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책을 읽으면서 나중에 메모해 놓고 싶은 부분에 포스트잇을 붙여 놓는다.
책에 따라서는 한개도 안 붙이고 훌훌 읽어버리는 책도 있고, 책에 따라서는 알록달록 포스트잇이
잔뜩 음표를 그리고 있는 경우도 있다. (책등의 반대는 뭔가요? 설마 책배는 아니죠? 누구 아는 사람 있으면 좀 알려주세요;;)
무튼 이렇게 포스트잇을 붙이며 책을 읽고,
다시 처음부터 포스트잇으로 표시해 놓은 곳을 찾아 메모를 하며,
이번에는 포스트잇을 한개씩 떼어낸다.
때어낸 포스트잇은 침대 머리맡에 있는 책장에 조로록 붙여 놓고,
다음번 책을 읽을 때 우선적으로 활용하거나
거꾸로 반으로 접어서 노트북 자판 사이의 먼지와 3종털(고양이털,개털,사람털(그러니깐, 머리카락요 ^^;))을 꺼내는데 쓴다.
야밤에 갑자기 포스트잇 이야기를 꺼낸 것은
얼마전 술자리에서 덥썩 꺼내 준 <파리에서 달까지>가 생각나서이다.
꽤 좋아하는 책이었던만큼 포스트잇이 그야말로 덕지덕지...라고 말고, 알록달록이라고 하자, 붙어 있었는데,
한참 읽는 중이었거든.
그렇게 읽는 중의 책을 즉흥적으로 꺼내 준 적이 처음이라 나의 포스트잇(메모)들이 고스란히 함께 넘어가고 말았다.
메모.라는건, 대부분 좋은 경우이지만, 그러니깐, 되새김질하고 싶은 경우,
오타인 경우도 있고, 뭐 이런 병신같은 이야기가 싶은 경우도 있고, 나중에 비교해보기 위해 모으는 사례들도 있고,
여러가지 경우가 있지만, 어쨌든 다시 되새길 문장들인 것.
똑같은 책을 읽고 비슷한 감상으로 즐거워하더라도
그 책에서 읽어내는 문장들은 꽤 틀릴 것이다. 이것은 밑줄긋기를 보고 공감하는 것과는 또 다르다.
수많은 문장 중에서 마음의 체에 걸러지는 몇개의 문장들이니깐.
독서는 가장 사적인 행위 중에 하나다.
내가 책을 많이 읽는다고 감탄하던 어떤 남자는 그 감탄의 그림자에
책을 읽으며 상대방을 외롭게 하는, 혹은 거칠게 말하면 상대방을 내치는
그 마음의 쌀쌀함에 대한 서운함을 내비췄다.
독서행위는 고독을 선택한 것이라는 글을 어디서 읽었더라.
니가 무얼 먹었는지 말하시오, 내가 니가 누군지 말해줄테니.
라고 말한건 사바랭
니가 무얼 읽었는지 말하시오, 내가 니가 누군지 말해줄테니.
라고 말한건 어설프게 사바랭을 따라한 하이드
누군가의 서재를 보고, 그 사람에 대해 짐작하는건(아니, 짐작하고 싶어하는 건!)
아마도 책 꽤나 좋아하는 사람들의 습성일 것이다.
누군가가 읽은 책을 보고 그 사람의 포스트잇을(메모를) 보는 것은
어쩌면 사적인 서재에서도 가장 사적인 부분으로 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포스트잇을 붙인 사람에 대한 지극히 사적인 관심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긴 하다.
책을 건네주는 그 찰나의 순간에
포스트잇이 떼어 내기에 너무 많았기도 하지만, 마음을 보여주고 싶었던 심정도 어느 정도는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런 사람이에요. 하고.
<파리에서 달까지>란 레파토리는 조금 건조한 문명과 문화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니깐 나는 인간의 '문명'과 '문화'에 대해 이렇게 생각해요. 라고 이야기하고 싶었을 수도.
알랭 드 보통의 연애 3부작 같은 경우라면 어떨까.
당연히 이치의 책에도 포스트잇은 덕지덕지 붙는다.
만약 포스트잇이 여전히 붙어 있는 그 책을 건네준다면, '나는 이런 사랑을 원해요' , '나는 이런 사랑은 싫어요' 라는
은근한 메세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서,
나에게 포스트잇은 마음의 갈피를 표시하는 지극히 사적인 무엇으로 여겨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