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의 가을 우리 시대의 고전 1
요한 호이징가 지음, 최홍숙 옮김 / 문학과지성사 / 199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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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최악. 불어식 고유명사를 방치해둔 게으름에다, 짜증나는 '하나님' 타령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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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zuaki 2008-06-18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번역자, 후기에 "마지막까지 인내할 수 있도록 힘주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과 존귀를 돌려드리고 싶다."고 써 놨다. 그게 중세 프랑스의 가톨릭 교회를 설명하면서 가톨릭 용어를 싸그리 무시한 데 대한 자기 나름의 변명인가 보다. '미사', '성당' 대신 '교회', '예배'를 고집하는 것도, '신'이라 쓰면 무난한 것을 굳이 한국 개신교에서밖에 안 쓰는 정체불명의 용어 '하나님'으로 바꿔놓은 것도 개신교 (맹? 광?)신자의 아집인가 싶어 실소가 나온다. (심지어 '성모송'을 '아베송'이라고 썼다.-_-)
익숙한 라틴 이름을 어색한 프랑스식 표기로 방치해 놓은 것도 눈에 거슬린다. 중세사나 중세철학과 관련한 참고 도서들을 조금이라도 찾아봤다면 '성 보나방튀르'라든가 '(교황) 마르텡 5세' 같은 어이 없는 실수들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 외에도 단어 선택이라든가 문장 구성이 여기저기 결함 투성이라, 좀 어려운 부분이 나올라치면 머리를 감싸쥐고 원문을 추리해 내야 한다. 엉망인 번역 때문에 좋은 책이 망가진 것이 안타깝다.
 
시모츠마 이야기 - 양키 소녀와 로리타 소녀
타케모토 노바라 지음, 기린 옮김 / 도서출판두드림 / 2005년 9월
품절


아마가사키(尼崎)는 뭐라 설명하기 힘든 그런 동네랍니다. 오사카(大阪)와 효고(兵庫) 현 중간에 있는 이 동네는 도회지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열려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열려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주민의 대부분은 양키이거나 전에 양키였던 사람들입니다. 아마가사키 시민의 대댜수가 아마가사키에서 태어나 역시 아마가사키에서 태어나고 자란 양키 출신 부모에 의해 당연하다는 듯이 양키로 키워집니다.
시내에는 제법 많은 상가들이 있지만 대부분 빠찡코 가게와 수상한 짝퉁 의류를 취급하는 가게들뿐입니다. 음식점은 어디든 가격이 싼 편이어서 라면 한 그릇을 100엔이면 먹을 수 있는 가게가 널려 있습니다. 고깃집 (어찌 된 일인지 이상하게 많아요)을 포함해 모든 음식점들이 가격파괴로 승부를 걸고 있습니다. 이렇게 표현하면 무척 활기찬 동네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군요. 하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아래에 계속)-25-26쪽

(위에서 계속)
아마가사키 사람들은 매출을 높이기 위해서 무조건 다른 곳보다 싸게 파는 방법 이외에는 생각하지 못합니다. 사는 사람도 싼 거 외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품질이나 부가가치 등은 아마가사키 사람들에게는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지요. 지난번에 광우병 파동이 났을 때 다른 도시의 고깃집들은 파리만 날린다는 뉴스가 나오는데도 아마가사키의 싸구려 고깃집에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겁니다. 터무니없이 싼 가격에 고기를 파는 걸 보면 혹시? 어쩌면!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텐데, 아마가사키 사람들은 그런 생각을 전혀 하지 않습니다. (아마가사키 사람들은 TV뉴스는 아예 보지 않습니다. 신문도 스포츠 신문밖에 있지 않아요.)
상점가를 오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아래위 모두 추리닝 차림입니다. 이건 아마가사키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아마가사키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아마가사키에서 자라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아마가사키에서 그렇게 살다 그렇게 가는 것입니다.
(아래에 계속)-26-27쪽

(위에서 계속)
아마가사키는 효고 현에 속해 있습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전화번호 국번을 효고의 078이 아니라 오사카의 06을 씁니다. 아마가사키 사람들은 오사카의 시외국번을 쓸 수 있어 편리하다며 뭣도 모르고 좋아하지만 저는 좀 복잡한 기분이랍니다.
오래 전부터 효고 현은 고베를 중심으로 부자들이 사는 상류층 지역이라는 이미지를 굳혀왔습니다. 그래서 추리닝 천국 아마가사키를 효고 현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거라고 저는 추측하고 있어요. 기회를 틈타 아마가사키를 잡동사니 처리반인 오사카에 떠넘겨 버리고, 부자동네라는 이미지를 확고히 하고 싶다는 것이 효고 현의 본심이 아닐까요? 아마도 효고현에 있어서 아마가사키는 없었던 걸로 하고 싶은, 앞으로도 가능하다면 없는 걸로 하고 싶은 지역인 거죠. 그래서 효고 현은 아마가사키의 시외국번 06을 계속 묵인하고 있는 겁니다. 오사카가 "있잖아, 아마가사키 말인데 오사카로 편입시킬까 하는데 주지 않을래?" 라고 한다면, 효고 현은 선심 쓰듯 아마가사키를 오사카에 선뜻 줘버릴지도 모릅니다.
(아래에 계속)-27-28쪽

(위에서 계속)
저의 가장 큰 콤플렉스는 이런 아마가사키에서 태어나 자랐다는 것입니다. 아마가사키에서는 쇼핑을 해도 살 만한 게 없어서 오사카로 나가야 했는데, 상점에서 상품을 예약하기 위해 집주소를 쓸 때마다 얼마나 창피스럽던지...... 아마가사키 시라고 쓰는 것만으로도 다들 저를 불쌍히 쳐다보는 것처럼 생각되거든요. 예쁜 옷차림을 하고 있어도 "그래 봤자 너는 추리닝 나라에서 온 애야" 라며 편견이 담긴 비웃음을 받는 기분이 되고 마는 겁니다. -28~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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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zuaki 2008-06-11 0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효고 현 아마가사키 얘기가 재밌어서 옮겨왔다. 여기가 마츠모토 씨와 하마다 씨와 야스다 군의 고향이어서 말이지.;;
 
삼대 외 - 한국소설문학대계 5
염상섭 외 / 동아출판사(두산) / 1995년 1월
품절


생각할수록 경애란 이상한 계집애다. 지금 말눈치로 보아서는 노는 계집과 다름없고, 자기에게 성욕적으로 덤비는 것같이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어제 상훈이에게 끌고 간 것이라든지, 또 전일에 상훈이 앞에서 키스를 한 것이라든지, 혹은 자기와 상관한 남자들을 모두 서로 대면시키려는 말눈치로 보면 일종의 변태성욕을 가진 색마나 요부 같다. 그러나 별안간 호령을 하고 함부로 윽박지르는 것을 보면 그것이 혹시 히스테리증의 발작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떻게 생각하면 불량 소녀의 괴수로서 무슨 불한당의 두목 같기도 하다. 옛 책이나 탐정소설에서 볼 수 있는 강도단의 여자 두목이라면 알맞을 것 같다. 사실 청인의 상점이 쭉 들어섰고 아편쟁이와 매음녀 꼬이는 음침하고 우중충한 이 창골 속을 휘돌아 들어갈수록 병화는 강도들의 소굴로 붙들려 들어가는 듯한 음험한 불안과 호기심을 느끼는 것이었다. -218-2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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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zuaki 2008-06-09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홍경애가 사는 북미창정이 요즘의 북창동인 모양인데, 저 '청인의 상점'이랑 '아편쟁이', '매음녀' 얘기에 그만 솔깃하고 말았다. 지금도 중국식료품점이랑 룸살롱이 즐비한 동네 아닌가! 식민지 시절의 데카당한 서울은 생각할수록 매력이 있단 말이지.

eppie 2008-06-10 15:58   좋아요 0 | URL
동의해요. 정말 매혹적인 공간이에요. :]

mizuaki 2008-06-11 07:45   좋아요 0 | URL
에피 님, 덧글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가끔씩 놀러와주세요. ^^
 
한글로 읽는 사서
다시 편집부 엮음 / 도서출판 다시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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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책날개에 나와 있는 역자 약력에서 신학대학과 영문과를 졸업했다는 것을 보고 의아한 생각이 들었는데, "합리적 이성"과 "건전한 상식"을 강조하는 <옮긴이의 말>을 읽고 나니 비로소 납득이 갔다. 과연 신화적 상상력으로 가득한 기독교 교리보다는 현실에 뿌리를 둔 공맹의 가르침이 훨씬 합리적이고 상식적이기는 하다.

한문으로 되어 있어 접하기 어려운 유교 경전을 기독교 성경처럼 쉬운 한글로 풀어 한 권으로 묶어 내고 싶었다는 저자의 목적은 퍽 훌륭하게 성취되었다. 편안한 마음으로 일주일만에 <사서>의 전체 내용을 열람할 수 있었으니 저자에게는 큰 도움을 받았다.

실상 내가 <사서>를 읽으려는 이유는 급하게 한문 공부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시작하나 막막하던 차에 번역 텍스트를 먼저 읽고 나니 원문을 어떻게 읽어가야 할지 대략 감이 잡힌다. <대학>과 <중용>은 분량이 적으니 기한을 정해 집중적으로 독파해야겠고 <논어>는 짧은 장들로 나누어져있고 어디서 한 번쯤 본 듯한 친숙한 내용이 많은만큼 사무실에 두고 틈틈히 조금씩 읽어야겠다. 분량이 가장 많은 것은 <맹자>인데, 이 사상가는 무난한 소리만 하는 그 스승 공자에 비해 겁이 없어서 조마조마한 위험 발언도 아무렇지 않게 턱턱 던지기 때문에, 네 권 중 가장 기대되는 책도 <맹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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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소설 속 역사 여행 - 개정증보판
신병주.노대환 지음 / 돌베개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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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의병은 대부분 군사 지식이 없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실제 전투에서 혁혁한 성과를 거두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의병 항쟁 당시 60세 환갑이었던 고경명은 적병과 무모한 전면전을 펴다가 패배해 목숨을 잃고, '군사의 행진에 기율이 없고 이르는 곳에 진영의 설비가 없어 마침내 패하게 되었다'는 평가를 들어야 했다. 하지만 개별 전투의 승리 여부에 상관없이 이들 의병의 활동은 왜군들에게 커다란 부담을 안겨 주었으며 조선군 전체의 사기 진작에 큰 역할을 하였다. 그 때문에 지봉 이수광은 왜란에서 국가를 지켜낸 것은 오로지 의병들이었다면서 다음과 같이 의병의 공로를 부각시켰다. "명령이 통하지 않아서 거의 나라가 없어진 지 달이 넘었을 때에 영남의 곽재우, 김면, 호남의 김천일, 고경명, 호서의 조헌 등이 앞장서서 의병을 일으키고 원근에 격문을 전하니 이로부터 백성들이 비로소 나라를 받들려는 마음이 있게 되었고 고을의 사자들은 곳곳에서 군사를 모집하였다. 의병장으로 칭호하는 자가 무려 백 명이나 되었는데 왜군을 초멸하고 국가를 회복한 것은 오로지 의병의 힘이었다. - 지봉유설 "-51쪽

선조는 공신들의 공을 평가하는 자리에서도 왜적을 평정한 것은 오로지 중국 군대의 힘이었고, 우리나라 장사(將士)는 중국 군대의 뒤를 따르거나 혹은 요행히 잔당의 머리를 얻었을 뿐 제 힘으로는 한 명의 적병을 베거나 하나의 적진을 함락하지 못하였으며 그나마 이순신과 권율 정도가 조금 나은 편이라고 지적하였다. (중략) 그래도 선조에게서 약간의 공적을 평가받았으며 전장에서 명예롭게 전사한 이순신은 오히려 행복한 편에 속한다. 의병장들의 실제 운명은 더욱 비참하였다. 의병들의 공이 컸다는 것은 관군의 역할이 미미하였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인데, 그것은 정권 담당자들에게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또, 백성들의 큰 신망을 받고 있던 이들이 혹시 어수선한 시국과 전란을 틈타 모반을 꾸미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도 있었다. 실제로 전란 중 곳곳에서 도적이 일어나고 모반 사건도 발생하였다. 이들은 세력을 규합하기 위해 이름난 의병장들의 이름을 파는 경우가 있어 정부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여기에 의병장들의 공을 시기하는 사람들의 입김까지 작용함으로써 적지 않은 전쟁 영웅들이 희생을 당하였다.-59쪽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의병들도 표창을 받기는커녕 전란이 끝난 후에도 고향으로 돌아가 생업에 종사할 수 없었다. 정부에서 이들을 강제로 군인으로 만들어 전선에 배치하거나 수시로 동원하였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의병들의 원망과 고통은 극에 달하였다. 이런 상황을 지켜본 이수광은 국가가 백성들의 신뢰를 크게 잃어 차후에 또 전란이 생기면 의뢰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한탄하였다. -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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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zuaki 2008-04-26 0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의병에 대한 역사는 국가의 필요에 의해 많이 왜곡된 것 같다. 결국 전란이 끝난 후에는 위험인물로 찍혀 희생당했다는 것을 여기서 처음 알았다. 예나 지금이나 애국주의 선동에 넘어가면 결국 자기만 손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