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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잠시만 도망가자 - 잘해야만 했고 버텨야만 했던 나를 구하는 법
이종범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3월
평점 :
참 많이도 도망치려고 노력하고 있는 삶이다. 늘 내가 하는 생각 "그래 나는 한국이랑 맞지 않아." 열심히 살지 않으면 이상하고 게으른
인간으로 취급받는 이런 문화. 학교 다닐 때는 더 심했다. 17살에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처음으로 야간자율학습이라는것을 했는데 충격적이었다.
어떻게 밤까지 감옥처럼 학교에 갇혀있는단 말이지?! 그것도 교도관처럼 지키고 있는 선생들의 감시하에 말이다. 돌이켜보면 다들 내가 잘되기
위해 하는 짓거리이긴 했지. 그리고 월급받는 사람들이 그저 자기 직장에서의 프로세스를 지키며 일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었는데... 이런 10대의
감옥살이 문화는 아직도 그대로이다. 누구보다도 이런 걸 견딜수 없었던 나는 늘 담임선생에게 찍혔고, 별별 핑계를 다 대며 그날 자율학습을 빠질
궁리 투성이었다.
대학생이 되고 자유로운 생활은 어찌도 이렇게 빨리 흘러가는지... 점점 사회로 나가야 되는 때가 다가오게 되자 나는 어떻게든 학교라는
울타리에 더 있고 싶은 마음에 예비역들보다 더 오래 학교를 다녔다. 그 결과 6년이나 지나서 졸업을 했다. 졸업을 한 후에도 인턴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쓰디쓴 맛을 보게 되었고 얼마 못가서 퇴사. 백수생활, 다른 직장으로의 입사, 그리고 또 퇴사.... 대학원 준비, 낙방...
20대의 나는 흔히들 사는 삶과 다른 행보를 걷는다. 결국 지금 또 다시 직장생활 중...
게으른 여자의 30년 인생. 요즘은 결혼하라는 성화에 쪼임을 당하고 있는 중. 피곤하다. 이런 내가 잡게 된 책! <그래 잠시만
도망가자> 제목부터가 내 인생을 표현해주고 있는 듯 하다. 웹툰 '닥터 프로스트'의 저자가 쓴 에세이. 그림에는 전혀 소질이 없는 나는
만화책은 읽지만 컴퓨터나 핸드폰으로 뭔가를 보는 것을 싫어해서 웹툰은 좋아하지 않는데 꽤 유명한 웹툰인가보다. 이 웹툰 작가가 나와는 비슷한
성향을 갖고 있고, 조금 느리고 여유있게 살아가는 스스로에 대한 소개를 해 준다. 여러 부분에서 공감이 간다.
놀라웠던 건, 그런 성향의 저자임에도 88만원으로 유럽여행을 했다는 점! 이런 여행을 주제로 한 웹툰이 엄청 기대가 되는데 아쉽게도 출판이
거절되었다고 한다. 책을 덮고도 여행을 좋아하는 나에게 남은 건 바로 짧은 여행에 대한 경험담!!!
평범한 직장인과 웸툰 작가는 생활도 다르고 경험도 다르기에 모든 부분을 공감할 수는 없었지만, 그저 제목만으로 내게는 위로가 된다. 내게
도망은 '여행'인데, 사회의 찌든 때가 점점 묻어나는 삶에 익숙해져서인지 요즘은 여행조차도 욕구가 별로 생기지 않는다. 더 이상 도망다녀서는 안
된다고 느끼는 내가 되는 걸까.... 슬프고 씁쓸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