은 수업시간의 발표에서도 알 수 있듯이 파키스탄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자신의 종교에 대해 아주 당당하다. 그것은 그 지역의 유수한 대학에서 정치학을 수료한 카심의 누나도 마찬가지다. 아들 카심은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한 후 최근 DJ로 일하다 친구와 동업해서 클럽을 차릴 꿈에 부풀어 있다. 자식들의 안정된 결혼만이 최대의 관심사인 아버지는 아들의 집을 증축하는 즐거움으로 살며, 어머니는 딸의 혼사를 두고 자식들 자랑에 여념이 없는 우리와 별 다를바 없는 평범하고 행복한 가정이 있다. 단지 문제가 있다면 그들이 살고 있는 곳이 영국의 글래스고라는 것.
여동생은 사람들의 문화적 편견으로 따돌림과 놀림을 당하고, 부모님이 경영하시는 슈퍼만 해도 백인의 애완견이 볼일 보는 변소와 다를 바 없다.

그러한 환경의 카심은 어느 날 동생이 다니는 미션스쿨의 음악 선생 로신과 사랑에 빠진다. 누군가를 만나고, 설레고, 거짓말을 해서라도 붙잡을 구실을 만들고, 키스하고, 섹스하고 이 둘의 사랑은 여느 연인들 못지않게 달콤하다. 사랑할 때는 아무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카심의 결혼 계획은 카심이 사랑에 빠지는 것보다 진도가 더 빨라지고 급기야 두 사람의 만남은 문화의 충돌이자 인종과 종교의 범위까지 이어져 모든 것이 문제화 된다.

카심이 사랑한 그녀 로신이 미션스쿨의 선생이고, 별거중인 카톨릭 교도에, 카심보다 몇살 많은 영국 본토박이 백인이라는 것과 부모는 없는데다 순종적인 성격은 없지만 자립심 강하다는 것, 카심 또한 가부장적인 가족 분위기에서 애지중지 길러진 아들이라는 것과, 무슬림 교도로서의 지역적인 평판을 중시하는 문화, 그의 모태신앙인 종교, 우유부단하지만 가족에 대한 사랑이 서양사회보다 더 두터운 것 뿐이라는 것 등등이 그들을 괴롭힌다. 가족을 사랑한 나머지 여성을 사회로 진출시키지 않는 <<슈팅라이크 베컴>>의 일화들이 여기서도 발견된다. 그래도 <<슈팅..>>과 차별되는 켄 로치의 시선은 이들의 관습을 비하하고 수준 낮은 것으로 치부하지 않는데 있다. 그가 주력하는 것은 낯선 관습이 서로 부딪히는데서 오는 것이지, 한 쪽의 관습이나 문화가 다른 문화에 종속되어야 할 이유를 역설하는데 있지 않았다.

카심의 어머니는 병으로 쓰러진다고 위협을 하고, 정혼자인 사촌 재스민은 영국으로 날아오고,
아버지는 아들의 신혼집 증축을 끝내고, 누나는 카심이 이방인과 결혼하는 것 때문에 파혼 당하게 되었다고 울고, 급기야는 로신을 불러내 로신 없이도 카심이 가족과 얼마나 행복할 수 있는지를 증명하려 한다. 로신은 상처받은 자존심을 수습하기도 전에 이교도와 동거를 하고 있다는 문제로 학교 위원회로부터 해고를 당한다.
이러한 문화적 문제들을 산적해 두고도 우리에게 이 영화가 다정하게 끌어당기는 것은 두 연인의 다툼과 사랑, 헤어짐과 재화, 일상적인 순간들을 스크린에 열심히 쏟아 붓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카심에게 일방적으로 가족을 버리고 자신을 선택하라고 종용하는 로신을 보고 백인의 우위의식을 느낄 수 없었던 것은 사랑하는 이에게 충분히 요구할 수 있는 그런 권한처럼 보이게 만드니까. 사업의 사활이 걸린 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버리고 가족에게 달려갔을 거라고 믿으며 화를 내는 그녀의 모습은 보통의 연애가 아닌가.

과거의 켄 로치처럼 영화에 나타낸 좌파적 행동으로 무장한 영화화는 아니지만, 은유적으로 배어 나오는 것은 별반 다르지 않다. 종교와 인종에 대해서, 가족과 문화에 대해서, 사람과 사람에 대해서 그가 말하는 것들은 여실히 묻어나고 있다. 세상이 금방 바뀔 턱은 없지만, 무엇 때문에 바뀌어야 하는지, 왜 혁명을 꿈꿀 수 밖에 없는지 우리의 생활을 들춰내며 그가 조용히 묻고 있다.

마지막 수업에서 로신은 Billie Holiday의 "Strange Fruit"이 흐르는 가운데 1930년대의 흑인린치 참상이 담긴 스틸을 보여준다. 두 사람의 다정한 입맞춤을 영화 마지막에 보았건만, 잔상으로 남는 것은 그런 것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행복했다'가 아니라 그들이, 아니 우리가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지를 반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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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피프에 내가 기대한 영화 중 일제로는 무라카미 류 원작의 <<69>>, 기타노 다케시와 최양일 감독의 <<피와 뼈>>애니 << 애플시드>>, 그리고 단지 재즈가 소재라는 이유만으로 <<세상 밖으로>>.
<<모터 사이클 다이어리>>와 시간대를 맞추려다 보니 <<세상 밖으로>>는 볼 수 있겠는데, 치열한 예매 전쟁 당시 빔 벤더스와 호 샤오시엔에게 총력을 기울이다 보니 예매 실적은 전무했다. 맨땅에 헤딩 하더라도 방법은 있는 것이다. 피프에 갈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최고의 노하우는 죽치거나 끼어드는 것이다.

자, 용케 거머진 표를 들고 들어 갔으나 영화 초반 부터 나는 슬슬 짜증이 나고 있었다. 감독은 어깨에 힘을 빼도 너무 뺐다. '이러 이러한 시절이 있었다'라는 요지로 썰을 푸는 것도 어느 정도 아닌가.
일본 패전 2년 후 전쟁이 끝났다는 삐라를 들고 그가 돌아온 고향의 모습은 참혹하다.
자신들도 피해자라는 식의 폐허의 한 가운데서 복구의 땀을 흘리고 있는 풍경들이 전반을 줄창 잡아먹고 있었다. 슬며시 재미와 완성도와는 별개로 <<반딧불의 묘지>>에서 느꼈던 그 이상한 울분과 찝찝함이 슬금슬금 올라오는 것이다. 이러한 기분은 내내 지속됐다, 클럽에서 술을 마시는 패잔병에서, 미군정 하에서 수모를 받는 일본인의 빈번한 클로즈업에서, 시시콜콜 등장하는 폐허의 모습에서, 변두리의 한 고물상에서 빈병 때문에 아이들을 나무라는 모자란 한국 사람의 모습에서, 한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미군 병사의 출정 모습에서.그래서 꽤 코믹한 장면이 많이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피식 피식 콧방귀를 뀌고 말았나보다.

영화는 감동의 최고조를 향해 달리기 위해 각계 계층의 감상적인 캐릭터들을 대표적으로 버무리기 시작한다. 태평양의 한 섬에서 시체들 사이를 굴르다 뒤늦게 일본에 돌아온 악기상점의 아들 켄타로, 시대를 책임 없이 산다고 해서 사회주의자인 형과 대치 관계에 놓여 벽장속으로 피해 재즈를 들어왔던 죠~ 상, 밴드 보다, 재즈 보다 전쟁 중에 읽은 이복 동생을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아키라, 원폭 피해를 입은 가족의 생계와 새로이 찾은 음악의 이끌림 때문에 갈등하는 쇼조, 끝간데 없이 트럼펫을 불지만 그 외의 시간엔 약을 부는 히로유키들은 물론 일본군에게 동생을 잃고 일본을 증오하는 미군 병사의 악몽, 아들을 잃어 온 어제들처럼 자신의 병사들을 계속 전장으로 보내야 하는 미군장교, 흑인과는 친구가 될 수 없는 백인, 미군대의 잔심부름을 하며 밀수를 하는 자칭 일본인 2세, 거머리처럼 미군에 붙어 몸을 파는 여자들과 그를 무시하는 여자 뮤지션, 미국식 라이프를 선망하는 술집 마담, 전쟁 고아, 패잔병, 외다리 병사, 상이군인회, 고물상 등 수많은 캐릭터가 재즈를 매개로 해서 얽기 섥기 엮어져 있지만, 자잘한 풍경과 과장된 코믹 씬에 치우친 나머지 어수선해지는 느낌이 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가진 매력은 상당하다. JAZZ 때문이다. 미군의 유입과 함께 일본에 들어온 미국식 LIFE STYLE은 선풍적 인기를 타고 번져 나간다. 그런 붐에 편승해서 돈을 벌려고 일자 무식으로 JAZZ에 발을 담구는 초짜가 있고, 재즈와 마약에 절어 사는 천재가 있고, 세상의 문제와는 상관없이 음악 속으로 도망간 혐의를 받는 뮤지션이 있고, 함께 술을 마시고, 함께 음악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으며 살아가는 이들을 어설프게 재즈 한답시고 색소폰을 들고 다닌다며 일본의 국민성 자체를 업신여기던 한 미군병사는 재즈로 인해 마음을 열게 된다. 나 또한 흘러간 트롯트 마냥 오래된 스탠다드들이 흘러나왔지만 영화에 충분히 빠져들었다.

겉모양만 재즈 밴드처럼 대충 꾸려서 미군 부대의 클럽 무대에 올라가는 내국인과 그를 조소하는 미국인들의 모습은 자국의 최고 상품이었던 재즈를 무척이나 자랑스러워하는 모습들이었다. 당시 미국에서의 재즈는 비밥과 쿨의 전성기였을 뿐만아니라, 최고로 다양한 활동을 펴고 있었고, 흥에 겨운 젊은이들이 클럽을 거리를 메웠으니까. 그런 그들의 눈에 엉성한 밴드가 재즈를 한다고 깝죽댔으니 말이다.
그러한 풍경은 우리나라와 별반 다르지 않다. 사실 전쟁이 재즈의 대중화를 가져왔고, 우리 나라의 재즈 뮤지션 제1세대 또한 그런 조소를 견디며 JAZZ의 뿌리를 길렀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어디나 시작은 있는 것이다. 영화 내내 엉성한 그들의 연주를 무시하는 사람들이 보이고, 세상을 피해서 음악에만 빠져든 주인공들을 멸시하는 이웃들이 있었지만, 음악 뿐이었던 그들의 세상도 음악으로 인해 세상 밖으로 넓혀진다.

미제 담배이름을 딴 "The Lucky Strakers"밴드로 미군 부대의 클럽의 무대에 섰던 퀸텟을 소개하자면,
<<까페 뤼미에르>>에서 요리사로 나오던 HAGIWARA Masato는 테너 색소폰, <<소녀검객 아즈미 대혈전>>의 ODAGIRI Jo는 스틱을 작대기라 하는데도 드럼을 치고, 밴드에서 그나마 오래된 경력을 맞고 있는 베이스는 <<프리즈미>>에의 덥수룩한 약혼자 MATSUOKA Shunske, 돈 버느라 혈안이 된 피아노는 <<바운스>>의 MURAKAMI Jun이 맡고 있으며, 컨츄리 밴드에서 픽업된 마약쟁이 트럼펫터는 실제로 활동하고 있는 뮤지션 MITHCH다. 그래서 영화에는 대기실 의자라든지, 페허의 언덕이라던지, 클럽에서등 솔로 연주를 하는 장면이 꽤 많이 나오는데 그 때 마다 관객에겐 멋진 선물인듯 여겨졌다.

<<세션 나인>><<쉘로우 그레이브>>의 Peter Mullan은 죽은 아들 때문에 "Danny Boy"만 연주하면 우는데, 영화에서 나오는 "Danny boy"는 구닥 느낌보다 애처로운 느낌이 많이 나서 참 좋았던 것 같다. 천재 소녀 가수의 신드롬은 꽤 많은 것을 시사했고, 위안잔치 스타일의 빅밴드도 재밌었다. 미군 러셀이 속한 기념 밴드에서 부르는 봄맞이 공연에선 소위 신식 스타일의 고급문화 대명사로 변모한 재즈를 즐기는 사교계의 풍경과 함께 감미로운 "Mona Lisa"를 들려준다.
bar 체리의 메뉴에 WHISKEY의 스펠이 틀렸다고 농담 아닌 농담을 하는러셀 Sheal Whigham과 켄타로 HAGIWARA Masato가 색소폰으로 박빙의 승부를 펼치는 장면도 볼만했는데, 개인적으로는 연주도중에 쳐들어가 '나도 이만은 하는데, 너보단 잘하지?'하는 식의 뽐내기식 battle보다, 러셀과 켄타로가 하나되어 벌어지는 Jam이었으면 더 근사했을 것 같기도 하다. 아마 미군 부대 앞에서 한국전에 참전하러 떠나는 러셀과 이별하는 장면보다는 훨씬 나은 그림이 될것 같았는데 말이지, 왠일인지 너무나 친절한 감독 Sakamoto Junji는  러셀의 전사를 알리는 자리에서 켄타로로 하여금 theme "Out of This World"를 대미에 장식하게 한다. 섹스폰을 연주하며 노래를 하는 그의 '마그도나르도'식 영어는 적잖이 불편했지만,  가사와 재즈, 그리고 재즈에 빠져든 사람들은 충분히 마음을 적셔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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