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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로 만든 배
전경린 지음 / 생각의나무 / 2005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스물한살의 끄트머리에 있는 내가 스물다섯살의 은령이라는 주인공을 만나 그녀의 연애와 20대의 중반인, 스물다섯이라는 나이에 직시하게 되는 현실을 간접적으로 경험한 느낌은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결혼 적령기가 다가옴에 따라 세상의 높은 장벽 앞에서의 어쩔 수 없는 무력감과 그래도 나는 남들과는 다르게 살아보겠다고 마음이 따르는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자신감과의 갈등. 이 모든것들은 대학에 갓 입학해 한 해를 보낸 나에게는 그저 먼 얘기일 수 밖에 없다는 느낌이다. 마치 아직까지도 취업의 높은 문턱을 실감하지 못하는 것 처럼.
전경린의 소설은 처음 읽는다. 읽고 나서의 느낌을 뭐라고 해야할까. 습기가 꽉 들어찬 방에 갇혀있는, 너무나도 사실적인 묘사에 낯뜨거운 느낌과 함께 느껴지는 끔찍함 등, 그닥 좋은 느낌은 받을 수 없었다. 한없이 어두운 굴 속에 갇혀있는 듯.
25살의 주인공 은령은 어머니가 새아버지를 만나 개가하고나자 의붓오빠들에게 시달림을 겪은채로 암울한 유년을 보낸다. 20대가 되고 나서는 '선모'라는 지극히 평범한 청년을 만나 결혼을 하려고 하지만, 이러한 복잡한 가정환경에 처해있는 은령을 못마땅하게 여긴 선모 부모의 반대로 은령은 결혼은 일찌감치 포기하고, 지방 소도시로 내려와 지방방송국의 구성작가로 일하게된다. 그러던 중 시인인 '유경'을 만나게 되고, 또 '유경'과 절친한 술집주인인 '이진'도 알게되어, 이 둘과의 위태로운 사랑을 하게 된다. 결국 위태로운 사랑의 끝에 셋은 맞딱드리게 되고, '유경'은 괴로움을 이기지 못해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이진'은 오랜 시간 여행을 다녀온 끝에 은령을 아주 잊은듯이 대한다. 그 무렵 은령의 새아버지와 어머니는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게 되고, 의붓동생을 떠안아 그들이 살던 아파트에서 의붓동생의 어머니 역할을 하며 살아간다.
'사랑'이라는건 순수한 인간의 감정이지만, 그 감정까지도 지극히 제도적으로 묶어놓는게 우리 사회가 아닐까. '남성'은 꼭 '여성'을 사랑해야하며, '여성' 또한 꼭 '남성'을 사랑해야 하는 이성애, 결혼한 사람을 사랑하는건 '불륜'이라는 이름으로 매도하고, 한 사람이 동시에 많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 또한 지극히 비정상적으로 보여지게끔 하는건 어쩌면 이 사회가 정해놓은 '룰'이다. 우린 실제로 앞에 열거했던 저런 사랑들 중 하나만 포함되더라도 지극히 비정상적인 사람으로 못박아두니까.
하지만 전경린은 이런 '룰' 속에 있는 통속적인 사랑을 거부하고 철저히 본질적사랑을 다루었다. 이 부분이 은령이 두 남자를 동시에 사랑하는 부분이라고 치면, 하나의 본질적인 부분이 더 있으니, 바로 혈연으로 이루어진 가족 이데올로기를 벗어나 의붓동생에게서 '어머니'라는 소리를 들으며, 어머니 역할을 해 주는 부분인 것이다. 여기서는 전경린 특유의 '양부의식'을 타파한 진정한 '가족애'를 표현하는 부분이라고 보여진다.
'제도'를 벗어나 '본질'을 바라보는 소설을 읽을 때엔, '제도' 자체가 무척이나 무의미하고 그저 이유없이 구속하는 세상의 제도로 느껴질 뿐이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우리 누구나 '본질'을 지향하고자 하더라도 '제도'에 구속받을 수 밖에 없다. 그게 현실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