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으로 읽는 변신이야기 ㅣ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오비디우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05년 3월
구판절판


그 사이에 파에톤의 아버지는 상심하여 평소의 광채를 잃은 채 헝클어진 모습을 하고 있었으니, 마치 일식으로 어두워졌을 때와도 같았다. 그는 빛도 자기 자신도 날도싫어져 슬픔에 마음을 맡긴 채 슬픔에도 노여움을 더하여 세상을 위해 봉사하기를 거절했다. "충분해."하고 그는 말했다. "태초 이래로 나는 한 번도 쉬어본 적이 없었지. 그게 내게 주어진 몫이었어. 이젠 나도 끝없는 노고에, 아무 명예도 없는 노고에 싫증이 났어. 누구든 다른 이가 광명의 마차를 몰아보라지 아무도 나서지 않고 모든 신들이 자신은 몰 수 없다고 고백하면, 그<윱피테르> 자신이 한번 몰아보라지. 그러면 그는 내 고삐를 잡으려 하는 동안에도 아비들에게서 자식을 빼앗는 벼락을 놀리겠지. 그가 불 같은 발을 가진 말들의 힘을 몸소 겪어보게 되면, 그때에는 누가 말들을 잘 몰지 못했다고 해서 죽어 마땅한 것은 아님을 알게 되겠지." -2-381쪽

태양신이 이렇게 말하자 모든 신들의 그의 주위에 둘러서서 세상을 암흑 속에 빠뜨리지 말아 달라고 애원하고 간청했다. 윱피테르도 벼락을 던진 것을 사과하며, 왕들이 그러하듯 간청에 위협을 덧붙였다. 그러자 포이부스는 정신이 얼떨떨하고 그때까지도 두려움에 떨고 있던 말들을 한데 모으더니 속이 상해 미친 듯이 채찍과 막대기로 치며(그는 정말로 미친 것 같았다.) 아들의 죽음은 말들 탓이라고 나무랐다.-0쪽

윱피테르는 그녀<칼리스토>가 지쳐 있고 무방비 상태임을 보자 말했다. "역기서 바람을 좀 피운다 해도 내 아내가 눈치채지 못하겠지. 설사 알게 되더라도 이만하면 그 대가로 잔소리를 들을 만하지 않은가" 그는 당장 디아나의 옷에 디아나의 얼굴 모습을 하고는 말했다. "오오, 나를 따르는 무리들 가운데 한 명인 소녀여. 어느 산등서이에서 사냥했는가?" 소녀가 풀숲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제가 보기에는 윱피테르보다 더 위대하신 여신이시여. 그분께서 들으신다 해도 상관없어요."-2-422쪽

윱피테르는 미소지으며 자신이 자신보다 더 높이 평가받는 것을 기뻐하며 그녀에게 입맞추었다. 하나 그것은 처녀가 할 법한, 조심스레 건네는 그런 입맞춤이 아니었다. 그녀가 어느 숲에서 사냥했는지 이야기하려는데 그분은 포옹으로 이를 방해했고, 점잖지 못한 본색을 드러냈다. 그녀는 여자가 할 수 있는 한 그분에게 반항했다. (사투르누스의 따님이여, 그대가 그곳에 있었더라면 더 관대했을 것이오.) 반항했지만 소녀가 누구를 이길 수 있으며, 누가 윱피테르를 이길 수 있겠는가? 윱피테르는 승리자로서 높은 하늘로 돌아갔고, 그녀는 수풀과 자신의 비밀을 알고 있는 숲이 싫어졌다. -0쪽

오직 윱피테르의 아내만이 비난하는 말도 찬동하는 말도 않고 아게노르의 집안에 닥친 재앙을 고소해하고 있었으니, 그녀는 이제 자신의 증오심을 튀루스 출신의 시앗에게서 그녀의 친척에게로 돌렸던 것이다. 보라, 묵은 이유에 새 이유가 추가되었으니 그녀는 세멜레가 윱피테르의 씨를 밴 것을 알고는 마음이 괴로웠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종종 험담을 하곤 했다. 하지만 그녀는 말했다. "내가 그토록 자주 험담을 해서 얻은 게 뭐지? 이번에는 아예 그녀를 혼내줘야겠어. 암, 그녀를 말이야. 내가 위대한 유노라고 불리는 것이 정당하다면, 내 오른손으로 보석이 박힌 홀을 휘두르는 것이 합당하다면, 그리고 내가 하늘의 여왕이자 윱피테르의 누이이자 아내라면 말이다. 누이라는 것은 확실치 않은가!-3-256쪽

하지만 그녀는 은밀한 사랑으로 만족하고 있고, 내 침상에 대한 모욕은 잠깐 동안일지도 모르지. 하나 그녀는 설상가상으로 임신을 하여 남산만 한 배로 명백한 유죄 증거를 드러내고 있고 같은 윱피테르에 의해 어머니가 되려고 하는데 그런 행운은 내게도 가까스로 주어지지 않았던가 제 미모에 대해 어찌 그리 자신만만할 수 있는지. 내 그 자신감에 배반당하도록 만들어주겠어. 윱피테르에 의해 그녀가 스튁스의 물속에 잠기지 않는다면 나는 사투르누스의 딸이 아니지."
이렇게 말한 그녀는 옥좌에서 일어나 황금빛 구름으로 몸을 가리고 세멜레의 문턱을 찾았다.-0쪽

운명의 섭리에 따라 지상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두 번 태어난 박쿠스의 요람이 안전한 가운데, 마침 윱피테르는,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신주에 거나하게 취해 무거운 근심 걱정들을 내려놓고ㄴ는 역시 짬이 난 유노와 부담감 없이 농담을 주고 받았다. "물론 그대들 여인들의 느끼는 사랑의 쾌감이 우리들 남편들에게 주어지는 것보다 더 크겠지요." 유노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그래서 그들은 현명한 티레시아스의 의견을 물어보기로 했다. 그는 양쪽의 사랑을 다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략)-3-316쪽

그래서 그는 이 우스꽝스런 논쟁의 중재판관으로 임명되자 윱피테르의 말이 옳다고 확인해 주었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사투르누스의 딸은 티레시아스의 판결에 과도하게 속상해하며 그의 눈이 영원한 어둠 속에 머물도록 저주했다고 한다. 하나 전능한 아버지는 (어떤 신도 다른 신이 행한 일을 취소할 수는 없기 때문에) 티레시아스에게 눈 대신 미래사를 알 수 있는 힘을 주어 명예로써 그의 벌을 가볍게 해 주었다. -0쪽

그<나르킷수스>는 친숙한 물을 들여다보며 이렇게 마지막 말을 남겼다. "아아, 헛되이 사랑받은 소년이여 그러자 그 장소가 그의 말을 돌려보냈다. 그가 "잘 있어" 하고 말하자 에코도 "잘 있어!"하고 말했다. 그는 지친 머리를 푸른 풀 위로 숙였다. 그러자 죽음이 주인의 아름다움을 감탄하던 그 두 눈을 감겨 주었다. -3-499쪽

그는 저승의 거처에 받아들여진 뒤에도 스튁스의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의 누이들인 물의 요정들은 애도의 표시로 머리털을 잘라 오라비에게 바쳤다. 나무의 요정들도 애도했고, 에코 역시 애도하는 그들에게 대꾸하며 함께 애도했다. 그들은 벌써 화장용 장작더미와 휘둘리는 횃불들과 관대를 준비하고 있었다. 하나 그의 시신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들은 시신 대신 노란 중심부가 하얀 꽃잎들에 둘러싸여 있는 꽃 한 송이<수선화>를 발견했다.-0쪽

우라니에가 대답했다. "여신이여, 그대가 어떤 용건으로 우리들의 집을 찾아오셨든 우리는 그대를 진심으로 환영해요. 그 소문은 사실이에요. 그 샘은 페가수스의 작품이에요."
그리고 그녀는 팔라스를 신성한 샘물이 있는 곳으로 인도했다. 여신은 말발굽에 채여서 생겨난 샘물을 보고 한동안 감탄하다가 오래된 숲의 임원들과 동굴들과 수많은 꽃들이 만발해 있는 풀밭들을 둘러보며 므네모쉬네의 딸들이야말로 하는 일로 보나 살고 있는 환경으로 보나 똑같이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녀에게 자매들 중 한 명이 이렇게 말했다.
"오오, 그대의 용기가 그대를 더 위대한 일들로 인도하지 않았더라면 우리 동아리에 속했을 토리토니아여, 그대의 말은 사실이며 우리의 예술과 처소는 그대의 칭찬을 받을 만도 하지요. 우리는 행복한 몫을 받을 셈이지요."-5-260쪽

"내가 보고 있는 그대의 상처가 나를 고발하고 있구나. 그대는 내게 슬픔과 자책의 원인이오. 그대의 죽음은 내 손 탓으로 돌려질 것이오. 내가 그대를 죽게 했으니까. 하지만 대체 내 죄는 무엇인가? 그대와 시합한 것을 죄라고 할 수 없고, 그대를 사랑한 것을 죄라고 할 수 없다면 말이오. 아아, 내가 그대를 위하여, 아니면 그대와 함께 목숨을 버릴 수 있었으면 하나 운명의 법칙이 그러지 못하게 하니 그대는 늘 나와 함께할 것이며, 나는 그대를 기억하고는 입에 올릴 것이오. 내 손으로 연주하는 뤼라도, 내 노래도 그대를 찬미할 것이오. 내 그대를 새 꽃으로 만들어 내 신음 소리를 그 꽃잎에 아로새길 것이오. 그리고 때가 되면 가장 용감한 영웅도 그 꽃으로 변신하여 똑같은 꽃잎에서 제 이름을 읽을 수 있을 것이오."-10-197쪽

아폴로께서 거짓을 모르는 입으로 그런 말씀을 하시는 동안, 보라, 바닥에 쏟아져 풀에 흔적을 남기던 피는 더 이상 피가 아니었으니, 그 대신 그곳에 튀로스 산 자줏빛 염료보다 더 빛나는 꽃이 피어났던 것이오. 그것은 백합 모양을 하고 있었는데, 백합이 은빛인 데 반해 그것의 색깔은 자줏빛이었다. 포이부스께서는 그것으로 만족하시지 않고 (이런 명예를 수여하는 것은 그분이셨기 때문이오.) 당신의 신음 소리르 손수 꽃잎에 적어 넣으시니, 그 꽃에는 애도의 뜻을 나타내는 글자인 '아이 아이'가 쓰여 있소. 스파르테는 휘아킨투스를 낳은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고, 그의 명예는 오늘날까지도 지속되고 있으니, 해마다 휘아킨투스제가 돌아오면 아직도 그들은 선조들의 관습에 따라 엄숙하게 축제를 거행하오.-0쪽

신은 무쇠로 트로이야인들의 몸을 땅에 누이고 있던 펠레우스의 아들을 가리키며 그를 향하여 활을 돌리더니 죽음을 가져다주는 손으로 화살을 확실하게 인도했다. 헥토르가 죽은 뒤 노왕 프리아무스가 기뻐할 수 있었던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리하여, 아킬레스여, 그토록 위대한 자들을 이겼던 그대가 그라이키아인 아내의 비겁한 납치자에게 지고 말았구려! 만일 그대가 한 여인의 손에 전사할 운명이었다면 그대는 차라리 테르모돈의 양날 도끼에 죽기를 바랐으리라!-12-604쪽

프뤼기아인들의 공포의 대상이었고, 펠라스기 족의 자랑이자 보루였으며, 불패의 우두머리였던 아이아쿠스의 손자는 이제 불태워졌다. 똑같은 신이 그를 무장시켜주고 화장해주었다. 전에는 그토록 위대했던 아킬레스는 항아리 하나도 다 채울 수 없을 만큼의 재로 남았다. 하나 그의 명성은 온 세상을 채우고도 남을 만큼 살아있다.-0쪽

그러자 그토록 자주 혼자서 헥토르에게 대항하고, 칼과 불과 윱피테르에 대항하던 자도 분노라는 단 한 가지에게만은 대항하지 못했으니, 아무도 이기지 못하던 영웅을 괴로움이 이겼던 것이다. 그는 칼을 빼들고 말했다. "여기 이것은 확실히 내 것이다.울릭세스는 이것도 내놓으라고 요구할까? 이것은 내가 나를 위해 써야겠다. 프뤼기아인들의 피에 자주 젖곤 하던 이 칼은 이제 제 임자의 피에 젖게 되리라. 아이약스 외에는 아무도 아이약스를 이길 수 없도록 말이다." -13-383쪽

그러더니 그는 그때까지 부상당한 적이 없는 가슴의, 칼이 들어갈 수 있는 곳에다 죽음의 칼을 찔러 넣었다. 어떤 손도 깊이 바힌 무기를 뽑아낼 수 있을 만큼 강하지는 못했다. 하나 피가 그것을 밀어냈다. 그리하여 피로 빨갛게 물든 대지가 초록빛 잔디밭에서, 전에 오이발루스의 자손의 상처에서 태어났던 자줏빛 꽃 한 송이를 피어나게 했다. 그 꽃잎 한가운데에는 영웅과 소년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글자들이 새겨져 있었는데, 여기서는 이름을 나타내고, 저기서는 곡하는 소리를 나타낸다. -0쪽

곡식의 선물을 받을 자격이 없는 참으로 배은망덕한 자요. 구부정한 쟁기의 무거운 짐을 벗기자마자 감히 제 농사꾼을 죽일 수 있는 자는, 단단한 땅을 그토록 자주 새로 갈아엎어 그토록 수확을 거둬들이게 해주었던, 자기를 위해 일하다 지친 그 목덜미를 도끼로 내리칠 수 있는자는! 그런 무도한 짓을 저지르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그들은 신들까지 자신들의 범죄에 끌ㅇ들여 하늘의 신은 노고를 견디는 황소를 죽이는 것을 좋아한다고 믿고 있소.-15-122쪽

새로운 모습으로 변하는 것들을 다 열거하려고 하다가는 그러기 전에 날이 저물 것이고 포이부스는 헐떡거리는 말들이 깊은 바닷물 속에 잠기게 할 것이오. 그와 같이 우리는 시대도 바뀌어 어떤 민족들은 힘이 강해지고 다른 민족들은 쇠퇴하는 것을 보게 되오. 그와 같이 트로이야는 재물도 많고 남자들도 많아 십 년 동안 그토록 많은 피를 내줄 수 있었지만, 지금은 낮추어져 오래된 폐허밖에 보여줄 것이 없고 부 대신 선조들의 무덤들만 보여주고 있소. 스파르테도 한때는 이름을 날렸고, 위대한 뮈케나이도 강성했으며, 케크롭스의 성채와 암피온의 성채도 그러했지요. 지금 스파르테는 보잘것없는 땅이고, 높다란 뮈케나이는 넘어졌으며, 오이디푸스의 테바이는 이름말고 무엇이며, 판디온의 아테나이에 이름말고 무엇이 남았단 말이오? 소문에 따르면 지금은 다르다누스의 로마가 일어나 압펜니누스에서 태어난 튀브리스의 물결 바로 옆에다 엄청난 노력을 들여 통치의 기틀을 닦고 있다고 하오. 따라서 로마는 자람으로써 모양을 바꾸고 있고, 언젠가는 광대한 대지의 수도가 될 것이오. 예언자들과 운명을 알려주는 신탁들이 그렇게 말한다고들 하오.-15-422쪽

이제 내 작품은 완성되었다. 이 작품은 윱피테르의 노여움도, 불도, 칼도, 게걸스런 노년의 이빨도 없앨 수 없을 것이다. 원한다면, 오직 내 육신에 대해서만 힘을 갖고 있는 그날이 와서 내 덧없는 한평생에 종지부를 찍게 하라. 하지만 나는, 나의 더 나은 부분은 영속하는 존재로서 저 높은 별들 위로 실려 갈 것이고, 내 이름은 소멸하지 않을 것이다. 로마의 힘에 정복된 나라들이 펼쳐져 있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나는 백성들의 입으로 읽힐 것이며, 시인의 예언에 진실 같은 것이 있다면, 내 명성은 영원히 살아남게 될 것이다.-15-8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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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일지 - MBC 느낌표 선정도서, 보급판, 백범 김구 자서전
김구 지음, 도진순 주해 / 돌베개 / 2002년 8월
구판절판


우리 조상이 텃골로 들어오던 시기는 조선시대의 전성기로 양반과 상민의 계급 차별이 엄밀하였던 시기이다. 우리 조상들은 멸문의 화를 면하기 위하여 김자점의 족속임을 숨기고 일부러 상놈 노릇을 하였다. (중략) 그후 우리 조상은 지금까지 텃골 주위에서 살고 있는 진주 강씨, 덕수 이씨 등 토착양반들에게 천대와 압제를 대대로 받았다. (중략) 강, 이씨들은 양반의 권세로 우리 집안의 토지를 강점하고 금전을 강탈한 후 농노로 사용하였으니 이것은 경제적 압박이다. 강,이씨들은 비록 머리 땋은 어린 아이라도 70-80세 되는 우리 집안 노인을 만나면 '이랬나' '저랬나' '이리 하게' '저리 하게'하며 낮춤말을 쓰는 반면, 우리 집안 노인들은 갓 성인이 된 아이에게도 반드시 높임말을 사용하였으니 이것은 언어의 천대이다. -22쪽

다섯 살 때(1880년) 우리집은 종조부, 재종조부, 삼종조부 댁 등을 따라 강령군 삼가리로 이사하여 두 해 살았다. (중략) 하루는 그 집 사랑방에소 놀고 있는데 그 집 아이들이 "해줏놈 때려주자"고 공모하여 이유 없이 매질하였다. 나는 곧 집으로 돌아와 부엌칼을 가지고 아이들을 다 찔러 죽일 결심을 하고 그 집으로 달려갔다. 사랑 앞문으로 들어가면 아이들이 알아채고 미리 대비할까 봐 칼로 울타리를 뜯어 후문으로 돌입할 계획을 세웠다. 울타리를 뜯고 안으로 들어가는데, 마침 안마당에 있던 17,8세 되는 처녀가 나를 보고 놀라 제 오라비에게 일렀다. 나는 다시 그들에게 실컷 얻어맞고 칼까지 빼앗겼다. 그러나 집에 돌아와서는 칼을 잃어버린 죄로 부모님께 말씀드리지도 못하고 내내 시치미를 떼었다. -24-25쪽

아버님의 학식은 겨우 이름 석 자 쓸 줄 아는 정도였지만, 기골이 준수하고 성격이 호방하였다. 음주는 한량이 없고 취하시면 양반 강,이씨를 만나는 대로 때려, 1년에도 여러 번 해주 관아에 구속되는 소동을 일으키셨다. 그런데 사람을 구타하면 맞은 자를 때린 자의 집에 떠메어다가 눕혀두고 생사 여부를 기다리는 것이 그 시대 지방 관습이었다. 때문에 우리집에는 한 달에도 몇 번씩 '거의 죽게 된 사람', '전신이 피투성이 된 사람'이 사랑방에 누워 있을 때가 있었다. (중략) 해마다 세밑이 되면 우리집에서 닭,계란,연초 등을 다수 준비하여 어디론가 보냈고, 그러고 나면 감사의 표시로 달력과 해주 먹등이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중략) 아버님은 영리청, 사령청에 계방이란 수속을 밟아 해마다 선물을 하였던 것이다. 미리 이렇게 계방을 해두면 영문이나 본아에 잡혀가 옥이나 영청에 몇달 몇날을 구속되더라도 실상은 사령, 영리들과 같이 먹고 잤으며, 설령 곤장, 태장을 맞더라도 시늉만 하는 헐장이었다. (중략) 이런 이유로 김순영이라면 양반의 아이와 부녀자들까지 손가락질하며 미워하였지만 함부로 대하진 못했다. -27-28쪽

삼촌은 아버님과 반대로, 양반에게는 감히 덤비지 못하고 문중 친척에게만은 위아래 없이 욕하고 싸움 걸어, 할아버지와 아버님이 늘 때려주셨다. 내가 아홉 살 때(1884년) 할아버지 장례식이 있었는데, 그날 준영 삼촌이 큰 구경거리를 연출하였다. 삼촌이 술에 취해 장례일을 돌보는 호상인들을 모조리 두들겨 패고서, 급기야는 인근 양반들이 큰 생색을 낸답시고 노복을 한 명씩 보내 상여를 메고 가던 것까지 때려서 모두 쫓아버렸다. 결국 준영 삼촌을 결박하여 집에 가두어 놓고, 집안 식구끼리 운구하여 장례를 치르고, 중증조부 주최로 가족회의를 열어 앉은뱅이로 만들기로 결의하고, 준영 삼촌의 발뒤꿈치를 잘랐다. (중략) 지금 생각해 보면 이런 추태는 상놈의 본색이요 행위라 하겠다. 그때 어머님은 나에게 "너희 집에 허다한 풍파가 모두 술로 해서 생기니 너마저 술을 먹는다면, 나는 단연코 자살하더라도 그 꼴을 안 보겠다." 고 말씀하셨다. 나는 이 말씀을 마음 깊이 새겼다. -29쪽

"그 사람들은 어찌하여 양반이 되었고, 우리집은 어찌하여 상놈이 되었습니까?"
"침산 강씨의 선조는 우리만 못하나 현재 진사가 세 사람이나 있지 않으냐. 별담 이진사 집도 그렇다." (중략)
나는 이 말을 들은 후부터 글공부할 마음이 간절하여 아버님께 어서 서당에 보내 달라고 졸랐다. 아버님은 "동네에 서당이 없고, 다른 동네 양반 서당에서는 상놈을 잘 받지도 않거니와 받아주더라도 양반 자제들이 멸시할 터이니 그 꼴은 못 보겠다"며 주저하신다. 결국 아버님은 문중과 인근 친구의 아동을 몇 명 모아 서당을 새로 하나 만드셨다. 수강료로 쌀과 보리를 가을에 모아주기로 하고 청수리 이생원을 선생으로 모셔왔다. 그분은 양반이지만 글이 넉넉지 못하여 '양반의 선생'으로 고용하는 사람이 없어 우리 같은 '상놈의 선생'이 된 것이다. 선생이 오시는 날, 나는 너무 좋아서 머리 빗고 새옷 입고 마중나갔다. (중략) 이때 내 나이 열두 살(1887년)이었다.-30-31쪽

얼마 후 그와 같은 '돌림 선생'을 모셔와 공부를 하였는데, 어느날 갑자기 아버님이 전신불수가 되셨다. 그때부터 나는 공부도 못하고 아버님 심부름만 하였다. (중략) 그때 아버님은 종종 나에게 이런 훈계를 하셨다.
"밥 벌어먹기는 장타령이 제일이라고, 너도 큰 글 하려고 애쓰지 말고 실용문에나 주력하여라."
그래서 나는 토지문권, 정소장, 제축문, 혼서문, 서한문 등을 틈틈이 연습하여 무식한 우리 집안에서는 상당한 명성을 얻었다. -32-33쪽

(1892년 17세에 과거를 본 후)
"제가 어떻게든 공부로 입신양명하여 강가, 이가에게 당한 압제를 면할까 하였는데, 그 유일한 방법이라는 과거장의 폐혜가 이와 같은즉, 제 비록 큰 선비가 되어 학력으로 강,이씨를 압도하더라도 그들에게는 엽전의 마력이 있는데 어찌하오리까. 또한 큰 선비가 되도록 공부를 하려면 다소의 금전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집안이 이같이 가난하니 앞으로 서당 공부를 그만두겠습니다."
아버님 역시 옳게 여기시고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 그러면 풍수공부나 관상공부를 해보아라. 풍수에 능해 명당에 조상을 모시면 자손이 복록을 누리게 되고, 관상을 잘 보면 선한 사람과 군자를 만날 수 있다."
나는 이치에 맞는 말이라 생각되어
"그것을 공부하여 보겠습니다. 서적을 얻어주십시오."(중략)
나는 두문불출하고 석 달 동안이나 내 상을 관상학에 따라 면밀하게 관찰하였다. 그러나 어느 한 군데도 귀격, 부격의 좋은 상은 없고 얼굴과 온 몸에 천격, 빈격, 흉격밖에 없다. 과거장에서 얻은 비관에서 벗어나기 위해 관상서를 공부했는데 오히려 과거장 이상의 비관에 빠져버렸다. 짐승과 같이 살기 위해 산다면 모르지만 인간으로서 세상 살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다. 그런데 <상서>에 이런 구절이 있다.
"상 좋은 것이 몸 좋은 것만 못하고 몸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다."
이것을 보고 나느 상 좋은 사람보다 마음 좋은 사람이 되기로 결심하였다. 이때부터 밖을 가꾸는 외적 수양에는 무관심하고 마음을 닦는 내적 수양에 힘써 사람 구실을 하겠다고 마음먹으니, 종전에 공부 잘하여 과거하고 벼슬하여 천한 신세에서 벗어나겠다는 생각은 순전히 허영이고 망상이요, 마음 좋은 사람이 취할 바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38쪽

내 나이 열여덟이 되는 계사년(1893) 정초, 나는 고기도 먹지 않고 목욕하고 머리 땋고, 푸른 도포에 녹대를 매고 포동 오씨 댁으로 방문하였다. (중략) 나는 그가 양반임을 알고 있었는데, 과연 상투를 짜고 통천관을 쓰고 있었다. 내가 공손히 절을 하니 그 사람도 공손히 맞절을 하고서는
"도령은 어디서 오셨소?"
라고 묻는다. 나는 황공하여 본색을 말하였다.
"어른이 되어도 당신께 공대를 듣지 못하련만 하물며 저는 아직 아이인데 어찌 공대를 하나이까."
그이는 감동하는 빛을 보이면서
"천만의 말씀이오. 나는 다른 사람과 달리 동학 도인이기 때문에 선생의 교훈을 받들어 조금도 미안해 마시고 찾아오신 뜻이나 말씀하시오."
나는 이 말만 들어도 별세계에 온 것 같았다. 그와의 문답이 시작되었다. (중략) 설명을 듣고 나는 매우 마음이 흡족하였다. 과거에 낙방하고 난 뒤 관상공부에서 마음 좋은 사람이 되기로 결심하 나에게 하늘님을 모시고 도를 행한다는 말이 가장 마음에 와 닿았다. 또한 상놈된 원한이 골수에 사무친 나에게 동학에 입도만 되면 차별 대우를 철폐한다는 말이나 이조의 운수가 다하여 장래 새 국가를 건설한다는 말에서는 작년 과거장에서 품은 비관이 연상되었다. 나는 동학에 입도할 마음이 불길같이 일어났다. (중략)
당시 나에 대한 근거 없는 이야기가 인근에 두루 유포되었다. 사람들이 찾아와 "그대가 동학을 해보니 무슨 조화가 생기더냐?"고 물으면, "나쁜 일을 하지 않고 선한 일 하게 되는 것이 동학의 조화이다."라고 정직하게 대답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내가 자기네들에게 아직 조화를 보여주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고 "김창수가 한 길 이상 공중에서 걸어가는 것을 보았다."고 한 것이다. 나의 도력에 대한 근거 없는 소문은 황해도는 물론이고 평안남북도에까지 퍼져 연비가 수천에 달하였다. 나는 황해도, 평안도의 동학당 중 나이 어린 자로 가장 많은 연비를 가졌기 때문에 별명이 '아기 접주'였다. -41-43쪽

치하포에 도착해서 여관을 겸하고 있는 나루터 주인의 집에 들어갔다. 풍랑으로 인해 유숙하는 손님들이 세 칸 여관방에 가득하였다. (중략) 조금 있다가 아랫방에서부터 아침식사가 시작되어 가운뎃방과 윗방까지 밥상이 들어왔다. 그때 가운뎃방에는 단발을 하고 한복을 입은 사람 한 명이 같이 낮은 나그네와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성은 정씨라 하고 장연에 산다고 하는데, 말투는 장연 말이 아니고 경성말이었다. 촌 늙은이들은 그를 진짜 조선인으로 알고 이야기를 나누었으나, 내가 보기에는 분명히 왜놈이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흰 두루마기 밑으로 칼집이 보였다. 가는 길을 물어보니 진남포로 간다 했다. 나는 그놈의 행색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이곳은 진남포 맞은편 기슭이므로 매일매일 여러 명의 왜인이 자긷르의 본래 행색대로 통행하는 놈이다. 그러니 저놈이 보통 장사치나 기술자 같으면, 굳이 우리 조선사람으로 위장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혹시 저 자가 우리 국모를 시해한 미우라가 아닐까? 경성에서 일어난 분란 때문에 도망하여 당분간 숨으려는 것은 아닌가? 만일 미우라가 아니더라도 미우라의 공범일 것 같다. 여하튼 칼을 차고 숨어다니는 왜인이 우리 국가와 민족의 독버섯인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내가 저놈 한 명을 죽여서라도 국가의 치욕을 씻어 보리라.' (중략)-92-96쪽

그 왜놈은 별로 주의하는 빛도 없이 식사를 마치고 중문 밖에 서서 문기둥을 의지하고 방안을 들여다보며 총각아이가 밥값 계산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서서히 몸을 일으켜 크게 호령하며 그 왜놈을 발길로 차서 거의 한 길이나 되는 계단 밑으로 떨어뜨렸다. 그리고는 바로 쫓아 내려가서 놈의 목을 힘껏 밟았다. 세 칸 객방의 앞쪽 출입문이 아랫방에 한 짝, 가운뎃방의 분합문이 두 짝, 윗 방에 한 짝, 합해서 모두 네 짝인데, 이 방문 네 짝이 일제히 열리면서 문마다 사람머리가 다투어 나왔다. 나는 몰려나오는 사람들을 향하여 간단하게 한 마디로 선언하였다.
"누구든지 이 왜놈을 위해 내게 달려드는 자는 모두 죽이고 말리라."
선언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방금 내 발에 채이고 밟혔던 왜놈이 새벽 달빛에 칼빛을 번쩍이며 달려들었다. 얼굴로 떨어지는 칼을 피하면서 발길로 왜놈의 옆구리를 차서 거꾸ㅡ러뜨리고 칼 잡은 손목을 힘껏 밟으니 칼이 저절로 땅바닥에 떨어졌다. (주-신문에서 백범은 병기도 사용하였다고 진술했다. 즉 처음에는 돌로 치고 다음에는 나무로 때렸으며 도망가자 다시 나무로 때렸다.) 나는 그 왜놈을 머리로부터 발끝까지 점점이 난도질했다. 아직 2월 날씨라 마당은 빙판이었는데, 피가 샘솟듯 마당으로 흘러내렸다. 나는 손으로 왜놈의 피를 움켜 마시고, 그 피를 얼굴에 바르고, 피가 떨어지는 칼을 들고 방안으로 들어가 호통을 쳤다.

선언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방금 내 발에 채이고 밟혔던 왜놈이 새벽 달빛에 칼빛을 번쩍이며 달려들었다. 얼굴로 떨어지는 칼을 피하면서 발길로 왜놈의 옆구리를 차서 거꾸러뜨리고 칼 잡은 손목을 힘껏 밟으니 칼이 저절로 땅바닥에 떨어졌다. (주-신문에서 백범은 병기도 사용하였다고 진술했다. 즉 처음에는 돌로 치고 다음에는 나무로 때렸으며 도망가자 다시 나무로 때렸다.) 나는 그 왜놈을 머리로부터 발끝까지 점점이 난도질했다. 아직 2월 날씨라 마당은 빙판이었는데, 피가 샘솟듯 마당으로 흘러내렸다. 나는 손으로 왜놈의 피를 움켜 마시고, 그 피를 얼굴에 바르고, 피가 떨어지는 칼을 들고 방안으로 들어가 호통을 쳤다.
"아까 왜놈을 위하여 내게 달려들려고 하던 놈이 누구냐?"
방안에 있던 자들 중 미처 도망가지 못한 자들은 모두 엎드려서 빌기 바빴다.
"장군님, 살려주시오. 나는 그놈이 왜놈인 줄 모르고 보통 싸움으로만 알고 말리려고 나갔던 것입니다."
(주-일본 외무성 자료에 의하면 죽은 쓰치다(土田)는 나가사키현 대마도 이즈하라 항 상인으로 1895년 10월 진남포에 도착한 후 11월 4일 황해도 황주로 가서 활동하였고, 1896년 3월 7일 진남포로 귀환하던 길이었다.)

어머님께서는 나를 신문한다는 소문을 들으시고 경무청 문 밖에 서 계셨다. 그곳에서 간수의 등에 업혀 들어가는 나를 보시고 "병이 저 지경이 되었으니 무슨 말을 잘못 대답해 당장에 죽지나 아니할까. 근심이 가득하였다고 한다. 신문 시작부터 관리 전부가 떠들어대기 시작하니 벌써 감리영 부근 인사들은 희귀한 사건이라고 구경하러 몰려들어 야단이었다. 법정 안은 발 디딜 곳이 없었고, 문 밖까지 사람들이 둘러서서 순검들에게 물어댔다.
"참말 별난 사람이다. 아직 아이인데, 도대체 무슨 사건이냐?"
간수와 순검들이 보고들은 대로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해주었다.
"해주 김창수라는 소년인데 민 중전 마마의 복수를 위해 왜놈을 때려죽였다나? 그리고 아까 감리사를 책망하는데 그도 아무 대답을 못하던걸."
이런 이야기가 파다하게 퍼져나갔다. 내가 간수의 등에 업혀 나가면서 어머님의 얼굴을 살펴보니 약간 희색을 띠고 계셨다. 여러 사람이 구경한 이야기를 들으신 까닭인 듯한데, 나를 업고 가는 간수도 어머님을 향하여 말하였다.
"당신, 안심하시오. 어쩌면 이렇게 호랑이 같은 아들을 두셨소?"-109쪽

(19세 때 감옥에서) 내 죽을 날이 당할 때까지 글이나 실컷 보리라 생각하고 손에서 책 놓을 사이 없이 열심히 글을 읽었다. 감리서 직원들이 종종 와서 내가 신서적에 열심하는 것을 보고는 매우 좋아하는 빛을 보였다. 신서적을 보고 새로 깨달은 것은 고선생이 전에 조상께 제사지내면서 '유세차 영력 이백 몇 해'라고 쓴 축문을 읽던 것이나, 안진사(안중근의 부친으로 동학 실패 후 도망하던 김구를 숨겨줌-인용자주)가 양학을 한다고 하여 절교한 일이 그리 잘한 일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의리는 유학자들에게 배우고, 문화와 제도 일체는 세계 각국에서 체캑하여 적용하는 것이 국가의 복리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에 청계동에서 오로지 고선생만을 하느님처럼 숭배하고 있던 때는, 나 역시 척?척양이 우리의 당연한 천직이라 생각하였다. 이에 반대하는 자는 사람이 아니고 짐승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고선생은 오직 우리나라에만 한 가닥 밝은 맥이 남아 있고 세계 각국이 대부분 피발좌임한 오랑캐들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그런데 <태서신사> 한 책만 보아도 그 눈이 움푹 들어가고 코가 우뚝 선 원숭이에서 멀지 않은 오랑캐들은 도리어 나라를 세우고 백성을 다스리는 좋은 법규가 사람답다는 느낌이 드렁ㅆ다. 그러나 높은 갓을 쓰고 넓은 요대를 두른 선풍도골의 우리 탐관오리들은 오히려 그와 같은 오랑캐의 칭호조차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115-116쪽

학교의 여교사 오인성이 이재명의 부인인데, 이군이 자기 부인에게 무슨 요구를 강경히 하였던지 단총으로 위협하니 오여사는 놀라고 겁이 나서 학교 수업을 감당치 못할 사정을 말하고 이웃집에 피해 숨어버렸다고 한다. 그런데 미친 사람 모양으로 동네 어귀에서 총을 쏘아대며, 매국노를 일일이 총살하겠다고 소리를 치니 동네가 소동한다는 것이었다. 노백린과 상의하여 이군을 청해 불렀다. (중략) 계원과 내가 이의사에게 장래에 목적하는 일과 과거 경력, 학식 등을 일일이 물으니, 자기는 어려서 하와이에 건너가서 공부하다, 조국이 섬왜놈에게 강점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귀국하였으며, 지금 하려는 일은 매국노 이완용을 위시하여 몇 놈을 죽이고자 준비중이라고 했다. 그리고 단도 한 자루, 단총 한 정과 이완용 등의 사진 몇 장을 품속에서 내놓았다. 계원과 나는 동일한 관찰로 그를, 시세의 격변 때문에 헛된 열정에 들뜬 청년으로 보았다. (중략) 그런지 한 달이 못 되어서 의사는 동지 몇 명과 함께 경성에 도착하였다. 이현에서 이의사는 군밤장수로 가장하고 길가에서 밤을 팔다가 이완용을 칼로 찔렀다.-212-214쪽

그때 서대문감옥은 '경성감옥'이라고 문패를 붙인 때인데, 수인의 총수 2000명 미만에 대부분이 의병이요, 그 나머지는 소위 잡범이었다. 옥중의 대다수가 의병이라는 말을 듣고, 나는 심히 다행으로 생각하였다. 그이들은 일찍이 국사를 위하여 분투한 의기남아들이니, 기개로나 경험으로 배울 것이 많으리라고 생각했다. 감방에 들어가서 차례차례 인사를 하며 물어보니, 혹은 '강원도 의병의 참모장'이나 혹은 '경기도 의병의 중대장'이니 하여, 대부분 의병 두령이고 졸병이라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처음에는 극히 존경하는 마음으로 교제를 시작하였으나, 얼마 되지 않아 마음 씀씀이와 행동거지가 순전한 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참모장이라 하는 사람이 군대의 규율이나 전략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할 뿐 아니라 의병을 일으킨 목적이 무엇인지, 국가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많았고, 당시 무기를 가지고 여러 마을을 횡행하면서 만행한 것을 잘한 일처럼 큰소리쳤다. (중략) 나는 처음에 그 자들을 하등 잡범들로만 알았다가, 허위의 부하라는 말을 듣고서는 심히 통탄하였다. 저런 자가 참모장이었으니, 허위 선생이 실패하였을 것은 불 보듯 뻔한 것 아닌가? (중략)
'네가 어려서부터 늙어서까지 스스로 농사 짓지 않고 스스로 옷을 짜지 않아도 대한의 사회가 너를 입히고 먹였는데, 금일 왜놈이 먹이는 콩밥이나 먹고 붉은 의복이나 입히는 데 순종하라고 먹이고 입혔느냐? 명색이야 의병이든 도적이든, 왜놈에 순종하는 백성이 아니라고 인정하여 , 종신이니 10년이니 감금하여 두는 것으로도 족히 의병의 가치를 인정할 수 있지 않느냐? 남아는 의로 죽을지언정 구구히 살지 않는다고 평일에 어린 학생을 가르치더니, 네가 금일 살아 있는 것이냐, 죽은 것이냐? 네가 개같은 생활을 견뎌 지내고서 17년후에 장차 공을 세워 죄를 갚을 자신이 있느냐?' 이 같은 생활을 하며 심신이 극도로 혼란할 때,(후략)-241-244쪽

10여년 동안 임시정부를 고수하였으나, 기미년 이후 독립운동이 점점 퇴조하여 정부라는 명칭마저 간수하기 어려웠다. 당시 떠돌던 말과 같이 몇몇 동지와 더불이 고성낙일에 슬픈 깃발을 날리며 스스로 헤아리기를, 독립운동도 부진하고 나이도 죽을 때가 가까워졌으니, "호랑이 굴에 들어가지 않으면 호랑이 새끼를 얻지 못한다"는 말처럼 무슨 일이든지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침체한 국면을 타개할 목적으로 한편으로는 미국, 하와이 동포들에게 편지하여 금전의 후원을 부탁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철혈남아들을 물색하여 테러(암살,파괴) 운동을 계획하던 때 <백범일지>상권을 기술하였다. 그후 이봉창의 동경의거와 윤봉길의 홍구의거 등이 진행되어 천만다행으로 성공하였으므로 쓸모 없는 이 몸도 최후를 고할까 하여, 본국에 있는 자식들이 성장하여 해외로 나오거든 반드시 전해 달라는 부탁으로, 상권을 등사하여 미국, 하와이에 있는 몇몇 동지에게 보냈다. -295-296쪽

남북 만주의 독립운동단체로 정의부, 신민부, 참의부 외에 남군정서, 북군정서 등 각 기관에 공산당이 침입하여 각 기관을 여지없이 파괴, 훼손하고 인명을 살해하였다. (중략) 그런데 "화는 홀로 오지 않는다"고, 만주 동북3성의 왕이라 할 수 있는 장작림과 일본과의 협정이 성립되었다. 이로 인해 한인 독립운동가들은 붙잡히는 대로왜에 넘겨졌다. 중국 백성들은 한인 한 명의 머리를 베어 왜놈 영사관에 몇십 원에, 심지어 3,4원에 팔아 넘기기도 하였다. 어찌 중국사람들뿐이랴. 그곳 우리 한인들은 비록 중국 경내에 거주하였지만 처음에는 가가호호에서 해마다 독립운동 기관인 정의부나 신민부에 정성을 다해 부지런히 세금을 냈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순박한 우리 동포들도 우리 무장대오의 지나친 위력과 침탈을 당하게 되자 점차 반발심이 생기게 되었다. 이로 인해 독립군이 자기 집이나 동네에 도착하면, 비밀리에 왜놈에게 고발하는 악풍까지 생겼다. 또한 독립운동자들까지 점차 왜에게 투항하는 풍습이 생기고 보니, 동북 3성의 운동 근거지는 자연 취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314-3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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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로도로스 신화집 - 희랍어 원전에서 옮긴 그리스 신화
아폴로도로스 지음, 강대진 옮김 / 민음사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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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책을 빨리 번역하려고 생각했던 것은, 이것이 쓸데없이 여러 묘사를 넣지 않은, 말하자면 '기름이 빠진' 신화집이어서였다. 우리나라에 나와 있는 신화집들은 대개 필자들이 자신의 글 솜씨를 과시하듯 너무 '자유롭게' 얘기를 윤색하는데, 그것이 싫었던 것이다. 내게 필요한 것은 신화 수업 시간에 교재로 사용할 수 있는 '작은' 책이었다. 따라서 나는 가능한 한 부피도 작고 값도 싼 판본을 원한다. 이 판본이 적어도 그런 면에서는 강점이 있을 것이다."                            -p348, 역자 후기 중에서

이렇게 '빨리 번역하려고' 애썼던 책인데, 번역 작업을 마치고 출판사에서 원고를 손질하는 사이에 천병희 선생의 번역이 먼저 발간되는 해프닝이 있었다고 한다. "우리 나라에 서양 고전 전공자가 너무 적어서 한정된 인력을 효율적으로 쓰자면 당분간은 서로 작업이 겹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만 서로 연락이 없어 약간의 '인력 낭비'가 생겼다는 점이 아쉽다."라는 감상이 붙어 있지만, 독자의 입장에서는 어느 쪽을 선택해도 번역에 대해서는 신뢰할 수 있겠다.

저자인 아폴로도로스는 1세기 또는 2세기에 아테네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신화집은 광범위한 내용을 핵심만 추려 간결하게 기술하고 있기 때문에, 소설적 재미를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짧은 시간동안 신화 전체를 요약 정리하기에는 매우 유용하다. 마구 쏟아지는 고유명사들을 그냥 따라가기가 힘들어 '가계도라도 그려서 봐야겠다'  하는 생각을 한 순간, 책에 이미 근사하게 정리된 가계도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감동했다.  앞에 나왔던 이야기가 다시 언급될 때 그 부분을 찾아볼 수 있도록 각주로 안내하고,  맨 뒤에 깔끔한 인명 색인을 달아 둔 세심함과 철저함도 전공자의 원전 번역 답다.

책이나 그림을 보다가 낯선 희랍 이름을 발견했을 때, 예전에 읽었던 신화의 자세한 내용이 기억나지 않을 때, 수필이나 레포트에 희랍 신화 이야기를 인용하고 싶을 때(이럴 때야말로 장절구분이 위력을 발휘한다.), 곁에 두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책이다. 아름답고 튼튼한 양장본임에도 무게는 가벼우며, 역자가 의도한 대로 값도 싼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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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북 ㅣ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42
귄터 그라스 지음, 박환덕 옮김 / 범우사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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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배경은 발트해에 면한 상업도시 단치히이다. 독일과 폴란드의 경계에 위치한 도시, 오랜 역사 속에서 자유를 위해 투쟁했으나, 그만큼 수난도 많이 겪은 도시.  독일기사단에 대항하여 한자 동맹에 가입하고 명목상의 폴란드령으로 자치권을 누리다가 18세기 이후 독일령이 되고, 1차 대전 후 국제 자유도시가 되었다가 1939년 독일에 점령당해 2차 대전을 겪고 그 후에는 폴란드령 그단스크가 된 이 곳에서, 1924년 주인공인 난쟁이 오스카가 태어난다.

어머니 아그네스는 지역의 토착민인 카슈바이 인이다. 독일어와도 폴란드어와도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이 농부들의 운명에 대해 외할머니 안나 콜야이체크는  "카슈바이인은 이주라는 것을 할 수가 없어. 언제까지나 본고장에 살고 있으면서 다른 무리들에게 두들겨 맞기 위해서 머리를 내밀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어쨌든 우리들은 진짜 폴란드인도 아니고 진짜 독일인도 아니야." 라며 큰 소리로 웃는다.

두 개의 국가 권력 사이에 놓인 단치히의 운명은 주인공 오스카의 두 명의 아버지로 표상된다.  어머니의 합법적인 남편이자 오스카의 법적 부친인 식료품상 알프레드 마체라트는 독일인이다. 어머니의 외사촌 오빠이자 평생에 걸친 간통 상대이며 주인공의 생물학적 부친일 가능성이 큰 얀 브론스키는 폴란드 우체국원으로 나치 독일에 의해 죽는다. 역자는 어머니 아그네스의 죽음이 자유도시 단치히의 멸망을, 얀 브론스키의 죽음이 폴란드 왕국의 멸망을, 소련군에 의한 알프레드 마체라트의 죽음이 제국 독일의 멸망을 뜻한다고 해설하는데, 죽음에서 죽음으로 이어지는 소설의 여정은 어두우면서도 환상적이고,  슬프면서도 아름답다.

전쟁이 인간의 삶을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오버하지 않으면서도 잊을 수 없는 방식으로 보여주는 수작이다. 채소 장수 그레프의 감자 저울 이야기라든지 파인골트 씨의 소독약 이야기 같은 것들은 오래도록 묵직하게 마음에 남는다. 전쟁으로 인해 독일 민중이 겪는 고통은 나에게 세노 갓파의 <소년H>를 연상시켰는데, 독일의 사례에서나 일본의 사례에서나 우리들이 배워야 할 교훈은 그 민족 전체가 우리의 적이라는 또다른 국가주의 논리가 아니라 국민 국가의 광기로부터 우리의 정의와 인간성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어둠의 시대 폭압적 권력의 경계를 미끄러져 가는 난쟁이 오스카는 우리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끊임없이 그의 양철북을 두드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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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퇴전문 2007-02-20 0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 봤습니다.

mizuaki 2007-02-20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시죠? ^^
 
플라워 오브 라이프 3
요시나가 후미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6년 8월
평점 :
절판


박복한 여자 사이토 시게루. 어딜 봐도 남자 같은 외모 탓에 학창 시절부터 소녀팬들만 줄줄 따라다녔던 여자, 여성스러운 말투와 여성스러운 몸짓과 빨간 원피스로  몸부림 쳐 봐도 여장한 게이로밖에 보이지 않는 여자,  유부남과의 불륜이라는 덫에서 겨우 빠져나오자 이번에는 열여섯 살 짜리 사디스트 오타쿠의 독이빨에 덥썩 물려 버린, 참으로 박복하고 박복한 사이토 선생에게도 내가 정말 부럽다고 생각하는 것이 딱 하나 있으니, 바로 반장인 야마네이다.  머리도 좋고 인간성도 좋고, 속이 깊고 배려심 있고 의지가 되는 야마네는  모든 담임들이 꿈에 그리는 이상의 반장이 아닌가!! 별 말 없어도 묵직한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야마네를 지각대장 사카이의 눈으로 담아낸 11화는 3권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이다.

주인공의 비중이 높지 않은 대신 수많은 조연 캐릭터들의 매력이 갈수록 빛을 발한다. 미쿠니와 하나조노의 알콩달콩 싸움이 귀여웠고, 왕따 타케다가 이소니시, 진나이와 함께 쇼핑을 하며 서로가 행복한 거리를 찾아 나가는 에피소드는 가볍지 않은 통찰을 담고 있다.  사카이와 남자친구와의 대화는 따뜻했고, 아이자와와 미쿠니의 지하철 장면도 잔잔하니 좋았고, 크리스마스 파티 후 츠지가 남은 케이크를 형에게 내미는 장면에선 동경하는 여자에게 어린애로 취급당한 낙담이 충분히 느껴져 웃음이 나왔다. 미쿠니의 아빠(이 분 직장 동료로 <서양골동양과자점>의 나카츠 하루카 아나운서도 나온다.), 이소니시의 엄마, 오자키의 부모님, 진나이의 할머니 같은 어른들 모습이 잠깐 잠깐 나오는 부분에서도 사소하고 평범한 것들을 소중히 여기는 작가의 마음씀씀이가 느껴져 흐뭇했다.

전체적으로 잔잔하고 행복한 에피소드들로 채워진 3권이었으나, 작가는 마지막을 마지마의 대형 사고로 끝맺음으로써 다음 권에 대한 궁금증에 불을 질렀다. 요시나가 후미의 능력이란 정말 끝이 보이지 않고, 덕분에 오랜만에 원본 만화를 지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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