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마음을 들킨 위대한 예술가들 - 은밀하게 엿보는 그들의 숨겨진 욕망 읽기
서지형 지음 / 시공사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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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든 영화든 만화든, 독자에게 관심을 불러일으켜 팔아야하는 상업예술에서
광고란 최대한 자극적으로 독자를 자극해야한다는 것은 어찌보면 마땅한 사실.
"속마음을 들킨 위대한 예술가들"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처럼,
위대한 예술가들의 욕망과 동성애, 컴플렉스에 초점을 맞춘 이 책의 광고 소개 문구 역시 다르지 않다.
나 역시 그런 자극성에 끌려 선택한 책이지만,
이 책은 선정적이고 자극적이라기보다는 슬프고 처연한 느낌을 준다.
단순히 성애나 식욕에 품는 단순한 의미의 "욕망"의 차원을 넘어서서,
예술가들안에 내재된 컴플렉스의 발로로써의 욕망을 파해치는 이 소설을 보면서,
몇번이나 나를 돌아보게 되었는지 모른다.
 
똑같은 한가지 사건을 받아들이는데 있어서 고통과 상처를 받는 정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간혹 우리는 자기 입장에서 보았을 때 "배부른 고민"에 휩싸여있는 사람들을 보게되는데,
그 때 그들에게 던지는 비아냥거리는 감정은 "그래도 넌 나보다 낫다"는 질투어린 감정일지도 모른다.
이 책에 등장하는 예술가들의 트라우마는 어쩌면 똑같은 사건을 겪었던 어느 사람들에게는
트라우마라 부를수 없을지도 모르는 인생의 아주 작은 상처 자국일지도 모른다.
더한 일을 겪고도 잘 살아가는 사람과 비교평가를 한다면, 배부른 고민일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가족으로 인한 상처와 그것을 평생의 욕망으로 끌고 나가는 이 예술가들에게서 
내가 느낀것은  "그래서 그들이 예술가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라는 사실이었다.
예술은 고통에서 비롯된다.
상처없는 예술보다 찢기고 불안정해서 공포감마저 자아내는 예술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더더욱 강한 인상을 주게된다.
모든 예술가가 타고나는 것은 천부적인 재능뿐만이 아니라,
천성적으로 타인들보다 상처를 잘 받는 기질이 아닐까.
그들은 어린 시절 자신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차가운 눈길 한자락에서부터 상처받아
평생 그 차가운 시선을 놓치지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초등학교를 입학하기 전-
그러니까 사회에 나와 타인들과 부대끼며 살아가기 전의 세계에는 온통 부모님과 형제자매들 뿐이다.
태어나서 엄마의 젖을 빨고, 엄마의 보살핌을 받으며 살아가는 아이에게 있어
어머니의 존재는 단순히 어머니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나를 만든 창조자인 신이자, 나를 책임지는 어머니이고, 나와 놀아주는 친구일뿐만 아니라
나를 사랑하는 연인이기도 하다.
자식과 부모의 애착이 아주 강한 시절, 부모의 차가운 눈초리 한번, 부모의 냉담한 표정한번이
온 세계가 가족으로 국한되어 수동적일 수 밖에 없는 아이에게 얼마나 큰 의미가 되는지,
어른이 된 우리는 이미 잊어버렸지만, 그것은 분명 우리의 잠재의식속에 남아 하나의 욕망이 될 것이다.
 
조금만 눈치가 있는 사람이라면, 주위에서 흔히 볼수 있는 사람들을 통해서 이러한 사실은 잘 드러난다.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능력밖의 일에도 능해야한다고 자신을 학대하는
웬디 컴플렉스에 시달리는 장녀들이나,
어린 시절의 하나의 충격적인 사건으로 인해 정신의 성장이 마비된 철없는 어른들,
유아기시절의 애정결핍의 결과물로써 연인에게 집착하는 사람들을 보아도 그렇다.
아버지가 없이 자란 여자는, 아버지와 같은 진지하고 성숙한 남자를 원하고,
어머니가 없이 자란 남자는, 어머니와 같은 포근한 포용력을 가진 여자를 원하는 사실-
이것은 그렇게 충격적인 사실은 아니다.
그리고, 이 책에 등장하는 열두 예술가들의 마음에 내재된 욕망 역시 평범한 이들과 다르지 않다.
 
두 어머니를 가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친모에 대한 열망,
두명의 어머니를 가졌기에 이중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또한 이중적인 성정체성을 가진 다빈치가
알듯 말듯한 모나리자의 미소를 만들어낸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자신보다 먼저 태어난 아이를 잃어버린 충격으로 늘 어디를 바라보는지 알수 없는 공허한 눈길로
자신을 응시하던 고흐의 어머니- 성인이 된 고흐가 어딘지 상처받고 나약한 자들을 사랑했던 것,
화려하고 당당했던 고갱에게 순종하며 집착했던 점 역시,
어머니의 공허한 눈길에서 비롯된 자아 대체 의식중의 하나일 것이다.
 
유년기까지 어머니와 두 자매를 잃어버리고 어린 시절이 온통 죽음으로 가득차,
늘 죽음에 가까운 사람들이나 죽음을 형상화 하던 뭉크의 욕망은
어쩌면 죽은 자들에 대한 그리움일지도 모르겠다.
그에게 여자란, 어머니같은 존재- 즉, 일찌기 죽어버리고 자신을 버리고 떠날 공포의 대상,
여자에게 상처받고 싶지 않기 때문에,
죽음의 이미지가 그를 평생 잡아놓을 정도로 매혹적이었음에도 공포스러웠기 때문에,
그렇게도 사랑에 빠지지 않으려 노력하는 바람둥이가 되었을지도 모를 터이다.
이상적인 아버지의 모습을 동경하고 그와 비슷한 남자,
자신에게는 벅찰지도 모르는 커다란 체구에 호색한 기질까지 있는 디에고를
그렇게나 상처받고도 사랑하고 결국은 자신을 디에고로 대치시켜버리는
프리다 칼로의 서글픈 욕망 또한 우울하기 그지 없다.
 
소름끼치도록 무서운 트라우마를 가진 르네 마그리트는 어떤가.
동화같은 세계를 그리는 마그리트의 그림이 어딘지 생경한 공포를 자아내는 이유는,
얼굴을 대체시켜버린 몸, 얼굴을 가려버린 사람들, 얼굴없이 몸만 존재하는 그의 그림속의 피사체들이
잠옷자락으로 얼굴을 가린채 자살한 어머니의 심상을 그대로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불구의 몸으로 부모에게 버림받은 상처를 자신을 인정해준 물란한 물랭루즈에서 위로받은
로트랙의 그림에 나타난 창녀들의 모습에서 화장이 얼룩덜룩 지워진 여자에게서나 볼수 있는
삶의 고단함이 녹아있는 퇴폐적인 느낌을 발견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리라.
 
상처입은 자아, 평생을 트라우마와 살았던 열두 예술가들의 그림와 인생에서
우리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본다.
나약하고 불쌍한 사람을 사랑하는 고흐에게서, 죽음을 동경하며 두려워했던 뭉크에게서,
나를 발견하는 일이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단지, 자극적으로 드러나는 불우한 어린 시절과 비정한 부모, 동성애와 퇴폐를 이야기 할 것이 아니라,
그들 안에 내제된 평범한 자들의 상처와 고통, 공포와 슬픔을 맞딱뜨려보는 것이 어떨까.
 
누구에게나 추천하고 싶을만큼 정말 재밌었던 책이었다.
별 다섯개 만점에 애정별을 95개를 담아 별 100개를 주고 싶은 책.
책을 써내려 가기에는 다소 어린 나이일지도 모르는 나이에 (30을 바라보고 있다고 하니 29세?)
친구에게 친한 동생에게 이야기해주듯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작가 서지형에게도 홀딱 반해버린 책이다.
이 사람 책을 더 보고싶으나, 이게 첫 책이라고 하니 더 기다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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