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시계 둘레에 꿀벌처럼 모여서서 각자 자기 상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룻 밤의 상대이든가, 매일 밤 같이 지낼 상대를.
여자를 기다리는 남자들, 남자를 기다리는 여자들.
거의 다 젊었다.
그 중에는 조금 나이 많은 사람도 몇몇 섞여 있었으나 대부분이 젊음에 빛나고 있었다.
나이를 더 먹으면 그런 일은 외로워서 못하게 된다.
그러나 젊을 때는 하루하루의 밤이 마치 크리스마스 이브와 같다.
금방이라도 풀어볼 수 있는 큰 선물이 당신 옆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비록 풀어봐서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더라도 조금도 괴로워할 필요가 없다.
내일 밤도 또 크리스마스 이브이고, 금방이라도 풀어볼 수 있는 다른 선물이 당신 곁으로 찾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 선물이 오지 않게 되고 크리스마스 트리의 불이 꺼졌을 때
당신은 갑자기 나이먹은 것을 느끼게 된다.
<코넬 울리치-상복의 랑데부 中...>
눈을 부릎 뜨고 찾으려 하지 않아도, 코넬 울리치의 소설에는 명문장들이 너무나 많다.
그 중의 하나.
젊음을 크리스마스 이브라고 표현한 그 말, 마음에 절절히 와닿는다.
나는 나이 먹는 것에 구애된 적도 없고, 그것을 슬프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어쩌면 내게는 내가 아직도 어린 아이처럼 느껴져서 인지도 모르겠다.
저 구절을 읽으면서, 어쩌면 저렇게 딱 들어맞는 구절이 있을까 하고 생각하게 되니,
역시 나도 나이를 들어가고 있긴 하나보다.
언제부터인가 감정의 동요는 점점 사라진다.
크게 기쁘지도 않듯이, 크게 화가 나지도 않고, 크게 슬퍼지지도 않는다.
문득 문득 무의식중에 처 들어오는 슬픔이라던가 분노는,
이 전처럼 큰 상처가 되지 않고 단지 담담히 쌓여갈 뿐이다.
언제 폭팔할런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폭팔하지 않고 내 안에 쌓여 썩어갈지도 모르겠다.
부패되고 마모되어가는 심성- 아마도 모든 것에 지치기 시작하면서 부터가 아닐까.
그래봤자 변하는 것도, 앞으로 달라질 것도 없다는 것을 이미 경험으로 알아버렸기 때문에
그 들끓는 감정을 대치해버린 것은 아마도 체념이 되어버리는 것이 아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