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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여, 내 손을 잡아라 ㅣ 밀리언셀러 클럽 10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아, 재밌다! 몹시 재밌다!
지하철에서 읽다가 중요한 부분을 놓치기 싫어서, 지하철에서 내려서 집에 가는 시간이 아까워서 벤치에 앉아서 읽고 갔다!
데니스 루헤인의 켄지-제나로 시리즈의 두번째 이야기 <어둠이여, 내 손을 잡아라>는 지금까지 읽어본 켄지-제나로 시리즈 중에서 가장 속력이 붙었던 책이고, <가라, 아이야, 가라> 다음으로 재밌었던 소설이다.
연쇄살인이 벌어지고, 기이한 인연으로 거기에 얽히게된 켄지는 경찰과 협력하여 연쇄살인범을 찾아나서지만, 물론 현실에서도 그렇고 소설에서도 그렇지만, 범인을 잡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다. 그 와중에 사랑하는 여자의 가족이 협박을 당하고, 앤지가 협박을 당하고, 소중한 친구는 죽어나가고....
그래, 여기까지는 여타 다른 연쇄살인범을 다룬 스릴러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수도없이 쏟아져나왔던 연쇄살인범 관련 스릴러 소설들 중에서도 데니스 루헤인 소설이 더 특별했던 이유는 뭔지 아는가?
데니스 루헤인은 끊임없이 고뇌하고 절망하기 때문이다.
켄지-제나로 전 시리즈를 관통하는 주제들은 결코 뻔하지 않은 선과 악에 대한 이야기, 무엇보다 나 하고 싶은대로가 제일 우선인 뻔뻔하고 잔혹한 범죄자들, 폭력의 대물림에 대한 끝나지 않는 고뇌같은 것들이 되겠다.
아버지로 부터 폭력을 견디고 살아왔던 젊은이 켄지는 왜 폭력에서 자유로울수 없을까.
그 자신은 타인에게 무차별 폭력을 가하는 인간은 되지 못하면서도, 그의 주위는 온통 폭력이다. 가장 친한 친구, 폭력을 옷처럼 걸치고 다니는 부바라던가, 어쩔수 없이 도움을 빌리게되는 온갖 종류의 조폭들, 직업적으로 접하게되는 여러가지 잔혹한 사건들.
이유없는 폭력을 증오하고, 자신이 살아온대로 자신이 보아온대로 행동하려 하지는 않는 남자앞에 펼쳐지는 주먹을 부르는 사건들. 그런데도 켄지는 폭력에서 자유로울수 있을까.
켄지-제나로 시리즈 어떤 책을 보아도 책에 등장하는 범죄자들은 켄지를 도발한다.
"내가 이러는데 니가 폭력을 사용하지 않을수가 있을까? 너 역시 폭력적이지 않은 인간이라고 자부할수 있나?"라는 듯 비웃으면서.
이 질문은 켄지가 아니라 우리에게 던져지는 질문이 아닐까 싶다.
틈만 나면 뉴스에 등장하는 잔혹한 범죄자들의 어이없는 범행들을 보면서, 당신은 초연할수 있는가?
내 앞에서 누군가 고문을 당하고 죽어가는데도 당신은 고고하게 인권과 비폭력이나 되세김질 하고 있을수 있을까?
무고한 피해자의 목숨과 야비하기 짝이 없는 범죄자의 목숨은 똑같은 값을 지니고 있을까?
켄지-제나로 시리즈가 특별한 이유는 바로 그런 정답없는 고뇌들에 있다.
켄지가 그렇게 말하듯, 평범한 우리들도 무고한 피해자와 잔학한 범죄자의 목숨이 똑같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피해자의 인권을 가차없이 묵사발시켜버리는 범죄자에게도 인권이 있다고 생각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굳이 누군가 죽어야한다면, 내게 그 선택권이 있다면 누구라도 범죄자의 목을 매달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폭력에서 자유로울수 있는가.
그래도 인간이라고 태어나 살고 있는 잔학한 범죄자들을 보며 욕을 하고 마음속으로 나마 폭력을 퍼부으면서, 폭력에서 자유로울수 있는가.
그런데도 우리는 왜 폭력은 무조건 나쁘다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의 보복성 폭력 역시 폭력이기는 마찬가지 일텐데 말이다.
선과 악은 어떤 잣대로 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선하다며 살아가고 있는 누구나에게도 악은 있다.
누군가 내게 "악"을 저지르면, 나 역시 나를 보호하기 위해 "악"을 저지를 수 밖에 없다.
왜냐면 당하고만 있으면 나는 악에 희생되는 인간이 되어버릴테니까. 누구도 그런 것은 원치 않는다.
끝나지 않는 이야기, 세상을 살아가면서 접하는 수많은 범죄들을 바라보면서 키우게 되는 두려움과 마음속의 폭력들.
우리는 결코 폭력에서 자유로울수도, 폭력에 초연할수도 없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아니, 인간세상은 언제나 그래왔던 느낌이다. 아무리 철학을 논하고 사상을 논해도, 결국 우리는 짐승과 다름없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자신의 아이들에게 폭력을 가하는 부모들, 그 폭력을 대물림하거나 그 폭력을 거부했던 아이들, 부모의 눈을 피해 집밖으로 나와 자유를 찾으려던 아이들은 그런데도 그 폭력에서 결코 자유로워질수 없다.
부모가 폭력을 물려주었 듯, 아이들의 암흑은 결코 거치지 않고 오랫동안 마음속에 자리잡아 또 언젠가 다른 누군가에게 전염되겠지...
연쇄살인범들이 그랬고, 켄지와 제나로가 그랬듯이.
어둠과 손을 잡느냐, 어둠을 뿌리치느냐-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우리를 대변하는 가치들이 생겨나게 되겠지만, 그 어떤 것을 선택하더라도 우리는 어둠에서 완전히 멀어질 수는 없다.
폭력은 두려움이고, 두려움은 어둠을 낳고, 어둠이 또다시 폭력을 낳는다.
우리는 그렇게 뫼비우스의 띠를 끊지 못한 채 바보처럼 살아가고 있다.
참 잔인하고도 쓸쓸한 이야기이다.
켄지-제나로 시리즈 중에서는<가라, 아이야, 가라>와 함께 가장 재밌고 가장 피가 끓고 가장 처절하게 절망적인 이야기였다.
어쩌다보니 이제 켄지-제나로 시리즈는 거의 다 읽어서 <신정한 관계>하나 남았다.
시리즈가 출간되는대로 읽느라 시리즈를 순서대로 읽지 않아서 켄지-제나로의 관계들이 헷갈리기도 해서 전 시리즈가 다 출간되면 언젠가 시간내서 차례대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 정말이지 가슴이 벅찰 정도로 멋진 책이지 않은가?
p.s. 날개에서부터 <어둠이여 내 손을 잡아>라고 표기되어있는데, 책 내에 오자가 너무나 많아서 아쉽다.
맞춤법 실수부터, 문장기호 실수, 띄어쓰기, 오타까지- 조금더 신경을 써주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