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축제일 한길사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서양편 24
오비디우스 지음, 천병희 옮김 / 한길사 / 2005년 5월
장바구니담기


(3권 261-273행, 3월 1일)

숲과 호숫가에서 디아나에게 시중드는 요정(Egeria-인용자주)이여, 말해주시오.
누마의 아내인 요정이여, 왛서 그대 자신의 행적의 증인이 되어주시오.
저기 아리키아 계곡에는 우거진 숲에 둘러싸이고
오래된 의식으로 말미암아 신성시되는 호수가 하나 있습니다.
그곳에 제 말들의 고삐에 갈기갈기 찢겨 죽은 힙폴뤼투스가 숨어 있습니다.
그래서 말은 그곳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긴 산울타리들에는 늘어진 실들이 드리워져 있고
그곳에 있는 많은 서판들이 여신에 대한 감사의 뜻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가끔 기도가 이루어지면 여인은 이마에 화관을 두르고
시내에서 불타는 횃불들을 가져옵니다.
그곳에서는 손과 발이 강한 도망자들이 왕노릇을 하지만
그들이 전임자들을 죽였듯이 그들도 나중에 죽음을 당합니다.
-136-137쪽

(3뤈 675행-696행. 3월 15일. 안나 페렌나의 축제)

이제 나에게는 소녀들이 외설스런 노래를 부르는 까닭을 말하는 일이 남았습니다.
그들은 모여서 잡스러운 노래를 부르기 때문입니다.
안나가 최근에 여신이 되었을 때 그라디부스(마르스의 별명. 행진하는 이-인용자주)가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를 옆으로 데려가더니 이렇게 말합니다.
"그대는 내 달에 경배받으니 우리는 계절을 함께하는 셈이오.
내 큰 소망이 이루어지느냐의 여부는 그대의 도움에 달려 있소.
무장한 신인 나는 무장한 여신인 미네르바에게 사랑에 빠져 불타고 있고
내가 이 상처를 키운 지도 벌써 오래되었소.
기능이 비슷한 신들인 우리를 그대가 결합시키시오.
이 역할은 그대에게 어울리오. 그대 붙임성 좋은 노파여."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빈 약속으로 신을 우롱하고
모호하게 지연시킴으로써 어리석은 희망에 매달리게 합니다.
그가 자꾸 졸라대자 그녀가 말합니다. "분부대로 실행했다니까요.
그녀가 졌어요. 그녀는 그대의 간청에 가까스로 손을 들었으니까요."
(아래에 계속)-159-160쪽

(위에서 계속)
사랑에 빠진 그는 그 말을 믿고 新房을 준비하고
신부처럼 베일로 얼굴을 가린 안나가 그곳으로 인도됩니다.
마르스는 막 입 맞추려다가 안나를 보게 됩니다.
처음에는 수치심이, 다음에는 노여움이 우롱당한 신을 엄습합니다.
세 여신은 사랑스런 미네르바의 구혼자를 보고 웃고 있고,
베누스에게는 이보다 더 재미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옛날의 익살과 외설스런 시구들을 노래하게 되었으니,
사람들은 안나가 위대한 신을 속인 것을 기억하고는 좋아하는 것입니다.-159-160쪽

(3권 809-848행, 3월 19일, 미네르바의 축제, 3/19-3/23)

그 사이 하루가 지나고 나면 미네르바의 축제가 열리는데
그것은 연속되는 다섯 날에서 그 이름을 따왔습니다.(Quinquartus-인용자주)
첫날은 피를 보아서는 안 되는지라 劍鬪는 불법입니다.
그 이유는 바로 이날에 미네르바가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아벤티눔 언덕에서 미네르바에게 신전이 봉헌되었기 때문에-인용자주)
이어지는 나흘 동안에는 뿌려진 모래 위에서 축제가 열립니다.
호전적인 여신은 칼집에서 칼을 빼어드는 것을 좋아합니다.
소년들과 부드러운 소녀들이여, 이제 팔라스에게 기도하시오.
팔라스의 호감을 사는 이는 유식해질 것입니다.
일단 팔라스의 호감을 산 뒤에 소녀들로 하여금 양모를 빗고
가득 감겨 있는 물레 가락을 푸는 법을 배우게 하십시오.
그녀는 또 수직의 날실 사이를 북으로 통과하는 법과
느슨하게 짜여진 천을 바디로 단단하게 하는 법도 가르쳐줍니다.
그녀를 경배하시오. 더럽혀진 옷에서 얼룩을 지우는 그대는.
그녀를 경배하시오. 청동 가마에서 양모를 염색할 준비를 하는 그대도.
(아래에 계속)-167-169쪽

(위에서 계속)
어느 누구도 팔라스의 뜻을 거슬러서는 발에 맞는 샌들을 만들지 못합니다.
설사 그가 튀키우스(일리아스 7권에 나오는 아이아스의 방배 제작자-인용자주)보다 재주가 있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설사 그가 에페우스(트로이야의 목마 제작자-인용자주)보다 더 손재주가 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팔라스가 그에게 화를 내면 그는 서투른 사람이 될 것입니다.
포이부스의 기술로 질병을 몰아내는 그대들도
수입의 일부를 여신에게 바치십시오.
그리고 사람들에게 종종 수업료를 떼이는 그대들 교사들이여.
그녀를 모욕하지 마시오. 그녀는 새 학생들을 끌어다줍니다.
그리고 그대 글을 쓰는 이도, 그대 蠟畵 화가도. 그대 솜씨 좋은 石手도.
수천가지 일이 여신의 소관입니다.
그녀는 詩歌의 여신이 틀림없습니다.
그녀가 내가 하는 일에 호의를 베풀어주시기를. 내가 만약 그럴 자격이 있다면.
(아래에 계속)-167-169쪽

(위에서 계속)
카일리우스 산이 정상에서 들판으로 내려오고
길이 아직은 판판하지 않아도 거의 판판한 곳에서
그대는 미네르바 캅타의 작은 사당을 볼 수 있을 것인데,
그것은 여신이 생일날에 처음 받은 것입니다.
캅타라는 이름의 어원은 확실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현명한 재능을 카피탈리스(capitalis)라고 부르는데 여신이야말로 재능이 있습니다.
아니면 전설에 따르면 그녀가 어머니 없이 아버지의 머리(caput)에서 방패를 들고 뛰어나왔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팔레리이가 정복되었을 때 그녀가 포로(captiva)로서 우리에게 왔기 때문일까요?
어떤 초기 銘文에 그런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아니면 그 사당에서 물건을 훔치는 것에
死刑(captis poena)을 내리는 법이 있기 때문일까요?
그대의 이름이 어디에서 유래했든 간에, 팔라스여,
그대는 늘 우리 지도자들의 앞을 아이기스로 가려주소서!-167-169쪽

(5권 215-228행. 5월 2일. 플로라의 축제(4/28-5/3))

서리가 이슬이 되어 잎에서 떨어지고
다채로운 잎들이 햇살에 데워지자마자
호라이 여신들이 와서 알록달록한 옷을 걷어올리고는
가벼운 바구니들에 내(Flora-인용자주) 선물들을 모으지요.
이어사 카리스 여신들이 나타나
자신들의 天上의 모발을 장식할 화관과 화환들을 엮지요.
내가 처음으로 수없이 많은 민족들 사이에 씨를 뿌렸지요.
그전에 대지는 한 가지 색이었어요.
내가 처음으로 테라프네의 피에서 꽃을 만들었지요. (히아신스. 테라프네는 휘아킨토스가 죽은 곳-인용자주)
그 꽃잎에는 아직도 그것의 탄식이 새겨져 있지요.
나르킷수스여, 잘 손질된 내 정원에는 네 이름도 있지. (수선화-인용자주)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었던 불행한 자여.
그들의 상처에서 내 덕분에 명예가 솟아오르고 있는 크로쿠스와 (사프란. 크로쿠스는 메르쿠리우스의 연인-인용자주)
앗티스와(제비꽃,퀴벨레의 연인-인용자주) 키뉘라스의 아들(아네모네 또는 장미. 베누스의 연인 아도니스-인용자주)에 관해서는 말할 피요도 없겠지요.-244-245쪽

(5권. 379-414행. 5월 3일)

세번째 밤에는 키론이 자신의 별자리를 드러낼 것인데,
그의 몸은 반은 사람이고 반은 구렁말입니다.
펠리온은 하이모니아에 있는 산으로 남쪽을 향하고 있는데,
정상은 소나무로 푸르고 나머지는 참나무들입니다.
그곳은 필뤼라의 아들이 차지했습니다.(Chiron/Cheiron은 사투르누스와 필뤼라의 아들-인용자주)
오래된 바위 동굴이 하나 있는데, 정직한 노인은 바로 그곳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그가 언젠가 헥토르를 죽음으로 보내게 될 손들(手)에게
뤼라를 연주하는 법을 가르쳐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알카이우스의 손자도 그곳에 왔는데,
그는 고역들의 일부를 마치고 얼마 안 되는 명령들만이 그에게 남아 있었습니다.
그대는 트로이야의 두 파멸의 운명이 우연히 함께 있는 것을 보게 되었을 것인즉,
이쪽 소년이 아이아쿠스의 손자고, 저쪽이 제우스의 아들입니다.
필뤼라의 아들인 영웅이 젊은이를 환영하며
찾아온 까닭을 묻자 젊은이가 가르쳐줍니다.
그 사이 그는 몽둥이와 사자 가죽을 보더니 말합니다.
"사람은 무기 못지않고 무기는 사람 못지않구려."
(아래에 계속)-254-256쪽

(위에서 계속)
아킬레스는 센털이 난 털복숭이 모피를
감히 만져보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습니다.
한편 노인은 독화살들을 만지작거리다가
화살 하나가 떨어져 왼쪽 발을 찔립니다.
키론이 신음하며 몸에서 무쇠를 뽑았습니다.
알카이우스의 손자도, 하이모니아의 소년도 함께 신음합니다.
키론 자신은 파가사이 언덕들에서 따 모은 약초들을 섞어
여러 가지 치료법으로 자신의 상처를 진정시킵니다.
그러나 게걸스런 독이 치료법들을 이겨
파멸이 뼛속과 전신으로 퍼졌습니다.
레르나의 휘드라의 피가 켄타우루스의 피와
이미 섞인 뒤라 구제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아래에 계속)
-254-256쪽

(위에서 계속)
아킬레스는 눈물범벅이 되어 마치 아버지 앞인 양 그의 앞에 서 있었습니다.
펠레우스가 죽어가고 있다면 그는 그렇게 눈물을 흘렸을 것입니다.
그는 다정한 손들로 힘없는 손들을 가끔 어루만지곤 했으니,
스승은 자신이 형성해준 성품으로 보답받는 것입니다.
아킬레스는 가끔 그에게 입 맞추고 거기 누워 있는 그를 가끔 부르며 말했습니다.
"제발 죽지 마세요. 나를 버리지 마세요. 사랑하는 아버지."
아흐레째가 되자, 가장 정직한 키론이여,
그대는 이칠십사 열네 개의 별들을 그대의 몸에 둘렀소이다.-254-256쪽

(5권 671-692행. 5월 15일, 메르쿠리우스의 축제)

카페나 문 근처에 메르쿠리우스의 샘이 있는데
그 물을 마셔본 사람들의 말을 믿는다면 그것은 효험이 있습니다.
상인은 이곳으로 와서 소매를 걷어붙이고는
燻蒸한 항아리에 정성스레 물을 퍼 담아 집으로 가져갑니다.
그는 그 속에 월계수 가지를 담갔다가
곧 새 임자를 만나게 될 모든 것에 이 젖은 월계수 가지로 물을 뿌립니다.
그는 또 물방울이 뚝뚝 듣는 월계수로 자신의 머리에도 물을 뿌리며
속이는 버릇이 있는 입으로 기도합니다.
"지난날의 거짓 맹세들을 씻어주소서" 라고 그는 말합니다.
"어제의 거짓말들도 씻어주소서!
내가 그대를 증인으로 삼았거나,
듣지 않으시리라 믿고 윱피테르의 신성에 걸고 거짓으로 맹세했거나,
또는 내가 알고도 다른 신이나 여신을 속인 적이 있다면
내 염치없는 말들을 재빠른 남풍이 쓸어가게 해주소서.
(아래에 계속)-269-270쪽

(위에서 계속)
하지만 내일 또 거짓 맹세하는 것을 허락해주시고,
내가 무슨 말을 하든지 신들께서 이를 무시하게 해주소서.
내게는 오직 이익만 주시고, 얻은 이익을 즐기게 해주시고,
손님을 속인 것이 내게 도움이 되게 해주소서!"
메르쿠리우스는 자신이 전에 오르튀기아의 소떼를 훔쳤던 일을 기억하고는
그러한 요구에 높은 곳에서 미소짓습니다.-269-270쪽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izuaki 2009-08-01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인 Fasti는 원래 법정의 개정일(dies fasti)과 휴정일(dies nefasti), 그리고 민회가 열리는 날(dies comitiales) 등을 기록해 놓는 달력을 뜻하는 말이라고.
오비디우스의 삐딱한 유머는 언제나 나를 즐겁게 해준다.
 

일단은 놀고 보자는 느낌으로 신나게 노는 중. 공부는 8월에 하면 안되는 걸까.... -_-;;;
에 일단 에우리피데스의 비극 전집. 이 중 몇 편은 한국에서는 첫 번역인 만큼 빨리 읽은 순서로는 한국의 10위권  안에 들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들었다. ㅋㅋ. 이걸로 아이스퀼로스, 소포클레스에 이어 현전하는 희랍비극을 모두 읽었다.















라블레의 <가르강튀아/팡타그뤼엘>. 덕수궁 앞에서 친구랑 나란히 앉아서 간식 먹으면서 읽었다. 바로 앞에는 경찰 부대가 앉아 도시락을 먹고 있었다.










바흐친의 <장편소설과 민중언어>. 3월부터 질질 끌며 읽다말다 하던 것을 드디어 끝냈다. 사실 앞의 라블레는 이걸 읽기 위해서 가져온 거기도 함








오비디우스의 <로마의 축제일>. 내 분야는 원래 여기지. ㅋㅋ. <황금가지>에 나오는 레미의 숲 이야기의 출처가 여기인 듯.













그리고 예전에 읽었던 소설 퍼레이드. 다카노 카즈아키 <13계단>, 파트리크 쥐스킨트 <향수>, 마이클 크라이튼의 <쥬라기공원>과 <잃어버린 세계>. 읽었던 책을 다시 읽고 읽고 또 읽는 건 노년기 증상이 아닐까 조금 걱정.












도서관에서 닥치는 대로 빼서 읽는 일본소설들 조금. 하다 케이스케의 <흑냉수>는 형제간의 증오라는 소재를 아주 리얼하게 묘사했다. 살짝 치기같은 게 느껴졌는데 작가가 17세의 고등학생이라는 얘기를 읽으니 납득이 갔다.  무코다 구니코의 <수달>은 근사한 단편집. 짧지만 삶에 대한 날카로운 이해를 담고 있다. 아시하라 스나오의 <청춘 덴데케데케데케>는 1960년대 카가와 시골의 고등학생들의 밝고 따스하고 유쾌한 일상을 엄청 기분좋게 그려낸 멋진 책이다. 일본어를 잘하게 된다면 꼭 사누키 사투리를 살린 원문으로 보고 싶은 책.















하라 료의 <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를 읽고 중년 탐정의 피곤한 삶이 마음에 쏙 들어서 내친 김에 레이먼드 챈들러를 읽었다. <빅슬립>하고 <안녕 내 사랑>. 흠... 시적이라는 평가는 납득이 가는데, 내 취향하고는 조금 거리가 있는 게, 필립 말로가 장신의 미남이라는 게 아주 맘에 안 든다. 연달아 나타나는 육감적인 미인들하고의 에로에로한 관계도 느끼하고. 마음에 드는 건 삐딱한 독백 정도려나. 무라카미 하루키가 이 사람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했다는 게 납득이 간다. 하라 료는 물론 챈들러 장면에 대한 오마쥬를 가득 써 두었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학기말 레포트 내고 본격적으로 놀다.
무라카미 류의 소설들을 조금. <반도에서 나가라>는 예전에 읽은 것. <공항에서>는 처음이지만 소설이라기엔 그냥 꽁트집이었고, <이비사>는 이 작가 작품 중 상당한 비율을 차지하는 뭔소린지 잘 모르겠는 유형.











한국 현대 소설 중 환상 단편을 모아둔 <환상소설첩> 읽었다. 장정일의 <펠리칸>이랑 신경숙, 윤대녕의 작품이 기억에 남는다. 이런 유형의 책들은 당연히 재미있다.















미야베 미유키의 <흔들리는 바위>. 미야베 미유키야 작가 이름만으로도 확실히 믿고 읽을 수 있는 작가지. 특히 이 작가의 에도시대 물은 다 좋았다. <흔들리는 바위>는 아코로시 이야기를 소재로 한 작품. 이 소재도 이제는 무지 익숙해. 편안하고 즐겁게 읽었다.












존 보인의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 이건 영화 소개를 보고 낚여서 읽었는데 대실망. 동화책이란 걸 감안하더라도 리얼리티가 너무 없었다.











중학생 대상의 '위로와 격려의 글 쓰기' 교수법에 대해 고민하다가 갑자기 생각나서 읽은 키토 아야의 <1리터의 눈물>. 보는 김에 드라마까지 넘겨가며 봤는데, 드라마 쪽은 아코 캐릭터가 괜찮았고 료짱이 나왔다는 거 외엔 별로 이렇다할 느낌이 없었지만, 책은 참 괜찮더라. 보면서 조금 울기도 했고. 그렇지만 어짜피 죽을 거 이렇게까지 고생해서 오래 살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죽는 것보다 아픈 게 더 싫어.












방학하고 집에서 놀면서 예전에 읽었던 만화들을 다시 보다. <히카루노 고>도 <이니셜D>도 다시 봐도 명작.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공연히 소설이 읽고 싶어서 집 앞 도서관에 들렀다가 무코다 구니코 씨의 단편집 <수달>을 빌렸다.
















방송 작가 출신이 쓴 나오키 상 수상작이라는 이미지와는 좀 거리가 있는 순문학풍의 잘 된 단편집이었는데, 나의 관심을 끈 것은 작품의 내용이 아닌 작가 쪽이었다.
1929년생. 평생 원고마감에 시달리며 살았던 여성 방송작가...
이거 어디서 본 듯한 얘기인데 혹시.... 하고 찾아본 것이 10년 전에 산 <펜끝으로 훔쳐본 세상>.














 혹시가 역시였다.  드라마 극본이 늦어져서 제작진이 모두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원고를 받으러 간 스탭에게 질그릇 냄비를 건냈던 그 아줌마가 바로 이 무코다 씨였다.
  "어머나, 무코다 씨, 예전에 세노 갓파 씨랑 같이 뵈었었지요. 드디어 무코다 씨의 글을 읽게 되다니 정말이지 감개무량!! 이야~ 그 동안 세월 많이 흘렀네요. 그 때만 해도 쌩쌩한 20대 초반이었는데, 이젠 저도 중년이에요. 호호호"  ^^;;

실은 10년 전 <펜끝으로 훔쳐본 세상>을 읽을 때도 나는 '10년 지인'을 한 사람 만났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읽었던 <창가의 소녀 토토짱>의 작가 구로야나기 데츠코 씨 이야기가 여기에 나왔던 것이다. 그 때도
"어머나 이게 누구야? 토토짱 아냐?  여기서 만나게 될 줄이야! 초등학교 때 봤는데 그새 어른이 됐구나. 이야~ 하지메 짱도 그렇지만 당신도 정말 훌륭해졌네."
하면서 꽤나 감격했었다.
하지메 짱이라는 것은 세노 갓파 씨의 본명으로, 이 양반의 어린 시절 이야기인 <소년 H>를 나는 그  2년 전에 읽었었다. 즉 무대미술가 세노 갓파 씨와 아나운서 구로야나기 데츠코 씨를 나는 그들이 꼬마였을 때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 나이로는 나보다 쉰 살이나 많은 분들이지만 그런 게 전혀 상관 없어진다는 것이 책읽기의 재미있는 점이다.








 








얘기가 이리저리 섞여버렸지만,  이 글의 마지막에는 역시 10년만에 떠올린 질그릇 냄비의 추억을 옮겨놓아야겠다.

<원고 대신 받은 질그릇 냄비>

나는 지금은 세상을 떠난 무코다 씨에게서 받은 질그릇 냄비를 소중히 사용하고 있다.
그녀의 각본으로 텔레비전 드라마를 만들 때 나는 미술 담당이었다. 이 질그릇 냄비는 그때의 인연으로 그녀에게서 받은 것이다.
하루는 연출자가 내게 무코다 씨를 찾아가 직접 각본을 받아오라고 부탁했다. 미술 디자이너는 작가에게서 각본을 받아오는 담당은 아니다.
그러나 연출자는 "내가 가는 것보다 갓파 씨가 가는 게 덜 재촉하는 것 같지 않겠어요?"
하며 듣기 좋은 말로 나를 설득했다.
"한숨도 안 자고 쓰는데도, 아직 열일곱 장밖에 못 썼어요. 기다리게 하는 건 미안하지만 그래도 와주세요."
그녀는 자기 원고를 읽어 주는 것이, 뒷부분을 쓰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전화를 끊자마자 바로 뛰어갔는데, 가는 도중에 두부를 샀다. 전화 목소리로 보아 아직 식사도 하지 않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초췌한 모습의 그녀는 들고 간 두부를 보더니 미소를 지었다.
"조금 깊긴 해도 두부를 데칠 땐 이 질냄비가 맘에 들어요. 다시마가 있던가? 가다랭이포밖에 없지만 괜찮지요?"
하며 그녀는 재빠르게 두부 데칠 준비를 했다.
나는 완성되어 있다는 열 몇 장의 각본을 아직 받지 못했기에 초조해서 은근슬쩍 책상 위를 보았지만 쓴 것은 서너 장뿐이었다.
"배우들은 앞부분 연습을 하고 있나요?"
"네, 뒷부분이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기 때문에 연출가도 망설이고 있습니다만....."
결국 그 날은 한 장도 못 받았다. 그녀는 "내일 아침에는 반드시...."하면서 마치 원고 대신이라는 듯이 질냄비를 신문지에 싸서 나에게 주었다. 물로 씼었을 냄비가 아직 따뜻했다.
                      - 세노 갓파, 박국영 옮김(1998): <펜 끝으로 훔쳐본 세상>, 서해문집, 112쪽

(옆 페이지에 세노 씨의 훌륭한 세밀화로 그려진 문제의 질그릇냄비가 그려져 있다. 그림의 위와 아래에 "높이 13센티, 직경 23.5센티, 무게 13650그램. 크기에 비하여 얇고 가벼워서 깨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사용하고 있다." ""무코다 구니코씨가 준 질그릇 냄비에 속아서 그냥 왔습니까? 갓파씨는 물건을 받으면 마음이 약해져서 문제예요." 라고 디렉터에게 비난을 당했다."라는 메모가 더해져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황금가지 1 - 을유세계사상고전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 지음, 박규태 역주 / 을유문화사 / 2005년 5월
구판절판


그러나 일반적으로 고대의 왕이 동시에 사제이기도 했다는 사실만으로 왕이 행했던 직무의 종교적 측면을 완전히 설명할 수는 없다. 당시에는 왕을 둘러싼 신성이 단순히 명목에 그친 것이 아니라 진지한 신앙의 표현이었다. 많은 경우 왕은 단순히 인간과 신을 중개하는 사제라기보다는 오히려 신 그 자체로서 숭배받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왕은 그저 초인간적, 불가시적 존재에게 희생제물을 바치고 기도를 올리는 것만으로 백성들과 숭배자들에 대해 필멸의 인간에게는 불가능한 그런 은총을 내려줄 수 있다고 여겼다. 따라서 사람들은 종종 왕이 제때 비와 햇빛을 내려줌으로써 곡물의 성장을 촉진시켜주리라고 기대했다.-65쪽

주술의 기초가 되는 사유 원리를 분석해 보면 다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번째, 유사는 유사를 낳으며 혹은 결과는 그 원인과 유사성을 가진다는 사유 원리이다. 두번째, 이전에 한 번 접촉했던 사물은 물리적 접촉이 끝나 서로 떨어져 있어도 계속 상호작용을 한다는 사유원리이다. 첫번째 원리를 '유사의 법칙'이라 한다면, 두번째 원리는 '접촉의 법칙'이라 칭할 수 있다. (중략)유사의 법칙에 입각한 주술은 '동종주술' 혹은 '모방주술'로 접초그이 법칙에 입각한 주술은 '감염주술'로 분류할 수 있다. (중략) 편의상 동종주술과 감염주술을 묶어 '공감주술'이라고 총칭하는 것이 좋을 듯 싶다. 두 가지 유형의 주술 모두 공간적으로 떨어져 있는 사물이 비밀스런 공감을 통해 상호작용을 한다는 사고방식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70-72쪽

터부는 실천적, 실제적 주술의 소극적인 적용이라 할 수 있다. 적극적 주술(magic)이나 사술(sorcery)은 "이런저런 일들이 일어나도록 이런 것은 이렇게 하라"고 말한다. 이에 비해 소극적 주술이나 터부는 "이런저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이런 것은 하지 말라"고 말한다.-86쪽

이런 줗술사 계급의 발달은 해당 사회의 종교적 발전과 정치적 발전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왜냐하면 부족의 안녕이 주술적 의례에 의존하는 그런 사회에서 주술사는 자연히 막강한 권위와 신임을 얻을 수밖에 없었고, 따라서 부족의 수장직이나 나아가 왕권까지도 획득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주술사 계급은 다른 어떤 직업에서도 얻을 수 없는 명예와 부와 권력을 손에 넣을 수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부족 내에서 가장 우수하고 야심만만한 자들이 그 계급에 모여들게 마련이었다. 이렇게 모여든 우수한 두뇌의 소유자들은 종종 우매한 동료 부족원을 기만하고 그들의 소박한 미신적 신앙을 이용하여 자기 이익을 도모하는 방법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133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