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떠나온 상태에서 떠나오기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지음, 이다희 옮김 / 바다출판사 / 2020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예술 영화는 기본적으로 목적론적이다. ‘관객을 깨우’거나 우리를 좀 더 ‘자각하게’ 만들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한다. (이런 식의 목적은 쉽게 허세, 독선, 그리고 거들먹거리는 개소리로 타락할 수 있으나 목적 자체는 원대하고 고결하다.)
(아래에 계속) - P145

(위에서 계속)
상업 영화는 관객을 가르치거나 일깨우는 데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상업 영화의 목적은 ‘여흥을 제공하는’ 데 있다. 이것은 대체로 관객에게 다른 사람이 된 기분을 주고 관객의 실제 인생보다 훨씬 더 화려하고 더 일관적이고 더 매혹적이고 매력적이며 전반적으로 더 재미있는 인생이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해주는 다양한 환상을 제공한다는 의미다. 상업 영화의 목적은 사람을 깨우는 것이 아니라 극히 편안한 잠과 달콤한 꿈을 제공함으로써 그 경험에 기꺼이 돈을 지불하게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유혹, 돈과 환상의 거래가 상업 영화의 본질적인 목적이다. 예술 영화의 목적은 대체로 좀 더 학구적이거나 미적이며 대개 해석에 노력을 기울여야 이해할 수 있으므로 예술 영화를 보기 위해 돈을 지불한다는 것은 돈을 내고 노력을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데이비드 린치, 정신머리를 유지하다
- P145

‘직업 여행기’를 설명하자면 일단 아주 오랫동안 사람들이 진짜로 가볼 수 없는 장소와 문화로 상상의 여행을 떠나기 위해 픽션을 읽었다는 점을 간략하게 짚고 넘어가야 한다. 그런데 이 기능은 오늘날의 여객기, TV 등 덕분에 사라지다시피 했다. 반면 현대 기술이 만들어낸 직업의 극단적인 전문화로 인해 사람들은 자신이 종사하고 잇는 전문 분야 외의 분야에 대해 잘 할 수가 없다. 그래서 픽션의 ‘관광’ 기능은 이제 독자에게 다양한 학문과 전문 분야의 실무 영역으로 극화된 접근권을 주는 쪽으로 작용한다.
-수학과 수학 멜로 드라마
- P229

좋은 작가는 그 자체로 좋은 독자라는 믿음이다. 이것은 대부분의 추천사와 예술학 석사 과정의 바탕이 되는 추론으로 논리적으로 타당하지 않으며 경험적으로 거짓이다.
-결정자가 된다는 것
- P264

글을 쓸 때 픽션은 더 겁이 나지만 논픽션은 더 어렵다. 논픽션은 현실에 기반하고 있고 오늘날 느껴지는 현실은 압도적으로, 회로가 터질 정도로 거대하고 복잡하기 때문이다. 반면 픽션은 無에서 나온다. 그런데, 말하자면, 사실 두 장르 모두 겁이 난다. 둘 다 심연 위에 걸친 줄을 타는 느낌이다. 그런데 그 심연이 다르다. 픽션의 심연은 침묵, 허무다. 반면 논픽션의 심연은 ‘완전 소음’, 즉 모든 개별 사물과 경험의 들끓는 잡음, 그리고 무엇을 선택적으로 돌보고 표현하고 연결할지 어떻게 왜 할지 등에 대한 무한한 선택의 완전한 자유다.
-결정자가 된다는 것
- P265

‘편파성’은 물론 처음부터 언급하기에는 너무 부담스러울 수 있는 용어다. 호튼 미플린 출판사는 아마도 주춤할 것이며 아무리 안심시키려는 맥락이라도 이 용어가 객원 편집자 서문에 언급되지 않는 편을 선호할 것이다. 안심시키고자 이런 식의 수사법을 시도하는 것은 시도 자체를 무효로 만들 수 있다. (말하자면 베이비시터 일을 구하기 위해 개인 구직 광고를 내면서 하단에 ‘걱정할 거 없음! 소아성애자 아님!이라고 넣는 것이다.)
-결정자가 된다는 것
- P267

모두다 영리한 글이며 유려하게 썼다. 그러나 이 글들이 나에게 가장 큰 가치가 있는 이유는 특별한 정직성을 가지고 사실을 다루기 때문이다.
-결정자가 된다는 것
- P279

우파, 신좌파 무엇이 되었든 그 도그마의 매력과 심리는 동일하다. 혼란스럽거나 매몰될 것 같은 기분, 무식한 기분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 생각할 필요도 없다. 이미 알고 있으며 무엇을 더 학습하든 알고 있는 것을 강화하기 때문이다. 도그마에 이런 식으로 발 맞추는 행위는 내가 말하는 피할 수 없는 의존과는 다르다. 아니, 오히려 가장 극단적이고 겁을 먹은 형태의 의존이다.
-결정자가 된다는 것
- P278

이 객원 편집자의 서문에서 충분히 논할 수는 없지만, 마지막으로 2007년 미국 최고 에세이 선정작을 고를 때 노골적으로 그리고 편파적으로 선호한 에세이는 바로 반사적인 도그마를 약화시키는, 성실하고 전폭적으로 스스로 ‘결정자’가 되려고 시도하는 작품들이다. 공립학교에서 과학과 함께 창조론을 가르쳐야 한다고 고집하는 멍청한 근본주의자들이나 모든 진지한 기독교인이 근본주의자들처럼 멍청하다고 고집하는 냉소적인 유물론자들처럼 좁은 구멍에 맞지 않는 현실을 죄다 삭제해버리는 행위를 피하고 있는 작품들이다.
-결정자가 된다는 것
- P279

독자 여러분의 ‘결정자’가 생각하는 ‘최고’를 가장 솔직하고 편파적으로 정의한다면 아마 다음과 같을 것이다. 이 글들은 내 눈에 보이는 대로의 이 세상에서 내가 사유하고 살아가고 싶은 방식의 본보기, 거푸집이 아닌 본보기다.
-결정자가 된다는 것
- P28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삶을 위한 수업 - 행복한 나라 덴마크의 교사들은 어떻게 가르치는가 행복사회 시리즈
마르쿠스 베른센 지음, 오연호 편역 / 오마이북 / 202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술술 잘 읽히는 책. 책에 소개된 덴마크 교사들의 말에는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고, 덴마크 교육을 보는 편역자의 시선에는 의문스러운 부분이 많다. 


한국과 덴마크의 가장 큰 차이는, 한국의 부모들은 아이들을 위해 자신의 삶을 많이 희생하고,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주고 싶어한다는 점인 것 같다. 이 책에 나온 덴마크의 공립학교 교사들은 부모에게 신경을 많이 쓰지 않는데, 한국에서는 그러면 안 된다. 

일부 부모들은 이런 교육 방식이 학생들의 공부와 성적을 소홀하게 만들 수 있다고 우려한다. 자녀의 성적에 기대가 높은 부모들은 교사가 자기 아이에게 다른 재능을 개발하도록 권하거나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탐탁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덴마크에서 자녀를 공립학교에 보낸다는 것은 곧 부모의 간섭을 일정 정도 포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모는 교사의 의도를 신뢰해야 한다. 아이들에게 공부만 하라고 압박하지 않고, 아이들 스스로 자신의 속도에 맞춰 자기 재능을 개발할 수 잇게 허락해야 한다.
"나는 우리 학생들에게 큰 기대를 가지고 있어요. 공부를 하든 다른 활동을 하든 좋은 습관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학교 공부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에 대한 폭넓고 다양한 지식을 가진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바랍니다." - P156

크로그는 "교사는 어떨 때 학생을 더 이끌어낼지, 어떨 때 잠시 놓아줄지를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만약 어떤 학생이 학교생활에 정말 흥미를 잃은 것처럼 보인다면 우선 그 학생과 상담을 진행한 뒤 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학교생활에서 해야 할 일들을 잠시 면제시켜준다.
"어떤 학생이 아프거나 학교생활에 지쳐 있으면 숙제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줍니다. 수업 시간에 잠시 쉬라고 할 수도 잇고 집에 일찍 보낼 수도 있어요. 지쳐 보이는 학생에게는 수업 중간에라도 잠시 밖으로 나가서 맑은 공기룰 쐬고 오라고 합니다." - P175

"많이 힘들어하는 학생에게는 일단 잠을 충분히 자라고 권합니다. 그리고 학교 밖으로 나가서 본인이 흥미를 갖고 할 수 잇는 일을 하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런 특별한 배려를 받더라도 일단 매일 아침 교실에 나오게 합니다. 매일 학교에 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교실 공동체에서 튕겨나가 혼자 고립되는 것이 아이에게 가장 좋지 않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중략)
쉬는 기간을 줘도 여전히 피곤해야 하고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으며 학교생활에도 참여하지 않는다. 이런 경우 크로그는 그 학생의 부모와 면담을 한 뒤 고강도의 처방을 한다. 일주일에 하루나 이틀은 학교가 아닌 다른 곳으로 보내는 것이다. 지역사회의 회사, 자영업자, 단체와 제휴해서 학교생활에 지친 학생들에게 현장 체험을 시키는 것인데 덴마크의 많은 학교들이 이 방법을 활용한다. - P176

크로그가 일하고 잇는 초중등학교 스콜렌 베드 쇠에르네는 국회, 언론사, 슈퍼마켓, 스포츠용품점 등과 제휴를 맺고 학교생활에 지친 학생들에게 체험의 시간을 가젝 한다. 어떤 경우는 부모가 직접 자기 아이가 일할 곳을 찾기도 한다. (중략) 학생들은 몇 주간 ‘삶의 현장’을 체험하면서 자신의 학교생활을 되돌아볼 수도 있고, 교실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생길 수도 있다.
- P176

아프셀리우스는 학기 초에 교과 진도를 나가지 않는다. 어떤 숙제도 내지 않는다. 우리가 왜 지금 여기에 앉아 있는지, 왜 수학을 배워야 하는지에 대해서 교실의 모든 학생들이 저마다 충분한 이유를 갖기 전까지는 수학을 가르치지 않는다. - P33

아프셀리우스는 최근 몇 년간 주로 하급반을 맡아서 수업하고 있다. 오랫동안 아프셀리우스를 지켜본 교장 선생님이 그가 수학과 물리를 어려워하는 학생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판단해 특별히 부탁한 것이다. - P42

아프셀리우스는 자신감이 부족한 학생들에게 한 걸음이라도 앞으로 나아가는 경험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수학을 힘들어하는 고등학교 학생에게 초등학교 수준의 과제를 내주기도 한다. 아주 쉬운 문제라도 정답을 써보는 경험이 쌓이면 다음 걸음을 내딛을 수 있다. - P44

아프셀리우스의 교실에는 정반대의 학생들도 있다. 자신감이 충만한 것을 넘어 성취욕이 지나치게 높은 학생들이다. 이런 학생들 중에는 자기 스스로를 필요 이상으로 압박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학생은 아주 좋은 점수를 받았는데도 계속 자신을 압박해요. 나는 그런 학생에게는 한걸음 뒤로 물러서볼 것을 권합니다.. 그가 수학에서, 물리에서 최고가 되고 싶은 심정은 충분히 알죠. 그러나 ‘그 정도로 충분하다’고 말해주는 것이 교사의 역할입니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 법도 배워야 하지만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만족할 줄 아는 법도 배워야 해요. 자기가 이룬 것에 대해 성취감을 느끼고 행복해하는 법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 P44

사소한 일이라도 아이들이 교실 안에서 긍정적인 경험을 하는 것, 그 과정에서 성취감을 느끼는 것, 이 두 가지는 내가 교사로서 아이들의 동기 부여를 위해 목표하는 지점입니다. - P45

선생님이 되려면 가르치는 것을 좋아해야 한다. 수학이 좋아서 수학 교사가 되었다면 학생들은 이를 알아챌 것이고 더 좋은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다. 부모 역시 마찬가지다. 부모가 어떤 일을 열정적으로 하는 모습을 보이면 자녀들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서 열심히 할 것이다.
가능할 때까지 그런 척이라도 하자. 가르칠 의지가 충분하지 않을 때라도 학생들에게 티내지 말고 흥미 있는 척 가르치자. 그렇게라도 노력하는 선생님을 보면 학생들도 무언가를 느끼게 될 것이고, 당신에게 보답을 해줄 것이다. - P47

호우키에르는 시험이 도움이 된다고 판단되는 학생에게는 시험을 치르게 한다. 또 반 학생들 가운데 머리가 좋은 서너 명에게는 서로 경쟁하면서 어려운 문제를 풀어보게 한다. 그는 몇몇 학생들이 과학경시대회에 나가는 것을 돕기도 했는데, 그 중 두 명은 최근 전국대회에서 상을 타기도 했다. 호우키에르는 이처럼 우수한 학생의 특별한 활동을 도와주지만 여기에도 원칙이 있다. 이들의 특ㅂㄹ한 활동이 다른 학생들의 활동을 발해하거나 상처를 줘선 안 된다.
- P63

울랄은 시험과 점수에 엄격하진 않다. 대신 그가 매우 엄격하게 지도하는 것이 있다. 바로 학생들이 서로를 어떻게 대하는지에 관한 문제다. 어떤 학생도 친구를 놀리거나 조롱하는 행동이 허용되지 않는다. 한 학생이 수업 시간에 의견을 말하면, 다른 친구들은 모두 존중하는 마음으로 조용하게 경청해야 한다. - P75

진짜 무서운 게 뭘까요? 스무 살이 넘었는데도 어느 날 아침에 생각해보니 내 인생에서 스스로 선택해본 적이 별로 없는 경우가 아닐까요? 그 동안 부모, 학교, 사회가 만들어준 길을 그저 따라가기만 했다면 조만간 힘든 시기가 찾아올 겁니다. 누구나 어느 순간에는 독립적으로 살아가야 할 수밖ㅇ 없어요. 스스로 자기 인생을 관장해야 하는 거죠. 그래서 이런 연습은 일찍 할수록 좋습니다.
- P100

어떤 학생이 힘든 상태에 놓여 잇으면 페테르센은 우선 하나의 목표를 설정한다. 그 학생을 매일 아침 학교에 나오게 하는 것이다. 아프다는 핑계를 대면서 학교에 빠지기 시작하면 상황은 계속 나빠진다. - P14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설프지만 맛있게 - 자취남의 인생을 바꾼 요리
사토우 고우시 지음, 김보성 옮김 / 글램북스 / 2016년 9월
평점 :
절판


어설프지만 재미있고 기분 좋은 책

<작가의 말> 중에서...
저는 지금까지 여덟 권의 책을 썼습니다만 소설, 픽션을 쓴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실은 소설을 쓰는 건 무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재능, 내게는 없다고 말이죠. (중략) 다 읽은 뒤 제가 소설을 씀에서의 규칙을 정할 수 있었습니다.
1. 전문적 내용이 포함될 것
2. 저자의 철학이 들어가 있을 것
3. 읽고 있으면 즐겁고, 읽은 뒤에 산뜻한 기분이 되는 소설을 쓰자. - P21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모두가 부서진
조수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디테일의 힘이 느껴지는, 능숙하고 읽기 편한 문장을 쓴다. 자극적인 소재로 관심을 끌려 하고, 특별히 독창적인 세계관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유리. 나는 속으로 너의 이름을 발음에 해보았다. 그러니까 너는, 현주나 지혜, 은영 같은 흔한 이름도 아니었고 지숙이나 미화, 명선 같은 촌스러운 이름도 아니었다. 유리. 그 영롱한 빛깔의 단어는 너를 통해 현현되고 있었다.
- P14

스물아홉이라는 나이는 뭐라도 하지 않으면 불안한 나이였다. 뭐라도 해서 돈을 벌어야 했지만 사실 뭐든 하려면 돈이 필요한 법이었다. 좀더 나은 직장을 얻기 위해 대학에 가려고 해도 돈이 필요했고, 자격증을 따려고 해도 돈이 필요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돈을 들이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일이 있기는 있다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서빙 아르바이트나 배달 아르바이트 같은 것. 빡구는 서빙과 배달이 필요한 거의 모든 업종을 거치며 스물아홉 살이 되었다. 돌김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돌김은 얼마 전 배달 일을 하던 피자 가게에서 잘렸는데 아직도 백수 상태였다. 맛세이는 2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문래동에 있는 부친의 철공소에서 일했다. 그런 맛세이를 돌김은 늘 부러워했다.
"역시 사람은 부모를 잘 만나야 한다니까."
- P101

그도 그럴 것이 맛세이는 지갑을 열면서 우쭐대거나 불만을 드러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엷은 미소를 띤 채 영수증을 가볍게 훑어보는 맛세이를 볼 때면 빡구는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우리랑 어울리니까 맛세이도 괜찮은 자식이 될 수 있는 건 아닐까. 서울대에 합격해서 지금은 증권 회사에 다니고 있는 우진이나 의대에 진학해서 군의관을 하고 있다는 선홍이한테도 맛세이는 괜찮은 자식일 수 있을까. 물론 우진이나 선홍이 같은 애들은 저희들끼리 따로 동창 모임을 해서 맛세이가 괜찮은 자식이 될 기회조차 없겠지만.
- P10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갈리아 원정기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프랑스, 영국, 독일, 벨기에, 스위스 등 대다수 서유럽 국가들의 최초의 역사서라고 할 만한 위대한 저술. 


갈리아 땅에서 로마 군이 겪었던 온갖 고생들을 읽으니, 옛 사람들이 정복 전쟁을 영웅적인 업적으로 본 이유를 알겠다. 1년에 한 권씩 지난해의 전투 경과가 출판될 때마다 기뻐하며 신간 <갈리아 전기>를 열독했을 로마 독자들을 떠올리면 카이사르의 인기가 이해된다.


외교와 정치 상황의 변화, 전투의 진행, 갈리아와 게르마니아의 풍습, 여러 부족들과 접하는 로마인들의 태도가 흥미진진하다. 무엇보다, 카이사르의 간결하고 우아한 문체와 냉철한 태도가 인상적이다. 죽기 전에 일부만이라도 원어로 읽어보고 싶다.  


역자가 많이 사용하고 있는 단어 중 '도륙하다'와 '팔팔한'의 적절성에 의문이 든다. 더 간결하면서도 적절한 한국어 단어는 없을까.

갈리아는 전체가 세 지역으로 나뉜다. 그중 한 지역에는 벨가이족이, 다른 지역에는 아퀴타니족이, 세 번째 지역에는 그들 자신의 말로는 켈타이족이라 부리지만 우리 말로는 갈리족이라고 부르는 자들이 살고 있다. 이들은 서로 말과 관습과 법이 모두 다르다. 갈리족은 가룸나 강을 경계로 아퀴타니족과, 나트로나 강과 세콰나 강을 경계로 벨가이족과 떨어져 있다. 이 세 부족 가운데 벨가이족이 가장 용감하다. 그들은 로마 屬州의 문명과 문화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고, 사람의 마음을 유약하게 만드는 사치품을 수입하는 상인들이 그들을 찾아가는 경우가 극히 드문 데다, 레누스 강 건너편에 사는 게르마니족과 가장 가까이 접해 있어 이들과 늘 교전을 치르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에서 갈리족 중에는 헬베티이족이 가장 용감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영토에서 게르마니족을 물리치거나 또는 적의 영토로 쳐들어가 거의 날마다 게르마니족과 교전을 벌이기 때문이다. (1-1) - P22

적군은 절호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소리 지르며 사비누스의 진지로 진격해야 한다고 했다. 갈리족이 이런 결정을 내린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으니, 최근에 사비누스가 싸우기를 망설였다는 점, 탈영병이 그들의 짐작을 확인해주는 말을 했다는 점, 베네티족이 전쟁에서 이길 것이라는 희망이 생겼다는 점 그리고 사람은 대개 자기가 바라는 것을 믿는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3-18) - P104

그리하여 사비누스가 해전에서 카이사르가 이겼다는 소식을 들은 바로 그 시각에 카이사르도 사비누스가 이겼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러자 반기를 들었던 모든 부족이 즉시 티투리우스 사비누스에게 항복했다. 갈리족은 성질이 급해서 덜렁 전쟁부터 일으키고 보지만 성품이 유약해서 패배를 꿋꿋하게 참고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3-19)
- P105

이 사건을 보고받은 카이사르는 갈리족의 변덕스러운 성격이 염려스러웠다. 그들은 서둘러 결정을 내리고 언제나 정치적 변혁을 열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그들을 믿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갈리족은 나그네를 보면 싫다고 해도 붙들고는 각각의 나그네가 이런저런 일에 관해 들었거나 알고 있는 것을 물어보는 버릇이 있다. 그리고 도시에서는 군중이 상인들을 에워싸고는 그들이 어디를 거쳐왔으며 그곳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말하도록 강요하곤 한다. 그들은 종종 그런 이야기와 풍문을 믿고 중대 사안을 결정했다가 금세 후회하곤 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은 확인되지 않은 소문을 맹신하는 데다 대부분의 정보 제공자가 그들의 구미에 맞는 대답을 하기 때문이다. (4-5)
- P117

브리탄니아인들이 전차를 타고 싸우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그들은 먼저 전차를 타고 사방을 쏘다니며 날아다니는 무기를 투척했는데, 대개 말들의 위협적인 모습과 요란한 바퀴 소리만으로도 적군의 대열을 능히 혼란에 빠뜨린다. 그런 다음 기병 부대들 사이로 들어가서는 전차에서 뛰어내려 보병으로 싸운다. 그 사이 마부들은 싸움터에서 조금 물러나 주인들이 적군에게 고전할 경우 자기들 곁으로 재빨리 물러날 수 있도록 전차들을 세워둔다. 그렇게 그들은 전투에서 기병대의 기동성과 보병 부대의 안정성을 결합시킨다. 날마다 반복되는 훈련과 습관 덕분에 그들은 경사진 가파른 지형에서도 전속력으로 말을 달릴 수 있고, 번개같이 말을 세우고는 방향을 틀 수 있을 뿐 아니라, 전차의 채 주위를 돌아다닐 수 있고, 멍에 위에 서 있다가 거기서 재빨리 도로 전차 안으로 뛰어내릴 수 있다. (5-33)
- P135

모든 함대가 정오경 브리탄니아에 도착했으나 그 지역에 적군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카이사르가 나중에 포로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다수의 적군이 그곳에 집결해 있었으나 로마군 함선이 많은 것을 보고 겁에 질려 해안을 떠나 고지에 숨었다고 했다. 지난번에 건조된 함선들과 일부 개인이 자신의 편의를 위해 건조하게 한 개인 소유 함선들을 포함하여 8백 척 이상이 동시에 모습을 드러냈으니 그럴 만도 했다. (5-8)
- P146

그쪽에 히베르니아가 있는데 어림잡아 브리탄니아 크기의 절반쯤 되며, 브리탄니아가 갈리아에서 떨어져 있는 만큼 브리탄니아에서 떨어져 있다. 그 중간에 모나라는 섬이 있다. 그 근처에는 더 작은 섬이 몇 개 더 있는 것으로 믿어지는데, 몇몇 작가들에 따르면 그 섬들에서는 동지 때 밤이 한 달 동안 지속된다고 한다. 우리가 탐문해봐도 그것이 사실인지 알아낼 수 없었지만, 물시계로 정확히 계측해본 결과 그곳은 밤이 대륙보다 짧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5-13)
- P149

이 군단에는 티투스 풀로와 루키우스 보레누스라는 용맹무쌍한 백인대장 두 명이 있었는데, 둘 다 수석 백인대장이 두 명 있었는데, 둘 다 수석 백인대장으로의 승진을 앞두고 있었다. 두 사람은 누가 더 훌륭한 전사인가를 놓고 늘 다투었고, 주요 보직을 두고 치열하게 경쟁했다. (중략) 두 사람은 적군을 여러 명 죽이고 무사히 보루 안으로 돌아와 크게 갈채를 받았다. 이렇듯 두 사람의 경쟁과 싸움에는 행운이 따라 두 사람은 치열한 경쟁을 하면서도 서로 돕고 서로 구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둘 중 누가 더 용감한지는 결판날 수 없었다. (5-44)
- P168

누군가 먼저 적대행위를 시작했다는 사실에 야만족은 큰 감명을 받았다. 그리하여 그들의 태도가 일변하자 카이사르는 거의 모든 부족의 충성심을 의심했다. 아이두이족과 레미족만은 예외였다. (중략) 하지만 갈리족의 그런 태도 변화는 그다지 놀랄 일이 못 되는 것 같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주된 이유는 전장에서 어느 종족 못지않게 용맹을 떨치던 갈리족이 이제는 거런 명성을 잃고 로마 국민의 통치에 복종하게 된 것에 몹시 분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5-54)
- P176

드루이데스들의 교리는 브리탄니아에서 생겨나 그곳에서 갈리아로 건너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그들의 교리를 더 깊이 이해하려는 자들은 그것을 배우려고 대개 브리탄니아로 건너가곤 한다. (6-13)
- P192

갈리족은 모두 미신에 사로잡혀 있다. 그래서 중병에 걸렸거나 전쟁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사람들은 인신을 제물로 바치거나 바치겠다고 서약하고는 드루이데스들이 그 제사를 주관하게 한다. 그들은 한 사람의 목숨을 위해 다른 사람의 목숨을 바치지 않으면 불사신들의 노여움을 달랠 수 없다고 믿는다. 그들은 부족의 이름으로도 그런 제사를 지낸다. 그들 중 더러는 거대한 신상을 이용하여 그 신상의 버들가지로 엮은 사지를 산 사람들로 가득 채운다. 그리고 나서 아래쪽에 불을 지르면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화염에 휩싸여 죽는다. 그들은 현장에서 잡힌 절도나 강도나 그 밖의 다른 범죄자를 제물로 바치면 불사신들이 더 좋아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런 범죄자들이 없으면 그들은 죄가 없는 사람들조차 서슴지 않고 제물로 바친다. (6-16)
- P194

게르마니족의 관습은 갈리족과는 아주 다르다. 그들은 종교적 업무를 주관할 드루이데스들도 없고 제사에도 관심이 없다. 그들이 신으로 여기는 것은 태양신, 불의 신, 달의 여신처럼 뭄으로 볼 수 있고 확실히 이익을 가져다주는 존재들뿐이다. 다른 신들에 관해서 그들은 소문조차 듣지 못했다. 그들은 사냥과 전쟁으로 평생을 보내며, 어려서부터 힘든 일과 지구력을 몸에 익힌다. 그들 사이에서는 동정을 가장 오래 지킨 자가 칭찬받는다. 그렇게 하면 더러는 키가 더 큰다고 믿기도 하고, 더러는 체력과 근육이 더 강해진다고 믿기도 한다. 스무 살이 되기도 전에 여자와 교합하는 것을 그들은 큰 수치로 여긴다. 하지만 그들은 성의 문제를 숨기려 하지는 않는다. 어차피 남자와 여자는 강에서 함께 목욕하고, 짐승 가죽이나 짧은 모피 옷만 입고 다녀 신체가 대부분 노출되기 때문이다. (6-21)
- P196

세상만사에는, 그 중에서도 특히 전쟁에는 運이 중요하다. 바실루스가 방심하고 아무 준비도 않고 있던 암비오릭스를 마주친 것도, 사람들이 그가 도착했다는 소문이나 보고를 듣기도 전에 그가 사람들 앞에 나타난 것도 순전히 운이었다. 마찬가지로 암비오릭스가 무구를 모두 빼앗기고 전차와 군마도 노획당했지만 그 자신은 죽음에서 벗어난 것도 운이었다. 갈리족은 더위를 피하기 위해 대개 숲가나 강가에 집을 짓는데, 마찬가지로 그자의 집도 나무로 둘러싸여 있어 그자가 죽음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그자의 친구와 동료들이 좁은 숲길에서 로마군 기병대의 공격을 잠시 막아내자, 그들이 싸우는 사이 그자의 부하 가운데 한 명이 그자를 말에 태웠고, 도망치는 그자를 숲이 가려주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암비오릭스를 위험에 빠뜨린 것도, 암비오릭스가 도주하게 해준 것도 운이었다. (6-30)
- P202

이 연설은 갈리족에게 듣기 싫지 않았으니, 무엇보다도 베르킹게토릭스가 그런 패배를 당하고도 낙담하여 숨거나 군중의 눈을 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들이 보기에 그는 선견지명과 예지가 있는 듯했다. 아직 사태가 악화되기 전에 그가 처음에는 아바리쿰을 불태우자고 하다가 나중에는 포기하자고 했기 때문이다. 다른 장군들은 이번 패배로 위신이 떨어진 데 반해, 그는 패배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날로 영향력이 커졌다. (7-30)

- P234

자신이 누구라는 것을 밝히기 위해 카이사르가 전장에서 늘 입고 다니던 진홍색 외투를 보자 적군은 그가 도착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적군은 자신들이 서 있던 고지에서 훤히 내려다보이는 경사면을 따라 기병대와 대대들이 그의 뒤를 따르는 것을 보자 공격을 개시했다. 양쪽에서 함성이 일자, 그에 화답하듯 방책과 방어시설들에서도 함성이 일었다. 아군 병사들은 창을 던져버리고 검으로 싸웠다. 갑자기 배후에 아군 기병대가 나타나고 더 많은 대대가 앞에서 다가오자 적군은 등을 돌려 도주했다. 그러자 아군 기병대가 추격하여 도주한ㄴ 적군을 도륙했다. 레모비케스족의 지도자이자 지휘관인 세둘리우스는 살해되고, 아르베르니족인 베르캇시벨라우누스는 도주하다가 생포되었으며, 74개의 군기가 카이사르 앞으로 보내졌다. 그 많던 군사들 가운데 무사히 진지로 돌아간 자는 소수에 불과했다. (7-88)
- P275

이튿날 베르킹게토릭스는 회의를 소집해놓고 자기는 이번에 사리사욕이 아니라 공동체의 자유를 위해 전쟁을 일으켰지만, 운명에는 누구나 굴복해야 하는 만큼 로마군에게 보상하기 위해 자기를 죽이든 아니면 산 채로 넘겨주든 좋을 대로 하라고 했다. 그들이 이 문제를 논의하도록 카이사르에게 사절단을 파견하자, 그는 무기를 넘기고 주동자들을 데리고 나오라고 명령했다. 그러고 나서 그가 진지 앞 보루 안에 자리 잡고 앉자, 그곳으로 주동자들이 인도되었다. 베르킹게토릭스가 인계되고, 무기들이 땅에 던져졌다. 카이사르는 아이두이족과 아르베니족의 충성심을 되찾는 데 이용하려고 이들 부족의 포로들은 따로 제쳐두고, 나머지 포로는 모든 병사에게 각각 한 명씩 전리품으로 나눠주었다. (7-89)
- P276

(인용자 주: 8권을 덧붙여 쓴 히르티우스가 발부스에게 보낸 머리말)
다른 작가들이 아무리 공들여 문장을 다듬어도 카이사르 수기들의 우아한 문체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오. 그의 수기들은 그런 중대 사건들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저술되었지만, 만인에게 칭찬받음으로써 미래의 역사가들은 그의 업적에 관해 기술할 기회를 얻었다기보다 오히려 잃은 것 같소. 그렇지만 우리가 그의 글재주에 남들보다 더 찬탄해 마지않는 이유는, 남들은 그가 얼마나 실수 없이 잘 저술했는지는 알지만 우리는 그가 얼마나 쉽게 빨리 수기들을 완성했는지 알기 때문이오. 카이사르는 유창하고 세련되게 글을 쓸 줄 알뿐더러 자신의 의도를 더없이 정확하게 표현하는 남다른 재능이 있소. (8-1)
- P28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