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피프에 내가 기대한 영화 중 일제로는 무라카미 류 원작의 <<69>>, 기타노 다케시와 최양일 감독의 <<피와 뼈>>애니 << 애플시드>>, 그리고 단지 재즈가 소재라는 이유만으로 <<세상 밖으로>>.
<<모터 사이클 다이어리>>와 시간대를 맞추려다 보니 <<세상 밖으로>>는 볼 수 있겠는데, 치열한 예매 전쟁 당시 빔 벤더스와 호 샤오시엔에게 총력을 기울이다 보니 예매 실적은 전무했다. 맨땅에 헤딩 하더라도 방법은 있는 것이다. 피프에 갈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최고의 노하우는 죽치거나 끼어드는 것이다.

자, 용케 거머진 표를 들고 들어 갔으나 영화 초반 부터 나는 슬슬 짜증이 나고 있었다. 감독은 어깨에 힘을 빼도 너무 뺐다. '이러 이러한 시절이 있었다'라는 요지로 썰을 푸는 것도 어느 정도 아닌가.
일본 패전 2년 후 전쟁이 끝났다는 삐라를 들고 그가 돌아온 고향의 모습은 참혹하다.
자신들도 피해자라는 식의 폐허의 한 가운데서 복구의 땀을 흘리고 있는 풍경들이 전반을 줄창 잡아먹고 있었다. 슬며시 재미와 완성도와는 별개로 <<반딧불의 묘지>>에서 느꼈던 그 이상한 울분과 찝찝함이 슬금슬금 올라오는 것이다. 이러한 기분은 내내 지속됐다, 클럽에서 술을 마시는 패잔병에서, 미군정 하에서 수모를 받는 일본인의 빈번한 클로즈업에서, 시시콜콜 등장하는 폐허의 모습에서, 변두리의 한 고물상에서 빈병 때문에 아이들을 나무라는 모자란 한국 사람의 모습에서, 한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미군 병사의 출정 모습에서.그래서 꽤 코믹한 장면이 많이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피식 피식 콧방귀를 뀌고 말았나보다.

영화는 감동의 최고조를 향해 달리기 위해 각계 계층의 감상적인 캐릭터들을 대표적으로 버무리기 시작한다. 태평양의 한 섬에서 시체들 사이를 굴르다 뒤늦게 일본에 돌아온 악기상점의 아들 켄타로, 시대를 책임 없이 산다고 해서 사회주의자인 형과 대치 관계에 놓여 벽장속으로 피해 재즈를 들어왔던 죠~ 상, 밴드 보다, 재즈 보다 전쟁 중에 읽은 이복 동생을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아키라, 원폭 피해를 입은 가족의 생계와 새로이 찾은 음악의 이끌림 때문에 갈등하는 쇼조, 끝간데 없이 트럼펫을 불지만 그 외의 시간엔 약을 부는 히로유키들은 물론 일본군에게 동생을 잃고 일본을 증오하는 미군 병사의 악몽, 아들을 잃어 온 어제들처럼 자신의 병사들을 계속 전장으로 보내야 하는 미군장교, 흑인과는 친구가 될 수 없는 백인, 미군대의 잔심부름을 하며 밀수를 하는 자칭 일본인 2세, 거머리처럼 미군에 붙어 몸을 파는 여자들과 그를 무시하는 여자 뮤지션, 미국식 라이프를 선망하는 술집 마담, 전쟁 고아, 패잔병, 외다리 병사, 상이군인회, 고물상 등 수많은 캐릭터가 재즈를 매개로 해서 얽기 섥기 엮어져 있지만, 자잘한 풍경과 과장된 코믹 씬에 치우친 나머지 어수선해지는 느낌이 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가진 매력은 상당하다. JAZZ 때문이다. 미군의 유입과 함께 일본에 들어온 미국식 LIFE STYLE은 선풍적 인기를 타고 번져 나간다. 그런 붐에 편승해서 돈을 벌려고 일자 무식으로 JAZZ에 발을 담구는 초짜가 있고, 재즈와 마약에 절어 사는 천재가 있고, 세상의 문제와는 상관없이 음악 속으로 도망간 혐의를 받는 뮤지션이 있고, 함께 술을 마시고, 함께 음악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으며 살아가는 이들을 어설프게 재즈 한답시고 색소폰을 들고 다닌다며 일본의 국민성 자체를 업신여기던 한 미군병사는 재즈로 인해 마음을 열게 된다. 나 또한 흘러간 트롯트 마냥 오래된 스탠다드들이 흘러나왔지만 영화에 충분히 빠져들었다.

겉모양만 재즈 밴드처럼 대충 꾸려서 미군 부대의 클럽 무대에 올라가는 내국인과 그를 조소하는 미국인들의 모습은 자국의 최고 상품이었던 재즈를 무척이나 자랑스러워하는 모습들이었다. 당시 미국에서의 재즈는 비밥과 쿨의 전성기였을 뿐만아니라, 최고로 다양한 활동을 펴고 있었고, 흥에 겨운 젊은이들이 클럽을 거리를 메웠으니까. 그런 그들의 눈에 엉성한 밴드가 재즈를 한다고 깝죽댔으니 말이다.
그러한 풍경은 우리나라와 별반 다르지 않다. 사실 전쟁이 재즈의 대중화를 가져왔고, 우리 나라의 재즈 뮤지션 제1세대 또한 그런 조소를 견디며 JAZZ의 뿌리를 길렀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어디나 시작은 있는 것이다. 영화 내내 엉성한 그들의 연주를 무시하는 사람들이 보이고, 세상을 피해서 음악에만 빠져든 주인공들을 멸시하는 이웃들이 있었지만, 음악 뿐이었던 그들의 세상도 음악으로 인해 세상 밖으로 넓혀진다.

미제 담배이름을 딴 "The Lucky Strakers"밴드로 미군 부대의 클럽의 무대에 섰던 퀸텟을 소개하자면,
<<까페 뤼미에르>>에서 요리사로 나오던 HAGIWARA Masato는 테너 색소폰, <<소녀검객 아즈미 대혈전>>의 ODAGIRI Jo는 스틱을 작대기라 하는데도 드럼을 치고, 밴드에서 그나마 오래된 경력을 맞고 있는 베이스는 <<프리즈미>>에의 덥수룩한 약혼자 MATSUOKA Shunske, 돈 버느라 혈안이 된 피아노는 <<바운스>>의 MURAKAMI Jun이 맡고 있으며, 컨츄리 밴드에서 픽업된 마약쟁이 트럼펫터는 실제로 활동하고 있는 뮤지션 MITHCH다. 그래서 영화에는 대기실 의자라든지, 페허의 언덕이라던지, 클럽에서등 솔로 연주를 하는 장면이 꽤 많이 나오는데 그 때 마다 관객에겐 멋진 선물인듯 여겨졌다.

<<세션 나인>><<쉘로우 그레이브>>의 Peter Mullan은 죽은 아들 때문에 "Danny Boy"만 연주하면 우는데, 영화에서 나오는 "Danny boy"는 구닥 느낌보다 애처로운 느낌이 많이 나서 참 좋았던 것 같다. 천재 소녀 가수의 신드롬은 꽤 많은 것을 시사했고, 위안잔치 스타일의 빅밴드도 재밌었다. 미군 러셀이 속한 기념 밴드에서 부르는 봄맞이 공연에선 소위 신식 스타일의 고급문화 대명사로 변모한 재즈를 즐기는 사교계의 풍경과 함께 감미로운 "Mona Lisa"를 들려준다.
bar 체리의 메뉴에 WHISKEY의 스펠이 틀렸다고 농담 아닌 농담을 하는러셀 Sheal Whigham과 켄타로 HAGIWARA Masato가 색소폰으로 박빙의 승부를 펼치는 장면도 볼만했는데, 개인적으로는 연주도중에 쳐들어가 '나도 이만은 하는데, 너보단 잘하지?'하는 식의 뽐내기식 battle보다, 러셀과 켄타로가 하나되어 벌어지는 Jam이었으면 더 근사했을 것 같기도 하다. 아마 미군 부대 앞에서 한국전에 참전하러 떠나는 러셀과 이별하는 장면보다는 훨씬 나은 그림이 될것 같았는데 말이지, 왠일인지 너무나 친절한 감독 Sakamoto Junji는  러셀의 전사를 알리는 자리에서 켄타로로 하여금 theme "Out of This World"를 대미에 장식하게 한다. 섹스폰을 연주하며 노래를 하는 그의 '마그도나르도'식 영어는 적잖이 불편했지만,  가사와 재즈, 그리고 재즈에 빠져든 사람들은 충분히 마음을 적셔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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