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와 모델 - 화가의 붓끝에서 영원을 얻은 모델 이야기 명화 속 이야기 5
이주헌 지음 / 예담 / 200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자수가 들어간 검은 자켓과 물결처럼 출렁이는 레이스 치마, 패셔너블한 모자,
애정어린 눈길로 뒤를 돌아보는 눈이 쳐지고 얼굴이 하얀 착해보이는 여자.
옆구리에는 낡은 책을 끼고 낙엽을 밟고 걷다가 뒤를 돌아보는 캐슬린이 너무나 아름답다.
제임스 티솟이 활동하던 시기에 그는 지나치게 테크닉만 뛰어난 작가로 비난받았다고는 하지만,
그의 그림은 그야말로 늦가을 햇빛처럼 찬란하다.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찬란한 햇빛의 느낌, 나뭇잎 사이로 비쳐드는 따뜻한 햇빛의 느낌,
눈이 부시도록 찬란하고 아름다운 풍경속에, 티솟에게는 더없이 사랑스러운 여인 캐슬린의 모습이
무척이나 아름답고 순수하며 찬란하다.

<화가와 모델>이라는 이 책은, 유명한 화가들 뒤에 묻혀져
그 존재감이 희미할지도 모르는 모델들의 모습을 화가의 이야기와 함께 담아내고 있다.
그들은 단순히 모델일 뿐만 아니라, 그들은 때로는 화가의 연인이기도 하고,
때로는 가족이기도 하고, 때로는 절친한 이웃이기도 하며, 때로는 자기자신이기도 하다.
화가의 인생에 있어서 모델이 빠질수 없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모델보다 그림을 보기에 치중하지만,
화가가 집착하고 있는 모델에게는 분명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다.
클림트의 그림에서 아델레 부인의 나른하고 요염한 이미지가 없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것은 팀버튼의 영화를 떠올리면 조니뎁을 떠올리게 하는 연상작용과도 비슷하다.

이처럼 이책은 작가의 아우라가 되어버린 그림속의 모델들과 화가의 관계성과 삶에 대한 책이다.
책을 보는 내내, 화가의 삶보다 알려져있지 않을 것이 자명한 그림속 모델들의 삶을
어떤 방식으로 추적해냈을까...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만약, 내 주위의 누군가가 화가이고, 나를 그린 작품이있었더라면, 내 인생도 이렇게 추적이 가능할까.

평생 이방인처럼 살아온 고흐에게는 다정한 가족같은 이웃 룰랭가족이 있었고,
유독 동생과 끈끈한 정이 있었기에 주위의 빈축을 사기도 했던 에곤 쉴레에게는
말라깽이지만 아름다운 동생 게르티가 있었다.
술주정뱅이에 가난뱅이, 무명화가였던 모딜리아니의 인생을 사랑으로 수놓았던 정숙한 잔 에뷔테른은
모딜리아니가 요절하고나자, 뒤이어 임신한 몸으로 자살을 했고,
보디첼리는 22세에 요절한 미녀 시모네타를 평생 기억하며 그림속의 삶을 부여했다.
주위의 비난에 아랑곳하지 않고 아이 둘이 딸린 캐슬린과 짧은 인생을 함께 살면서
일찍 생을 마감해야했던 그녀의 임종까지 지켜주었던 제임스 티솟의 사랑,
가난한 소녀가장의 파리한 얼굴에 반해 그녀를 모델이자 딸처럼 여기고 평생을 돌봐주었던
키다리 아저씨같은 프레더릭 레이턴의 부성애,
장애인으로써의 소외감을 몽마르뜨의 창녀와 무희라는 소외받은 직업에 대한 애정으로 이끈
로트렉의 쓸쓸한 사랑,
사고로 전혀 움직일수 없는 폐쇄적인 상태에서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모델로 삼았던
피가 뚝뚝 떨어질것처럼 고통스러운 프리다 칼로의 자화상들.

이 모든 것은 사랑이지만, 연애 감정의 사랑을 넘어서 그림속의 인물들의 영혼에 대한 더 깊은 사랑이리라.
그들은 대상을 바라보고, 그들안의 감정과 그들의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 또한 그려낸다.
애욕과 사랑과 정, 동정과 동경, 모델과 자신이 하나가 되는 영혼적인 무아지경.
천성적으로 외로운 영혼을 타고났을지 모르는 화가들을 위로하며 사랑해주었던 찬란한 모델들.
꼼꼼하고 어여쁜 편집과 친절한 해설이 무척 마음에 드는 이 책을 바라보면서 느낀 따뜻한 감정이
바로 이런 좀 더 원초적이며, 고차원적인 사랑이었다.

이 가을, 참 읽기 좋은 책.
그림 속에 빠져들어 사랑이 담뿍 담긴 눈빛의 그녀들과 함께 걷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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