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 속 한길그레이트북스 30
M.엘리아데 지음, 이은봉 옮김 / 한길사 / 199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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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종교적 인간이란 가능한 한 세계의 중심에 가까이 살고자 하는 염원을 가지고 있다고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자신의 나라가 대지의 중앙에 놓여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또 그는 자신들의 도시가 우주의 배꼽을 구성한다는 것, 더욱이 신전이나 궁전이 진정한 세계의 중심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는 또한 자기 자신의 집이 중심에 존재하고 세계의 모상이 되기를 원한다. 그리고 사실상 뒤에서 살펴보게 되겠지만 집이란 세계의 중심에 있고 소우주적 차원에서 우주를 재현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전통 사회의 인간은 위로 열려져 있는 공간, 즉 상징적으로 지평의 단절이 보증된, 따라서 다른 세계, 초월적 세계와의 접촉이 의례를 통해 가능한 공간에서만 살 수 있는 것이다. (중략) 인간은 항상 중심에 살고자 하는 욕구를 느낀다. 간단히 말해서 그가 친밀함을 느끼는 공간,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공간이 어떤 차원에 속하든지 간에 종교적 인간은 항상 전체적이고 조직된 세계 속에, 즉 코스모스 안에서 살기를 바란다. 우주는 그 중심으로부터 생겨난다. 즉 우주는 그 배꼽인 중심점에서부터 확장되어 나간다.-71쪽

'우리의 세계'는 코스모스이기 때문에 밖으로부터의 어떤 공격이든 카오스로 변화시킬 위험성을 안고 있다. '우리의 세계'는 신들의 모범적인 작업인 우주 창조를 모방하여 세워진 것이다. 그러므로 그 세계를 공격하는 적은 신들의 적, 악마, 특히 악마의 두목, 태초에 신들에게 정복당했던 원초적인 용(龍)과 동일시되었다. '우리의 세계'에 대한 공격은 신들의 작업인 코스모스에 저항하여 그것을 무(無)로 돌려버리려는 신화적인 용의 복수 행위에 해당했다. '우리의' 적은 카오스 세력에 속한다. 어떤 도시의 파괴는 카오스로의 전락을 의미한다. 침입자에 대한 승리는 용(즉 카오스)에 대한 신들의 모범적 승리를 재현하는 것이다.-74쪽

종교적인 인간은 두 종류의 시간 속에 살고 있다. 그중에서 더 중요한 성스러운 시간은 순환적, 가역적, 회복 가능한 시간이라는 역설적인 면으로 나타나고 의례를 통하여 주기적으로 회귀하는 일종의 신화적인 영원의 현존을 나타낸다. 시간에 대한 이러한 태도는 종교적 인간과 비종교적 인간을 구분하기에 충분하다. 종교적 인간은 근대적인 용어로 역사적 현재에만 사는 것을 거부하고, 어떤 점에서는 영원성과 동일시될 수 있는 성스러운 시간을 다시 획득하려고 노력한다고 할 수 있다.-90쪽

신이나 문화 영웅은 이제껏 속된 행위를 계시해 본 적이 없다. 신이나 선조들이 행한 것, 따라서 신화가 그들의 창조 행위에 대하여 말한 모든 것은 성스러움의 영역에 속하고, 그러므로 존재에 참여하게 된다. 이에 대하여 인간이 자기 자신의 발의에 따라 행하는 것, 어떤 신화적 모델이 없이 행하는 것은 모두 속된 영역에 속한다. 그러므로 그것은 헛되고 허망한 행위이며, 궁극적으로는 비현실적 행위이다. 인간은 종교적이 되면 될수록 그들의 태도와 행동을 인도할 모범적 모델을 더욱 많이 가지게 된다. 말을 바꾸면, 인간은 종교적으로 되면 될수록 실재에 더 많이 들어가게 되고, 비모범적이고 '주관적'이어서 결국 그릇된 행동 속에서 길을 잃어버릴 위험이 훨씬 줄어들게 된다.
이것이 여기서 특별히 강조할 필요가 있는 신화의 측면이다. 신화는 절대적인 성스러움을 계시한다. 그것은 신들의 창조 행위를 말하고 신들의 작업의 신성성을 계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환언하면, 신화란 성스러운 것이 세계 속으로 다양하게, 때때로 극적으로 침투되는 것을 묘사하는 것이다.-108쪽

천공 구조를 갖는 최고 존재자는 그 신앙 숭배로부터 점차 사라져 가는 경향을 지니고 있다. 그들은 인간으로부터 벗어나 하늘로 올라가서 멀리 있는 감추어진 신(dei otiosi)이 된다. 간단히 말하면, 이런 신은 마치 창조라는 거대한 일에 그 힘을 전부 사용해 버린 것과 같이 우주와 생명과 인간을 창조해 버려서 일종의 권태를 느낀 것이라고 이야기되고 있다. 그들은 하늘로 은퇴하고, 창업을 완성하기 위해 그 아들 혹은 조물주를 지상에 남겨둔다. 차차 그의 지위는 신화적 선조, 모신, 풍요신 등과 같은 다른 신격들로 대체되었다. (중략)최고 존재자가 그 본래의 지위를 지키고 있는 것은 유목 민족뿐이다. 그것은 일신교적 경향을 갖는 종교(아후라-마즈다) 혹은 명확한 일신교(야훼, 알라)에서 특수한 지위를 갖는다. (중략)
대다수 아프리카 종족들의 경우에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위대한 천신, 지고존재자, 전능한 창조주는 부족의 종교 생활에서 사소한 역할밖에 하지 않는다. 그는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고, 혹은 너무 선하기 때문에 일부러 숭배할 필요가 없다. (중략)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난이 닥칠 때에는 마지막 원천으로서 그의 도움을 요청한다.-125쪽

성스러운 지식, 일반적으로 지혜는 가입식의 성과로 해석된다. 그리고 고대 인도에서나 그리스에서도 분만의 상징이 의식의 각성과 결부되어 나타난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소크라테스가 자신을 조산원에 비유한 것은 옳은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사실 인간이 자기 자신의 의식으로 태어나는 것을 도와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새로운 인간'을 분만시켰던 것이다. 불교의 전통 가운데서도 동일한 상징이 발견된다. 비구는 가문의 이름을 버리고 '붓다의 아들'(sakya-putto)이 되는데, 그것은 그가 '성인의 한 사람으로(ariya) 태어났기' 때문이다.-179-180쪽

비유적 해석 방법을 발전시킴으로써 고대 말기 전체에 깊은 영향을 미친 것은 스토아 학파였다. 이 방법이 신화적 유산을 보존하면서 동시에 재평가하는 것을 가능케 했다. 스토아 학파에 따르면, 신화는 사물의 본성에 관한 철학적 견해나 윤리적 원리를 계시해 준다. 신들의 수많은 이름들은 하나의 단일한 신격이 여러 개로 나타난 것에 불과하며, 모든 종교는 단지 용어만 다양할 뿐 동일한 기본적 진리를 나타낸다. 스토아 학파의 비유적론적 방법은 모든 고대의 전통 혹은 전통을 하나의 보편적인 언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번역하는 일을 가능케 하였다. 이 방법은 널리 받아들여졌고, 후대에도 자주 사용되었다.-1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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