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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친절
이남희 지음 / 문이당 / 2005년 8월
평점 :
차가운 바람 가득한 이 세상에 / 너희들은 발가벗은 아이로 태어났다 / 한 여자가 너희들에게 기저귀를 채워주기 전까지 / 너희들은 가진 것 하나 없이 떨면서 누워 있었다...
베르톨드 브레히트의 시 <세상의 친절>의 1연을 따온 것이다. 소설과 제목이 같아 얼추 짐작했겠지만, 그렇다. 이 소설은 이 시를 모티브로 한 것이다.
시라는게 서정성을 기반으로 한 것이지만, 이토록 잔인하고 냉혹한 내용을 담을 수도 있다는걸 깨달았다. 하물며, 시보다 몇 백자, 아니 몇 천자나 더 많은 소설에서는 오죽하랴.
지방에서 살다가 서울 인근 신도시로 이사한 최유리는 식물인간인 상태로 병원에서 지내는 아버지를 내쳐두고 다른 남자와 바람이 난 어머니로 인해 큰엄마네 집에 얹혀 살게 되면서 점점 밖으로 나돌아다니는 취미를 갖게 된다. 그런 취미활동으로 우연히 흠모하는 자기 학교의 작문선생인 김승재를 발견, 그 후로 계속 그를 미행하게 된다.
한편, 김승재는 어렸을적 아버지를 여의고, 곧이어 어머니가 다른 남자에게 시집을 가게 되어 할머니 슬하에 홀로 자라게 된다. 할머니의 이해 할 수 없는 폭력을 동반하는 지독한 애증과 학창시절의 수치스럽고 치욕적인 폭력의 경험에 의해 그 고통이 ‘해리성 인격장애’라는 소위 말하는 다중인격을 불러일으켰고, 밤마다 자신도 모르는 행동을 일삼게 된다. 다음날 전혀 기억할 수 없는 행동의 끝에 최유리의 친절 아닌 친절로 인해 어느날 일어났던 전철 사고의 범인이 자기라는 확신을 하고 결국은 자살을 하고만다.
세상은 냉혹하기 짝이 없다. 시베리아 벌판처럼 시리고 냉혹한 현실의 완벽한 희생양이 되어버린 김승재, 그와 별반 다를 것 없는 환경에 놓인 최유리, 그리고 비슷 비슷한 주변인물들. 세상은 마치 한 사람을 옥죄여 가만 두지 않고, 결국은 죽음에 이르게끔 해야 통쾌하다는듯 보인다. 그래서 이 소설은 어쩌면 허구성에 바탕을 둔 소설의 특징보다는 너무나도 잔인한 리얼리티만을 보여준듯 하기도 하다.
뉴스엔 아직도 이러저러한 이유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이지만, 그런 사람들이 어리석다고 마구 욕해대는 우리는 그런 사람들과 완전히 무관하다고 할 수 있을까? 냉혹한 세상에서 더 냉혹한 인간들에게 치이지 않았다면, 그런 극단적인 방법을 택했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차갑고 시린 현실에서 우리가 조금만 더 따뜻한 시선을 가지도록 하자는 말에 뜬구름 잡는 어리석은 소리냐고 반문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그저 씁쓸함만을 남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