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서의 우리 上 백귀야행(교고쿠도) 시리즈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김소연 옮김 / 손안의책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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툇마루 가장자리의 거스러미를
관음보살님께 받은 손가락으로
슬적슬적 어루만지네.
수천 부처의 거스러미가
따끔따끔 와서 박히네.
원숭이의 아이라면 산으로 가거라.
게의 아이라면 강으로 가거라.
사람의 아이라면 번뇌의 아궁이에서 불에 타 재가 되어라.
한들한들 그날도 저무는구나.
부처의 아이라면 어떻게 할까.
아버님 어머님 용서해 주세요.
오늘도 거스러미. 내일도 거스러미.-상 137-138쪽

뒷간 옆 삼백초 잎에
달팽이가 느릿느릿 기어와
지장보살님을 먹네.
서방정토의 조촐한 아침에
동그란 머리의 동자승이
땡그랑땡그랑 깨지네.
신의 아이라면 이 세상에 없다.
귀신의 아이라면 이 세상에 둘 수 없다.
사람의 아이라면 번뇌의 통에 넣어 흘려보내라.
사락사락 그날 밤도 밝는구나.
부처의 아이라면 어떻게 할까.
아버님 어머님 용서해 주세요.
오늘도 빙글빙글 내일도 빙글빙글.-상 138쪽

석가의 가르침을 오해하여
수천의 부처가 들끓었다지.
수천의 부처가 거스러미의
가시 끝에서 들끓었다지.
달팽이의 역할은
오늘도 오늘도 그 역할은
껍질을 닫고 모르는 척, 모르는 척.-상 1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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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zuaki 2011-07-18 1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코쿠도 시리즈 중에 제일 재미있게 읽었다. 물론 다른 시리즈도 다 재미있었지만, 이 <철서의 우리>는 요괴 강의보다는 종교 강의가 많은 것이 신선했다. 수수께끼의 산사에서 일어나는 승려 연속 살인 사건. 일견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연상시키지만 암울했던 <장미의 이름>과는 달리 이쪽은 좀 산뜻한 느낌을 준다. 속된 표현으로서의 '젠 스타일'에 가깝다고 해야 할까?

석가에서 마하가섭에게 이어진 선의 전통은 인도 승려 달마가 중국으로 옮겨 선종을 열면서 중국에 이어졌다. 이후 5조 홍인이 유력한 제자 신수를 제치고 6조 혜능을 후계자로 삼음으로서 둘로 나뉘게 된다. 신수의 북종선이 사라진 후에도 혜능의 남종선은 이어져 남악 회양을 이은 임제 의현의 임제종과 청원 행사를 이은 동산 양개, 조산 본적의 이름을 딴 조동종이 일어났다. 이 임제종과 조동종이 12세기에 일본에 전래되어 각자 발전했다는 이야기. 그 뒤 에도 시대 17세기에 임제의 스승 황벽에서 나와 중국에서 발전한 황벽종이 일본에 도입되어 현재 일본 선종은 크게 세 종단으로 되어 있는 듯하다. 물론 선종 외의 불교도 종류가 많고 그들도 나름 역사가 깊다. 이 작품에서 언급된 것은 밀교 계열에서 나온 진언종이지만, 대충 위키에게 물어보니 그 외에도 여러 종파가 있는 모양.

깨달음을 얻기 위한 치열한 싸움, 그것을 둘러싼 인간적인 갈등이 정말 드라마틱했고, 그것을 자기만의 개성으로 받아들이는 교코쿠도 팀(?) 구성원들의 반응이 재미있었다.

지나가다 2015-01-29 1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한들한들 그날도 너무는구나-는 오타인 것 같군요.

mizuaki 2015-01-29 19:25   좋아요 0 | URL
`저무는구나`요ㅎ. 오타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
 
[수입] 리스트 : 피아노 협주곡 1,2번, 토텐타즈
리스트 (Franz Liszt) 작곡, 세이지 오자와 (Seiji Ozawa) 지휘, 크리 / DG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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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오케스트라와 솔로 악기 사이에서 불꽃이 튄다! 청중을 전율하게 하는 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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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한길그레이트북스 81
한나 아렌트 지음, 김선욱 옮김 / 한길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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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될 끔찍한 일들이 어째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가   

 최근에 이러한 질문을 했었던 것은 4대강 공사와 관련해서였다. 아무리 보아도 어리석은, 정말로 말도 안 되는 일인데, 벌써 수조 원이 소비되었고 공사는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다. 어디를 보아도 막을 방법은 보이지 않는다. 역사를 보면 이러한 사례는 더더욱 많다. 살인, 폭력, 전쟁, 인간성에 대한 유린....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유대인 학살은 대표적인 그 대표적인 사례 중의 하나이다.

질문에 대한 가능한 답 중 하나는 "인간이 악하기 때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가 악을 저지른 것은 악한 인간이기 때문이다."라는 대답은 흔히 "(나와는 달리) 악하기 때문"이라는 뉘앙스를 띠고 잇는 것 같다. 이것은 특히 집단의 문제에 있어서 그러하다. 평화를 사랑하는 우리 민족이 외세의 침략에 고통을 겪어 왔다는 식의 한국사 교육이 한 예이다. 홀로코스트에 대한 유대인의 태도 역시 마찬가지다. 나치 독일의 친위대 중령으로, 유럽 전역에서의 유대인 수송 (죽음의 수용소를 향한 수송)을 담당했던 아돌프 아이히만에 대해, 유대인들은 아이히만이 그러한  끔직한 일을 적극적으로 수행했던 것은 그가 악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아르헨티나에 숨어 있던 아이히만을 납치하여 예루살렘의 법정에 세워 이스라엘 국가의 이름으로 그를 교수형에 처함으로써 유대인들은 자기 민족에 대해 저질러진 악에 대한 복수를 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그 재판을 방청한 아렌트의 눈에 비친 아이히만의 모습은 일반인이 상상하는 전형적인 악인과는 달랐다. 그는 가학적이지도 않았고 분노에 사로잡히지도 않았다. 심지어 유대인을 증오하지도 않았다. 그는 자신이 어떤 유대인도 죽이지 않았다고 말한다. 자신은 명령에 따라 유대인들을 이동시키려 했을 뿐이라고. 처음에는 팔레스타인을 포함한 외국으로, 다음으로는 독일 밖에 있는 게토로, 마지막으로는 죽음의 수용소들로. 그의 관심사는 자신의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것과 그것을 통해 동료와 상관의 인정을 받아 승진하고 출세하는 것에 한정되어 있었다. 자신의 일이 유대인들에게 어떠한 고통을 가져올지에 대해서 상상하는 것은 그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렌트가 사용하는 "악의 평범성"이라는 말은 이러한 상상력의 결핍이 얼마나 흔하게 발견되는가를 깨닫게 한다.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끔찍한 일들에도 수많은 성실한 실무자들이 관계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의무를 성실하게 수행하고, 상사와 동료들의 인정을 받고, 그것으로 자신의 가족을 부양하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 그들은 자신이 하는 일이 누군가에게 주는 고통에 대해서 생각할 줄 모른다. "머리 나쁘고 부지런한 인간이 제일 나빠."라는 흔한 농담의 주인공들, "타인의 고통에 대한 상상력"을 결여한 이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이야말로 현대의 또다른 아이히만들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러한 '악의 평범성'으로부터 탈주하는 길은 무엇일까? 직접적인 대답은 주어지지 않지만, 이 책에는 아이히만의 수송 작업이 성공하지 못했던 사례들이 소개되어 있다. 유럽에서 유대인을 추방해야 하니 너희 나라에 있는 유대인을 모두 내놓으라는 나치의 요구에 대한 피점령 국가들의 반응은 다양했는데, 그 중에는 루마니아처럼 나치 쪽에서 오히려 당황할 정도로 잔혹한 유대인 학살을 시행한 국가도 있었지만, 의도적인 태업을 통해 유대인들에게 살아날 길을 마련해 준 이탈리아나 불가리아와 같은 국가도 있었다. 나치 쪽에서 아예 유대인 이야기를 꺼내지도 못했던 핀란드와 같은 사례도 있었고, 국왕이 "유대인이 가슴에 별을 달아야 한다면 내가 제일 먼저 달겠다"고 선언하고 노동자들이 나치에 반대하는 파업을 벌이고, 마침내는 자기 나라에 온 독일인들이 본국 정부에 대해 태업을 하도록 변화시키기까지 한 덴마크와 같은 사례도 있었다. 인간성과 정의에 대한 믿음이 널리 공유되는 사회는 악에 대한 면역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읽은 유대인 독자들이 이 책에서 논의되는 '악의 평범성'에 대한 지적을 불편하게 느꼈다는 것, 많은 유대인들이 이 책을 비판했다는 것은 유대인 사회가 가지고 있었던 악에 대한 면역력이 강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방증은 아닐까? . 홀로코스트의 희생자로서, 정의의 이름으로 악을 심판하기를 원했던 유대인들은 자신들 속에도 악이 있을 수 있다는 진실을 달가와하지 않았다. 이스라엘 국가가 원했던 것은 복수였지 진실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진실에 대해 보인 이러한 태도가 내게는 오늘날 팔레스타인 땅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수많은 끔찍한 일들, 이번에는 유대인이 가해자의 입장에서 저지르고 있는 수많은 악들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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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한길그레이트북스 81
한나 아렌트 지음, 김선욱 옮김 / 한길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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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사람은 맹세를 심각하게 받아들여, 히틀러의 이름으로 서약을 하기보다는 대학 경력을 포기하는 것을 선택했다. 보다 많은 사람들, 특히 베를린의 노동자들과 사회주의 지식인들은 자신과 안면 있는 유대인을 도와주려고 애를 썼다. 끝으로 귄터 바이젠보른의 "조용한 봉기Derlautlose Aufstand, 1953)"에 나오는 이야기와 연관된두 소년 농부가 있었다. 이들은 전쟁이 끝날 무렵 친위대로 징집되었으나 입대를 거부했다. 그들은 사형선고를 받았고 처형당하기 전날 가족들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에 다음과 같이 썼다. "우리 두 사람은 그런 끔찍한 일로 우리의 양심에 부끄러운 짓을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죽는 것이 낫습니다."-172쪽

돌격대 부대는 독일의 어느 일반 부대보다 범죄 기록을 더 많이 갖고 있지 않은 군대 조직인 무장 친위대로부터 징발되었다. 그리고 그 지휘관들은 하이드리히가 대학 학위를 가진 친위대 엘리트 가운데서 선택했다. 따라서 문제는 양심을 어떻게 극복하는가라는 것이 아니라 모든 정상적인 사람들이 육체적 고통을 당하는 것을 보는 데서 느끼게 되는 동물적인 동정심을 어떻게 극복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힘러가 사용한 책략은 (그는 스스로도 이런 본능적인 반응을 다소 강하게 느꼈던 것 같다) 아주 단순했고 또 아주 효과적이었던 것 같다. 그것은 이러한 본능을 뒤집는 것으로, 말하자면 자기 자신을 향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사람들에게 얼마나 끔찍한 일을 하고 있는가, 라고 말하는 대신, 나의 의무를 이행하는 가운데 내가 얼마나 끔찍한 일을 목격해야만 하는가, 내 어깨에 놓인 임무가 얼마나 막중한가, 라고 살인자들은 말할 수 있게 되었다.-1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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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열전 -하 까치동양학 28
사마천 지음 / 까치 / 199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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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를 가장 잘하는 자는 자연스러움을 따르고, 그 다음은 이익으로써 백성들을 이끌고, 그 다음은 깨우치도록 가르치고, 또 그 다음은 백성들을 가지런히 바로잡는 사람이고, 가장 못하는 자는 백성들과 다투는 사람이다. ('貨殖列傳'에서)-1171-11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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