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데우스 - 미래의 역사 인류 3부작 시리즈
유발 하라리 지음, 김명주 옮김 / 김영사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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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처럼 술술 읽히지는 않지만, 훨씬 더 자극적이고 재미있었다. 밑줄 그어야 할 부분이 너무 많아서 옮겨 적는 데도 한참 걸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좀처럼 생각하지 않는 일이지만, 지난 몇십 년 동안 우리는 기아, 역병, 전쟁을 통제하는 데 그럭저럭 성공했다는 것이다.
- P15

1692년과 1964년에 인구의 15퍼센트에 해당하는 약 280만 명의 프랑스인이 굶어죽었지만, 그동안 태양왕 루이 14세는 베르사유 궁전에서 情婦들과 놀아났다. 이듬해인 1695년에는 에스토니아에 기근이 닥쳐 인구의 5분의 1이 죽었다. 1696년은 핀란드 차례가 되어 인구의 4분의 1 내지 3분의 1이 죽었다. 스코틀랜드는 1695년과 1698년 사이에 심각한 기근을 겪었고, 몇몇 행정구역은 거주자의 20퍼센트를 잃었다.
- P17

전례 없는 수준의 번영, 건강, 평화를 얻은 인류의 다음 목표는, 과거의 기록과 현재의 가치들을 고려할 때, 불멸, 행복, 신성이 될 것이다. 굶주림, 질병, 폭력으로 인한 사망률을 줄인 다음에 할 일은 노화와 죽음 그 자체를 극복하는 것이다. 사람들을 극도의 비참함에서 구한 다음에 할 일은 사람들을 더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다. 짐승 수준의 생존투쟁에서 인류를 건져올린 다음에 할 일은 인류를 신으로 업그레이드하고, ‘호모 사피엔스’를 ‘호모 데우스’로 바꾸는 것이다.
- P39

어떤 희귀한 돌연변이에 의해, 땅콩 한 알을 먹으면 행복한 감각이 영원히 지속되는 다람쥐가 탄생한다면 어떻게 될까? 기술적으로 다람쥐의 뇌 회로가 바뀌면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 누가 아는가? 수백만 년 전 어떤 운 좋은 다람쥐에게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났을지. 하지만 그랬더라도 그 다람쥐는 지극히 행복할 뿐 아니라 지극히 짧은 생을 살았을 것이고, 그 희귀한 돌연변이는 그냥 사라져버렸을 것이다. 행복에 도취해 배우자는 고사하고 땅콩도 더 이상 찾아나서지 않았을 테니까. 땅콩 한 알을 먹고 돌아서면 다시 배가 고픈 다른 다람쥐들이 오래 살아남아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전달했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 정확히 같은 이유로, 우리 인간들이 그러모으는 땅콩(돈 많이 버는 직업, 큰 집, 잘생긴 배우자)도 우리를 오래 만족시키지 못한다.
- P61

아담과 이브는 에덴동산에서 수렵채집인으로 살았다. 그리고 그들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는 장면은 농헙혁명과 놀랍도록 닮았다.
- P113

알고리즘은 오늘날 세계에서 단연코 가장 중요한 개념일 것이다. 우리의 삶과 미래를 이해하려면 알고리즘이 무엇이고 그것이 감정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반드시 이해하고 넘어가야 한다. 알고리즘은 계산을 하고 문제를 풀고 결정을 내리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일군의 방법론적 단계들이다. (중략) 사람은 자판기보다 훨씬 더 복잡한 알고리즘이지만, 그렇다 해도 알고리즘인 것은 확실하다. 인간은 차를 우릴 뿐 아니라 자신을 복제하는 알고리즘이다. (자판기처럼 올바른 조합의 버튼들을 누르면 또 다른 자판기가 탄생한다.) 자판기를 제어하는 알고리즘은 기계장치와 전기회로를 통해 문제를 해결한다. 인간을 제어하는 알고리즘은 감각, 감정, 생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한다.
- P122

오늘날 우리는 예루살렘의 고대 사원이 커다란 유대교 회당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곳에서 눈처럼 흰 예복을 입은 성직자들이 독실한 순례자들을 맞이하고, 미성의 합창단이 찬송가를 부르고, 향기로운 향냄새가 퍼졌을 거라고. 하지만 사실 그곳은 도축장과 바비큐 식당을 섞어놓은 듯한 장소였다. 순례자들은 빈손으로 오지 않았다. 그들이 데려온 양, 염소, 그밖에 동물들의 행렬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그 동물들은 신의 제단에 희생제물로 바쳐졌고, 의식이 끝나면 그것을 요리해 나눠먹었다. (중략) 성경시대의 정신에 더 가까운 모습은 예배당에서 성경공부를 하면서 축일을 보내는 정통 유대교 가족보다는, 자기집 잔디밭에서 바비큐를 먹으며 축일을 기념하는 현대 유대교 가정이다.
- P131

하지만 사냥꾼과 농부들이 그들의 신화를 가졌듯이, 연구개발부서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의 가장 유명한 신화는 링컨셔 울즈소프 마을에 있는 한 저택의 정원으로 무대만 옮겨왔을 뿐, 선악과와 에덴동산의 전설을 뻔뻔하게 표절한다. 그 신화에 따르면, 뉴턴이 사과나무 아래에 앉아있을 때 익은 사과가 그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중략) 울즈소프 정원은 눈먼 자연법칙들에 의해 운영되는 곳이며, 그 법칙들을 해독하는 일은 인간의 몫이다.
- P140

에덴동산 신화에서 인간은 호기심을 참지 못한 탓에, 그리고 지혜를 얻고 싶다는 소망을 품은 탓에 벌을 받는다. 신은 그들을 낙원에서 추방한다. 하지만 울즈소프 정원의 신화에서는 아무도 뉴턴을 벌하지 않는다. 그의 호기심 덕분에 인류는 우주를 더 잘 알게 되고, 더 막강한 힘을 가지고, 기술 낙원을 향해 또 한 걸음을 내디딘다. 전 세계 수많은 선생님들이 호기심을 가지라며 학생들에게 뉴턴 신화를 들려주는 것은, 우리가 충분한 지식을 갖추기만 하면 이곳 지상에 천국을 건설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 사실 뉴턴 신화에도 신은 존재한다. 뉴턴 자신이 신이다.
- P141

2012년 갤럽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오직 15퍼센트만이 호모 사피엔스가 신의 개입 없이 자연선택만을 통해 진화했다고 생각한다. 32퍼센트의 미국인은 인간이 초기 생명 형태부터 수배만 년에 걸쳐 진화했을 가능성이 있지만 신이 이 쇼 전체를 지휘했다고 주장한다. 46퍼센트의 미국인은 성경에 적힌 그대로 신이 지난 1만 년 동안의 어느 시점에 지금의 형태로 인간을 창조했다고 믿는다. 3년간 대학을 다녀도 이러한 견해는 절대 바뀌지 않는다. 같은 조사에서, 문학사 학위를 받은 대학 졸업생들 가운데 46퍼센트가 성경의 창조 이야기를 믿는 반면, 14퍼센트만이 인간이 신의 감독 없이 진화했다고 생각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중략) 학교가 진화에 대해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것이 분명하지만, 열성적인 신자들은 그것도 모자라 진화를 아예 가르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혹은 지적설계론도 함께 학생들에게 가르치라고 요구한다.
- P147

그런데 왜 진화론에는 이렇듯 격렬한 반대를 일으키면서도 상대성이론이나 양자역학에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까? (중략) 상대성이론은 아무도 화나게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의 소중한 믿음 가운데 어떤 것고도 모순되지 않기 때문이다. (중략) 반면 다윈은 우리에게서 영혼을 박탈했다. 당신이 진화론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그것이 영혼은 없다는 이야기임을 알아차릴 것이다.
- P148

마음의 흐름을 구성하는 의식적 경험이란 정확히 무엇일까? 모든 주관적 경험에는 기본적인 특징 두 가지가 있다. 바로 감각과 욕망이다. 로봇과 컴퓨터는 의식이 없다. 왜냐하면 수많은 능력을 갖추었지만 아무것도 느끼지 않고 아무것도 갈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 P153

튜링 테스트에 따르면, 컴퓨터가 마음을 갖고 있는지 알려면 컴퓨터 그리고 사람과 동시에 소통해야 한다. 이때 당신은 어느 쪽이 컴퓨터이고 어느 쪽이 사람인지 모른다. 당신은 원하는 질문을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상대방과 게임하고 논쟁하고 심지어 장난도 칠 수 있다. 시간도 원하는 만큼 쓸 수 있다. 그런 다음 어느 쪽이 컴퓨터이고 어느 쪽이 사람인지 결정해야 한다. 당신이 결정을 내리지 못하거나 실수하면 그 컴퓨터가 튜링 테스트를 통과한 것이고, 그 컴퓨터를 실제로 마음을 지닌 존재처럼 취급해야 한다. (중략) 튜링 테스트는 1950년 영국에서 모든 동성애자 남성이 받아야 했던 일상적인 테스트 ‘당신은 이성애자 남성으로 간주될 수 있는가?’를 그대로 재현한 것이다. (중략) 컴퓨터가 실제로 의식이 있는지 없는지는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가’일 것이다.
- P172

우리가 세계를 정복한 주요 요인은 여럿이 소통하는 능력이었다.
- P187

러시아 혁명은 1억 8000만 농부들이 차르에 항거해 일어났을 때가 아니라, 소수의 공산주의자들이 적시 적소에 있었을 때 터져나왔다. 1917년 러시아의 상류층과 중산층이 최소 300만 명이던 반면 공산당원은 겨우 2만 3000명이었다. 그럼에도 공산당원들이 광대한 러시아 제국을 손에 넣은 것은 조직력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 P189

이온 일리에스쿠는 루마니아 대통령으로 선출되었고, 그의 동료들은 장관, 국회의원, 은행장, 백만장자가 되었다. 지금까지 그 나라를 장악하고 있는 새로운 루마니아 엘리트층은 주로 전 공산당원과 그 가족들로 구성되어 있다. 티미쇼아라와 부쿠레슈티에서 목숨을 걸었던 대중은 찌꺼기에 만족해야 했다. 협력하는 방법과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효율적인 조직을 만드는 방법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 P194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재가 객관적이거나 주관적이며 제3의 옵션은 없다고 생각한다. (중략) 하지만 실재에는 제3의 층위가 존재한다. 그것은 상호주관적 실재이다. 상호주관적 실재들은 개개인의 믿음과 느낌보다는 여러 사람들 사이의 의사소통에 의존한다. 역사의 중요한 동인들 가운데 많은 것이 상호주관적실재이다. 예를 들어 돈은 객관적 가치가 없다. 당신은 1달러짜리 지폐를 먹을 수도 마실 수도 입을 수도 없다. 하지만 수십억 명이 그 가치를 믿는 한 당신은 그것을 사용해 음식, 음료수, 옷을 살 수 있다.
- P204

한때 소련은 인류 전체를 파괴할 수 있는 권력이었지만, 펜 놀림 한 번으로 사라졌다. 1991년 12월 8일 오후 2시,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의 지도자들이 비스쿨리 근처의 한 시골 저택에서 벨라베자 조약에 서명했다. 그 조약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1922년 연방조약에 서명한 소련의 창립국들인 우리 젤라루스 공화국, 러시아 연방, 그리고 우크라이나는 소련이 국제법의 적용 대상이자 지리적 정치적 실재로서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음을 밝힌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소련은 그렇게 사라졌다.
- P206

돈이 상호주관적 실재임은 비교적 받아들이기 쉽다. 또한 고대 그리스 신, 악한 제국, 외래문화의 가치가 상상 속에서만 존재한다는 것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꺼이 인정한다. 하지만 우리 신, 우리 나라, 우리의 가치가 허구라는 것은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 우리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의 인생이 어떤 객관적 의미를 지니고, 자신의 희생이 머릿속에서 지어낸 이야기보다 중요한 뭔가를 위한 것이라고 믿고 싶어 한다. 하지만 사실 사람의 인생은 그들이 서로에게 말하는 이야기의 그물망 안에서만 의미를 가진다.
- P206

역사를 공부한다는 것은 이런 의미의 그물망들이 생기고 풀리는 것을 지켜보고, 한 시대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였던 것이 후손에 이르러 완전히 무의미해진다는 것을 깨닫는 일이다.
- P207

사피엔스가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그들만이 상호주관적 의미망을 엮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공동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법, 힘, 실체, 장소로 이루어진 그물이다. 이런 그물은 인간만이 십자군, 사회주의 혁명, 인권운동을 조직할 수 있게 한다.
- P212

성경은 실제의 진정한 본성에 대해 사람들을 오도할 때조차 수청 년 동안 권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예컨대 성경의 역사인식은 기본적으로 오류임에도 전 세계로 퍼져나갔고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믿는다. 성경은 일신론적 역사이론을 널리 그리고 집요하게 퍼뜨리며, 나와 내 행동을 다른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는 전능한 유일신이 세계를 지배한다고 주장했다. 무언가 좋은 일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내 선행에 대한 보상임이 틀림없다. 그리고 재앙이 닥친다면 내 죄에 대한 처벌임이 틀림없다. (중략) 이런 자아도취는 모든 인간이 유년기에 보이는 특징이다. 모든 종교와 문화권에서 아이들은 자기가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하고, 타인의 조건이나 감정에 진정한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중략) 부모가 자기 때문에 싸운다고 생각하는 아이처럼, 일신론자는 페르시아인들이 자기 때문에 바빌로니아인들과 싸운다고 확신한다.
- P240

오늘날 사학자들은 성경보다 헤로도토스와 사마천에 동의한다. (중략) 하지만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가 성경 저자들보다 실제를 훨씬 잘 이해했다 해도, 두 세계관이 충돌할 경우에는 성경이 케이오 승을 거두었다. 유대인이 그리스인의 역사관을 채택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인이 유대인의 역사관을 채택했다. 투키디데스 시대로부터 천 년이 흐른 뒤, 그리스인들은 야만인 무리가 침입해오는 것은 자신들의 죄에 대한 신의 처벌이 분명하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성경의 세계관은 비록 오류이긴 했지만 대규모 협력을 위한 더 나은 토대를 제공했다.
- P242

실제로 오늘날에도 미국 대통령들은 성경에 손을 얹고 취임선서를 한다. 마찬가지로 미국과 영국을 포함한 전 세계 많은 나라에서 법정에 서는 증인들 역시 성경에 손을 올리고 오직 진실만을 말할 것이며 진실이 아닌 것은 어떤 것도 말하지 않겠다고 맹세한다. 허구, 신화, 그리고 오류가 넘쳐나는 책에 대고 진실을 말할 것을 맹세하다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 P242

허구는 나쁜 것이 아니다. 허구는 꼭 필요하다. 돈, 국가, 기업 같은 허구적 실체에 대한 널리 통용되는 이야기가 없다면 복잡한 인간사회가 제대로 돌아갈 수 없다. 똑같은 허구적 규칙들을 모두가 믿지 않으면 축구 경기를 할 수 없고, 허구 없이는 시장과 법원의 이점을 누릴 수 없다. 하지만 이야기는 단지 도구일 뿐이다. 이야기가 목표나 잣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이 단지 허구임을 잊을 때 우리는 실제에 대한 감각을 잃게 되며, 그때 우리는 ‘기업을 위해 많은 돈을 벌려고’ 또는 ‘국익을 보호하려고’ 전쟁을 시작한다. 기업, 돈, 국가는 우리의 상상에만 존재한다. 우리는 우리를 도우라고 그것들을 발명했다. 그런데 왜 그것들을 위해 우리의 생명을 희생하는가?
- P247

종교는 다른 무엇보다 질서에 관심이 있다. 종교의 목표는 사회 구조를 만들고 유지하는 것이다. 한편 과학은 다른 무엇보다 힘에 관심이 있다. 과학의 목표는 연구를 통해 질병을 치료하고 전쟁을 하고 식량을 생산하는 힘을 획득하는 것이다. 과학자와 성직자 개인이 다른 무엇보다 진리를 우선시할 수는 있겠지만, 집단적인 제도로서 과학과 종교는 진리보다 질서와 힘을 우선시한다. 그러므로 이 둘은 의외로 잘 어울리는 짝이다. 타협 없는 진리 추구는 영적 여행이라서, 종교나 과학의 제도권 내에 머물기 어렵다.
- P275

근대는 놀랍도록 간단한 계약이다. 계약 전체를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을 정도이다. 즉 인간은 힘을 가지는 대가로 의미를 포기하는 데 동의한다는 것이다.
- P277

수천 년 동안 과학의 성장로가 막혀 있었던 것은 사람들이 세상에 관한 모든 중요한 지식이 성경과 고대 전통에 담겨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중략) 과학의 가장 위대한 발견은 무지를 발견한 것이었다. 세상에 대해 아는 것이 얼마나 없는지 깨달았을 때 비로소 인간에게 새 지식을 찾아나설 타당한 이유가 생겼고, 이것은 진보를 향해 가는 과학의 길을 열었다.
- P294

인류는 이중의 경주에 내몰려 있다. 한편으로는 과학 진보와 경제성장의 속도를 높여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10억 명의 중국인과 10억 명의 인도인들은 미국 중산층처럼 살고 싶어한다. 그들은 미국인들은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과 쇼핑몰을 포기할 생각이 없는데 왜 자신들만 꿈을 보류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생태적 아마겟돈보다 적어도 한 걸음은 앞서 있어야 한다. 해가 갈수록 이런 이중의 경주를 해내기가 어려워진다. 델리의 빈민들이 아메리칸 드림에 한발 더 가까이 다가가려고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지구는 파국에 한발 더 가까이 다가가기 때문이다.
- P297

자유주의 정치는 유권자가 가장 잘 안다고 믿는다. 자유주의 예술은 아름다움은 보는 사람의 눈에 달려 있다고 주장한다. 자유주의 경제는 고객이 항상 옳다고 주장한다. 자유주의 윤리학은 좋게 느껴지면 하라고 조언한다. 자유주의 교육은 모든 답이 자기 안에 있으니 스스로 생각하라고 가르친다.
- P343

현 사회경제제도를 이해하고 다른 모든 사람들의 경험을 고려할 때 비로소 내가 느끼는 것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고, 공동 행동을 통해서만 제도를 바꿀 수 있다. 하지만 과연 누가 모든 인간의 경험을 고려해 공정한 평가를 내릴 수 있을까? 이런 문제 때문에 사회주의자들은 개인의 자아탐구를 권하지 않고, 우리를 위해 세계를 판독해주는 강력한 공동기구(예컨대 사회주의 정당과 노조)를 설치하자고 주장한다. 자유주의 정치에서는 유권자가 가장 잘 알고 자유주의 경제에서는 고객이 항상 옳다면, 사회주의 정치에서는 정당이 가장 잘 알고 사회주의 경제에서는 노조가 항상 옳다. 권위와 의미는 여전히 경험에서 나오지만(정당도 노조도 사람들로 구성되고 인간의 비극을 줄이기 위해 일한다.), 그럼에도 개인들은 자신의 감정보다는 당과 노조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한다.
- P349

히틀러도 자유주의 반전 예술가들처럼 일반 병사들의 경험을 신성시했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실제로 히틀러의 정치경력은 20세기 정치에서 보통 사람들의 개인적 경험에 주어진 막대한 권위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이다. 히틀러는 장교가 아니었다. 전쟁 4년째 되던 해에 겨우 하사 계급으로 승진했다. (중략) 그는 무일푼의 이민자였다. 히틀러가 독일 유권자들에게 표를 호소하며 신뢰를 구할 때 내세울 것은 딱 하나뿐이었다. 참호에서의 경험이 대학, 총사령부, 정부 부처에서는 결코 배울 수 없는 것을 자신에게 가르쳐주었다는 점이다. 국민들이 그를 따르고 그에게 투표한 것은 히틀러와 자신을 동일시했기 때문이었고, 그 사람들 역시 세상은 정글이며 자신을 죽이지 않은 시련은 자신을 더 강하게 만든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 P354

나치즘의 공포 때문에 진화론적 인본주의의 통찰에 눈을 감아서는 안 된다. 나치즘은 진화론적 인본주의에 특정 인종차별주의 이론들과 초강력 민족주의 감정이 결합해서 생겨난 산물이었다. 모든 진화론적 인본주의자가 인종차별주의자는 아니며 인류가 더 진화할 잠재력이 있다고 믿는 세력이 반드시 경찰국가와 강제노동수용소의 설치를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 P355

1949년 무렵 동유럽은 소련의 위성국가가 되었고, 중국 공산당은 중국 내전에서 승리했으며, 미국은 반공 히스테리에 사로잡혀 있었다. 세계 전역의 혁명가들과 식민반대 운동가들이 모스크바와 베이징을 부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던 반면, 자유주의는 인종차별적인 유럽 제국들과 같은 취급을 받았다. 붕괴된 유럽제국들은 자유민주주의 구가가 되지 않고, 대개 군사독재 국가 또는 사회주의 국가가 되었다. (중략)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서구의 많은 대학에서 ‘자유주의자’라는 말은 욕으로 통했다. 북아메리카와 서유럽에서는 자유주의 질서를 무너뜨리려는 급진적인 좌익 세력의 시도가 잇따르면서 사회 불안이 증가했다. 파리, 런던, 로마의 학생들과 ‘버클리 인민공화국’ 학생들은 마오쩌둥 주석의 작고 빨간 책 (마오 주석 어록"을 탐독하고 영웅 체 게바라의 초상을 침대 머리맡에 걸었다.
- P364

자유민주주의는 점점 노쇠한 백인 제국주의자들의 배타적인 클럽처럼 보였다. 그들은 다른 세계는 고사하고, 자기들의 젊은 후손에게조차도 줄 것이 별로 없었다. 워싱턴은 자유세계의 지도자임을 자처했으나, 같은 편의 대부분은 권위주의 국가의 왕들(사우디아라비아의 칼레드 왕, 모로코의 하산 왕, 페르시아의 샤)이나 군부독재자들(그리스의 대령들, 칠레의 피노체트 장군, 스페인의 프랑코 장군, 한국의 박정희 장군, 브라질의 가이젤 장군 그리고 대만의 대원수 장개석)이었다. 이 모든 왕과 장군들의 지지에도 불가하고 바르샤바 조약기구가 북대평양 조약기구NATO보다 군사적으로 압도적인 우위를 점했다. 서구 국가들이 재래식 무기로 그들과 같은 수준에 다다르려 했다면, 아마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을 철회하고 영구적 전시 상태에 놓인 전체주의 국가가 되어야 했을 것이다. 자유주의를 구원한 것은 핵무기였다.
- P367

그런 다음 모든 것이 달라졌다. 자유민주주의가 역사의 쓰레기통에서 기어나와 전열을 가다듬고 세계를 정복했다. 슈퍼마켓이 강제노동수용소보다 훨씬 강하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이 전격전은 남부 유럽에서 시작했다.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갈에서 권위주의 정권들이 붕괴하고 민주주의 정부가 들어섰다. 1977년 인디라 간디는 비상사태를 끝내고 인도에 민주주의를 재건했다. 1980년대에는 라틴아메리카와 동사이아의 나라들(브라질, 아르헨티나, 대만, 한국)에서 군부독재가 민주주의 정부로 대체되었다. 자유주의의 물결은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에 쓰나미로 변해 막강한 소련제국을 쓸어버리고 ‘역사의 종언’이 도래할 거라는 기대를 높였다. 패배와 좌절의 몇십 년을 겪은 뒤 자유주의는 냉전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고, 상처를 입긴 했어도 인본주의 종교전쟁에서 당당히 살아 돌아왔다.
- P368

자유주의는 경쟁자였던 사회주의자와 파시스트들의 다양한 사상과 제도를 채택했는데, 대중에게 교육, 건강,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약속이 그중 하나이다. 하지만 자유주의 패키지의 알맹이는 놀라울 만큼 바뀐 것이 없었다. 자유주의는 여전히 개인의 자유를 다른 무엇보다 신성시하고, 유권자와 고객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갖고 있다. 어쨌거나 21세기 초에 우리가 선택할 만한 것은 자유주의뿐이다.
- P369

물론 그럼에도 수억 명의 사람들이 이슬람교, 그리스도교, 힌두교를 계속 믿을 것이다. 하지만 역사에서 숫자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역사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은 뒤를 돌아보는 대중이 아니라, 앞을 내다보는 소수의 혁신가들이다. 1만 년 전에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수렵채집인이었고, 중동에 사는 소수의 개척자들만 농부였다. 그런데도 미래는 농부들의 것이었다.
- P373

승리한 자유주의 이상들은 이제 인류에게 불멸, 행복, 신성을 추구하라고 강요하고 있다. 과학자와 공학자들은 이른바 절대 틀리지 않는 고객과 유권자의 소망을 등에 업고 이런 자유주의 과제들에 점점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붓는다. 하지만 과학자들이 발견하고 있는 것과 공학자들이 개발하고 있는 것들은 자유주의 세계관에 내재된 결함 그리고 고객과 유권자의 무분별함을 은연중에 폭로할 것이다. 유전공학과 인공지능이 잠재력을 온전히 드러내면, 자유주의, 민주주의, 시장경제는 돌칼, 카세트, 이슬람교와 공산주의만큼이나 낡은 것이 될 것이다.
- P382

사실을 말하면, 경험하는 자아와 이야기하는 자아는 별개의 실체가 아니라 긴밀하게 얽혀 있다. 이야기하는 자아는 경험을 이야기를 구성하는 중요한 (하지만 유일하지는 않은) 원재료로 이용한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들은 다시 경험하는 자아가 실제로 느끼는 것에 영향을 미친다.
- P410

환상을 갖고 사는 것이 훨씬 더 쉬운 것은 그것이 고통에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성직자들은 수천 년 전에 이 원리를 발견했다. 수많은 종교의식과 계명의 근저에 이런 원리가 깔려 있다. 신이나 국가 같은 상상의 실체를 믿게 하려면, 사람들이 가치 있는 뭔가를 희생하게 해야 한다. 희생이 고통스러울수록 그 희생을 바치는 대상의 존재를 더 확실하게 믿게 된다.
- P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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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 :
절판


목사님 설교 같은 느낌도 좀 들지만, 절대 뻔한 내용이 아니다. 오히려 도발적이다. 그리고 설득력이 있고 희망적이다. 지금 여기에 꼭 필요한 의견이라고 생각한다. 공감하는 점이 많았다.


(번역에 문제가 많다고 느껴서 별을 하나 뺐다. 가독성이 떨어진다고 느꼈고, 알라딘의 다른 리뷰를 보니, 재창작 수준의 오역도 않은 모양이다. 원서로 보고 싶은 책이다. )

미래를 상상하며 이렇게 생각해 보자.
‘나 자신을 제대로 보살핀다면 내 인생이 어떻게 달라질까? 어떤 일을 해야 과감하게 도전하고, 신나게 일하며, 세상에 도움을 주고, 기꺼이 책임을 지며, 보람을 느낄 수 있을까? 시간을 어떻게 써야 더 건강해지고 많이 배울 수 있을까?’
지금 당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한다. (중략) 또 당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삶에서 혼돈을 줄이고, 질서를 재정립하며, 세상에 대한 희망을 품을 수 있다. 또 당신이 나아갈 방향을 정해야 한다. 그래야 당신 자신을 다스릴 수 있고 결국에는 원망과 앙심과 잔혹성을 떨쳐 낼 수 있다. 당신만의 원칙을 명확히 세워야 한다. 그래야 당신을 부당하게 이용하려는 다른 사람들에게서 당신을 지킬 수 있고, 안전하게 일하며 삶을 즐길 수 있다. (중략) 세상이 더 살기 좋은 곳이 되면 좋겠지만, 천국은 저절로 오지 않는다. (중략) 우리는 더 강해져야 한다. 당신 자신부터 시작하라. 당신을 보살펴라. (중략) 19세기 독일의 위대한 철학자 니체는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 삶의 의미를 아는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다."라고 하지 않았는가. - P103

현재는 언제나 결함이 있다. 그러나 현재 상태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정말 중요한 것은 나아가려는 방향이다. 행복은 산 정상에서 느끼는 잠깐의 만족이 아니라, 산을 오르는 길에서 느끼는 희망이다. 행복은 희망에서 나온다. 지금 걷는 길이 아무리 멀고 험해도 희망이 있다면 불행하지 않다. - P146

훈련과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은 어떤 목표도 세울 수 없다! 순종하며 배우지 않으면 우리는 무엇을 목표로 삼아야 할지도 모르고, 어찌어찌 훌륭한 목표를 세웠더라도 목표를 이루는 법을 모른다. 그리고 목표로 정할 것이 없다고 성급하게 결론을 내린다. 목표가 없으니 방향을 잃고 방황한다. - P159

아이들의 무한한 창의력이 어른들의 교육과 참견 때문에 제약받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여러 연구 결과를 보면 이는 사실이 아니다. 극소수의 사례를 제외하고 일반적인 아이들의 창의력은 그렇게 대단하지 않다. 그리고 엄격한 제약이 창의적인 성취를 방해하기는커녕 오히려 촉진한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법칙과 체계가 아이들을 파괴한다는 믿음에는, 충분히 기회를 주면 아이들 스스로 언제 밥을 먹고 무엇을 먹을지 훌륭히 선택할 수 있다는 의견이 짝으로 붙어 다닌다. 이런 생각은 근거 없는 추정이다. 아이에게 충분히 기회를 주면 햄버거와 프라이드치킨, 과자만 먹을 것이다. 피곤에 지쳐 쓰러질 때까지 밤새 부모와 실랑이를 벌일 것이다. 어린 침팬지가 성인 침팬지를 괴롭히는 것처럼 아이들도 집 안을 어슬렁대며 의도적으로 어른을 자극하여 짜증나게 할 수 있다. 침팬지와 아이는 어른들 반응을 보고 자유의 한계와 범위를 인식한다. 그 한계를 확인하는 시점에는 일시적으로 짜증을 내거나 불만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그 한계가 바로 아이들의 안전망이다. - P187

습관적으로 엄마 얼굴을 때리는 아기가 있다고 해 보자. 왜 그런 짓을 할까? 답은 분명하다. 엄마를 지배하기 위해서다. 나쁜 짓이 어디까지 허용되는지 확인하려는 것이다. 아이가 폭력적인 게 걱정되는가? 폭력은 당연한 것이다. 폭력은 인간의 본성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오히려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평화다. 평화는 배우고 노력해서 얻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P188

자기방어가 아닌 경우에는 물어뜯거나 때리거나 발로 차지 마라. 다른 아이들을 괴롭히지 말고 위협하지 마라. 그래야 감옥에 가지 않는다. 음식을 먹을 때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예절 바르게 먹어라. 그래야 즐거운 마음으로 너를 식사에 초대할 것이다. 친구들과 나누고 공유하는 법을 배워라. 그래야 다른 아이들이 너와 함께 놀려고 할 것이다. 어른이 말할 때는 귀담아들어라. 그래야 어른이 너를 싫어하지 않고, 너에게 뭔가를 가르쳐 주려 할 것이다. 잘 시간이 되면 조용히 잠자리에 들어라. 그래야 부모가 너를 귀찮게 여기지 않을 것이다. 가족과 친척을 함부로 대하지 마라. 그들과 함께함으로써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울 수 있따. 다른 사람에게 좋은 일이 생기면 함께 즐거워해라. 그래야 지미있는 일에 초대받을 수 있다. 너와 함께하면 누구나 즐거워하도록 행동해라. 그래야 모두 너와 함께하고 싶어 한다. 이런 규칙들을 알고 실천하는 아이는 어디에서나 환영받을 것이다. - P205

높은 수준의 사회성이 갖춰진 후에야 개인의 정체성도 의미를 갖는다. - P213

당신은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100퍼센트 활용해 왔는가? 직장에서 전력을 다해 일하고 있는가? 혹시 분노와 원망에 사로잡혀 맥없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지는 않은가? 형제와는 잘 지내고 있는가? 배우자를 존중하는가? 자식들을 애정으로 대하고 있는가? 건강과 행복을 파괴하는 나쁜 습관은 없는가? 당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다하고 있는가? 친구와 가족에게 꼭 해야 할 말을 하는가? 주변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하는 일이 있는가?
당신 삶을 깨끗이 정리했는가?
그렇지 않다면 지금부터라도 이렇게 해 보자. 당신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들, 그것들을 중단하라! 오늘 당장 중단하라! - P232

다른 사람의 의견은 중요하지 않다. 오로지 당신의 판단이 행동의 기준이다. 세상이 정한 행동 기준을 따라야 할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당신이 속한 문화의 전통을 무시하지는 말라. 인생은 짧다. 전통이 오랜 시간에 걸쳐서 발견한 것들을 혼자서 알아낼 만한 시간은 없다. 과거로부터 이어져온 지혜는 어렵게 얻은 것이다. 전통과 문화 속에는 분명히 삶에 유익한 지혜가 있다. - P233

거짓 행동으로 삶을 왜곡하는 것을 중단하면 훨씬 더 나은 삶을 경험할 것이다. 그때쯤에는 조금 더 미묘하고 새로운 당신의 잘못이 드러난다. 그런 것이 있다면 역시 중단하라. 몇 개월 혹은 몇 년 동안 꾸준하게 하면 당신의 삶은 점점 단순해질 것이다. 판단력이 향상되면서 꼬이고 뒤틀린 과거 문제들도 정리된다. (중략) 그래도 인생의 비극은 피할 수 없다. 하지만 냉소와 기만으로 그 비극이 더 악화하는 것은 막을 수 있다. 그렇게 타락의 길에서 빠져나온 당신은 전보다 훨씬 더 강해져 있을 것이다. 인생의 피할 수 없는 비극에 좀 더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비극을 그저 비극으로만 머물도록, 그 비극이 불지옥으로 변하지 않도록 자신을 조절하는 법도 알게 될 것이다. (중략) 당신은 여전히 나약한 존재지만, 맑아진 정신은 삶의 좋은 면을 발견할 것이다. 궁극적으로 당신은 누구보다 평화와 세상의 모든 선함을 지키는 강력한 힘이 될 것이다. - P234

신분이 상승할수록 내면의 어둠이 모습을 드러낼 가능성도 커진다. 피와 약탈, 파괴에 대한 욕망은 권력욕에서 큰 몫을 차지한다. 인간이 단지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권력을 탐하는 것은 아니다. 궁핍과 죽음, 질병을 극복하려고 권력을 탐하는 것도 아니다. 권력은 복수를 가능하게 하고, 복종을 강요하고, 적을 부숴 버릴 수 있는 힘을 뜻한다. 카인에게 권력이 있었다면 아벨을 그렇게 죽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죽이기 전에 상상할 수 있는 온갖 방법으로 아벨을 천천히 괴롭혔을 것이다. 그리고 그 후에는 다른 대상을 찾아냈을 것이다. - P268

진화론의 핵심을 이해하게 되면서 어린 시절에 배운 기독교 교리에 완전히 흥미를 잃었다. 그 후로 나는 기독교 신앙의 기본적인 교리와 소망적 사고를 구분할 수 없었다. 기독교 신앙의 대안으로 사회주의에 잠깐 관심을 두었지만, 사회주의도 실체가 없는 공허한 구호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곧 깨달았다. 위대한 작가 조지 오웰을 통해, 사회주의적 사고가 가난한 사람에 대한 진정한 배려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부유한 사람에 대한 증오심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덕분이었다. - P283

내가 무엇을 의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현실 세계는 고통에 짓눌려 있다. 이 명제는 반박할 여지가 없다. (중략) 고통은 실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가하는 행위는 잘못된 것이다. 이런 생각의 흐름이 내 믿음의 밑바탕이 되었다. 내 의식의 밑바닥과 내 모든 생각과 행위를 낱낱이 뜯어봤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나치의 수용소 교도관이나 수용소 군도의 인민 위원 혹은 지하 교도소에서 어린아이들을 괴롭히는 악당처럼 행동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제야 비로소 ‘세상의 죄를 대신 짊어진다’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중략) 최악의 죄가 순전히 고통을 주려는 목적에서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것이라면, 선은 그 와 완전히 반대편에 있는 모든 것이다. 그런 잘못된 행위를 멈추게 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선이다. - P286

이런 추론 끝에 나는 다음과 같은 기본적인 도덕률을 정리할 수 있었다. 높은 목표를 지향하라. 주의하고 집중하라. 고칠 수 있는 것이면 고쳐라. 현재의 지식에 교만하지 말라. 겸손한 마음을 가져라. 전체주의적 자만심은 무자비와 억압, 고문과 살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나의 부족함을 정확하게 인지하라. 나의 내면에 감추어진 비겁함과 악의, 원한과 증오를 인정하라. 남을 비판하기 전에, 세상의 잘못을 바로잡겠다고 나서기 전에 나의 잔혹한 심성을 살펴라. 어쩌면 세상이 잘못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모든 책임이 나에게 있을지도 모른다. (중략) 무엇보다, 거짓말하지 말라. 어떤 경우에도 거짓말하지 말라. 거짓말은 지옥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은 것은 나치와 공산주의의 거짓말 때문이었다. - P286

불평등하고 고통스러운 삶은 아무리 원망해 봤자 바뀌지 않는다. 불필요한 고통과 아픔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는 길을 찾는 게 훨씬 의미 있는 삶이다.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인생의 수고로움을 덜고 세상을 좋게 만들기 위해 해야 할 일은 많다. 하루를 시작하기 전 오늘은 무엇을 할지 생각해 보라. 귀찮아서 오랫동안 미뤄 둔 서류 작업도 좋다. 어질러진 방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것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다. 가족들에게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주는 것도 훌륭한 일이다. 이 모두가 세상을 조금 더 좋게 만드는 일이다. - P288

쉬운 길을 선택해서 원하는 것을 갖는 것보다, 어려운 길을 선택해서 의미 있는 것을 갖는 편이 훨씬 낫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뭔지,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게 뭔지 우리는 잘 모르기 때문이다. 의미는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것이다. 높은 목표를 세우고 그것에 맞게 행동하면 의미는 저절로 모습을 드러낸다. - P290

전체주의자는 개개인이 삶에 대해 궁극적으로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부정한다. 전체주의는 ‘발견되어야 할 것은 이미 발견되었다’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되면 모든 것이 계획대로 정확하게 전개될 것이다. 완전한 시스템이 체택되면 모든 문제가 영원히 사라질 것이다. (중략) 특히 공산주의는 억압받는 노동자에게보다는 지적인 오만함으로 항상 자신이 옳다고 확신하는 지식인들에게 더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공산주의가 약속한 유토피아는 실현되지 않았다. 오히려 스탈린의 러시아, 마오쩌둥의 중국, 폴 포트의 캄보디아가 지옥으로 바뀌는 것을 목격했다. 하지만 그곳 국민은 동포를 배신하고, 직접 보고 겪은 일을 외면했다. 그 결과 수천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 P315

‘혼돈으로부터 질서를 만들어내는 로고스는 자신을 포함한 모든 것을 하나님에게 재물로 바친다.’ 이 하나의 문장이 기독교 교리를 압축해 보여 준다. - P321

진실을 보고, 진실을 말하라.
진실은 구호도 아니고 이데올로기도 아니다. 많은 사람이 공유하는 의견이라고 해서 진실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진실은 지극히 개인적이다. 당신의 진실은 당신이 처한 독특한 환경에 근거하고 있다. 오로지 당신만이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당신의 개인적인 진실을 파악한 뒤 당신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신중히 그리고 명확하게 전달해 보라. 그러면 현재의 믿음 체계를 유지하면서도 확실한 안전과 풍요로운 삶을 누리게 될 것이다. 또한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에서 벗어나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 P330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고 혼돈이 얼굴을 드러낼 때 우리는 말을 통해 혼돈을 바로잡고 질서를 찾을 수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어떤 것이든 분류하고 정돈해서 원래의 자리로 되돌려 놓을 수 있다. 그와 동시에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 - P389

서구 사회에서 성공 가능성을 가장 정확하게 예측하는 지표는 지능과 성실성이다. 지능은 인지 능력이나 지능 검사로 측정되는 것이고, 성실성은 근면함과 유순함으로 대표되는 성격 특성이다.
- P435

개는 사람의 친구이자 충실한 동반자다. 길들어지고 사회적이며 위계질서를 따른다. 개는 가족 서열 밑바닥에서도 즐거워한다. 관심을 받는 만큼 충성과 존경과 사랑으로 보답한다. 한 마디로 개는 위대하다.
하지만 고양이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독특한 동물이다. 사회적이지도 않고, 일시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위계질서를 따르지도 않는다. 완전히 길들어지지도 않는다. 재롱을 부리지도 않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친근감을 표시한다. 개는 주인 말을 잘 따르지만, 고양이는 스스로 결정한다. 고양이는 자기만의 이유로 인간과 자발적으로 교감하는 듯하다. 내가 보기에 고양이는 자연 그 자체이자, 가장 순수한 형태의 존재다. 인간을 무심하게 바라보며 이해한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 인간보다 우월한 존재라는 느낌마저 든다. - P486

길을 걷다가 고양이와 마주치면, 존재의 경이로움이 삶에서 피할 수 없는 고통을 보상해 준다는 것을 잠시나마 떠올려 볼 수 있지 않을까?
길에서 고양이와 마주치면 쓰다듬어 주어라. - P488

세상과는 어떻게 지내야 할까? 자신이 존재하는 게 존재하지 않은 것보다 더 나을 수 있도록 행동하라. (중략)
학생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자신이 진정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그들과 공유하라. - P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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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바꾼 10가지 약 세계사를 바꾼 시리즈
사토 겐타로 지음, 서수지 옮김 / 사람과나무사이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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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하기 쉽고 요점이 분명하다.

이 병은 1494년부터 그 이듬해에 걸쳐 프랑스 샤를8세가 나폴리를 포위했을 당시 유행했다는 최초의 기록이 남아 있다. (중략) 프랑ㅅ군 진영에 있떤 용병들은 프랑스와 영국, 독일, 스위스, 폴란드, 헝가리 등 각자 자신들의 고향으로 돌아갔다. 이후 그들은 이 무시무시한 병을 유럽 전역에 골고루 퍼뜨렸다. 매독은 러시아에서는 ‘폴란드 병‘, 폴란드에서는 ‘독일 병‘, 네덜란드에서는 ‘스페인 병‘, 영국과 이탈리에서는 ‘프랑스 병‘으로 불렸다. 정체불명의 꺼림찍한 질병을 남의 나라 탓으로 돌리고 싶어 했떤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매한가지였던 모양이다. - P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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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 - 민주주의는 어떻게 끝장나는가
강양구 외 지음 / 천년의상상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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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가 아직 흡연의 해악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내가 갓 서른을 넘겼을 무렵, 도서관에 있는 진중권의 책을 하나씩 하나씩 전부 빌려 읽었던 적이 있다. 경쾌하게 움직이는 두뇌와 폭넓은 독서 경험에, 자유에 대한 열망과 어리석고 거짓된 것들에 대한 증오가 더해진 그의 글은, 읽는 것만으로 해방감이 느껴졌다.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라는 책에 대한 언론 보도를 보고, 이제는 10년도 더 전이 된 그 때의 일이 기억났다. 다른 네 명의 저자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지만, 진중권이라면 믿고 읽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이 책을 손에 들었다.

 

다 읽고 난 감상은, 다섯 명의 공동저자 중에 진중권의 역할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의 진중권의 역할은 요즘 세상에 이렇게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공동저자들의 말을 분위기를 맞춰가며 잘 들어주는 것이다. 머리가 좋고 아는 것이 많은 아재라 찰떡같이 알아듣고 필요할 때 정리도 잘 해 주고 궁금한 대목에서 질문도 잘 해 주고 보충 설명도 적절하게 잘 해 주어서 아주 도움이 된다. (서민 역시 비슷하게 청중 역할을 하고 있다. 이쪽은 진중권보다 더 아는 것이 없는 만큼 아는 것 없는 독자와의 거리가 더 가까운데, 그래도 서울의대를 나온 머리는 어디 가는 게 아니어서 같이 얘기하고 있으면 든든한 느낌이 든다.)

 

이 책을 통해 얻은 새로운 정보는 주로 김경율 회계사, 권경애 변호사로부터 들은 것들이었다. 조국 사건에 대한 뉴스 보도가 그렇게 오래 지속되었음에도 내가 이 사건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는 사실 자체를 그들의 설명을 통해 알게 되었다. 모르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 솔직히 충격이었고, 주위 사람들에게 이런 거 알았느냐고 물어보며 그들도 대부분 나와 같은 상태라는 것을 알고, 방송과 인터넷을 통한 대중 조작이 이 정도까지 왔다는 사실이 무서워졌다. 정신 바짝 차리고 살지 않으면, 자기가 속는 줄도 모르고 속아 넘어가는 세상이 된 것이다.

 

이런 답답한 세상에, 그래도 이렇게 친절하게 내가 모르는 것을 가르쳐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똑똑한 선배님들이 열을 올려 하는 이야기 자리에 끼어 앉아, 말은 못 해도 가슴을 두근거리며 행여나 놓칠 세라 한 대목 한 대목을 열심히 듣고 있는 어리버리한 후배가 된 것 같았지만,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결국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는 내가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니까, 지금은 이런 정보를 얻어 들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맙다. 

(진중권) 뉴스의 비판적 수용자는 사라졌고 오늘날 대중은 자신을 콘텐츠 소비자로 이해합니다. 진위보다는 핵잼, 노잼으로 평가의 기준이 바뀌죠. 이제 사람들은 옳은 말을 하는 기사를 원하는 게 아니라 듣고 싶은 말, 재미있는 말을 해주는 기사를 요구해요. 굉장히 감성적이고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것이죠. 설사 그들이 거짓말을 했다 하더라도 처벌을 받지 않아요. 왜냐면 그것은 문화 콘텐츠잖아요. 예컨대 사극을 보면서 "기거 다 거짓말이야"라고 비판하지 않잖아요. 극의 내용이 역사책과 다르다면서 화내지 않습니다. 이런 것처럼 거짓말해도 용서가 되는 거죠. (중략) 이른바 포스트 트루스, 탈진실 현상들이죠. 요즘 대중은 ‘독자’로서 신문기사에 진실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저 ‘소비자’로서 자기의 니즈를 충족시켜 주기를 원합니다. 거짓말이라도 듣기 좋으면 되는 거죠. 이른바 ‘소비자 민주주의’ 현상인데, 이는 사실 민주주의라고 하기 힘든 거죠.
- P26

(강양구) 옳은 것과 그른 것을 판단하려면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지 않습니까. 비판하고 따질 준비를 해야 하고, 과정 과정마다 토론이 필요하니까요. 게다가 ‘옳다 그르다’에는 항상 불확실성이 존재합니다. 맥락에 따라 옳은 것이 그를 수도 있고, 그른 것이 옳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섬세한 독해가 요구됩니다. 그런데 ‘옳다 그러다’를 ‘좋다 싫다’로 바꿔버리면 어떻게 될까요. 모든 게 편하고 선명해집니다.
- P28

(진중권) 옹이 "구술문화와 문자문화"라는 책에서 구술문화 단계에 있는 사람들의 의식상태를 조사한 것이 있는데, 거기에 따르면 구술적 의식을 가진 사람들의 어조는 논리적이기보다는 감정적이고 호전적이고 격정적이라고 합니다. 이른바 ‘개인주의’도 실은 문자문화의 산물입니다. 구술문화에 속한 사람들은 자신을 독립적인 개인이라기보다는 촌락공동체의 일원으로 여깁니다. 마셜 매클루언이 ‘지구촌’이라고 했지요. 이 촌락문화가 전자매체의 영향으로 지구적 차원으로 확산됐다고 할까? 아무튼 많은 사람들이 페이스북 친구가 뚝뚝 떨어져나가면 굉장한 상실감을 느끼고,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될 것 같고, 마치 공동체로부터 처벌을 받은 느낌 혹은 사회로부터 왕따를 당한 느낌을 받게 되죠.
- P47

(진중권) "언어가 말을 한다" 하이데거의 말입니다. 사람들이 자기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어떤 프레임을 받아들이면 계속 그 프레임이 허용하는 말만 하게 된다는 거죠. 사람이 말하는 게 아니라, 뇌에 입력된 프레임이 그의 입을 움직이는 거죠. 또 하이데거는 "민중은 항상 창작을 한다"는 말도 했어요. 민중은 늘 이야기를 창작하고 싶어 합니다. 심지어 과학의 시대에도 민중은 모든 것을 스토리텔링으로 번안해, 그것을 현실로 여기고 싶어 합니다. 과학적 설명은 너무 복잡하고 짜증나잖아요. 게다가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잖아요. 그런데 이야기는 아주 단순하거든요.
- P83

(강양구) 사실 아주 무서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민주화 운동가 출신의,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만한 여권의 정치 원로의 고백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을 만났다는 사람이 없어." 그가 이렇게 말한 맥락이 있습니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때만 해도 앞에서 여러분이 언급한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내가 건의했다", "나랑 토론했다" 이런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렸거든요.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의 경우에는 독대해서, 토론하고, 건의했다는 이야기를 들어 보지 못 했다는 거예요.
- P259

(강양구) 어딘가 하소연하고 싶을 때, 딱 자기 마음을 알고 대신 말해주는 정당. 그런 정당이 있으면 거기가 내 편이 되는 거잖습니까?
(진중권) 그런 것에 신경을 써야 하는데, 진보주의자들은 항상 너희들은 무식해서 그러는 거야. 뭘 몰라서 그러는 거야. 비꼬고, 비웃고, 조롱하고 이런 코드였잖아요.
(강양구) 그런 말을 진중권 선생님이 하는 것은 좀 거시기하네요. 그랬던 당사자 아닙니까.
(진중권) 그러다가 이 꼴이 됐잖아. 내가 산 증인이에요.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근데 난 이 버릇 못 고칠 것 같으니까 여러분이라도 그러지 마세요.
- P279

(진중권) 정치는 사회를 바꾸는 것이 목적이고, 권력을 잡는다는 것은 사회를 바꾸기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한 것이에요. 저들은 권력을 잡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었잖아요. 자신이 가진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 사실은 권력을 잡지 못한다 해도 다른 수단으로, 즉 정치를 견인하는 것으로도 사회를 얼마든지 바꿀 수 있습니다. 유권자들은 저 작은 의석수를 가지고 뭘 할 수 있을까, 지지해 봐야 사표 되는 거 아닌지 걱정합니다. 그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어야 해요. 우리가 국회 10석 가지고 이런 일들을 했는데, 20석이면 오죽하겠냐고 설득을 해야 하는 거죠.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배패감에서 벗어나야 해요. 패배의 기억은 저번처럼 자연스레 민주당과의 연대에 골몰하게 만듭니다.
- P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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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로부터의 수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39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김연경 옮김 / 민음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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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작가로서의 도스토예프스키의 출발점을 잘 보여주는, 짤막하지만 의미심장한 소설. 유머러스한 점이 특히 좋다. 자기 자신이 젊은 시절부터 저질러 온 어리석은 짓에 대한 40대 작가의 이불킥이 들어있는 듯해서 호감이 간다. 

인간은 언제나 어디서나 그가 누구든 간에 절대 이성과 이익의 명령이 아닌,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길 좋아했던 것이다. 심지어 자기 자신의 이익에 반해서라도 그렇게 하고 싶어할 수 있고 이따금씩은 꼭 그래야만 한다.
- P43

나는 녹초가 될 정도로 흥분에 시달렸다. 내 손으로 구두도 한 번 더 닦았다. 아폴론은 세상에 어떤 일이 있어도 구두를 하루에 두 번씩 닦지는 않을 위인, 그런 건 원칙에 위배된다고 생각할 위인이었다. 해서, 내가 직접 구두를 닦은 것이었는데, 어쩌다 저놈한테 들켜서 나중에 멸시를 받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구두솔은 현관에서 몰래 가져왔다.
- P109

"안 돼!" 나는 다시 썰매에 올라타며 소리쳤다. "이렇게 예정된 일이다, 이건 숙명이다! 달려, 더 빨리 달려라, 거기로!" 이렇게 조바심을 내며 나는 주먹으로 마부의 목덜미를 내리쳤다.
"아니, 나리, 왜 사람을 치고 그러쇼?" 이렇게 소리를 치면서도 무지렁이 마부는 여윈 말을 채찍질했고, 때문에 말은 뒷발을 힘껏 구르기 시작했다.
- P134

가령 이놈의 월급만 하더라도 이삼 일도 미룰 수 없었다. 그랬다간 엄청난 소동을 일으켰을 것이고 나는 쥐구멍이라도 찾으려고 절절 맸을 것이다. (중략) 그러니까 이놈은 일단 굉장히 엄한 눈초리를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몇 분 동안 계속 나한테서 눈을 떼지 않는데, 나를 맞이하거나 외출하는 나를 배웅할 때는 특히 더 그랬다. 내가 가령 이 시선을 알아채지 못하는 척하며 견뎌 내면 이놈은 예전처럼 말없이 다음 단계의 고문에 착수했다. 즉, 내가 방을 거닐거나 책을 읽고 있을 때 갑자기 밑도 끝도 엇ㅂ이 어슬렁거리며 조용히 내 방으로 들어와 문 옆에 멈춰 서선 한쪽 손은 등 뒤로 돌리고 한쪽 발은 뒤로 뺀 채 이미 엄격하다기보다는 완전히 경멸에 찬 시선으로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것이었다. (아래에 계속) - P175

(위에서 계속)
내가 갑자기 이놈한테 무슨 용건이냐고 물으면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몇 초간 더 나를 뚫어져라 바라본 다음에, 왠지 유별나게 입술을 앙다물고 사뭇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면서 그 자리에서 느릿느릿 몸을 돌려 또 그렇게 느릿느릿 자기 방으로 물러난다. 그러다 두 시간쯤 지나면 갑자기 또 자기 방을 나와 또 그렇게 내 앞에 나타나는 것이다. (중략) 이러고도 내가 정신을 못 차려 계속 반항하면 이놈은 갑자기 나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기 시작했는데, 그것도 이런 한숨만으로 나의 정신적 타락의 심연을 몽땅 재려는 듯 길고 깊은 한숨이었다. 물론 결국에는 이놈의 완전한 승리로 끝났다. 나는 미친 듯 날뛰며 고함을 질러 대지만 어쨌든 문제가 됐던 그 일을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됐다.
- 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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