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천 개의 눈을 가지고 있다
코넬 울리치 지음, 이은경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한 사람의 인생을 (-그것도 좋아하는 작가라던가 배우라던가 화가라던가의-) 뒤늦게 알게 되는 것은 무척 신비로운 일이다.
지나간 세대의 지나간 역사속에서 언젠가 내가 느꼈을 법한 감정을 읽는다면, 그것도 무척 특별한 일일테고.
왜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책보다 책 말미에 적혀진 코넬 울리치의 인생 이야기가 더 마음에 와 닿았는지 모르겠다.
<밤은 천개의 눈을 가지고 있다>은 바로 얼마전에 다 읽었는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코넬 울리치의 책들에 비해서는 다소 재미가 떨어지는 책이긴 했지만, 그래도 코넬 울리치의 책은 어떤 것이든 무조건 기다리는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결코 실망하게 되는 책은 아니었다.
게다가 "밤은 천개의 눈을 가지고 있다"라니....제목부터 먹고 들어가지 않는가?

어느 날 형사 숀은 늘 그렇듯 강가를 걷다가, 자살하려는 한 여인을 구하게 된다. 이제 갓 20살된 미모의 여인, 명품으로 치장하고 값비싼 자동차를 타고다니는 이 여자는 왜 자살을 하려고 했을까.
그리고 밤새, 이 여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저 하늘에 떠있는 별이 두려워 삶을 끊으려고 했던 이유를...
부유한 남자의 외동딸인 진 레이드라는 이 여자는 어느 날 하녀로 부터 불길한 소리를 듣게 된다. 얼마 후 출장을 떠나게 되는 아버지 할란 레이드가 탄 비행기가 큰 사고에 휘말리게 될 것이라는 것을.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무시하면서도 진은 어쩐지 마음이 찜찜해 하녀를 해고하게 되고, 어버지는 출장길에 오른다.
자꾸 이상한 예언이 마음이 밟혀 불안불안해 하던 도중, 아버지가 탄 비행기는 진짜 사고를 당하게 되고, 탑승객 전원이 죽게된다.

비참하고 절망적인 심정으로 해고한 하녀를 찾아간 진은 하녀에게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한 남자를 만나게 되고, 그는 불행한 일은 일어났으나 그는 살아돌아오게 될거라고 또다시 예언한다.
그리고 몇일후, 죽은줄로만 알았던 아버지는 진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두 부녀는 불의의 사고를 예측한 예언자를 찾아가게 되고, 그의 능력을 은밀히 비웃고 있던 아버지 할란 레이드는 이 특별한 예언자 제레미야 톰킨스에게 완전히 매혹되고 만다.
그는 대박칠 주식을, 딸의 오래전에 사라졌던 물건을 눈앞에 보여주듯 이야기 해주고,
어느 날, 할란 레이드의 죽음까지 예언하고 만다.

코넬 울리치의 인생은 절망적이고 우울했다. 그가 살아생전 인정받지 못한 작가여서가 아니라, 어쩌면 태생이 그랬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에게 예정된 죽음이 있었다고, 어린 시절부터 생각했다는 자, 그가 코넬 울리치였고, "예언"같은 터무니 없는 소리를 지껄이면서도 충분히 스릴감을 주고 있는 이런 소설을 쓰게된 것도 그러한 배경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 소설에는, 현실적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많은 오류가 들어있고, 너무나 환상적인 우연들이 겹겹히 겹친다.
그런데도 진부하지 않은 것, 조작된 트릭처럼 부자연스럽지 않은 것은 단연코 코넬 울리치의 필력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비현실적이나 시적으로 표현되는 환상적인 장면들, 너무 당연하면서도 괜히 마음이 쓰이는 문장들, 아무것도 아닌데서도 아슬아슬한 스릴을 찾는 탁월한 연출, 아름다운 묘사력과 절망적인 표현들. 그 모든 코넬 울리치만의 매력들이 모두 담겨있는 책이다.
메마르지만 안개낀듯한 코넬 울리치의 글속을 헤메이는 것만으로도, 나는 그의 절망과 우울을 엿본 기분이 든다.
그게 내가 코넬 울리치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히치콕이 가장 좋아하는 소설가로 코넬 울리치를 꼽았던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뭐라도 좋으니 코넬 울리치 소설이 쏟아져 나왔으면 좋겠다. 코넬 울리치 선집은 왜 나오지 않는 걸까?
그래도 어느 정도 매니아층이 있는 소설가임은 분명한데 말이다.
코넬 울리치의 소설은 번역하기 힘들다는 얘기를 줏어들은 적이 있는데, 아쉽게도 이 소설의 번역은 지금까지 내가 보았던 코넬 울리치의 소설번역들 중에서도 조금 실망스러운 편이었다.
번역가의 재치와 센스가 조금 부족했던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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