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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만원 세대 - 절망의 시대에 쓰는 희망의 경제학 ㅣ 우석훈 한국경제대안 1
우석훈.박권일 지음 / 레디앙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읽고나서야 난 내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불쌍한 세대라는 것을 알았다. 굶주림을 겪지도, 민주화 투쟁을 해 보지도 못한 지금의 젊은 세대가 언뜻 보면 참 좋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고 여겨질지 모르지만, 결코 그렇지 않음을 새삼 느꼈다고나 할까. 취업난이라는 말을 대학에 처음 들어갔을 때 부터 들었으니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대한민국에 청년실업이 사회 문제로 자리매김한 것으로 보여진다. 그리고 그냥 그러려니 했던 그 문제가 막상 내 문제가 되기 시작하자 심히 우울해지기 시작했다. 비단 나만 이런 우울함을 느끼지는 않겠지만, 아주 소수의 바늘구멍을 통과한 주변인들로 하여금 인생의 루저라고 느껴질만큼의 열등감을 맛보지 못한 사람은 아마 이 기분을 모를 것이다.
대학문을 나서면 정글같은 사회가 도사리고 있다고 생각은 했지만, 대한민국의 88만원 세대가 지금의 20대라고 정의내린 이 책을 보니 더더욱 움츠러들 뿐이다. 전 세계적인 문제이지만, 유럽의 각 국과 미국이 현명하게 대처한 사례들은 이 책이 출판된지 삼 년이 지나고 있는 지금도 대한민국이 썩 달라진게 없는 걸 보면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이 말은 즉, 우석훈 박사는 크리스마스 캐롤을 빗대어서 10대들에게 지금의 암울한 현실을 좀 더 밝은 미래로 바꾸기 위한 실천 방안을 친절히 설명해 주었지만, 막연히 바리케이드를 치고 짱돌을 들라고 한 20대는 그저 이 무서운 현실 앞에서 그러기엔 차마 엄두를 낼 수가 없어진다. 사회의식을 갖지 않고, 개인주의적이 되어 버린 20대라고 비하해도 어쩔 수 없다는 건 바로 88만원 세대라는 무서운 단어가 의미해주지 않을까.
2학년 때 교양수업의 하나로 취업 준비 가이드에 관한 과목을 수강한 적이 있다. 매주, 각 기업체의 인사 관련 직원들이 나와서 강연을 했었는데 이들이 공통적으로 했던 말은 '현실을 직시하고, 저학년 때부터 취업을 준비하라'는 말이었다. 다들 그 말을 새겨 들으며 고무되었던 분위기였고, 나 또한 그저 학점에만 신경 썼던 나 자신의 어리석음을 스스로 질타하곤 했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지금의 세대를 착취하는 기성세대로서의 그들은 정말 우리를 그렇게 내몰아야 했을까. 그들의 20대 였을 때와 지금의 20대는 너무나도 다름을 알았을텐데 말이다.
정말 훌륭한 책이었다. 해박한 경제학 지식을 곳곳에 적용해서 사회를 분석했음에도 우리나라에서는 도저히 이론 접목이 안 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불균형을 의미할 것이다. 아주 번쩍이는 대안들 또한 매우 좋은 생각들이지만, 정말 당장 코 앞에 처해진 현실을 외면하고 대안을 받아들이고 나아가기엔 사실 용기가 없다. 나 혼자만 짱돌을 든다고 사회가 바뀌는 일은 없을테니 말이다. 그러나 점점 지쳐갈 때 쯤인 지금, 이 한 권의 책이 내게 얼마나 큰 위안이 되었는지 모른다. 적어도 지금의 우리가 잘못하거나 능력이 없어서 그 문을 통과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는 위로 하나로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