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입맛이 돌아 왔다. 그래서 최근 요리를 등한시 하셨던 엄마는 당신을 위해 부지런히 냉장고를 채우셨나보다. 간만에 집에 돌아가니 주루룩 나와있는 냄비들엔 찌개며 국이 종류별로 담겨있고, 냉장고엔 재료가 아니라 만들어진 반찬들이 가득하다. (ㅎㅎ 사실 재료들은 엄마의 온리 러블리한 김치냉장고에 다 들어가 있긴 하지). 당신이 술을 조금 자제하시는 덕분에 엄마는 연신 웃음을 띄신다. 당신의 그 썰렁한 농담 몇 마디에도 자지러지시고. 거기에 필 꽂히신 아버진 설겆이며 청소를 도와주시며 사랑받는 남편 역할을 톡톡히 하려 하신다. 당신께서 술을 끊는게 아니라 조금만 자제를 하셔도 엄마에겐 그게 낙인데, 사실 이 맘때 쯤의 해피 무드는 날씨가 추워지면 또 사라지겠지.
그래도 간만에 집안 분위기가 상승모드를 타자 덩달아 나도 즐거워져 "요리"를 해보고 싶어 꼼지락거렸는데, 역시나 실패다. 이름 붙였던 것은 "새우 완자 버섯 전골"이었는데, 양도 가늠 못하고 커다란 전골 냄비에 가득 채워서 뭔가 만들었는데, 몇 숟갈 들더니 다들 나가 떨어졌다. 핑계는 가지각색. 밥을 먹고 와서라든지, 오늘은 느끼한 것이 안 받는다는 둥. 거기에 굴하지 않고 '잘 맛봐봐. 그래도 전골 맛이 나는 거 같지 않아'라며 주위를 독려하였지만, 냄비의 내용물은 전혀 줄지 않았다. 제철 버섯들이 아까워서 동생이 스프로 용을 써 봤지만, 실패는 실패. 우리의 입맛 만큼은 여전하지만, 그 시원 쌉싸름하고 구수하고 달콤한 전골은 이미 운명을 달리한 것이었다.
엄마, 아빠한테만 엄마가 필요한 게 아니고, 우리도 엄마가 필요하단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