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크와 맥주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94
서머싯 몸 지음, 황소연 옮김 / 민음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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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날카로운 관찰자의 시각으로 한 시대의 모습을 유머러스하면서도  품위 있게 보여준다. 


윌리 어셴든이 젊었을 때도 50이 넘어서도 한결같이 훌륭하게 느껴진다고 평한 소설들 중 한국어 번역이 나오지 않은 필딩의 <아멜리아>를 뺀 다섯 편을 다 읽었다는 게 뿌듯하다. 나, 소설도 잘 골라서 읽고 있었구나ㅎ. 그 다섯 편은 스턴의 <트리스트럼 샌디>, 새커리의 <허영의 시장>,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 스탕달의 <파르마의 수도원>,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이다. 



(아래는 스포일러)



신사 계층의 사람들이 모두들 경멸하는 분수 모르는 장사꾼을 "완벽한 신사"라고 칭하는 하층 계급 출신 옛 미녀의 말을 통해, 세상의 가치관에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마무리가 압권이다. 

여섯 살 딸의 죽음을 한 사람은 예술로, 한 사람은 육체의 쾌락으로 극복하며 각자 다른 길을 찾아서 헤어지는 젊은 부모의 모습이 서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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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발간되었을 때 나는 여러 대상에게서 공격을 받았다. 내가 토머스 하디를 모델로 에드워드 드리필드라는 인물을 만들어냈다는 의혹 때문이었다. 그것은 나의 의도가 아니었다. 나는 토머스 하디를 조지 메러디스나 아나톨 프랑스만큼이나 염두에 둔 적이 없다. (중략) 나는 열여덟 살 때 ‘테스’를 읽고 젖 짜는 아가씨와 결혼하리라 결심할 만큼 그것에 열광했지만, 대부분 의 동시대인들과 달리 하디의 다른 작품들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고 문체도 별로 높이 평가하지 않았다. - P9

나는 토머스 하디를 딱 한 번 만났다. 장소는 레이디 세인트헬리어의 만찬 자리였다. (중략) 당시 나는 인기 있고 잘나가는 극작가였다. 그 자리는 전쟁 전 사람들이 열곤 했던 성대한 만찬 파티들 중 하나였다.(중략) 스물네 명의 참석자들은 모두 신분이나 정치적 입지, 혹은 예술적 성취도가 남다른 사람들이었다. 숙녀들이 응접실로 물러갔을 때 나는 우연히 토머스 하디의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중략)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사십오 분 정도 이야기를 나눈 것은 분명하다. 대화가 끝날 무렵 그는 나를 크게 칭찬하고 나서 직업이 뭐냐고 물었다. (내 이름을 들은 적이 없었던 모양이다.) - P10

듣자 하니 작가 두세 명이 앨로이 키어라는 인물이 본인을 겨냥해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것은 그들이 오해다. 이 인물은 여러 가지가 복합된 초상이다. 외모는 한 작가에게서 따왔고, 상류 사회에 대한 집착은 다른 작가에게서, 활력은 세 번째 작가에게서, 운동 능력의 자긍심은 네 번째 작가에게서, 그 외에 많은 부분은 나 자신에게서 빌려 왔다. (중략) 자신의 작품을 홍보하기 위해 갖은 수단을 동원하는 작가를 표현할 때 나는 다른 사람에게 초점을 맞출 필요가 없었다. 그러기에 이것은 너무나 흔한 관행이다. 누구나 공감할 수밖에 없는 문제다. - P10

로이는 처음부터 유리한 고지에서 출발했다. 그는 오랫동안 홍콩에서 식민 장관을 지낸 뒤 자메이카 총독으로 퇴임한 공무원의 외아들이었다. (중략) 로이는 아무런 빚도 지지 않고 대학을 졸업했다. 이미 그때부터 검약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쓸데없는 지출을 자제했다. 그는 좋은 아들이었다. 자기가 받은 값비싼 교육이 부모의 희생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 P16

그 집안의 섬세하고 허약한 외아들을 가르친 것이 로이에게는 젊은 나이에 큰 세상으로 진입하는 발판이 되었다. 그는 이 경험을 십분 활용했다. 주간지로 상류 사회를 엿본 작가의 작품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지만 그의 작품에서는 그런 결함을 찾아볼 수 없다. 그는 공작들이 서로 어떻게 대화하는지, 국회의원과 대리인, 마권업자, 대리 주차원에게 각각 어떤 호칭으로 대우를 받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의 초기 소설에 등작하는 총독, 대사, 수상, 왕족, 귀부인의 경쾌한 면모에는 어떤 매력이 살아있다. (중략) 귀족들의 행위가 더 이상 진지한 소설의 적당한 소재가 될 수 없는 시류 탓에 언제나 시대의 흐름에 극도로 민감한 로이가 후반기 소설들을 사무 변호사, 공인 회계사, 농산물 브로커의 내적 갈등에 치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을 나는 늘 애석하게 생각한다. - P17

많은 작가들이 단어에 심취해 있다 보니 대화 중에 단어를 지나치게 고르는 나쁜 버릇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무의식적으로 너무 정성껏 문장을 만들어 의도하는 바를 가감 없이 정확하게 말한다. 그래서 어휘 구사력이 단순하고 민감한 욕구에 국한된 상류 사회 사람들은 이들과 의사소통에 다소 어려움을 겪게 되고, 그 결과 이들하고 어울리는 것을 망설이게 된다. 로이는 이러한 종류의 제약을 받은 적이 없었다.
- P36

현자는 모름지기 상용구를 많이 쓰고 유행하는 형용사를 쓰며 그 상황에 딱 들어맞는 표현을 써서 환담에 소탈한 광채를 더하고 깊이 생각할 필요가 없게끔 한다. 지구상에서 효율성을 가장 따지는 미국인들은 이러한 요령을 완벽의 경지로 끌어올려 방대한 범위에서 간결하고 진부한 문구들을 무수히 만들어 냈고, 그 덕분에 서로 무슨 소리를 하는지 한시도 생각하지 않고 즐겁고 활기찬 대화를 이어 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로써 이성은 큰 사업과 간통 같은 더 중요한 문제의 몫으로 자유롭게 남겨둔다 - P37

"그럼 그때나 지금이나 대단하다고 생각한 건 무엇인가?"
"글세, ‘트리스트럼 샌디’, ‘아멜리아’, ‘허영의 시장’, ‘마담 보바리’, ‘파르마의 수도원’, ‘안나 카레니나’, 그리고 워즈워스와 키츠, 베를렌."
"내가 이렇게 말하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다지 독창적인 생각은 아닌 것 같군."
"그렇게 말해도 무리는 아니지. 내가 봐도 독창적이지 않으니까." - P44

내 숙부는 교구 목사였다. 숙모는 독일인이었는데, 신분이 대단히 높았지만 가난한 집안 출신이어서 결혼할 때 가져온 것이 17세기 조상 중 한 분이 제작한 쪽매붙임 책상 하나와 컵 세트뿐이었다. 내가 그 집에 살 때는 컵들이 몇 개 남지 않아 응접실에서 장식품으로 쓰이고 있었다. 나는 전체적으로 웅장한 문장이 새겨진 그 컵들을 좋아했다. 컵에는 숙모가 점잖게 설명해 준 결합 문장이 무수히 많았는데 문장을 받치는 동물들이 정교하고 왕관에서 솟아난 투구는 굉장히 낭만적이었다. 숙모는 소박한 노부인으로 온화한 기독교인의 성향을 지녔지만, 봉급 외에 부수입이 거의 없는 평범한 목사와 결혼한 지 삼십 년이 넘은 처지에도 자신의 ‘고귀한 태생’을 결코 잊지 않았다. - P52

한번은 오늘날 금융계에서 이름이 널리 알려진 런던의 부유한 은행가가 이웃집을 빌려 여름휴가를 보낸 적이 있었다. 숙부는 그를 찾아갔지만 (복자 협회의 기부금을 얻어 보려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숙모는 그가 장사꾼이라는 이유로 방문하지 않았다. 아무도 숙모를 거만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지극히 당연한 처사라고 생각했다. 그 은행가에게는 내 또래의 사내아이가 있었는데, 자세한 경위는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그 아이와 친해지게 되었다. 내가 그 아이를 목사관에 데려와도 되느냐고 물었을 때 이어졌던 대화가 아직도 기억난다. 망설임 끝에 허락이 떨어졌지만 그 아이의 집에는 가지 말라는 금지령이 내려졌다. 숙모는 나더러 다음에는 석탄 상인의 집에 가겠다고 하겠구나 했고, 숙부는 이렇게 말했다. "나쁜 언사를 행실을 망친단다." - P53

호드마시 부인은 초대한 작가들의 책을 읽은 적이 없었고 화가들의 그림 또한 본 적 없었지만 그들과 어울리는 것을 즐겼고 그 과정에서 예술계의 사정에 밝아지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던 중 그 자리에서 부인의 가장 유명한 이웃 에드워드 드리필드가 잠시 화제에 올랐고, 내가 한때 그와 잘 아는 사이였다고 말하자 부인은 많은 손님들이 런던으로 돌아가는 월요일에 그분 댁을 방문해 점심을 같이 하자고 제안했다. 나는 난색을 표했다. 드리필드를 만난 것이 삽십오 년도 더 지난 일이라 그가 나를 기억할 리 만무했고, 기억한다 해도 (이 말은 입 밖에 꺼내지 않았지만) 즐거운 기억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 P64

하지만 그 자리에 문학열을 뜨겁게 불태우는 스캘리언 경이라는 청년이 있었다. 나라를 다스리는 법률가의 소임에 충실하기보다 탐정 소설 창작에 기운을 빼는 자였다. 그는 드리필드를 만나고 싶은 호기심을 주체하지 못하고 호드마시 부인이 말을 꺼내자마자 아주 훌륭한 제안이라고 나섰다. 파티의 주빈은 젊고 뚱뚱한 공작 부인이었는데, 그녀마저 그날 런던의 약속을 취소하고 오후에 출발하는 것을 감수할 만큼 그 유명한 작가를 열렬히 숭배하는 모양이었다.
"그럼 우리 넷이 되겠네요." 호드마시 부인이 말했다. "더 많으면 그들도 난처할 거예요. 드리필드 부인에게 즉시 전보를 보내죠." - P65

"대체 드리필드 부부가 뭘 잘못한 거야?" 나는 메리앤에게 물었다.
메리앤은 열여덟 살 때 목사관에 왔다. 어린 나를 목욕시켰고, 필요하면 자두잼에 가루 설탕을 뿌려 주었고, 학교에 갈 때 책가방을 싸 주었고, 아플 때는 병간호를 해 주었고, 심심할 때는 책을 읽어 주었고, 말썽을 부리면 꾸짖기도 했다. 하녀인 에밀리는 철부지 덜렁이라 메리앤은 에밀 리가 나를 돌보았ㅇ면 내가 어찌 되었을지 알 수 없다고 했다. (중략)
"도련님이 내 조카는 아니지만 나라도 그런 사람들과 어울리게 가만두지 않았을 거예요! 도련님한테 자전거를 같이 타자고 했다니 원. 하여간 사람들이 별짓을 다하지."
- P86

나는 조지 경을 알고 있었다. 이름은 조지 켐프였고, ‘경’이라는 말은 배포가 워낙 커서 붙은 별명이었다. 그는 이 고장 석탄 상인이었다. 부동산업에도 손을 댔고, 석탄선 한두 척에 지분을 가지고 있었다. 자기 땅에 지은 새 벽돌집에 살면서 자기 마차를 몰았다. 그는 뾰족한 턱수염을 기른 투실투실한 남자였다. 발그레한 혈색에 파란 눈은 부리부리했다. 돌이켜 보면 옛날 네덜란드 그림에 흔히 보이는 붉은 얼굴의 유쾌한 상인과 흡사했다. 복장은 언제나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 P90

마을 의사의 아내가 숙모를 만나러 왔을 때의 일이 기억난다. 에밀 리가 들어와서는 숙부에게 조지 켐프 씨가 와서 숙부를 뵙기를 청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관문 벨 소리가 났는데, 에밀리." 숙모가 말했다.
"네, 그 사람이 현관문으로 왔어요."
순간 분위기가 어색해졌다. 모두들 뜻밖의 사건에 어찌 대처해야 할지 몰라 난색이었다. 누구는 현관문으로 오고 누구는 옆문으로 오고 누구는 뒷문으로 와야 하는지 아는 에밀리마저도 조금 당황한 표정이었다. 심성이 착한 숙모는 누군가 잘못된 위치에 서는 일이 벌어져 진심으로 난감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의사의 아내는 기가 차다는 듯 살짝 콧방귀를 꼈다. 마침내 숙부가 정신을 차리고 마음을 다잡았다.
"내 서재로 안내해, 에밀리." 숙부가 말했다. "아를 마시는 대로 가볼 테니까." - P91

모두들 그랬듯 나도 조지 경을 조롱하고 깔보았다는 것을 덧붙여 둔다. 그가 거리에서 나를 붙잡아 세우고 내 이름을 불러 대면서 우리 사이에 신분의 차이가 없는 양 이야기할 때면 화가 났다. 그는 내게 아들들이 나랑 같은 또래라면서 같이 크리켓을 해 보라는 말도 했다. 하지만 그의 아들들은 하버샴의 중등학교에 다녔고 당연히 나는 그 아이들과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 P92

메리앤의 이야기는 충격적이면서도 흥미진진했지만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 소설을 너무 읽은 데다 사랑을 알기에는 학교 공부가 너무 많아서 사랑이란 그저 젊은 사람들이나 하는 것으로 막연히 알고 있었는데, 턱수염이 난 데다 내 또래의 아들들을 둔 남자가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다니 상상조차 못한 일이었다. 그런 것은 결혼하면 끝나는 게 아니던가. 서른이 넘은 사람들이 사랑을 한다니 속이 좀 울렁거렸다.
"그래도 두 사람이 실제로 무얼 한 건 아니지?" 나는 메리앤에게 물었다.
"듣자 하니 그 로지 갠이라는 여자는 하지 않은 게 거의 없는 모양이던데요. 그리고 상대는 조지 경만이 아니었어요." - P92

"그런데 왜 그 여자는 아기가 안 생겼지?"
내가 읽은 소설에서는 예쁜 여자가 어리석은 짓에 휩쓸리면 반드시 아기를 낳았다. 원인이 되는 장면은 애매모호하게 설명되었고 가끔은 숨김표로 암시되었지만 그 결과는 불가피했다.
"처신을 잘했다기보다 운이 좋았다고 봐야죠." 메리앤은 그렇게 말하고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바쁘게 접시를 닦던 손길을 멈추었다. "우리 도련님이 필요 이상으로 많은 걸 아네."
"당연히 알지." 나는 거드름을 피우며 말했다. "참 나, 나도 이제 다 컸어. 왜 이래?" - P93

마흔 살에 정치인이었던 사람이 일흔 살이 되면 정치 거물이 된다. 너무 늙어 점원도 정원사도 즉결 심판 치안 판사도 못 하는 나이가 되어서야 한 나라를 다스릴 만큼 성숙해진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예로부터 노인들은 그들이 젊은이들보다 더 현명하다고 젊은이들을 끊임없이 세뇌했고, 젊은이들은 그것이 허튼소리임을 깨달을 즈음엔 이미 늙은이가 되어 그 기만적 행태에 편승해 이익을 봐 왔다. 또한 정치인들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사람치고 국가를 다스리는 데 별다른 지능이 요구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를 수가 없다. (결과만 봐도 판단이 가능하다.) 하지만 작가들은 왜 나이가 들어 갈수록 존경을 받아야 하는지 나는 오랫동안 의구심을 품어 왔다. - P143

만약 이십 년째 주목할 만한 작품을 쓰지 못하는 노작가라면 경쟁자로서 젊은 작가에게 아무런 위협이 되지 못하므로 그의 가치를 극찬해도 괜찮다는 점에서 합리적 찬사라는 생각을 한 적은 있다. 알다시피 두렵지 않은 경쟁자를 칭찬하는 것은 만만찮은 경쟁자를 견제하는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이는 인간성을 너무 폄하하는 시각일 수 있고, 싸구려 냉소주의라는 비판을 자초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곰곰이 숙고한 끝에 내린 결론은 이렇다. - P144

평균 나이를 넘긴 노작가가 노년에 보편적으로 칭송받는 진짜 이유는 지식인들이 서른 살이 넘으면 글을 전혀 읽지 않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젊었을 때 읽은 책들은 화려한 빛을 발하기 마련이니 그 책을 쓴 저자의 가치는 해마다 높아진다. 물론 계속 글을 쓰고 대중의 시선 안에 머무는 노작가여야 한다. 걸작을 한두 편 쓴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걸작들을 떠받칠 받침대로 변변찮은 작품을 사오십 편쯤 펴내야 한다.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매력으로 독자를 사로잡을 수 없다면 무게로 독자를 압도하겠다는 각오로 대량 생산을 해야 한다. 내 생각대로 긴 수명이 천재성이라면 당대에 에드워드 드리필드만큼 긴 수명을 오래도록 뚜렷하게 누린 작가는 드물다. - P144

"그 사람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어요?"
로지의 시선이 벽에 걸린 사진으로 흘러갔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동안 내가 못 보고 지나친 사진이었다. 크게 확대된 조지 경의 사진이 조각된 도금 액자에 들어 있었다. (중략) 풍성한 콧수염은 끝에 왁스를 발랐고, 능청스러운 눈빛으로 으스대며 활보하는 걸음새였다. 한껏 차려입고 더비 경마장에 가는 펍 주인 같았다.
"그건 말이지." 로지가 말했다. "그이는 언제나 완벽한 신사였거든." - P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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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세계가 점점 나빠진다고 말하면서 실제로 무슨 생각을 할까? 내가 보기에는 생각을 아예 ‘안 하는’ 것 같다. 사람들은 생각이 아닌 느낌을 말할 뿐이다. 내가 이렇게 명확하고 멋진 자료를 여럿 제시해도 세계가 점점 좋아진다는 데 동의하기가 여전히 불편하게 ‘느껴진다’면 아마도 거대한 문제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는 걸 알기 때문일 것이다. 세계가 점점 좋아진다는 말이 마치 만사 오케이라거나 심각한 문제가 없는 척 외면하라는 말처럼 ‘느껴지고’, 그러다 보니 그런 말이 터무니없어 보이고 스트레스가 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중략) 그러나 이미 이룩한 발전을 외면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터무니없고 스트레스다. - P99

유엔의 릴리프웹ReliefWeb은 재해 지역 지원 사업에서 세계의 조정자 역할을 한다. 앞선 세대의 재해 피해자들은 그저 상상만 하던 일이다. 비용은 4단계 납세자들이 충당한다. 우리가 자부심을 느길 만한 일이다. 우리 인간은 마침내 자연재해에서 스스로를 보호할 방법을 찾았다. 그러나 자연재해 사망자가 급격히 감소하는 추세 역시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중략) 릴리프웹에 비용을 대는 4단계 사람들은 안타깝게도 우리가 자연재해 추셀ㄹ 질문한 바로 그들이다. 이들 중 91%가 자신이 비용을 대는 사업이 성공한 줄 모르고 있었다. 재해가 발생할 때마다 언론은 끊임없이 최악의 사태인 양 보도하기 때문이다. - P156

카메라가 잿더미에서 끄집어낸 아이의 시체를 훑을 때 나는 두려움과 비통함에 지적 능력이 마비된다. 그 순간만큼은 세상의 어떤 도표도 내 감정에 영향을 미칠 수 없고, 어떤 진실도 내게 위안을 주지 못한다. 그 순간에 세상이 더 좋아진다고 주장한다면, 피해자와 그 가족의 참담함을 하찮게 여기는 것이 되기 쉬워 대단히 비윤리적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큰 그림을 잊고 모든 수단을 동원해 그들을 도와야 한다. 거창한 진실과 큰 그림은 그 위험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그 후에는 다시 과감하게 사실에 근거해 세계를 바라봐야 한다. 뇌를 식히고 수치를 비교하면서 우리 자원이 미래의 고통을 멈추는 데 효과적으로 쓰이는지 점검해야 한다. 자원 배분의 우선순위를 정할 때 공포를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위험이 지금은 국제적 공조 덕에 우리에게 가장 적은 해를 끼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 P157

세계는 실제보다 더 무서워 보인다. 우리는 주목 필터나 언론에 걸러진 무서운 것을 보고 듣기 때문이다. 어떤 대상의 위험성은 우리가 느끼는 두려움이 아니라, 실제 위험과 그것에 노출되는 정도를 합쳐 결정한다. 두려움을 느끼면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 공포가 진정될 때까지 가급적 결정을 유보하라. - P174

1, 2단계 나라에서 아이들의 목숨을 살리는 것은 의사나 병실 침대가 아니다. 병실 침대와 의사는 수를 세기 쉽고 정치인은 병원 개원식을 무척 좋아하지만, 아이들의 생존율을 높이는 거의 유일한 방법은 병원 밖에서 해당 지역 간호사, 산파, 교육받은 부모 등이 예방 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특히 엄마의 역할이 중요하다. 데이터를 보면 세계적으로 아동 생존율 증가의 절반은 엄마들의 탈문맹에서 나왔다. 지금은 아동 생존율이 더 높아졌다. 처음부터 아예 병에 걸리지 않기 때문이다. 훈련받은 산파가 여성의 임신과 출산을 돕고, 간호사는 아기에게 면역력을 심어준다. 아기는 잘 먹고, 부모는 아기를 늘 따뜻하고 청결하게 관리한다. 그리고 아기 주변 사람들은 손을 씻고, 엄마는 약통에 붙은 지시 사항을 읽을 줄 알게 되었다. - P184

니엠은 나를 태우고 도시 중앙에 있는 공원으로 갔다. 거기엔 황동 판이 붙은 1m 정도 높이의 돌이 있었다. 나는 농담이겠지 싶었다. 서양에서는 베트남전쟁 반대 시위가 활동가 세대를 하나로 통합하는 역할을 할 정도였다. 내가 담요와 의료 기구를 보낸 것도 거기에 자극 받았기 때문이었다. 이 쟁에서 150만 명 넘는 베트남인과 5만8000명 넘는 미국인이 목숨을 잃었다. 도시가 그런 대재앙을 기억하는 방식이 고작 이런 식이라니! 내가 실망하는 기색을 보이자 니엠은 나를 태우고 더 큰 비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3.5m가 넘는 대리석 비로, 프랑스 식민 통치에서 독립한 것을 기념하는 것이었다. 나는 여전히 시큰둥했다.(아래에 계속) - P187

(위에서 계속)니엠은 내게 비다운 비를 볼 준비가 되었느냐고 물었다. 그리고 나를 태우고 조금 더 가더니 창밖을 가리켰다. 나무 꼭대기 너머로 금색으로 덮인 거대한 돌탑이 보였다. 100m 가까이 되어 보였다. "여기가 전쟁 영웅을 추모하는 곳이에요. 멋지죠?" 베트남이 중국을 상대로 싸운 전쟁을 기리는 비였다. 중국과의 전쟁은 싸움과 휴전을 반복하며 2000년 동안 지속되었다. 프랑스가 점령한 기간은 200년이었다. 대미항전은 고작 20년 지속되었다. 비의 크기는 그런 기간을 완벽하게 반영했다. 나는 여러 개의 비를 비교한 뒤에야 비로소 지금 베트남 사람들에게 베트남전쟁은 상대적으로 의미가 작다는 걸 이해할 수 있었다. - P187

"아이한테 망치를 주면 모든 것이 못으로 보인다"는 말이 있다. 가치 있는 전문성을 지닌 사람은 그 전문성을 활용할 곳을 찾고 싶어한다. 그래서 전문가는 더러 어렵게 얻은 지식과 기술을 본래의 활용 영역을 넘어선 곳에도 적용할 방법을 고민한다. - P273

경제와 사회가 크게 발전한 나라라고 해서 다 민주국가는 아니다. (산유국도 아닌) 한국은 어느 나라보다 빨리 1단계에서 3단계로 넘어갔고, 그 시기는 줄곧 군부 독재가 이어졌다. 2012-2016년에 빠른 경제성장을 이룬 나라 열 곳 중 아홉 곳은 민주주의 수준이 낮았다. 경제성장과 보건 의료 발전에 민주주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한다면, 그와 모순되는 현실에 부딪히기 쉽다. 따라서 우리가 좋아하는 다른 어떤 목적을 달성하는 데 민주주의가 우월한 수단이라고 주장하기보다 민주주의 자체를 목적으로 지지하는 편이 바람직하다. - P286

단순한 생각과 단순한 해결책을 조심하라. 역사는 단순한 유토피아적 시각으로 끔찍한 행동을 정당화한 사람으로 가득하다. 복잡함을 끌어안아라. 여러 생각을 섞고 절충하라. 문제는 하나씩 사안별로 해결하라. - P288

세계의 중요한 문제를 이해하려면 개인에게 죄를 추궁하기보다 시스템에 주목해야 할 때가 많다. 비난 본능은 일이 잘 풀릴 때도 발동되어 칭찬 역시 비난만큼 쉽게 나온다. 일이 잘 풀릴 때 우리는 아주 쉽게 그 공을 개인이나 단순한 원인으로 돌리는데, 이때도 대개는 문제가 훨씬 복잡하다. 세계를 정말로 바꾸고 싶다면, 세계를 이해해야지 비난 본능에 좌우돼서는 안 된다. - P295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아이들에게 겸손과 호기심을 가르쳐야 한다. 여기서 겸손이란 본능으로 사실을 올바르게 파악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아는 것이고, 지식의 한계를 솔직히 인정하는 것이다. 아울러 "모른다"고 말하는 걸 꺼리지 않는 것이자,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을 때 기존 의견을 기꺼이 바꾸는 것이다. 겸손하면 모든 것에 대해 내 견해가 있어야 한다는 압박감도 없고, 항상 내 견해를 옹호할 준비를 해야 할 필요도 없어 마음이 편하다. - P357

호기심이란 새로운 정보를 마다하지 않고 적극 받아들이는 자세를 말한다. 아울러 내 세계관에 맞지 않는 사실을 끌어안고 그 것이 내포한 의미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실수를 부끄러워하기보다 실수에서 호기심을 이끌어내자. ‘내가 그 사실을 어쩌면 이렇게 잘못 알 수 있을까? 그렇다면 여기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사람들이 멍청이가 아니고서야 왜 그런 해결책을 썼을까?‘ 호기심을 품으면 늘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어 꽤 흥미진진하다. - P357

사실에 근거한 경험 법칙
1. 간극. 다수를 보라.
2. 부정. 나쁜 소식을 예상하라.
3. 직선. 선은 굽을 수도 있다.
4. 공포. 위험성을 계산하라.
5. 크기. 비율을 고려하라.
6. 일반화. 범주에 의문을 품어라.
7. 운명. 느린 변화도 변화다.
8. 단일 관점. 도구 상자를 챙겨라.
9. 비난. 손가락질을 자제하라.
10. 다급함. 하나씩 차근차근 행동하라. - P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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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지지 않기 위하여 - 어느 포로수용소에서의 프루스트 강의
유제프 차프스키 지음, 류재화 옮김 / 밤의책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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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프스키가 '게르망트 쪽'부터 작품을 읽기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반가웠다. 도서관에 있는 앞의 권들이 대출 중이어서 나도 거기서부터 시작했었다. 시작한 부분이 흥미로웠던 덕분에 긴 작품을 끝까지 잘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강의 내용을 읽어가는 동안 오래 전에 읽었던 작품의 내용들이 생각나면서 중요한 포인트들이 깔끔하게 정리되는 것을 느꼈다. 배경을 생각하면 더욱 감동적인 강의.

우리는 1939년 10월부터 1940년 봄까지 하리코프 근처, 10-15 헥타르에 이르는 스타로벨스크 포로수용소에 수용되어 있던 폴란드 장교들이었다. 우리는 지적 노동을 해서라도 무너지지 않아야 했다. 우리를 잠식하는 쇠약과 불안을 극복하고 뇌에 녹이 스는 것을 막아야 했다. 그리하여 우리 중 몇 사람이 군사학과 역사학, 문학 강의를 시작했다. 그런데 이 강의들이 당시 윗선에 있던 이들에게는 반혁명적인 것으로 비쳤는지, 강의를 기획했던 몇몇 이는 우리가 모르는 어딘가로 보내졌다. 그러나 강의는 중단되지 않았고, 더욱 은밀하고 정교한 모의가 이루어졌다. - P10

1940년 4월, 스타로벨스크 포로수용소에 수용돼 있던 이들이 몇 개의 무리로 나뉘어 북쪽으로 이송되었다. 같은 시기, 총 수용 인원이 1만 5000명에 이르는 두 대형 수용소인 코젤스크와 오스타시코프의 포로수용소가 모두 비워졌다. 결국 그 지역에 남은 포로는 1940-1941년에 볼로그다 근처 그라조베츠 수용소에 있던 400여 명의 장교와 군인들뿐이었다. 우리는 처음 스타로벨스크 수용소에 수용된 4000여 명 중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79명인 셈이었다. 스타로벨스크의 다른 동료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 P10

여러 차례의 탄원 끝에 우리가 공식적으로 강의할 수 있게 허락받은 장소는 식당뿐이었다. 여기에 조건이 붙었다. 사전 검열을 받듯이 강의록을 미리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작은 방이 동료 포로들로 가득찼고, 강사들은 각자 기억하고 있는 것을 그들에게 최대한 들려주었다. (중략) 에를리히 박사는 책의 역사를 강의했다. (중략) 영국의 역사와 여러 민족의 이주 역사에 대해서는 (중략) 카밀 칸타크 수사가 강의했다. 건축의 역사는 바르샤바 공고대학의 시엔느니츠키 교수가 맡았다. (중략) 오스트로프스키 중위는 남아메리카에 대한 강의를 맡아주었다. 그렇다면 나는? 나는 폴란드의 회화 및 프랑스 문학을 강의하기로 했다. - P11

영하 45도까지 떨어지는 추위 속 노역으로 완전히 녹초가 된 채 마르크스와 엥겔스, 레닌의 초상화 밑에 다닥다닥 붙어 앉아, 당시 우리의 현실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주제에 대한 강의를 열중해 듣던 동료들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당시 나는 감동에 젖어 프루스트를 생각하곤 했다. 코르크 벽 탓에 난방이 조금 과하게 된 방에서 죽은 그가, 혹독한 추위 속에서 종일 일하고 돌아온 폴란드 포로들이 게르망트 공작 부인 이야기나 베르고트의 죽음, 또 내가 기억할 수 있는 한 그대로 전해주고자 했던 그 소중하고 아름다운 내면 묘사를 그토록 집중해서 듣고 있는 것을 본다면 얼마나 놀라고 감격할까, 하고 말이다. - P12

이 에세이는 소련에서 보낸 몇 해 동안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게 도와준 프랑스 예술에 바치는, 내 소박한 감사의 공물(貢物)이다. 1944년, 유제프 차프스키. - P13

나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중 한 권을 먼저 읽기 시작했다. (아마 ‘게르망트 쪽’이었던 것 같다.) 사교계에 입문하는 장면을 길게 묘사한 구절이 있었는데, 몇백 페이지는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의 프랑스어 실력은 그렇게 대단한 편은 못 되어서 이 작품의 정수를 맛보거나 이전에는 본 적 없는 특유의 형식을 다 이해할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뭔가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중략) 무한히 계속되는 지엽적 요소들로 이루어진 어마어마한 문장들, 다양하고 서로 동떨어져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조합들, 얽히고설킨 주제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어떤 서열이나 체계없이 다루는 기묘한 방식들, 극도의 정밀함과 풍요로움... 나는 마침내 이런 스타일이 갖는 가치를 감지하기에 이르렀다. - P40

(사실주의의 마지막 단계라 할) 자연주의와 그 대척점에 있는 상징주의는 19세기 말에 무척 풍부하고도 미묘하며 다양한 예술운동을 만들어냈다. 둘은 서로 부딪고 얽히면서 깊이 상호 작용했디만, 교과서에는 이런 흐름이 너무 제한적인 분류로 도식화되어 있을 뿐이다. 말라르메는 자연주의의 창시자 가운데 한 사람인 공쿠르 형제와 평생을 교유했으며, 졸라와도 가까이 지냈다. (중략) 화가 드가는 말라르메와 내밀하게 사귄 친구였다. 이른바 양립 불가능한 것들이 서로 얽혀서 짜여 있던 당시 예술의 형식을 훨씬 고양된 형태로 표현한 것이 바로 드가였다. 드가는 들라크루아와 앵그르를 함께 좋아하고 찬미했다. - P44

프루스트의 관점은 이런 19세기 말의 경향에서 나온 것이다. 19세기 말은 프랑스 예술이 최고의 순간을 맞았던 때로, 수많은 천재적 작가들을 배출한 시기다. 시대를 다 찢어발길 것처럼 뿌리 깊은 모순과 대치가 만연한 가운데 예술은 이를 모두 극복하고 마침내 어떤 종합의 단계에 이르렀다. ‘추상성’과 ‘실재 세계를 즉각적으로 받아들이는 정확한 감각’이 하나가 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종합’은 추상적이고 지적인 요소들로 만들어내는 개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한 분석가의 매우 사적인, 못내 예민한 경험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 P46

문학에서는 상징주의로 대표되고 회화에서는 고갱으로 대표되는 非자연주의 운동은 그 충만하면서도 짧은 시기를 끝내고 1907년에 마침내 입체주의에 이른다. 다시 말해, 현실에 대한 연구는 더 이상 이루어지지 않는 예술이 탄생한 것이다. (중략) 입체주의는 이탈리에서 일어난 미래주의와 충돌했다. (중략) 하지만 개인적인 불행, 또는 강도 높은 노동, 아니 그의 병 탓에, 아니 그 덕분에 프루스트는 자신만의 세계에 유폐되어 있었다. 자기 작품에만 빠져 있던 프루스트는 당시의 예술 경향에서 완전히 벗어나 독립적인 예술 세계를 추구할 수 있었다. - P47

세계대전 이후에는 입체주의와 미래주의, 또는 그로부터 파생한 사조들이 세력을 만방에 떨쳤다. (중략) 그런 그들이 보기에 프루스트의 작품은 첫눈에도 자기들과는 전혀 다른 세계에서 온 것 같았다. 과장과 허식으로 가득했고, 옛 부르주아의 분위기를 풍겼으며, 낡아빠진 스노비즘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전쟁 이후 파리는 물론 유럽 전역에 쇄도한 ‘야만족’에게 프루스트는 당황스럽고 받아들이기 힘든, 기묘한 무엇이었다. - P47

프루스트는 젊어서부터 파리에서 가장 우아하다고 알려진 유명 살롱에 출입했다. 알레비 태생의 스트라우스 부인은 당시 프랑스 상류층 부인들 가운데 가장 지적인 여성이라 할 만했는데, 그녀는 프루스트를 ‘나의 작은 시동’이라고 불렀다. 당시 검고 아름다운 눈을 가진 열여덟 살 소년이었던 프루스트는 격주마다 열리는 이 모임에 참석해 항상 그녀의 옆자리에 앉았다. 나중에 그는 카이야베 부인과 아나톨 프랑스가 연 살롱의 단골이 되기도 했다. 프루스트는 카이야베 부인의 살롱에서 당시 정치계와 문학계 인사들을 여럿 만났다. 또한 포부르생제르맹의 가장 은밀하고 폐쇄적인 사교계에도 발을 들여놓았다. - P50

프루스트의 어머니는 1904-1905년 무렵에 사망했다. 프루스트가 최초로 겪은 큰 불행이자, 아픈 상처였다. 사교계에 드나들고, 예민한 데다 병약하며, 모든 게 미완이고 카오스 같았던 프루스트의 삶은 그의 글쓰기를 더 힘들게 만들었고 병세 또한 악화시켰다. (중략) 프루스트는 문학에 자신을 붙들어두기 위해 어마어마한 글쓰기 노동을 시작한다.
- P54

이와 유사한 여러 묘사들 속에서(인용자 주 – 할머니의 장례식 장면) 이 위대한 작가의 ‘괴물성’이 진가를 드러낸다. 정확하고 냉정하게 분석하는 능력. 아마 그의 인생에서 가장 비극적인 순간이었을 텐데도 세세한 것들까지 극적이고 유머러스하게 묘사하는 가공할 능력. 나는 죽어가는 어머니의 침상에서 온몸이 부서지는 고통을 느끼면서도 그 모든 세세한 것, 그 모든 눈물 그리고 주변인들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비롯한 그 모든 결점을 다 보았을 프루스트를 상상해 본다. - P93

귀족 세계에 대한 그의 내밀한 지식에 감탄하다 보면 자연스레 톨스토이가 또다시 생각난다. 톨시토이도 ‘전쟁과 평화’나 ‘안나 카레니나’에서 여러 페이지에 걸쳐 통찰력 있는 묘사를 하는데, 프루스트의 묘사보다는 조금 덜 사실적이다. 프루스트는 실명을 쓴 실제 역사 인물 마틸드 공주부터 시작하여, 게르망트 공작 부부와 공작의 동생 샤를뤼스 남작 등을 중심으로 ‘게르망트 부부라는 태양’ 주변을 선회하는 궤도의 2열 혹은 3열에 위치한 주요 인물들, 그리고 그들의 부모와 친구들 이야기까지 아우르는 이른바 ‘귀족들의 갤러리’를 만들어 속물과 벼락부자와 여러 어리석은 자들이 가진 무한히 미묘한 면들을 속속들이 그려낸다. - P95

프루스트는 특유의 대단한 섬세함으로, 게르망트 공작 부부의 젊은 군인 조카가 지닌 자질을 짚어낸다. 음악과 문학에 광적으로 몰두하던 이 조카는 본능적인 충동 속에서도 고상한 성격을 간직한 채, 전장에서 영웅적으로 전사한다. - P100

코르크로 벽을 다 막은 방 안에서 그는 ‘살아 죽은’ 채로 묻힌다. (중략) 죽을 때까지 자신의 ‘절대’인 예술에 복무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마지막 권인 ‘되찾은 시간’은 기쁨의 눈물들로 뒤범벅되어 있으며, 이는 단 한 알의 소중한 진주를 사기 위해 전 재산을 팔아치운 사람이 부르는 승전가다. 하루살이처럼 덧없는 모든 것, 찢어지는 듯한 고통, 세상의 모든 기쁨과 청춘과 명성 그리고 에로티시즘의 공허함이 창조자의 기쁨과 비교된다. 한 문장 한 문장 직조하며 매 페이지를 만지고 또 만지는 이 존재는 결코 전적으로 닿을 수 없는, 닿는 것이 영영 불가능한 무언가를 찾아가고 있을 뿐이다. - P111

만일 우리가 삶과 죽음에 대한 프루스트의 마지막 생각을 알고 싶다면, 다시 말해 그토록 긴 경험이 한 존재 안에 축적되면서 생긴 생각을 알고 싶다면, 죽음이 실제로 그에게 다가왔을 때 쓴 글을 보면 될 것이다. 작중인물인 베르고트가 중요한 단서일 수 있다. - P120

스완과 베르고트가 모두 사랑한 네덜란드의 위대한 화가 베르메르의 전시회 기간 중 베르고트는 죽음을 맞는다. 프루스트가 죽기 몇 년 전에 그의 동료이자 친구인 장루이 보두아예가 네덜란드 회화전에 그를 데려갔다는 사실을 나는 우연히 알게 되었다. 프루스트는 그곳을 찾았다가 심장에 심각한 이상이 생겼음을 감지한다. - P123

베르고트가 마지막으로 작가 의식의 시험을 치르는 곳이 바료 여기다. "이 작은 황색 벽면, 이 작은 황색 벽면. 베르고트는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내 책을 바로 이렇게 썼어야 하는데. 같은 문장을 다시 쓰고, 다시 쓰고, 그렇게 더 풍부하게 만들었어야 하는데. 이 벽면처럼 말이야. 이렇게 거듭 덧칠을 해서 말이야. 내 문장은 너무 건조해. 너무나 작업이 덜 됐어." - P124

열병에 가까운 그 어마어마한 노력이 결국에는 스스로의 죽음을 재촉하게 말 것이라는 걸 프루스트 역시 모르지는 않았을 테다. 그러나 그는 그러겠다고 결심했고, 더는 건강에 신경 쓰지 않았으며, 그리하여 죽음에 초연하게 되었다. 그렇게 무리를 했으니, 작업이 한창인 가운데 죽음이 찾아온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어느 날 아침에 그는 침대에서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 머리맡 탁자 위에는 약병이 쓰러져 있고 거기서 흘러나온 액체가 작은 종잇조각 하나를 검게 물들였는데, 전날 밤 쓴 것이 분명한 그 메묘에는 특유의 신경질적인 가는 글씨체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부차적 등장인물일지 모르는 이름 하나가 적혀 있었다. 그 이름은 ‘포르슈빌’이었다. - P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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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지 않는 사람들 - AI만 읽는 시대, 퇴화하는 인간 지능에 관한 경고
나오미 배런 지음, 전병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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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세의 학자(읽기 교육 전공자)가 쓴 AI 시대의 독서 이야기. 별로 흥미는 없지만 알고 있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읽음. 최신 정보가 많은 것은 장점. 서둘러서 번역하느라 그랬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이 많은 것은 단점. 번역자가 '-ㄹ 것이다.'를 굳이 '-ㄹ 테다.'로 쓰는 이유를 모르겠다. 너무 어색하다. 

물론, 문해력의 하락세는 생성형 AI가 등장하기 전부터 있던 현상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LLM(Large Language Mode)이 방대한 데이터세트를 ‘읽은’ 다음 종이 위의 텍스트를 요약 비평 비교한 글을 ‘쓸’ 수 있게 되면서 우리가 굳이 몸소 읽지 않아도 된다는 유혹을 더 크게 느끼고 있습니다. 그 결과로 예상되는 개인의 문해력 상실은 중대한 문제입니다. - P13

읽기는 개인에게 가치 있는 일입니다. 다른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헤아리는 데 도움이 되는 길을 보여주기도 하죠. 하지만 그와 동시에 읽기는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도 중요한 가치 있는 활동이기도 합니다.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시민들은 시대적 관심사를 잘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시민들이 투표로 결정할 사안들에 대해 각자 주체적인 입장을 정립할 수 있겠죠. 그러한 이해를 확보하기 위한 핵심 통로가 바로 읽기입니다. - P14

읽기는 (순수한 즐거움은 말할 것도 없고) 학습의 핵심 원천이다. 읽기는 우리가 다른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하고, 무엇을 생각하고 느끼고 믿을지 스스로 결론에 도달하도록 이끈다. 읽기는 우리의 뇌를 단련시키고, 결코 만나지 못할지도 모르는 (죽었거나 허구인) 존재들에게 감정을 이입하며 연결될 기회를 제공한다. 거기에 바로 우리가 읽기를 통해 더 나은 시민, 나아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 - P19

AI 덕분에 인간의 사고 노력을 아낄 수 있다니, 마치 정신이 공짜로 휴식을 누린다는 말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나친 사고 감소는 사고 능력의 상실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 P21

2022년, 프린스턴대학교 4학년생 에드워드 티안은 겨울 방학 동안 이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GPTZero 프로그램이다. 티안의 프로그램은 이후 공개적으로 이용 가능한 AI 탐지 도구 산업에 선도적 역할을 했다. 이들의 공통 목표는 텍스트 작성자를 규명하는 것이었다. 봇인가, 아닌가? - P68

‘당혹감’은 티안이 텍스트의 전반적인 복잡성을 측정하는 지표였다. (중략) 챗GPT는 본질적으로 (출현 빈도에 기반해) 다음에 나올 가능성이 가장 높은 단어를 예측하는 방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익숙한’ 글일수록 당혹감 점수가 낮게 나온다. (중략) 이 척도의 한 가지 함정은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학생들이 부족한 어휘력 때문에 자신의 글에 챗GPT를 사용했다는 부당한 혐의를 받기도 했다는 점이다. - P68

티안이 도입한 두 번째 프로그래밍 척도는 ‘간헐성’으로, 문장의 길이와 복잡도 같은 지표를 고려해 텍스트 내 문장 변화량을 계산한다. (중략) 인간이 작성한 문장은 일반적으로 텍스트 전반에 걸쳐 길이와 복잡도 면에서 등락을 보이는 반면, AI가 생성한 문장은 훨씬 균일하다. - P69

그러니 옥스퍼드대학교 출판부가 2024년에 올해의 단어로 ‘뇌썩음 brain rot’을 선정한 배경이 이해가 간다. 옥스퍼드는 이 표현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사소하거나 도전적이지 않을 듯한 자료(현재는 특히 온라인 콘텐츠)의 과도한 소비 결과로 보이는 개인의 정신적 지적 상태 저하.
기록상 이 용어가 처음 등장한 곳은 1854년에 출간된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으로 보인다. 소로는 당시 사회가 복잡한 사상과 정신적 노력을 회피하는 경향을 보이는 데 대해 비판하며 이렇게 썼다.
영국이 썩은 감자를 치료하려고 애쓰는 동안, 그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게 퍼져 있고 치명적인 뇌 썩음은 (아무도) 퇴치하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는 건가? - P70

저널리즘의 세계는 2020년을 기점으로 심대한 변화를 겪었다. 신문 기사의 상당수가 이제는 (표기를 하든 말든) AI로 생성된다. 이 수치가 얼마나 되는지 확실히 알기는 어렵지만, 2024년 중반 한 추정치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하루 약 6만 건에 이르렀다. 이는 전 세계 뉴스의 7퍼센트에 가까운 수치이다. - P76

한 사회에 문자가 존재한다고 해서 구성원 대부분이 읽을 수 있지는 않았다. 고대 아테네와 중세 유럽,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 수치는 점점 늘어났다. 1500년 영국의 문해율(추정치)은 남성의 경우 약 10퍼센트였으나, 1900년에 약 95퍼센트까지 증가했다. 여성은 약 5퍼센트에서 시작했으나 1900년에 이르러서 남성을 거의 따라잡았다. 식민지 시대의 뉴잉글랜드에서는 청교도들이 놀라운 문해율을 자랑했다. 백인 남성의 경우에는 거의 100퍼센트에 달했다. - P109

고국에서는 자발적으로 책을 읽어 본 적이 없던 병사들까지 읽었다. 믿기 어렵겠지만, 노르망디 상륙 작전을 앞두고 영국에서 노르망디 해안으로 향하는 수송선에 승선하는 병사들을 위해 배정된 책만 해도 100만 권에 가까웠다.
상륙 후에는 어떻게 됐을까? 오마하 해변에서 벌어진 일을 보자. 여기서 미군은 2400명의 사상자를 냈다. 처음에 상륙한 병사들은 거의 모두 전사했다. 그럼에도 병력은 밀물처럼 몰려가며 상륙을 계속 시도했다. 수많은 병사가 부상했는데, 일부 병사는 주머니에 책을 넣고 있었다. 매닝이 썼듯이, "그날 나중에 해변을 오른 많은 사내는 중상을 입은 병사들이 가파른 언덕 기슭에 몸을 기대고 앉아 책을 읽고 있던 모습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 P128

왜 진중 문고(Armed Services Edition)는 그토록 수요가 많았을까? 첫 번째 이유는 책들이 충족시킨 다양한 욕구이다. 병사들에게 책은 기분 전환이나 지루함을 달래주는 수단, 오락거리, 현실로부터의 탈출구였다.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책은 눈앞의 도전과 비극에 대처하기 위한 도구이자 나아가서 희망의 원천이 되기도 했다. 두 번째 이유는 지극히 현실적인 사정이었다. 다른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다. (중략) 2차 대전 참전 용사 중 상당수가 ‘제대군인원호법 GI Bill’으로 대학에 진학했다. 그리고 일부는 대학 진학 여부와 상관없이 열혈 독자가 됐다. - P128

19세기만 해도 미국의 사립대학 수가 많지 않았다. 입학 지원자의 규모도 마찬가지로 제한적이었다. (중략) 하버드 대학교는 1870년 9월에 ‘뉴욕 타임스’에 광고를 내면서 지난 6월에 입학시험을 치른 지원자 210명 중 185명이 합격했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이런 지원자들은 압도적 다수가 사립 예비학교 출신이었다. 그러나 이후 판도가 바뀌기 시작했다. 20세기 초가 되자, 대학에 입학하는 공립 고등학교 졸업생 수가 점점 늘어났다. 공교육의 수준이 향상되고 이민자 인구가 급증한 결과였다. 새로운 지원자 중에는 유대인 학생이 많았는데, 대다수가 부유한 형편은 아니었다. 아이비리그 대학 캠퍼스에서 이들의 존재감이 커지면서 개신교 상류층 중심의 기존 질서는 도전에 직면했다. 해결책은? 새로운 입학 요건을 도입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공식적인 대학 지원서가 등장했다. - P178

대학 지원서의 서술형 영역을 AI가 쓰고 읽는 지금의 추세는 나를 상당히 심란하게 만든다. 우리는 인간이 무엇을 쓰는지, 그것이 어떻게 읽히는지에 대해 점점 더 신뢰하지 못하게 되는 초현실적 게임을 하고 있다. 듀크대학교가 에세이 영역에서 쓰기의 질 평가를 중단하기로 한 결정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합리적인 첫걸음으로 보인다. 그렇더라도 우리가 신뢰할 수 있는 평가 방식을 마련해야 한다는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 P189

2025년 3월에는 과학 출판계의 거대 기업인 엘스비어가 사이언스 다이렉트 AI를 출시했다. 사이언스 다이렉트 AI는 엘스비어가 보유한 세계최대의 과학 논문 및 단행본 정보 사이트인 사이언스 다이렉트에 축적된 방대한 자료를 기반으로 작동한다. 인간 연구자들이 다루는 주제에 관한 연구 결과를 요약, 비교, 종합해서 제시한다. 완전한 인용은 물론 원문 링크를 함께 게시해 편의성뿐만 아니라 AI의 정확도를 확인할 손쉬운 방법까지 제공한다. - P227

AI 조사 에이전트가 추구하는 또 다른 목표가 있다. 문헌에 대한 체계적 고찰 systematic review이다. (중략) 체계적 고찰은 연구자들이 특정 분야의 연구 결과를 개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의학 분야에서는 임상 시험과 치료에 대한 접근법을 안내하기도 한다. 이를 책임감 있게 준비하려면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AI 조사 에이전트는 매력적인 지름길을 보여주지만, 본격적으로 활용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게 일반적 평가이다. 최소한 체계적 고찰에는 지금의 AI가 만들어내는 ‘환각’을 용인할 여지가 없다. - P228

2023년에도 뉴욕의 변호사 스티븐 슈워츠의 악명 높은 사례가 있었다. 그는 자신이 맡은 사건과 관련된 판례를 훑는 데 챗GPT를 사용했다. 그러나 그가 변론에 인용한 판례들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판사가 발견했다. 슈워츠는 잘못을 깊이 뉘우치며 후속 심리에서 "챗GPT가 판례를 날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다"라고 호소했다. 변호사로서 훌륭한 일은 아니었지만, 당시는 챗GPT가 막 등장한 시점이었고 환각을 유발하는 문제가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기 전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 P235

AI 사용의 영향을 뇌에서도 측정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증거는 없을까? 2025년 6월 ‘아카이브’에 게재된 흥미로운 연구가 긍정적 답을 시사한다. 뇌파 검사EEG는 뇌의 전기적 활동을 측정하는 확립된 방법이다. 보스턴 지역의 한 연구진은 이 기술을 활용해, 참가자들이 LLM을 사용하거나, 전통적인 웹 검색을 하거나, 아니면 둘 다 사용하지 않는 (오직 뇌만 사용하는) 상태에서 에세이를 작성할 때의 뇌 활동을 서로 비교해 봤다. 참가자들 중 ‘뇌만 사용한’ 집단의 신경 활동 수준이 가장 높았고, 검색 엔진을 사용한 집단이 그 뒤를 이었다. LLM을 사용한 집단은 신경 활동 수준이 가장 미미했다.
- P357

빅테크 기업들이 자신들의 서비스를 채택하도록 우리를 몰아가는 행위를 탓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생각하는 소비자로서 우리는 (선택권이 우리에게 있을 때) 읽기 대행자로서 AI에 얼마나 의존하고 싶은지를 결정할 수 있다. AI에 과도하게 의존한다고 해서 체중이 늘거나 과다 복용으로 죽지는 않는다. 그러나 종국에는 우리의 학습과 개인적 성장에 해가 될 수 있다. AI가 환경에 끼치는 피해에 기여하는 점은 말할 것도 없다. - P360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쏟아놓은 모든 연구를 통해 내가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을 제시하면서 글을 마칠까 한다. 첫째는 정신적 노력의 중요성이다. (중략) 둘째는 문해력 사업에서 진정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인정하는 것이다. - P361

셋째는 우리가 AI 시대에 어떤 독자가 되고 싶은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과제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기술적 선택지가 아무리 인상적이라 해도, 우리는 여전히 한 개인으로서 뇌를 사용하고 인성 (그리고 영혼)을 구축해야만 한다. 또 사회 구성원으로서 책임도 있다. 타인과 상호작용하고, 시민으로서 자신을 교육하며, 아이들에게 본보기가 돼야 한다. - P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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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학 / 시학 -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ㅣ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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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작문과 화법 교육에서 가르치는 것들의 뿌리가 여기에 있다는 것에 경탄했다. 알면 알수록 더 대단한 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은 유용하다. 참된 것들과 올바른 것들은 그와 반대되는 것들보다 본성적으로 더 우월하기 때문이다. 판정이 제대로 내려지지 못할 경우, 필연적으로 참된 것들(진실)과 올바른 것들(정의)이 그 반대되는 것들(허위와 불의)에 의해 무너질 수밖에 없다. (1권1장) - P28

말로 제시하는 증거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 것은 말하는 사람의 성격에 달려 있고, 두 번째 것은 청중이 어떤 심적 상태에 있게 하느냐에 달려 있으며, 세 번째 것은 말이 증명하거나 증명하는 것처럼 보이는 하는 말 그 자체에 달려 있다. (1권2장) - P31

말하는 사람의 말이 믿음직스럽게 들릴 때 그는 성격을 통해서 설득한다. 우리는 대체로 매사에 정직한 사람을 더 기꺼이 더 빨리 신뢰하며, 정확성을 기할 수 없고 의견이 엇갈릴 때는 특히 그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믿음도 말하는 사람의 말을 통해 생겨나야지, 말하는 사람에게 갖는 선입관을 통해 생겨나서는 안 된다. 몇몇 수사학 전문가가 주장하듯, 말하는 사람이 드러내는 개인적 정직성은 그의 설득력에 전혀 기여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성격은 말하는 사람이 지닌 가장 효과적인 설득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1권2장) - P31

말하는 사람이 청중의 감정을 자극할 때는 청중을 통해 설득한다. 우리는 괴로울 때나 슬플 때, 사랑할 때나 미워할 때 동일한 판단을 내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이, 오늘날의 수사학자들은 이런 효과를 내는 데만 정성을 쏟는다. 우리는 감정에 대해 논할 때 이 문제들을 상세히 논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개별 사항에 적합한 설득 수단을 통해 진리 또는 진리인 것처럼 보이는 것을 증명할 때는 말 자체로 설득한다. (1권2장) - P32

연설에는 필연적으로 심의용 연설(symbouleutikos), 법정 연설(dikanikos), 과시용 연설(epideiktikos) 이 세 종류가 있다. 심의용 연설은 어떤 일을 하라고 권유하거나 하지 말라고 만류한다. 개인적으로 권유하는 사람들도 대중에게 말을 건네는 사람들도 언제나 권유하거나 아니면 만류하기 때문이다. 법정 연설은 누군가를 고발하거나 변호한다. 소송 당사자는 반드시 고발하거나 변호해야 하니까. 과시용 연설은 누군가를 찬양하거나 비난한다. 이들 세 종류의 연설은 또한 서로 다른 세 종류의 시간에 관여한다. (1권3장)
- P41

친구란 남을 위해 남에게 이롭다고 생각되는 것을 해 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들이 많은 사람은 친구가 많고, 그런 사람들이 존경스러우면 친구가 훌륭한 것이다. (1권5장) - P54

인간의 모든 행위는 다음 일곱 가지 원인 가운데 하나 때문에 일어나는데, 우연, 본성, 강요, 습관, 계산, 분노, 욕구가 그것이다. (1권10장) - P88

집중과 노력과 긴장을 요하는 행위는 괴롭다. 습관화되지 않은 이상 그런 것에는 필연과 강요가 내포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습관화되면 그런 것도 즐겁다. 그런 것과 상반되는 것은 즐겁다. 그래서 편안함, 여가, 이완, 놀이, 휴식과 잠은 즐거운 것에 속하는데, 어느 것도 강요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1권11장) - P91

즐거움은 현재의 것을 지각하는 데 있거나, 과거의 것을 기억하는 데 있거나, 미래의 것을 기대하는 데 있을 것이다. 우리는 현재의 것은 지각하고 과거의 것은 기억하고 미래의 것은 기대하니까. 그런데 현재의 것으로 지각할 때 즐거운 것뿐 아니라 즐겁지 않은 것이 기억나더라도 그 결과가 고매하고 좋을 경우에는 역시 즐겁다. (1권11장) - P92

상사병에 결린 사람에게는 자신이 사랑하는 연동(eromenos)에 관해 말하거나 쓰거나 作詩하는 것이 언제나 즐겁다. 이 모든 경우 그는 기억함으로써 자신이 연동을 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연동이 곁에 있으면 행복하고 연동이 곁에 없으면 기억하는 것, 이것이 모든 사람에게 사랑의 시작이다. 그래서 연동이 곁에 없는 것이 괴롭지만 슬픔과 탄식 속에도 어떤 즐거움이 깃드는 것이다. 그가 곁에 없어 괴롭기는 하지만, 그를 기억하는 것은, 그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의 행위와 됨됨이를 생각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니까. (1권11장) - P93

이기는 것 또한 이기기를 좋아하는 사람뿐 아니라 모두에게 즐겁다. 이기면 우월감을 느끼는데, 그것은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모두가 욕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기는 것은 즐거운 것이므로 운동 경기나 지적 토론 역시 즐겁다. (1권11장) - P94

연설가가 청중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자질이 필요하다. 증명과는 별도로 남이 나를 믿도록 만드는 것은 세 가지 즉 상식(phronesis, 문맥에 따라 실천적 지혜), 미덕(arete), 호의(eunoia)이기 때문이다. (중략사람들이 거짓말을 하거나 그릇된 조언을 하는 것은 다음 세 가지 이유 전부 때문이거나 그중 하나 때문이다. 말하자면 상식이 부족해 그릇된 의견을 지니거나, 바른 의견을 지니지만 사악해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말하지 않거나, 상식도 있고 성품도 고결하지만 청중에게 느끼는 호감이 결여되어 알면서도 가장 훌륭한 조언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2권1장) - P127

연설가는 반드시 청중은 분노하는 심적 상태가 되게 하되, 자신의 상대방은 사람들이 분노하는 그런 사람이며 사람들이 분노하는 일들에 책임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2권2장) - P135

겸손하며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자들 앞에서도 우리는 차분해진다. 그런 자들은 자신들이 열등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처럼 보이며, 열등한 자들은 두려워하고 두려워하는 자들은 아무도 남들을 경멸하지 않기 때문이다. 개도 사람이 앉아 있을 때는 물지 않는데, 이는 겸손한 자들 앞에서는 분노가 가라앉는다는 것을 말해준다. (2권3장) - P136

따라서 청중을 진정시키고 싶으면 분명 이런 전제들에서 말하며 청중이 적절한 심적 상태가 되게 해야 하며, 그들이 분개하는 자들을 두려운 자들, 존경스러운 자들, 호의를 베푼 자들, 본의 아니게 행동한 자들 또는 자신의 행위 때문에 지나치게 고통당한 자들로 그려야 한다. (2권3장) - P139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우리가 좋다고 믿는 것들을 우리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를 위해 바라면서 힘닿는 데까지 그런 것들을 해주려고 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2권4장) - P140

우리는 절제 있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그런 사람들은 남에게 불의를 저지르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같은 이유에서 남의 일에 참견하지 않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2권4장) - P141

분노는 우리와 관련있는 것에서 비롯되지만, 증오는 우리와 무관한 것에서 비롯될 수도 있다. 우리는 사람들을 단순히 어떤 성격의 소유자라고 여기기 때문에 미워할 수 있으니까. 분노는 언제나 칼리아스나 소크라테스 같은 개인과 관계가 있는 데 반해, 증오는 어떤 부류를 향할 수도 있다. 도둑과 밀고자는 모든 사람이 미워하니까. (아래에 계속)

(위에서 계속) 또한 분노는 시간이 지나면 치유되지만, 증오는 그렇지 않다. 분노는 고통을 안겨주려 하지만, 증오는 해를 입히려 한다. 분노하는 사람은 자기 피해자들이 무엇을 느끼기를 원하지만, 미워하는 사람은 피해자들이 무엇을 느끼든 말든 상관없다. 고통스러운 것은 모두 느낄 수 있지만, 불의나 어리석음처럼 가장 큰 해를 입히는 것들은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악덕은 존재하더라도 고통을 야기하지 않으니까. 또한 분노는 고통을 수반해도, 증오는 그렇지 않다. 분노하는 사람은 연민의 정을 느낄 때가 많지만, 증오하는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연민을 느끼지 않는다. 분노하는 사람은 자신을 화나게 하는 사람이 그 대가로 고통 받기를 원하지만, 증오하는 사람은 자신의 적이 없어지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2권4장) - P144

경쟁심은 우리도 얻을 수 있는, 높이 평가받는 좋은 것이 본성상 우리와 비슷한 자에게 분명히 존재하는 것을 보고 느끼는 괴로움이다. 그러나 시기심은 남이 그런 좋은 것을 가지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얻지 못했기 때문에 느끼는 괴로움이다. (따라서 경쟁심은 훌륭한 사람이 느끼는 훌륭한 감정이지만, 시기심은 나쁜 사람이 느끼는 나쁜 감정이다. 한쪽은 경쟁심을 통해 스스로 좋은 것을 얻으려 하지만, 다른 쪽은 시기를 통해 이웃이 좋은 것을 갖지 못하게 방해하기 때문이다.) (2권11장) - P170

젊은이는 돈보다는 명예와 승리를 더 사랑한다. 그들은 돈은 별로 사랑하지 않는데, 암피아라오스를 언급한 핏타코스의 경구처럼 돈이 없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2권12장)
- P173

노인은 오랜 세월을 살며 종종 속임을 당하거나 실수를 저질렀을뿐더러 인생 전체가 실패작인지라 그 어떤 것에도 자신감이 없고 매사에 지나치게 활력이 부족하다. (중략) 또한 노인은 심술궂다. 심술궂다는 것은 모든 것을 나쁜 측면에서 보기 때문이다. 노인은 불신하므로 의심하고, 경험 때문에 불신한다. (2권13장) - P175

젊은이는 용감하지만 절제가 없고, 노인은 절제는 있지만 비겁하기 때문이다. 대체로 말해 청년기와 노년기가 따로 가지는 이점을 한창때 사람들은 함께 가진다. 또한 그들은 청년기나 노년기가 너무 많이 가지거나 너무 적게 가진 것을 알맞게 가진다. 몸은 30세에서 35세 사이가 한창때이고, 혼은 49세쯤이 한창때이다. (2권14장) - P178

부자는 오만불손하다. (중략) 부자는 또한 사치스럽고 으스댄다. (중략) 또한 부자는 자신들이 통치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사람들을 통치자로 만드는 자질을 자신들은 이미 지녔다고 믿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부자의 성격은 운 좋은 바보의 성격이다. (2권16장) - P180

우화는 대중 연설에 적합하며, 실제로 일어난 비슷한 사건을 찾기는 어려워도 이야기를 지어내기는 쉽다는 이점이 있다. 우화는 비유처럼 지어내기만 하면 된다. 유사성을 발견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그런데 이것은 철학 교육을 받은 사람에게는 쉬운 일이다. 우화가 주는 교훈은 제공하기가 더 쉽지만, 심의용 연설에서는 사실이 주는 교훈이 더 유용하다. 미래사는 대체로 과거사를 닮았기 때문이다. (2권20장) - P193

금언은 연설에 큰 도움이 된다. 그것은 첬째, 청중은 우둔해 자신이 트정한 경우에 갖는 의견을 누가 보편적인 진리로 표현하면 듣고 좋아하기 때문이다. (중략) 하지만 더 중요한 다른 이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금언 사용이 연설에 도덕적 성격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중략) 금언을 말하는 사람은 자신의 도덕적 원칙을 보편적 형태로 선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금언이 훌륭하면 그것을 말하는 사람도 훌륭해 보이게 된다. (2권20장) - P201

우리는 너무 멀리 떨어진 전제에서 결론을 이끌어내도 안 되고, 논의의 모든 단계를 결론에 포함시켜도 안 된다. 첫째, 논의가 길어지면 논지가 모호해지고 둘째, 자명한 것을 말하면 시간 낭비가 될 것이다. 이것은 못 배운 자가 배운 자보다 군중 앞에서 더 설득력을 갖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시인들은 "못 배운 자가 군중 앞에서는 말을 더 잘하는 법"이라고 말한다. 배운 자는 평범하고 일반적인 것을 말하고, 못 배운 자는 자기가 아는 것에서 논의를 시작해 분명한 결론을 이끌어내기 때문이다. (2권22장) - P202

실제 사실들을 더 많이 가질수록 우리는 더 쉽게 논제를 증명할 수 있고, 사실들은 논제와 밀점히 관계있을수록 더 특별하고 덜 진부하다. (2권22장) - P204

연설과 관련해 우리가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세 가지이다. 첫째는 증거의 출처이고, 둘째는 문체이며, 셋째는 연설의 부분들을 적절히 배열하는 일이다. (3권1장) - P246

연출은 여러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목소리를 적절히 조절하는 문제, 즉 목소리는 언제 크거나 작아야 하며 언제 그 중간이어야 하며, 날카롭고 무거운 그 중간의 억양은 어떻게 사용해야 하며, 각각의 주제에는 어떤 리듬이 사용되어야 하는 문제이다. (3권1장) - P247

문체의 미덕은 명료성이라고 하자. 연설은 그 뜻하는 바가 분명하지 못하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또한 문체는 적절해야지 저속해서도 안 되고 너무 고상해서도 안 된다. (3권2장) - P250

따라서 은유는 음성적으로나 의미상으로나 시각적으로나 그 밖의 다른 감각적으로 아름다운 것에서 빌려와야 한다. 이를테면 ‘장밋빛 손가락을 가진 새벽의 여신’이라는 표현이 ‘진홍색 손가락을 가진 새벽의 여신’이라는 표현보다 더 나으며, ‘빨간 손가락을 가진 새벽의 여신’이라는 표현은 가장 못하다. (3권2장) - P256

훌륭한 문체의 제1원리는 정확한 헬라스어를 구사하는 것이며, 이것은 다섯 가지 규칙을 준수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중략) 첫 번째 규칙은 접속어를 적절히 사용하는 것이다. 두 번째 규칙은 흔해빠진 이름이 아니라 특별한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다. 세 번째 규칙은 모호한 표현을 피하는 것이다. (중략) 네 번째 규칙은 프로타고라스가 명사를 남성, 여성 중성으로 구별한 것을 준수하는 것이다. (중략) 다섯 번째 규칙은 많은 수인지 적은 수인지 단수인지 정확하게 말하는 것이다. (3권5장) - P264

청중은 또한 ‘누가 모르겠는가?’ ‘누구나 다 안다’처럼 연설문 작성가들이 지겹도록 사용하는 기교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맏는다. 청중은 남들은 누구나 다 아는 것을 자기는 모르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창피해서 동의하기 때문이다. (3권7장) - P271

직유는 여러 번 말했듯이 은유의 일종이다. (3권11장) - P297

수사학의 장르마다 적합한 문체가 다르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작문의 문체는 토론의 문체와 같지 않고, 토론의 경우에도 대중 연설과 법정 연설은 같지 않기 때문이다. (3권12장) - P299

심의용 연설에서 도입부와 쟁점 비교와 요약은 정책상의 갈등이 있을 때만 발견된다. (중략) 법정 연설에서도 맺는 말이 언제나 필요하지는 않다. 이를테면 연설이 짧거나 사실들을 기억하기 쉬울 경우에는 말이다. (3권13장) - P304

그대가 도입부에서 해야 할 일은 판단 대상이 될 쟁점이 무엇인지 분명해지도록 주제를 말하는 것이고 맺는 말에서는 증거들을 요약해서 말해야 한다. 이 요약하는 단계에서 맨 먼저 할 일은 그대가 약속을 비텼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그 다음에는 그대가 무슨 말을 왜 했는지 말해야 한다. (3권18장) - P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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