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귄의 사생활
와타나베 유키 지음, 윤재 옮김 / 니케북스 / 2017년 4월
평점 :
절판


  도서관에서 세 번 빌려 읽고 결국 소장하기로 결심했다. 과학적 사실들을 쉬운 말로 재미있게 설명하고 설명을 다시 알기 쉽게 요약해 준다. 읽기 쉬운 문장과 참신한 비유 온화한 유머가 편안하고 즐겁다.


 필자가 너무나 행복하게 자기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책을 읽다 보면 동물의 행동을 연구하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일인 것처럼 느껴진다. 외딴 곳에서 동물들과 함께 사는 생활의 고달픔이나 거듭된 실패의 괴로움도 연구의 행복 앞에서는 별 일 아닌 것처럼 여겨진다. 동물들도 너무 착해 보이고 그들을 따라다니는 과학자들도 다들 너무 착해 보인다.


 과학에 관심 있는 어린이나 청소년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이다. 어린 시절 과학을 동경했던 어른들에게도 틀림없이 행복을 전해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먹이를 찾기 위해 이동한다는 동기에는 변함이 없다. 앨버트로스가 좋아하는 오징어는 물고기에 비해 유영 능력이 모자란 탓에 해류와 해류의 경계선에서 무리 지어 서식한다. 앨버트로스의 지구 일주 경로는 남극 해류라는, 남극 대륙을 빙그르르 둘러싸고 동쪽으로 흐르는 강한 해류와 딱 겹쳐져 있었다. 그렇다면 왜 모든 앨버트로스가 지구를 일주하지 않는 것일까? 다양한 비행경로는 무엇을 의미할까? 생태학적으로 설명하자면, 이런 경우는 종내 경쟁이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앨버트로스끼리 먹이가 있는 곳을 둘러싸고 격렬한 싸움을 벌인 결과, 최상의 자리를 얻은 강자와 척박한 변두리 땅으로 쫓겨난 약자로 나뉘는 것이다. (중략) 최대 경쟁 상대가 종종 동족 안에 있는 다른 개체라는 사실은 인간 사회에도 꼭 들어맞는, 생태학의 중요한 가르침 중 하나이다. - P47

화장실도 수도도 샤워 시설도 없지만 생활은 간소하고 즐거웠다. 낮 시간에는 내내 조사를 진행하고, 밤이 되면 배불리 먹고 잤다. 그뿐이었다. 식사는 자기가 만들고 싶은 음식을 만들고 싶은 만큼 만들면 된다. (중략) 카레와 밥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을 빼려 오두막 문을 열면 사냥감을 물고 터벅터벅 둥지로 돌아가고 있는 펭귄의 모습이 보인다. 뭐니뭐니 해도 가장 행복한 것은 수면 시간. 하얀 숨결이 비치는 빙점 아래 오두막 안에서, 게다가 소리 하나 없이 정적이 흐르는 곳에서 온몸이 폭신폭신한 침낭에 싸이는 행복은 어디에도 비할 수 없다. 자기만의 공간에서 따스함을 즐기고 있노라면 왠지 초등학교 시절의 두서없는 기억들이 되살아난다. 그리고 그러는 사이 어느새 깊은 잠으로 곯아떨어진다.
- P81

관찰하다 보면 부모 새가 샐러리맨처럼 바지런히 바다와 둥지를 왔다 갔다 하며 먹이를 가지고 돌아와 크고 건강한 새끼를 키우는 가정이 있는가 하면, 부모 새가 어디서 농땡이를 부리는지 둥지로 돌아오는 빈도가 낮아 새끼가 작고 영양 부족에 시달리는 문제 가정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둘 다 야생 동물의 자연스러운 모습이겠지만, 기록계를 부착한 부모 새가 둥지로 잘 돌아가지 않으면 곤란하므로 되도록 샐러리맨 부모가 꾸리는 가정으로 대상을 좁혀 나간다.
- P82

그린란드 상어는 여러 가닥의 실과 낚싯바늘이 견결된 주낙으로 낚는데, 우선 먹이를 준비해야 한다. 적당히 다금바리 같은 어류를 쓰려나 생각했는데 예상과 달리 제대로 된 노르웨이 방식이 등장했다. 내가 조사선 위에서 기다리는 사이 몇 명의 사람들이 라이플총을 들고서 보트를 타고 나가 커다란 턱수염바다표범을 한 마리 잡아 온 것이다. 우리는 한데 모여 바다표범을 해체해 두께 7-8센티미터에 달하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피하지방을 잘라 주낙 미끼로 썼다. 상어에게는 군침이 돌 미끼였다. 물론 정부의 허가를 받은 사냥이었지만, 어류를ㄹ 잡기 위한 미끼를 구하기 위해 바다표범을 총으로 쏴 죽이는 나라는 노르웨이뿐이다. 역시 바이킹의 후예답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 P99

그는 개복치에 매료되어 개복치와 함께 살기를 결의한, 전 세계에서도 드문 개복치 마니아이다. 그는 개복치 샘플을 모으기 이해서라면 전 일본, 아니 전 세계 어디라도 간다. 손에 넣은 샘플은 하루 종일 계측하고 해체하고 질리지도 않고 자세히 조사한다. 개복치 포를 만들어 방에 걸고, 개복치 티셔츠를 직접 디자인해서 입고, 뿐만 아니라 개복치 센류(川柳)를 지어 트위터에도 올린다. 사와이가 대체 왜 그렇게까지 개복치에게 매료되었느냐, 그 이유가 또한 믿을 수 없을 만큼 충격적이다. 그가 초등학생이던 시절, 어느 패밀리컴퓨터 게임의 캐릭터가 개복치였는데 그것이 너무 귀여웠다고 한다. 4차원 세계의 개복치에 빠진 사람이 실제 개복치를 해체하고, 소화기관 내 기생충을 조사하고, 흐물흐물하게 녹아내린 위 속 내용물을 씻어 현미경으로 관찰하다니, 세상에는 이런 일도 다 있구나, 나는 묘한 감탄을 했다. 이런 연유로 나와 사와이는 둘이 함께 매일 오쓰치 만에서 정치망 어선을 타고 개복치 수집에 나서게 되었다. - P131

오쓰치 만 바깥쪽에 설치된 정치망까지는 배를 타고 편도 20분이 걸린다. 유명 인형극 ‘우연히 마주치 표주박 섬’의 모델이 되었다는 호라이지마의 등대 옆을 빠져 나간 어선은 고요한 밤바다를 미끄러져 나아간다. 그동안 나는 종종 갑판에 걸터앉아 어부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다. 이곳 어부들은 젊은 시절에는 원양어선을 타고, 쉰을 넘길 무렵고향이 오쓰치 정에 돌아와 정치망 어선 일을 하게 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자카스펭귄이나 싱가폴에서 유명한 포장마차와 같이 의외의 구석에서 이야기가 잘 통한다. 모우카는 염통을 회 떠서 먹는 게 최고라든가, 카스베는 된장국에 넣는 것이 최고로 맛있다는 등의 어부들만 아는 음식 이야기가 끊이지 않고 나오는 것도 재미있다. 진지한 대화 중간에 하늘을 올려다보면 쏟아질 듯 하늘을 가득 메운 별, 별들.
- P133

바이오로깅 데이터 결과에 따르면 개복치의 평균적인 유영 속도는 시속 2.2킬로미터였다. 나와 사와이가 사랑한 물고기, 개복치. 이상야릇하다고 밖에는 표현할 방법이 없는 외모, 몸속 구조, 부력, 헤엄치는 방식까지 특이하지만 유영 속도만은 극히 평범한 물고기.
- P143

쿠이먼은 자신이 연구 프로벡트를 진행하고 있던 남극의 미국 기지로 기록계를 가지고 가 웨델바다표범에 부착했다. 웨델바다표범은 천적이 없기 때문에 남극 얼음 위에 한 마리 오동통한 해삼처럼 누워 유유자적한다. 그런 웨델바다표범을 잡고 기록계를 부착하는 데는 힘들일 일이 없었고, 또한 며칠 뒤 다시 포획해 기록계를 회수하기도 쉬었다. 기기 회수 없이는 데이터를 얻을 수 없는 바이오로깅의 최대 난관은 뜻밖에도 남극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1963년 이렇게 느는 웨델바다표범의 잠수 행동을 기록하는 데 성공했다. - P164

나 역시 극지연구소 직원이기 때문에 잘 알고 있는데, 극지연구소 직원에게 가장 큰 일은 남극에 가는 일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나이토가 처음 극지연구소에 들어왔을 당시에는 연구소가 설립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기 때문에 인원이 다 갖춰지지 않아 특히 더 큰일이었을 터이다. 일본 남극 관측대는 여름을 보내는 하대는 5개월을, 겨울을 보내는 월동대는 1년 5개월이나 머나먼 여정을 떠나야 한다. (오스트레일리아까지 비행기로 날아가는 오늘날 관측대의 일정은 그때보다 약 한 달 가량 짧아졌다. 출장을 반복하다 보면 당연히 일본에 머무를 시간은 거의 없어진다. 나이토 세대의 극지연구소 직원들은 대부분은 30-40대 무렵에 자녀 양육을 거의 돕지 못해서 아직도 가족 앞에서는 고개를 1밀리미터도 들지 못한다. - P175

빨판과 기록계 세트를 긴 막대기 끝에 붙이고 배 위에서 고래의 등을 향해 막대를 뻗어 직접 찰싹 붙인다. 또는 배 위에서 빨판과 기록계 세트를 보건으로 쏘아 원격으로 고래 등에 붙이는 방법도 있다. 나의 대학원 후배이자 오랜 세월 향유고래를 연구하고 있는 세인트앤드루스 대학교 연구원 아오키 카가리는 ‘보건’의 명사수이다. 벌써 10년 가까이 이전 일인데, 대학원생이던 시절 그녀는 조사선에 구비된 쌀가마니 같은 완충재를 가상의 고래로 가정하고 사격 훈련에 여념이 없었다. 나는 그 모습이 신기해 보건 같은 건 어디에서 샀냐고 묻자 "무기상에서 샀어요."라고 슬쩍 대답해 주었는데, 게임도 아니고 무기상이라니, 그런 곳은 대체 어디에 있었던 걸까. - P233

스크립스 해양연구소에는 ‘거인’ 숄랜더부터 ‘선구자’ 쿠이먼으로 이어지는 정통 잠수 생리학 계보가 있으며, 폰가니스는 그 유서 깊은 흐름을 이어받은 후계자이다. 여담인데, 미국의 연구자들과 대화를 할 때 부러운 것은 그들의 은사 이름을 밝힐 때 반드시 ‘앗!’ 하고 놀랄 만한 전설적인 인물의 이름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일본인 연구자들이 감명을 받아 끈질기달 정도로 재독을 거듭한 논문의 저자를 그들은 직접 알 뿐만 아니라 직접 실험의 조언을 받고, 또 더 중요한 연구를 대하는 자세를 배우기도 한다. 매ㅣ국의 높은 학술 수준의 토대에는 은사가 제자에게, 그 제자가 또 자신의 제자에게 대대로 학문을 제대로, 그리고 올바르게 전수하는 데에 있다고 생각한다. - P245

폰가니스는 여느 사람들과는 다른 일중독자이다. 그와 그의 학생들이 일시적으로 함께 머물던 집에 나도 연이 닿아 일주일 정도 신세를 진 일이 있었다. 나와 학생들이 ‘피곤하다!’를 외치며 침대로 파고들 시간, 폰가니스는 여전히 홀로 책상에 조용히 앉아 있었고, 우리가 ‘잘 잤다’ 하며 일어나기 시작할 시간, 폰가니스는 벌써 책상에 앉아 있었다. 이미 커피도 나와 학생들의 몫까지 정성스레 내려 둔 그에게 경의를 표해야만 할 것 같기도 하고, 면목이 없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이 사람에게는 이길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P246

전파 수신은 해발이 높으면 높을수록 좋다. 우리는 산 중턱에서 바이칼 호 호반을 따라 바라노프의 미츠비시 봉고차를 타고 오를 수 있을 법한 산을 발견하면 즉시 전파 수신기와 안테나를 들고 산 정상에 올랐다. 산 정상에서 전파 수신을 시도해 보고 안 되면 하산, 바로 다음 고지로 향했다. 오직 이것만을 반복했다. 땀범벅이 되어 등산과 하산을 반복하는 우리가 설마 바다표범을 조사하는 중이라고는 아마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으리라. 그렇게 2주에 걸쳐 전파 탐지를 계속했건만, 들려온 것은 전파 수신기의 변함없는 사악사악하는 노이즈뿐. 나는 작은 단서조차 얻지 못한 채로 바라노프에게 작별 인사를 고하고 깊은 낙담 속에 귀국하는 처지가 되었다. - P262

일본에 귀국한 지 3주쯤 지났던 어느 날의 일이다. 바라노프에게서 한 통의 메일이 도착했다. 마키타에게 부착했던 기록계가 발견되었다고 했다. 뱃놀이를 하던 관광객이 호수면에 떠오른 기록계를 우연히 발견해 보내 주었다고 했다.
‘잠깐 기다려!’ 하며 나는 연구실 의자에서 벌떡 일어섰다. 바이칼 호는 이노카시라 공원 연못이 아니다. 규슈만 한 면적을 가진 거대한 호수인 데다 주변에는 울창한 원시림이 들어차 있고, 그 군데군데에는 전기도 통하지 않는 촌락만 띄엄띄엄 자리해 있다. ‘뱃놀이’를 하던 ‘관광객’이 ‘우연히 발견하는 일’ 같은 게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났으니 기적이라고 밖에는 말할 방법이 없다. 분명 우리는 기록계에 "이것을 발견하신 분께는 5000루블을 드리겠습니다."라는 메시지를 바라노프의 연락처와 함께 러시아어로 적어 두었다. 하지만 그것은 일종의 呪文이었지, 실제로 이런 일이 가능할 거라 믿은 것은 아니었다. - P263

바이칼바다표범은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담수에서만 생식하는 바다표범이다. 담수는 해수에 비해 몸이 쉽게 가라앉기 때문에 몸을 띄우려면 보다 많은 지방이 필요하다. 나의 계산에 따르면 같은 부력을 달성하려면 담수에서는 해수에서보다 30퍼센트 이상 더 많은 지방을 몸에 지녀야만 한다. 한편 에너지 저장고로써의 기능, 방한복으로써의 기능은 담수에서나 해수에서나 다를 바가 없다. 결론을 지어보면, 둥근 공처럼 생긴 바이칼 바다표범의 몸은 특수한 담수 환경에서 중성 뷰력을 달성하기 위해 오랜 세월에 걸쳐 적응해 온 결과이다. - P271

일반적으로 몸이 큰 동물일수록 중력에 반하는 세로 방향 이동을 힘겨워한다. 몸이 작달막한 다람쥐는 힘들이지 않고도 나뭇가지를 수직으로 곧잘 뛰어오르지만, 몸이 큰 코끼리는 야트막한 오르막조차 오르기 힘들어한다. 사람의 경우에도 언덕을 잘 오르는 달리기 선수나 자전거 선수의 몸집은 대부분 작다. (중략) 체중이 2배 큰 동물은 고도를 1미터 올리는 데 2배의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그런데 필요한 대사 에너지는 1.7배밖에 가지고 있지 않으니, 몸이 클수록 중력을 거스르는 상하 이동에 힘들어할 수밖에 없다. - P287

영국의 한 연구팀이 최신 바이오로깅 조사로 히말라야를 넘는 인도기러기의 3차원적 이동 궤적을 밝혀냈다. 나와는 일면식도 없는 연구 팀이지만 다이내믹한 데이터가 멋지게 기록된 것을 확인했을 때는 대단히 기뻐했을 거라 상상이 간다. 분명 자료의 기밀 유지 따위는 뒷전으로 두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떠벌리고 다녔을 것이다. - P289

포르토프랑세 기지에서부터 가마우지 조사지인 푸안 수잔까지는 약 20킬로미터 거리를 도보로 이동한다. 등에 거대한 등산 배낭을 짊어지고 여섯 시간 동안 행군해야 하는 이동은 상당히 힘든 일이지만, 쉽게 볼 수 없는 아름다운 경치가 마음을 온화하게 해 준다. 케르겔렌 제도는 다양한 자연 풍광을 지녔는데, 나무는 단 한 그루도 없기에 멀리까지 지면을 둘러볼 수 있어 재미있다. (중략) 녹색 풀밭 위에는 오렌지색 부리가 선명한 젠투펭귄들이 새끼 양육에 한창이고, 주변을 뛰어다니는 개 비슷한 회색 짐승은 남극물개 암컷이다. (중략) 바닷물이 고인 바위 주변에는 대체로 곰같이 생긴 남극물개 수컷이 있는데 "우웍우웍" 하는 기괴한 소리를 지르며 암컷을 쫓아다닌다. 어쩔 수 없이 바닷물이 고인 지점 한 군데를 노리고 볼일을 보겠다고 마음을 정하면, 동물들의 옆을 살그머니 지나가 주변을 꼭 경계하며, 때는 이때다 하는 마음가짐으로 날렵하게 처리해야 했다. - P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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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의 시장 2
윌리엄 메이크피스 새커리 지음, 서정은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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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은 1권에 비해 좀 지루했다. 작가가 좋아하는 도빈과 아멜리아의 연애사는 도무지 재미가 없다. 흥미진진하기로는 레베카의 모험담이 훨씬 낫지만, 레베카에게 당한 희생자들을 생각하면 그것도 재미있다고 말하기가 좀 망설여진다. 스타인 후작이 며느리들을 구박하는 장면이 재미있어서 옮겨 놓는다. 사정 모르는 남들은 엄청 좋은 집안에 시집갔다고 부러워했겠지. 

크롤리 중령처럼 살아가는 재주 좋은 사람들 때문에 실로 얼마나 많은 가족이 파산을 당하고 시련을 겪는지 알 수 없다. 신분 높은 귀족들이 얼마나 자주 소상인들을 등쳐먹고 얼마 되지도 않는 하인들 임금을 떼어먹고, 몇 실링 때문에 사기를 치곤 하는 것인지.
- P71

"아버님, 그렇다면 저는 그 자리에 참석하지 않겠어요." 곤트 부인이 대답했다. "저는 친정으로 가겠습니다."
"그래, 그거 좋은 생각이구나. 그리고 거기 죽 있는 것이 좋겠다. 거기 가면 바르아크르 댁의 빚쟁이들이 좋은 친구가 되어줄 테니. 그 덕에 나도 네 친척들에게 돈 빌려주는 일에서 좀 해방되고, 음침한 네 얼굴이며 잘난 척하는 꼴도 안 봐도 되겠구나. 이 집에서 누가 누구한테 명령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너는 돈도 없고, 머리도 영리하지 않아. 아이를 낳으러 이 집에 왔으면서 아이 하나도 낳지 못했지. 곤트도 너한테 아주 진절머리를 내고, 네가 죽지 않기를 바라는 건 아마 조지의 아내 하나뿐일 게다. 네가 죽으면 곤트는 바로 다시 결혼을 할 걸."
- P273

"네 시어머니 되는 양반도 잘 알고 계시지만, 사람들이 공연히 헐뜯는 크롤리 부인은 순박하고 마음씨 좋고 아주 순진한, 심지어 우리 집사람보다 더 순진한 부인네야. 남편 되는 이는 형편없는 작자지만 그래도 뭐 바르아크르 백작보다 못한 위인은 아니라고 할 수 있지. 도박을 하고 진 빚을 갚지도 않고 네 앞으로 되어 있던 얼마 안 되는 유산마저 모조리 갖다 쓴 다음 너를 알거지로 내 손에 넘겼으니. 물론 크롤리 부인은 혈통이 좋지 않다. 그렇다 해도 패니의 잘난 선조, 초대 드 라 존스보다 더 나쁜 것도 아니지."
"제가 이 집에 가져온 돈은, 아버님...." 조지의 아내가 소리쳤다.
"넌 그 돈으로 상속권을 산 셈이야." 후작이 어두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곤트가 죽고 나면 네 남편이 장자가 될 테고, 네 아들들이 그 돈을 다 물려받게 될 게다. 그리고 또 더 있을지도 모르지. 그 전에는 제발 밖에서는 얼마든지 고상을 떨고 잘난 척을 해도 좋지만 내 앞에서만은 그렇게 거들먹거리지 말아다오."
- P274

선장과 의사, 한두 명의 승객들이 배에서 내려 그들과 함께 호텔에서 저녁을 먹었다. 조는 호기롭게 일행을 위한 저녁을 주문한 다음, 내일 소령과 함께 런던으로 가겠다고 약속했다. 호텔 주인은 세들리 씨가 흑맥주 첫 잔을 시원하게 비우는 모습이 호방하다고 찬사를 던졌다. 시간 여유가 있어 잠깐 다른 이야기를 해도 된다면 나는 외국에 나갔다가 영국으로 돌아와 처음 마시는 한 파인트의 흑맥주 맛을 묘사하기 위해 한 장 전체를 기꺼이 할애하고 싶을 정도다. 아, 그 맛이란! 오직 그 한 잔의 맥주를 즐기기 위해서라도 영국을 일 년 정도 떠나 있어볼 만하다 할 수 있다.
- P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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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의 시장 1
윌리엄 메이크피스 새커리 지음, 서정은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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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아가씨들의 결혼이 단순히 로맨틱한 사건이 아니라, 삶을 지탱할 자본을 확보하기 위한 절박한 투쟁임을 일깨워 준 책은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이었다. 교활하고 인정머리 없는 거짓말쟁이인데도 왠지 미워할 수가 없는, 레베카 샤프 양의 분투를 쓴웃음을 지으면서도 응원하게 된다.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에서 재미있다고 생각했던 식자공 농담이 여기에도 나와 있어서 놀랐다. 영국 작가들이 전통적으로 사용하는 농담이었나?

사실 레베카 양은 전혀 온화하거나 다감한 사람이 아니었다. 이 젊은 염세가는 세상이 언제나 자신에게 불공평하다고 말하곤 했는데, 사실 세상으로부터 언제나 불공평한 대접을 받는 사람들은 다 그럴 만한 이유를 가지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세상이란 거울과도 같아서 모든 사람에게 그들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비춰 보여주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세상을 향해 인상을 쓰면 세상 역시 찡그린 얼굴을 보여줄 것이며, 세상을 향해 미소 짓고 밝게 웃는다면 세상 역시 명랑하고 친절한 동료가 되어줄 것이다. 그러니 젊은이들은 각자 나름의 선택을 내릴 일이다.
- P32

한때 큰 은혜를 입었던 사람과 이후 사이가 틀어지면, 대개의 경우 은혜를 입은 사람은 이 기회에 자신의 열등한 지위를 개선하기 위하여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보다 상대방에게 훨씬 더 고약하게 굴기 마련이다. 또 자신의 매정함과 배은망덕을 정당화하기 위해 그는 상대가 나쁜 짓들을 얼마나 많이 저질렀는지 입증하는 데 골몰한다.
- P311

상대방에게 화를 내고 그를 미워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에 대한 욕을 마구 해대고 스스로도 자신의 거짓말을 사실처럼 믿어야만 한다. 그래야 내적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 P312

레베카와 그녀를 반하게 만든 남성이 자리를 떠나자마자 장군이 나지막하게 내뱉은 저주의 말들이 어찌나 섬뜩한 것이었던지 설사 내가 그 말들을 이 원고에 기록한다 해도 이 책의 출판사 브래드버리 앤 에반스의 식자공이 감히 그 말들을 인쇄할 엄두를 내지 못할 것이라고 나는 확신하는 바이다.
- P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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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 인터넷이 우리의 뇌 구조를 바꾸고 있다
니콜라스 카 지음, 최지향 옮김 / 청림출판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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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인 <The Shallows>를 번역 제목이 잘 살려내지 못한 느낌이다.

인터넷에 매여 책을 읽지 않는 생활 방식이  깊이 생각하지 않는 '얄팍한 인간'을 만든다는 내용.

공감은 가는데, 썩 인상적인 책은 아니다. 

만프레드 슈피처의 <디지털 치매> 쪽이 훨씬 훅 다가왔다.

(영문학 전공자와 정신의학 전공자의 내공의 차이인가.....)

심리학자 William James는 뇌의 적응력에 대해 비슷한 관찰을 한 바 있다. 그는 기념비적인 저서인 "심리학의 원리(Principles of Psychology)"에서 "신경조직은 매우 놀라울 정도의 가소성(可塑性, platicity)을 지니고 있다"고 적었다. 또 그는 다른 물체들과 마찬가지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외부 또는 내부로 가해지는 힘이나 긴장은 이 구조를 처음과 다른 무언가로 변화시킨다"고 말했다.
- P43

신경가소성에 대한 연구에서 얻은 가장 중요한 교훈 중 하나는 특정한 목적을 위해 형성하는 정신적 능력, 즉 신경 회로가 다른 목적으로도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조상들은 책에 담긴 이야기나 주장을 파악하는 훈련을 통해 보다 사색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한 성향을 갖게 되었다. 매리언 울프는 "독서가 가능하도록 스스로를 재배치하는 법을 이미 배운 뇌는 새로운 생각을 더 잘 받아들인다"며, "읽고 쓰는 것을 통해 촉진된, 점차 더 섬세해지는 지적 능력이 지적 활동의 목록에 추가되었다"고 했다.
- P115

전자책의 연결성과 그 외 다른 특징들이 새로운 기쁨과 오락성을 안겨줄 것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켈리가 말한 대로 우리는 심지어 문자를 종이에서 자유롭게 하는 해방의 행위로서 디지털화를 바라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결과, 완전히 단절되지는 않겠지만 고독한 작가와 독자를 연결하는 친밀하고도 지적인 애착 관계는 훨씬 약화되는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구텐베르크의 발명으로 대중화된 고요함이 의미와 정신의 일부였던 깊이 읽기의 관행은 점차 사라지고, 계속 감소하는 소수의 엘리트만의 영역이 될 가능성이 크다.
- P163

오늘날 10대는 보통 깨어 있는 시간 동안 몇 분 만에 한 번씩 메시지를 주고받는다. 정신과 의사인 Michael Hausauer가 언급했듯 10대를 포함한 청년들은 "동료들의 삶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 엄청난 관심을 가지고 있고, 동시에 무리에서 낙오되는 데 대한 극도의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 그들이 메시지 보내기를 멈춘다면 유령 인물로 전락할 위험을 감수하는 셈이다.
- P177

하이퍼텍스트에 대한 해독은 독자의 인지적 부하를 상당 수준 증가시키고, 구에 따라 독자들이 읽는 대상을 이해하고 기억하는 능력을 약화시켰다.
- P189

이 결과는 또한 닐슨이 온라인에서의 읽기에 대한 첫 번째 연구 후 서술했던 결과를 더욱 확고히 한다. 그는 당시 "이용자들은 웹의 글을 어떤 방식으로 읽는가"라고 질문했었다. 답은 간결했다. "읽지 않는다"였다. (Jakob Nielsen, "How Users Read on the Web", 1997)
- P202

구글이 서둘러 건립하려는 이 거대한 도서관을 지금껏 우리가 알고 있던 도서관과 혼돈하면 안 될 것이다. 이는 짧은 발췌문만 가득한 도서관이다.
- P244

균형 잡힌 사고의 발달은 광범위한 정보를 찾고 재빨리 분석하는 능력과 함께 폭넓은 성찰의 능력도 요구한다. 효율적인 정보 수집을 위한 시간과 함께 비효율적인 사색의 시간도, 그리고 기계를 작동하는 시간과 함께 정원에 멍하게 앉아 있는 시간도 모두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구글의 ‘숫자의 세계’에서도 일해야 하지만 슬리피 할로우에서의 휴식도 필요하다. 오늘날의 문제는 우리가 이 두 가지 다른 형태의 사고 사이에서 균형을 맞출 능력을 잃고 있다는 점이다.
- P247

우리가 온라인에 있을 때마다 받아들이게 되는 서로 다른 메시지의 유입은 우리의 작업 기억에만 과부하를 가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전두엽이 한 가지 대상에만 집중하는 것을 어렵게 한다. 기억의 강화 과정은 아예 시작될 수도 없다. 또 신경 통로의 가소성 덕분에 인터넷을 더 많이 사용할수록 우리의 뇌는 더욱 산만해지도록 훈련받는데, 이를 통해 정보를 매우 빨리, 효율적으로 처리하긴 하지만 지속적인 집중은 불가능하다. 이는 왜 우리 중 많은 이들이 컴퓨터에서 멀어져 있을 때조차 한 가지 일에 집중하기를 어려워하는지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 P282

지난 20년 동안 이루어진 일련의 심리학 연구는 조용한 시골에서 자연과 가까이 하며 일정 시간을 보낸 후 사람들은 더 높은 집중력과 강력한 기억력, 그리고 보편적으로 향상된 인식을 보인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들의 뇌는 고요한 동시에 더욱 예민해진다. 집중력 회복이론 Attention Restoration Theory에 따르면 그 이유는 사람들의 외부적인 자극의 폭격을 받고 있지 않을 때 뇌가 실제로 휴식을 취하기 때문이다.
- P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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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1-08-27 0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mizuaki 2021-08-27 07:27   좋아요 0 | URL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리커버 특별판)
필립 K.딕 지음, 박중서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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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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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이입이란 오로지 인간 공동체 내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분명한 반면, 지능은 어느 정도까지는 모든 門과 目에서(심지어 거미류도 포함해서) 발견되었다. 어쩌면 감정이입 능력이 손상되지 않은 집단 본능을 필요로 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즉 거미 같은 단독형 유기체에는 그런 본능이 아무런 소용도 없을 것이다. 만약 거미가 그런 본능으로 인해 기껏 고생해서 잡은 먹이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다면, 그리하여 살고자 하는 상대방의 열망을 인식하게 된다면, 과연 어떻게 되겠는가? 그렇게 된다면 모든 포식자는 (제아무리 고양이처럼 고도로 발달된 포유류라 하더라도) 굶주리게 될 것이다.
어쩌면 감정이입 능력은 오로지 초식동물에게만, 또는 (고기라는 식단에서 멀어질 수 있는) 잡식동물에게만 한정되는 것이 아닐까. 그는 언젠가 이런 결론을 내린 적이 있었다. 감정이입 능력은 궁극적으로 사냥꾼과 사냥감 사이의, 그리고 성공한 자와 패배한 자 사이의 경계를 흐려버리기 때문이다. -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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