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지 1 - 을유세계사상고전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 지음, 박규태 역주 / 을유문화사 / 2005년 5월
구판절판


그러나 일반적으로 고대의 왕이 동시에 사제이기도 했다는 사실만으로 왕이 행했던 직무의 종교적 측면을 완전히 설명할 수는 없다. 당시에는 왕을 둘러싼 신성이 단순히 명목에 그친 것이 아니라 진지한 신앙의 표현이었다. 많은 경우 왕은 단순히 인간과 신을 중개하는 사제라기보다는 오히려 신 그 자체로서 숭배받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왕은 그저 초인간적, 불가시적 존재에게 희생제물을 바치고 기도를 올리는 것만으로 백성들과 숭배자들에 대해 필멸의 인간에게는 불가능한 그런 은총을 내려줄 수 있다고 여겼다. 따라서 사람들은 종종 왕이 제때 비와 햇빛을 내려줌으로써 곡물의 성장을 촉진시켜주리라고 기대했다.-65쪽

주술의 기초가 되는 사유 원리를 분석해 보면 다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번째, 유사는 유사를 낳으며 혹은 결과는 그 원인과 유사성을 가진다는 사유 원리이다. 두번째, 이전에 한 번 접촉했던 사물은 물리적 접촉이 끝나 서로 떨어져 있어도 계속 상호작용을 한다는 사유원리이다. 첫번째 원리를 '유사의 법칙'이라 한다면, 두번째 원리는 '접촉의 법칙'이라 칭할 수 있다. (중략)유사의 법칙에 입각한 주술은 '동종주술' 혹은 '모방주술'로 접초그이 법칙에 입각한 주술은 '감염주술'로 분류할 수 있다. (중략) 편의상 동종주술과 감염주술을 묶어 '공감주술'이라고 총칭하는 것이 좋을 듯 싶다. 두 가지 유형의 주술 모두 공간적으로 떨어져 있는 사물이 비밀스런 공감을 통해 상호작용을 한다는 사고방식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70-72쪽

터부는 실천적, 실제적 주술의 소극적인 적용이라 할 수 있다. 적극적 주술(magic)이나 사술(sorcery)은 "이런저런 일들이 일어나도록 이런 것은 이렇게 하라"고 말한다. 이에 비해 소극적 주술이나 터부는 "이런저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이런 것은 하지 말라"고 말한다.-86쪽

이런 줗술사 계급의 발달은 해당 사회의 종교적 발전과 정치적 발전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왜냐하면 부족의 안녕이 주술적 의례에 의존하는 그런 사회에서 주술사는 자연히 막강한 권위와 신임을 얻을 수밖에 없었고, 따라서 부족의 수장직이나 나아가 왕권까지도 획득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주술사 계급은 다른 어떤 직업에서도 얻을 수 없는 명예와 부와 권력을 손에 넣을 수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부족 내에서 가장 우수하고 야심만만한 자들이 그 계급에 모여들게 마련이었다. 이렇게 모여든 우수한 두뇌의 소유자들은 종종 우매한 동료 부족원을 기만하고 그들의 소박한 미신적 신앙을 이용하여 자기 이익을 도모하는 방법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133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성과 속 한길그레이트북스 30
M.엘리아데 지음, 이은봉 옮김 / 한길사 / 1998년 5월
품절


우리에게 종교적 인간이란 가능한 한 세계의 중심에 가까이 살고자 하는 염원을 가지고 있다고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자신의 나라가 대지의 중앙에 놓여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또 그는 자신들의 도시가 우주의 배꼽을 구성한다는 것, 더욱이 신전이나 궁전이 진정한 세계의 중심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는 또한 자기 자신의 집이 중심에 존재하고 세계의 모상이 되기를 원한다. 그리고 사실상 뒤에서 살펴보게 되겠지만 집이란 세계의 중심에 있고 소우주적 차원에서 우주를 재현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전통 사회의 인간은 위로 열려져 있는 공간, 즉 상징적으로 지평의 단절이 보증된, 따라서 다른 세계, 초월적 세계와의 접촉이 의례를 통해 가능한 공간에서만 살 수 있는 것이다. (중략) 인간은 항상 중심에 살고자 하는 욕구를 느낀다. 간단히 말해서 그가 친밀함을 느끼는 공간,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공간이 어떤 차원에 속하든지 간에 종교적 인간은 항상 전체적이고 조직된 세계 속에, 즉 코스모스 안에서 살기를 바란다. 우주는 그 중심으로부터 생겨난다. 즉 우주는 그 배꼽인 중심점에서부터 확장되어 나간다.-71쪽

'우리의 세계'는 코스모스이기 때문에 밖으로부터의 어떤 공격이든 카오스로 변화시킬 위험성을 안고 있다. '우리의 세계'는 신들의 모범적인 작업인 우주 창조를 모방하여 세워진 것이다. 그러므로 그 세계를 공격하는 적은 신들의 적, 악마, 특히 악마의 두목, 태초에 신들에게 정복당했던 원초적인 용(龍)과 동일시되었다. '우리의 세계'에 대한 공격은 신들의 작업인 코스모스에 저항하여 그것을 무(無)로 돌려버리려는 신화적인 용의 복수 행위에 해당했다. '우리의' 적은 카오스 세력에 속한다. 어떤 도시의 파괴는 카오스로의 전락을 의미한다. 침입자에 대한 승리는 용(즉 카오스)에 대한 신들의 모범적 승리를 재현하는 것이다.-74쪽

종교적인 인간은 두 종류의 시간 속에 살고 있다. 그중에서 더 중요한 성스러운 시간은 순환적, 가역적, 회복 가능한 시간이라는 역설적인 면으로 나타나고 의례를 통하여 주기적으로 회귀하는 일종의 신화적인 영원의 현존을 나타낸다. 시간에 대한 이러한 태도는 종교적 인간과 비종교적 인간을 구분하기에 충분하다. 종교적 인간은 근대적인 용어로 역사적 현재에만 사는 것을 거부하고, 어떤 점에서는 영원성과 동일시될 수 있는 성스러운 시간을 다시 획득하려고 노력한다고 할 수 있다.-90쪽

신이나 문화 영웅은 이제껏 속된 행위를 계시해 본 적이 없다. 신이나 선조들이 행한 것, 따라서 신화가 그들의 창조 행위에 대하여 말한 모든 것은 성스러움의 영역에 속하고, 그러므로 존재에 참여하게 된다. 이에 대하여 인간이 자기 자신의 발의에 따라 행하는 것, 어떤 신화적 모델이 없이 행하는 것은 모두 속된 영역에 속한다. 그러므로 그것은 헛되고 허망한 행위이며, 궁극적으로는 비현실적 행위이다. 인간은 종교적이 되면 될수록 그들의 태도와 행동을 인도할 모범적 모델을 더욱 많이 가지게 된다. 말을 바꾸면, 인간은 종교적으로 되면 될수록 실재에 더 많이 들어가게 되고, 비모범적이고 '주관적'이어서 결국 그릇된 행동 속에서 길을 잃어버릴 위험이 훨씬 줄어들게 된다.
이것이 여기서 특별히 강조할 필요가 있는 신화의 측면이다. 신화는 절대적인 성스러움을 계시한다. 그것은 신들의 창조 행위를 말하고 신들의 작업의 신성성을 계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환언하면, 신화란 성스러운 것이 세계 속으로 다양하게, 때때로 극적으로 침투되는 것을 묘사하는 것이다.-108쪽

천공 구조를 갖는 최고 존재자는 그 신앙 숭배로부터 점차 사라져 가는 경향을 지니고 있다. 그들은 인간으로부터 벗어나 하늘로 올라가서 멀리 있는 감추어진 신(dei otiosi)이 된다. 간단히 말하면, 이런 신은 마치 창조라는 거대한 일에 그 힘을 전부 사용해 버린 것과 같이 우주와 생명과 인간을 창조해 버려서 일종의 권태를 느낀 것이라고 이야기되고 있다. 그들은 하늘로 은퇴하고, 창업을 완성하기 위해 그 아들 혹은 조물주를 지상에 남겨둔다. 차차 그의 지위는 신화적 선조, 모신, 풍요신 등과 같은 다른 신격들로 대체되었다. (중략)최고 존재자가 그 본래의 지위를 지키고 있는 것은 유목 민족뿐이다. 그것은 일신교적 경향을 갖는 종교(아후라-마즈다) 혹은 명확한 일신교(야훼, 알라)에서 특수한 지위를 갖는다. (중략)
대다수 아프리카 종족들의 경우에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위대한 천신, 지고존재자, 전능한 창조주는 부족의 종교 생활에서 사소한 역할밖에 하지 않는다. 그는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고, 혹은 너무 선하기 때문에 일부러 숭배할 필요가 없다. (중략)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난이 닥칠 때에는 마지막 원천으로서 그의 도움을 요청한다.-125쪽

성스러운 지식, 일반적으로 지혜는 가입식의 성과로 해석된다. 그리고 고대 인도에서나 그리스에서도 분만의 상징이 의식의 각성과 결부되어 나타난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소크라테스가 자신을 조산원에 비유한 것은 옳은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사실 인간이 자기 자신의 의식으로 태어나는 것을 도와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새로운 인간'을 분만시켰던 것이다. 불교의 전통 가운데서도 동일한 상징이 발견된다. 비구는 가문의 이름을 버리고 '붓다의 아들'(sakya-putto)이 되는데, 그것은 그가 '성인의 한 사람으로(ariya) 태어났기' 때문이다.-179-180쪽

비유적 해석 방법을 발전시킴으로써 고대 말기 전체에 깊은 영향을 미친 것은 스토아 학파였다. 이 방법이 신화적 유산을 보존하면서 동시에 재평가하는 것을 가능케 했다. 스토아 학파에 따르면, 신화는 사물의 본성에 관한 철학적 견해나 윤리적 원리를 계시해 준다. 신들의 수많은 이름들은 하나의 단일한 신격이 여러 개로 나타난 것에 불과하며, 모든 종교는 단지 용어만 다양할 뿐 동일한 기본적 진리를 나타낸다. 스토아 학파의 비유적론적 방법은 모든 고대의 전통 혹은 전통을 하나의 보편적인 언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번역하는 일을 가능케 하였다. 이 방법은 널리 받아들여졌고, 후대에도 자주 사용되었다.-195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위험한 여성 - 젠더와 한국의 민족주의
최정무 외 지음, 박은미 옮김 / 삼인 / 2001년 8월
품절


벨 훅스(bell hooks)는 피식민지국 여성들이 지배국에 의해, 또 같은 종족의 남성들에 의해 이중으로 식민화된다는 통찰력 있는 견해를 내놓는다. 흑인 민족주의의 경험을 검토한 벨 훅스는, 피식민지 남성들이 자신의 남성성을 회복하기 위해 식민 지배자의 입장을 취한다고 주장한다. 지배국인 미국을 모방하는 가운데 피식민지 한국의 남성들은 여성적 주체성을 부인할 뿐만 아니라 한국 여성을 억압한다. 이들은 거세되고 유아화된 자기 이미지를 떨쳐 버리고 자신의 남성다움을 과시하기 위해 여성에 대한 폭력(violence against women)을 포함한 과도한 지배력을 행사하려 한다. 즉 식민지 남성과 식민 지배자는 식민지 여성을 억압하는 동지적 관계를 이룬다. 달리 말하면 민족의 남성성을 회복하겠다는 목표를 내거는 반식민 민족주의의 신성한 사명감 속에서 식민지 여성은 이중의 억압을 받는 것이다.
-최정무 <한국의 민족주의와 성(차)별 구조>-30쪽

정권에 저항하는 편에 서 있는 한국의 남성 민족주의자들은 고등 교육을 받은 여성들이 전통적인 가부장적 권위에 도전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들이 (물질적으로 위위에 있으며 남성적인) 미국 문화에 친숙하므로 지배적인 외세에 동조하기 쉽다는 이유 때문에, 이 여성들에게 여성 혐오적인 시선을 보낸다.
-최정무, 위의 글-45쪽

한승조는 또 단군의 휴머니즘과 함께 유교의 민본주의 사상이 한국 민주주의의 전통적인 기반을 제공했다고 주장한다. (중략) 민주주의에 대해 온정주의적이고 도덕적인 특징만을 강조하는 이러한 정의는 별개로 하더라도, 민본주의라는 이념에는 개념상 몇 가지 한계가 있다. 무엇보다도 민본주의에는 누가, 어떤 욕구를, 어떻게 충족시켜야 할지를 결정하고 실행할 것인가 하는 데 대한 언급이 없다. 이러한 침묵은 토크빌이 언급했던 관리 독재의 방향으로 나아가기 쉽다. 정치 과정에 민중이 참여할 여지가 전혀 없을 때 민중은 당면한 물질적 필요가 충족되면 탈정치화될 것이다. 게다가 유교 이념은 정치가 민중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할 때 민중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언급하고 있지 않다. 이러한 요소가 갖춰지지 못한 민본주의는 개인간의 평등에 기초한 민주적인 정치로 나아가지 못한다.
-문승숙 <민족 공동체 만들기>-72-73쪽

바라건대, 남성에 대한 실망과 분노 또한 개별적인 남성들에 대해서가 아니라, 어떤 종류의 남성성을 창출해 내어 승인하고 그것을 강화하는 국가, 그리고 그렇게 실행되도록 성적 차별을 요구하는 국가에 대항하여 투쟁할 수 있는 에너지로 변형되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이러한 투쟁의 목표는 남성들에게 애정과 관심을 구하는 것, 그것을 기대하는 것 이상의 것이 되어야 한다. 궁극적으로 그 목표는 남성과 여성 양자를 위한 더 나은 세계, 착취적인 위계 질서나, 여성을 배제하고 상품화화하는 일이 '잊혀진 과거의 기억'이 될 수 있는 그런 세계의 수립이어야 할 것이다.
-일레인 김 <남성들의 이야기>-151쪽

이 글에서 나는 위안부 문제에 관한 현재 한국의 담론을 두 가지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첫째로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침묵이 일본 정부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한국 정부와 한국인들에 의해서도 조성되어 왔다는 점을 논의하였다. 둘째로, 여성의 성에 관한 가부장적 코드와 결합된 민족주의 담론이 어떻게 남성 우월적인 주체 위치에서 위안부 문제를 구성해 왔는가를 조명하였다. 이 결과 위안부 문제는 성애화된 민족의 문제(a matter of sexualized nation)로, 민족주의화된 성의 문제(a matter of nationalized sexuality)로 축소되어 왔다. (아래에 계속)-175쪽

(위에서 계속) 이와 같은 재현은 이 문제를 대면하는 데 있어서 생존자 여성들을 주변화시켰으며, 그들에게서 일생에 걸친 수치와 침묵 그리고 고통이라는 짐을 덜어 주지 못하였다. 이렇게 민족이라는 이름하에서 위안부 여성들이 여전히 희생자에 머물렀고 그들의 성이 형상화되었다는 바로 그 사실에서 '한 몸'으로 통일된 것처럼 가정되는 민족주의의 틈새와 간극을 발견하게 된다. 민족주의 담론은 위안부를 주된 과제로 삼아 그것과 씨름했다기보다는, 위안부 문제를 전유함으로써 자기 논리를 다시 한 번 공고히 하여 왔다.
-양현아 <한국인 '군 위안부'를 기억한다는 것>-175쪽

군대의 질서, 규율 사기, 전시 대비 태세 등을 위협한다고 보이는 기지촌 내 갖가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미군 사령부 측은 한국 정부에 기지촌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그 해결에 협조해 달라며 압력을 가해 왔다. 1971년 늦여름,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status of forces agreement) 합동위원회는 '군 민 관계에 관한 특별위원회'를 설치하고, 기지촌 문제를 놓고 논의할 여러 명의 '패널'을 구성하였다. 한국 정부는 '정화'(purification) 계획을 지휘하기 위한 기지촌청결위원회 (BUCUC, base-community clean-up committee)라는 청와대 직속 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이 위원회들을 중심으로 주한미군과 한국 정부는 현지 한국인과 미국인 병사에게 인종 차별주의가 미치는 해악을 알리고 성병을 방지하기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였다.
-캐서린 문 <한미관계에 있어서 기지촌 여선의 몸과 젠더화된 국가>-182-183쪽

주한미군 당국은 또한 한국인 매춘 여성들을 미국 병사들 사이의 성병 감염의 주요 원천 혹은 '저장고'라고 몰아붙이면서, 한국 정부와 함께 감염된 여성의 등록과 성병 검사, 격리 관리를 위한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개발하였다. 한국 정부가 맡은 일은 미국인 병사의 성병 감염을 막기 위하여 기지촌 매춘 여성의 등록 및 의무적인 신체 검사, 격리를 시행하는 것이었다. 한국의 보건사회부, 외무부, 내무부, 법무부, 경찰청 모두가 이 여성들을 '정화'시키는 일에 상당한 돈과 에너지를 소비하였다. 한국 정부는 1971-1972년 사이 기지촌 내의 건강과 위생 상태를 개선하기 위해 총 3억8천만원을 할당하였는데 이 중 2억2천400만원(1971년 당시 각각 100만 달러와 60만 달러에 해당)은 기지촌 여성의 성병 예방과 치료에 충당되었다. 이 돈은 성병 진료소를 개설하거니 시설을 개선하고, 여성에게 성병 '교육을 시키기' 위해 사용되었다. 성병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항생제를 '대량으로 접종 투여'하는 일뿐만 아니라 성병 검사를 위해 여성을 강제로 모이게 하는 것 같은 정부의 활동에도 사용되었다.
-캐서린 문, 위의 글-184-185쪽

사실, 당시 한국 정부는 미 제7사단(1955년 이후 한국에 주둔했던 육군 2개 사단 중 하나)과 3개의 공군 비행 대대가 떠난 데 충격과 공포를 나타냈다. 1971년에 7월 1일에 보도된 <코리안 헤럴드(Korean Herald)> 기사에 따르면, "미군 2만 명의 철수는 청천벽력과 같은 것으로 받아들여졌다"고 한다. 한국 사회의 주요 부문들(정부, 군사, 입법부, 언론, 일반대중)에서는 미군 감축이 너무 갑작스럽고 성급하며 (북한의 반응을) 도발하는 행위라며 반대하였다. 야당 국회의원들까지도 대중 시위에 참가하였다. 한국인들은 "미국의 새로운 태도가 미국이 한국을 버릴 것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며 공포감을 표현했다."고 한다. 이에 미군은 기지촌 환경을 개선하려는 욕구를 내보임으로써, 한미간의 우호와 협조, 공존에 미군이 얼마나 많이 관심을 갖고 있는지 한국인들에게 증명하고자 했다. (아래에 계속)-193-196쪽

(위에서 계속)
한국 정부의 관점에서 볼 때, 매춘 여성들은 주한 미군측이 일상 생활을 개선하고 기지촌에 대한 통제력을 증대시키고자 하는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중략) 한국 정부는 소위 공적 채널이라 불리던 것들로는 미국의 정책 전체에 영향을 미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이를 보충하는 것으로서 '국민 대 국민의 관계'라는 과감한 캠페인을 벌이기에 이르렀다. (중략)
한국 정부의 관점에 따르면, 기지촌 매춘 여성은 그들이 성적으로 접촉하는 수많은 미군에 대해 '민간외교관' 역할을 하는 위치에 있었으며, 따라서 매춘 여성들을 행실이 바르지 못한 외교관을 행실이 똑바른 외교관으로 바꾸어 놓는 일이 '정화 운동'의 임무였다.한국 정부의 '정화 운동'을 감독했던 청와대 비서관은 기지촌 매춘 여성에게 올바르게 일하는 방법을 가르칠 필요가 있었다고 강조하였다. 인터뷰에서 그는 기지촌 지역을 방문했던 이야기를 자세히 들려 주었다. (아래에 계속)-193-196쪽

(위에서 계속) 그는 매춘 여성들에게 "어떻게 일본이 무(無)나 다름없던 상태에서 위대한 나라를 이룩할 수 있었을까?"라고 질몬한 뒤, 1945년 이후 미 점령군에게 몸을 팔았던 일본 매춘 여성들의 정신을 본받아야 한다며 이렇게 이야기하였다고 한다.
"한 미군하고 성 관계가 끝나면 일본 매춘 여성은 (돈을 벌려고) 다른 미군을 찾아 나가는 것이 아니라, 미군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일본을 재건하는 데 도와 달라고 간청하였다고 한다. 그런 일본 매춘 여성의 정신이 나머지 사회 전체로 확산되어 일본을 재건하는 힘이 된 것이다."
이런 견해는 분명 기지촌 매춘 여성의 성 노동을 애국심 발로의 한 가지 중요한 형태로 설정한 것으로 하급 관리들은 이후 여성들에게 실시한 정규 '교육 강좌'에서마다 그런 말을 반복하였다. 예컨대 의정부 지역에서 이루어진 한 강좌에서는 여성들에게 "국익을 담당하라"고 요구하였다고 한다.
-캐서린 문, 위의 글-193-196쪽

한국 정부가 사적인 개인, 특히 여성과의 성적 관계를 외교 정책의 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었던 것은 가족과 나라를 위해 여성의 자아를 희생하는 것을 기대하고 정당화해 온 문화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중략) 한국의 역사, 민담, 문학 작품들에는 이러한 기본 구상에 부합하는 여러 가지 변형들이 많이 있었다. 거기에서는 가족과 나라를 위해 자신의 노동력, 삶, 몸, 그리고 개인적 욕구까지도 희생하는 소녀와 여성들이야말로 영웅이요 순교자요 애국자였다. 1960-1970년대에 여성들은 남한의 경제적 '기적'을 선도한 경공업과 제조업 수출 산업 분야에서 비숙련, 저임금 노동자의 근간을 형성하였다. 안보 전선에서도, 시골에서 상경한 수천 명의 가난한 소녀와 여성들이 미군이 주는 달러를 벌어 외화를 증대시키고 그들에게 '위안을 제공'함으로써 안보에 기여하기 위해 미군에게 성을 파는 노동에 몸을 저졌다. 1970년대 초부터 중반까지 이 여성들은 한국 정부에 의해 '애국자'라고 찬양되었다.
-캐서린 문, 위의 글
-캐서린 문, 위-200-201쪽

1971년 안정리에서 발생한 대중 소요와 인종간의 폭력 사태에 대한 직접적인 대응으로서 시작된 기지촌 정화 운동은, 많은 기지촌 매춘 여성들이 누려 오던 '거칠고', '자유스러운' 시대가 끝나고 매춘 여성들의 정체성과 역할에 대한 (한미양국에 의한) 공식적 재조직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것이었다. 1971년 7월 기지촌 정화 운동이 개시된 후 한국 매춘 여성들은 더 이상 전쟁과 가난이라는 공적인 위기와 박탈 때문에 매춘에 나서지 않을 수 없게 된 개인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그 대신 정화 운동을 거치면서 매춘 여성들이 미군에게 제공하는 개인적 서비스는 그들을 '민간 외교관' 또는 '애국자'로 만들었다. 게임의 법칙 역시 바뀌었다. 매춘 여성들은 더 이상 스스로나 가족의 생계를 근근히 꾸려 가는 강인한 여성이 아니라, 미군과 현지 당국으로부터 몸과 일 그리고 집(방)까지 체계적으로 검사와 통제를 받아야 하는 존재가 되었다.
-캐서린 문, 위의 글-209쪽

매춘 여성들의 성 노동을 한미관계에 있어 '애국적'인 행위라고 이야기한 한국 정부의 입장과 관련하여, 인터뷰에 응한 매춘 여성들은 그들이 알고 있는 기지촌 여성 어느 누구도 자신의 성 노동이 민족주의적이라거니 애국적인 행동이라고 느끼지 않았을 뿐더러 대부분 단지 경제적인 필요 때문에 매춘을 했다고 이야기하였다. 박 여인이라는 한 기지촌 여성은 "그건 창피한 일이죠. 어떻게 그 일이 애국적인 희생일 수가 있겠어요?" 라고 말하였다. 인터뷰한 여성 중 몇 명은 애국심의 의미를 되물으면서, 애국심에는 나라를 위해 '꼭 필요하고 중요한 일'을 하기 위해 교육도 많이 받고 준비도 적절히 하면서 여러 가지 기술을 발휘하는 것이 필요한 게 아니냐, 자신들의 성 노동이 한국의 안보에 꼭 필요하고 중요한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아래에 계속)-211-212쪽

(위에서 계속)
대부분의 여성은 자신들의 몸이 이용되고 있다는 '국가 안보'의 의미는 잘 모르지만, 한국 정부가 취하고 있는 행동이 대체로 매춘 여성들의 육체적, 경제적 요구 조건을 무시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고 이야기하였다. 현장 매춘 여성이었다가 여성 운동가가 된 김연자 씨는 한국 정부와 미군이 내세운 전제 조건, 즉 국가 안보 요구에 대한 공공연한 선언은 기지촌 여성들의 실제적인 요구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격렬하게 비난하였다. 인터뷰한 여성들 모두 자신들이 한국 정부의 보호를 받을 필요가 있는 것은, (한국 전쟁 이후) 북한의 위협 때문이 아니라 클럽 업주와 포주, 현지 한국 경찰, 성병 관련 담당 공무원 그리고 미군 기지 세력의 착취와 학대 때문이었다고 주장하였다.
-캐서린 문, 위의 글-211-212쪽

미군기지가 철수된다고 해서 이 여성들에 대한 학대와 착취의 근원이 근본적으로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착취의 근원은 바로 철저한 계급 질서의 형성, 여성을 사회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천민으로 간주하는 유교 도덕 규범, 그리고 여성과 소외 계층의 목소리와 의견에 귀기울이지 않는 정치 체제와 문화이기 때문이다. 일본 제국주의 군대로부터 성적 노동을 강요당했던 위안부 여성들의 인권 침해 사실을 낱낱이 밝히고 그에 대한 보상을 받아 내기 위해 열심히 싸우는 운동가 집단들조차, 자신들의 벌이는 운동에서 미군 기지촌 매춘 여성들의 곤경과 투쟁의 명분을 의식적으로 배제하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여성들'은 다신들이 과거에 받았던 피해와 현재 정의에 호소하는 운동을 미군 기지촌 매춘 여성들의 운동과 동일시하는 데 격렬히 항의하기까지 한다. '이안부 여성들'은 '자발적으로' 매춘을 하는 그런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쓰레기 같은' 여성들과 관계하고 싶지 않다는 태도를 갖고 있는 것이다.
-캐서린 문, 위의 글-214쪽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izuaki 2009-06-10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미니즘'이라는 것에 대해 막연하게 거부감 같은 것을 갖고 있었다. 읽어보면 다 맞는 얘기긴 한데... 지금 상황만으로도 괴로운데, '페미니스트' 까지 되면 사는 게 더 힘들어질 것 같다는 두려움이 있는 걸까?
이 책에서는 캐서린 문의 1971년 기지촌 정화운동 이야기가 대박이었다. 블랙코미디지, 이건.
 
자살 - 인간만의 파괴적 환상, 이끌리오 비센
토마스 브로니쉬 지음, 이재원 옮김 / 이끌리오 / 2002년 12월
절판


니체와 쇼펜하우어는 자살할 권리에 대한 열렬한 옹호자였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844년)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나는 그대들에게 자유로운 죽음을 설교하노라. 이죽거리며 웃는 그대들의 웃음처럼 모래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해서 오는 그러한 죽음을"
쇼펜하우어는 <자살에 관하여>(1852년)에서 니체와 마찬가지로 공격적인 견해를 드러낸다. "우리는 자살이 가장 비겁한 것이고 광기 상태에서만 가능한 것이며, 아주 상스럽거나 완전히 무의미한 문제이고 '부당한 것'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러나 누구나 자기자신이나 삶에 대해 권리가 있듯 논박이 불가능한 다른 권리를 가지고 있다." 자살행위는 사람들이 "인생의 끔찍함이 죽음의 끔찍함을 능가하기에 이를 경우" 결심하게 되는 것으로, 이성적으로 제어되어 있으며 완전하게 책임질 수 있는 행위로 간주된다.-116쪽

장 아메리(Jean Amery -e에 accent-)는 <자살하기 : 자유죽음론> (1976년)에서 허무주의적이고 자전적인 색채가 짙은 시각으로 자살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루었다. 아메리는 이 책을 출간하고 나서 2년 후에 자살했다. (중략)
아메리의 <자유죽음론>에서 다음 같은 테제가 도출될 수 있다.
(1) 자살은 인간이 인간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이며 인간에게만 고유한 것이다.
(2) 자살에서 최고 형태의 인간적 자유가 실현된다.
(3) 자살은 인간에게 휴머니즘과 존엄성과 자유를 보장해 준다. 자살은 비인간적이며 모욕적이고 부자유한 삶에서 인간을 지켜주기 때문이다.
(4) 자살을 해야겠다는 결정은 정신과 의사들과 심리학자들의 견해와는 달리 자유로운 판단에 근거한 것이다. 정신적으로 건강한 상태와 병적인 상태의 경계선은 유동적인데도, 그것은 지배사회의 대변자들이라 할 수 있는 심리학자들과정신과 의사들의 자의적인 구분에 맡겨져 있다.
(5) 자살을 감행하는 순간에 모든 자살자는 그들이 살아온 이력과 무관하다.
(아래에 계속)-118-126쪽

(위에서 계속)
(6) 자살자가 치료에 성공하여 삶이 살 가치가 있다고 느낀다 해도 그 사람은 더 이상 자살기도 전과 동일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사회의 기대에 적응했고 삶의 논리에 몸을 맡긴 것이다.
(7) 자살을 통해 삶이 최고의 자산이라는 독단이 폐기되었다. 죽음은 삶과 동등한 권리를 갖고 있는 것이다.
(8) 자살은 절대적 개성, 즉 자기자신에게 속한다는 것의 표현이며 절대적 정체성의 표현일 수 있다.-126쪽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izuaki 2009-05-04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살사이트를 단속하겠다는 뉴스를 보며 비웃었다. 쓰레기같은 놈들이 쓰레기같은 세상을 만들어 놓고 쓰레기로 살기를 강요하는구나. ㅋㅋㅋ
 

4월이 잔인한 달이라고? 5월도 잔인하다. 5월의 초입은 레포트를 쓰느라 눈코뜰 새 없이 바쁘다 해서, 이 책을 읽었다. 레포트는 여기서 왕창 베껴 냈다. 김일렬의 <숙영낭자전 연구> -_-  연구는 나쁘지 않다. 문제는 <숙영낭자전>이다. 나 이 소설 싫어. 매력을 못 느끼는 책을 가지고 어쩌고 저쩌고 떠들려니 진짜 죽을 맛이다. 횡설수설 하며 페이지만 넘기며 각주만 하나 둘 달고 있었다. 아아 진짜 싫어.

 

 

 

 

 

 

 

그 와중에 '이 숙영이란 여잔 도대체 왜 죽는 거야?' 하면서 토마스 브로미쉬의 <자살>을 읽었다. 정신과 의사가 쓴 자살론인데, 사회학적 입장, 심리학적 입장, 정신 의학적 입장들을 간결하면서도 요령 있게 소개한 좋은 책이다. 답답했던 머리가 이거 읽는 동안만은 좀 상쾌해졌다. 레포트에도 각주 한 줄 넣었다. 없어도 별로 상관 없는 각주이긴 하지만. 

 

 

 

 

 

 

 

 신화를 테마로 한 책들을 좀 읽었다. 엘리아데의 <성과 속>은 옛날 정진홍 선생님 수업을 청강할 때부터 읽으려고 벼르던 책인데 7년만에 겨우 읽었다. 프레이저의 <황금가지>는 일단 분량 면에서, 다 읽고 뿌듯해 해도 될 책인 듯. 전공 공부랑 연관짓고 싶었는데, 쉽지 않을 것 같다. 

 

 

 

 

 

 

 


<삼국유사> 읽었다. 실용적인 목적으로 읽었지만, 그래도 꽤 재미있었다. 이 민음사 판은 책도 예쁘고 잘 읽히더라.

 

 

 

 

 

 

 


김병모의 <허황옥 루트> 읽었다.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 <김수로 왕비 허황옥>을 밤을 새우며 읽었던 기억이 났다. 그 후 15년이 흘렀지만 저자는 여전한 듯. 지도교수님은 센세이셔널한 것만 좋아하는 신뢰할 수 없는 필자라고 혹평했다. 그래도 신선하고 재미있잖아? 사고가 자유롭고 행동력도 있는 점은 높이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치만 옛날 여자친구 얘기는 체신머리 없어 보이니까 좀 그만했으면 싶더라. ㅋㅋ) 

 

 

 

 

 

 

 

<민족주의의 역사> 발제를 위해 페미니즘 관련 책도 하나 읽었다. 일레인 김, 최정무 편역 <위험한 여성>, 기지촌 얘기가 재미있었다. 그렇지만 한국계 미국인인 대학교수 집필진이라는 건 너무 부러워서 조금 싫을지도...ㅋ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