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멸종 - 거꾸로 읽는 유쾌한 지구의 역사
이정모 지음 / 다산북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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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멸종을 읽으면서, 중학교 과학 시간에 배운 지질시대의 구분이 떠올랐다. 선캄브리아기, 고생대, 중생대, 신생대. 각 시대의 표준화석은 삼엽충, 공룡과 암모나이트, 매머드. 교과서에 실린 화석 사진들을 보며 낯선 용어를 외우던 때로부터 30년 넘는 시간이 흘렀고, 그 사이에 행해진 연구들 덕분에 지질시대의 이야기는 내가 배운 것보다 훨씬 풍요로워져 있었다. 필자는 그 풍요로운 스토리를 깔끔하고 흥미롭게 전달한다.

 

38억 년 전, 달과 바다의 존재에 힘입어 최초의 생명체가 발생했다. 5억 년 전, 눈을 가진 삼엽충이 번성했다. 4억 년 전, 어류와 양서류가 나타났다. 3억 년 전, 거대한 양치식물과 곤충들이 지상을 뒤덮었다. 2억 년 전, 격렬한 화산 활동 속에서 공룡들이 지배적 생물종이 되었다. 6천만 년 전, 운석 충돌로 거대 공룡들이 멸종한 자리를 조류와 포유류가 채웠다. 이 과정에서 고생대에 3, 중생대에 2, 지구 생물의 75-96퍼센트가 사라진 대멸종이 있었다. 멸종의 원인은 우주 방사선, 소행성 충돌, 화산 활동 등으로 인한 기후 변화였다. 그리고 과학자들은 인간의 활동 때문에 생기는 기후 변화가 6번째의 대멸종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러한 경고는 객관적인 과학 이야기가 중심이 되었을 수도 있는 이 책에 감정적 요소를 더한다. 독자에 따라서는 인류가 위기를 극복하고 다가올 멸종으로부터 자신을 구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질 수도 있겠다. 그러나, 필자의 풍부한 지식과 재치 있는 말솜씨에도 불구하고, 그 희망에는 좀처럼 공감이 가지 않는다. 김춘수의 '꽃'을 떠올리며, 인간이 있어서 비로소 우주와 지구와 모든 생명체가 의미를 갖게 되었다고 역설하는 것은 지나치게 감상적인 태도로 보인다. 인간이 어떤 존재를 인식했다고 해서 그 존재가 근본적으로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예전부터 그렇게 많은 생물종이 멸종해 왔으니 인간의 멸종만을 특별히 슬퍼할 필요도 없는 것 같다. 지금과 다른 모습으로 변한 미래의 지구에서는 우리와 다른 모습의 생물들이 생명의 이야기를 이어갈 것이다.

결국 지구인들은 화성을 식민지로 개척하지 못했다. 지금 지구인의 삶은 처참하다. 사막화와 온난화는 그들의 삶을 완전히 망가뜨리고 있다. 화성을 개척하라는 스티븐 호킹 박사의 유언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근본적으로 될 일이 아니었다. 만약에 화성을 테라포밍하려는 노력의 1만분의 1이라도 지구에 쏟았다면 인류 종의 운명은 지금과는 다른 길을 걷고 있을 것이다. - P57

인간, 즉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하기 전까지 우주는 제 나이가 137억 살인지도 몰랐다. 호모 사피엔스가 아니었다면 나는 내 나이가 46억 살인지 몰랐을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가 알려준 것이다. 인간이 등장하기 전에는 그 어떤 식물과 동물도 이름이 없었다. 모두 호모 사피엔스가 붙여주었다. 다양하고 예쁜 적절한 이름을 주었다. 덕분에 모든 생물이 자신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심지어 인간이 없었다면 그 어떤 꽃도 예쁠 수 없었을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가 와서 "넌 참 곱구나!"라고 고백했을 때에 비로소 꽃은 예쁜 존재가 되었다. - P99

현재 진행 중인 멸종의 원인으로는 광범위한 서식지 파괴, 사냥과 낚시를 통한 생물 종의 과도한 착취, 대기, 수질, 토양 오염, 지역 생태계를 교란하는 침입종의 유입 등 인간이 유발한 요인들이 있다. 또한 인위적인 기후변화는 많은 생물 종이 적응할 수 있는 속도보다 빠르게 서식지와 환경을 변화시켜 생물 다양성의 손실을 가속화하고 있다. 생물 주도의 멸종은 지구 자연사에 유래 없는 사건이다. 환경이 생물에 영향을 끼치는 게 아니라 인간, 즉 생물이 환경을 심대하게 바꾸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여섯 번째 대멸종, 인류세는 오로지 인류의 책임이다. - P107

지질시대를 결정하는 것은 지질학자의 몫이고 지질학적 특징이 근거로 있어야 한다. 2015년 파울 크뤼천을 비롯한 12개국 과학자 26명은 인류세가 시작되는 시기를 20세기 중반, 즉 1945-1950년으로 잡자고 주장했다. 외계인이 와서 봐도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지질학적 특징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1950년 지층부터 전 세계 지층에서 방사선이 검출된다. 핵실험을 엄청나게 했기 때문이다. 또 모든 땅에서 콘크리트와 플라스틱이 쏟아져 나온다. 이전 시대에는 없던 것들이다. 생물학적 지표도 있어야 한다. 이들은 닭 뼈가 지표라고 생각했다. 전 세계사람들이 갑자기 닭을 먹기 시작했다. 공장식 양계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 P112

하지만 인류세는 공식적인 용어로 채택되지 못했다. 2024년 3월 5일 국제지질학연합IUG 산하 제3기 층서 소위원회는 인류세 도입안을 반대 66퍼센트로 부결했다. 그렇다고 해서 과학자들이 지구 시스템에 미치는 인류의 영향을 통째로 부정한 것은 아니다. 다만 세계 지질학계가 지질 구조에서 확인할 수 있는 지질학적 증거가 새로운 지질시대를 구분할 정도로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에 서로 합의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여섯 번째 시작점은 여전히 홀로세로 남게 된다. 그리고 지금 일어나고 있는 엄청난 사건은 인류세가 아니라 진행 중인 인류세 사건 ongoing Anthropocene event으로 보아야 한다는 게 지질학자들의 결론이다. - P112

어느 인간이 나중에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나는 대형 포유류를 대표해서 이렇게 말하고 싶다.
"행복한 대형 포유류는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평화롭게 살지만, 불행한 대형 포유류는 모두 같은 이유로 멸종한다. 바로 인간 때문이다." - P193

나는 세 번째 대멸종의 목젹자로서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히 남긴다. 최고 포식자는 반드시 멸종한다. 또 최고 포식자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생물량이 가장 많았던 생물은 반드시 멸종한다. 보통 두 가지를 겸하는 일은 없다. 먹이 피라미드의 가장 위를 담당하는 최고 포식자는 생물량이 적고, 생물량이 가장 많은 생물은 먹이 피라미드의 아래쪽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혹시 아는가? 최고 포식자이면서 생물량도 가장 많은 별난 생물이 등장할지. 만약 그렇다면 그 생물 종은 지구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생명일 것이다. 가장 성공적이지만 대멸종의 시기에는 가장 파멸적인. - P249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으니 온도는 당연히 높았다. 전 지구가 초열대 기후 지대가 되었다. 매일 비가 쏟아졌다. 식물의 입장에서는 천국이었다. 온도 높아. 물도 많아! 광합성에 필요한 모든 조건을 갖추었다. 늪지뿐만 아니라 평원과 산에도 아름드리나무가 가득했다. 에메랄드빛 초록으로 뒤덮인 지구의 공기는 습했으며 세상은 생명으로 가득했다. 광합성의 결과는 무엇인가? 첫 번째 결과는 화학에너지 생성이다. (중략) 두 번째 결과는 산소 기체 생성이다.
- P258

달려도 숨이 차지 않는다. 조금만 먹어도 에너지 효율이 좋아 무럭무럭 성장한다. 이런 시대에 내가 등장했다(인용자주: 3억년 전 메가네우라의 말). 천국이 따로 없다. 산소가 풍부한 공기는 거대한 동식물의 성장을 촉진한다. 게다가 산불도 자주 일어난다. 산소 농도가 높으니 마른 나무가 쉽게 불에 타기 때문이다. 잦은 산불은 생태계를 젊게 유지하는 일등공신이다. 오래된 숲을 없애고 새로운 생명을 위한 길을 열어준다. 산불은 성장과 쇠퇴, 재생이라는 역동적인 리듬을 만들어 자연이 끊임없이 변화하게 만들어준다.
- P259

삼엽충이 고생대 바다에서 성공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세상을 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눈을 개발했다. 눈이 생기기 전 고생대 동물의 삶은 매우 힘들었다. (중략) 입을 벌리고 다니다가 누군가 입에 들어오면 맛있게 먹고, 내가 누군가의 입에 들어가면 재수 없게 죽는 거였다. 우리 삶에는 목표라는 게 없었다. 그런데 자연사에 새로운 장이 시작되었다. 생명에게 눈이 열리자 각자의 삶에 목표가 생기기 시작했다. 우리는 누구로부터 도망가고 누구를 쫓아가야 하는지 한눈에 알았다. (중략) 심지어 눈을 통해 동료들과 신호를 주고받을 수도 있었다. 생명의 색깔과 모양이 다양해졌다. 그리고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눈이 등장하자 생명의 다양성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생명의 빅뱅이 일어났다.
- P295

혐기성 세균 하나가 굶주림을 참지 못하고 호기성 고세균 몇 마리를 꿀꺽 삼켰다. 그런데 웬걸! 호기성 고세균이 소화되지 않았다. 삼킨 호기성 고세균은 혐기성 세균 안에서 함께 살게 되었다. 혐기성 세균은 높은 산소 농도 환경에서도 자기 안의 호기성 고세균이 산소를 처리해 주어서 안전했으며 호기성 고세균이 만든 풍부한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호기성 세균 역시 생존을 위한 여러 작용은 혐기성 세균에게 떠맡긴 채 자신은 에너지 생산에만 집중하면 되니 이득이었다. 혐기성 세균과 호기성 고세균이 공생이 시작된 것이다. 호기성 고세균은 혐기성 세균에 들어가면서 미토콘드리아로 이름을 바꿨다.
- P313

죽음은 단순한 종말이 아니라 발달, 유지, 적응을 촉진하는 역동적인 과정이다. 정교하게 프로그램된 세포의 자멸은 세포의 생명 주기를 조절하며, 보다 넓은 개념의 죽음은 유전자 변이와 자연 선택에 의한 생명의 영속과 생태계의 다양성을 보장한다. 따라서 죽음이라는 생명의 능력은 지구 생명체의 복잡성과 회복력의 원천이다. - P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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