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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멘트 가든
이언 매큐언 지음, 손홍기 옮김 / 열음사 / 2005년 12월
평점 :
절판
소설을 쓰기 시작했을 때 나는 사춘기에 대해 굉장히 흥미를 느꼈다. 그것은 내가 막 거쳐 지나온 바다였다... 나의 소설이 온통 근친상간, 자위행위, 신체적 결함 등만을 묘사한다고 비난하는 독자들은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죄와 벌의 문제를 다루는 도덕주의자가 아니다. 내가 관심을 가지는 문제는 인물들의 무의식 세계이며, 그것이 그들이 살아가는 사회구조와 어떻게 갈등을 일으키는가, 그리고 내적 자아와 외적 자아 사이의 괴리 현상이 어떻게 나타나는가이다.
-저자의 말
...라는 저자의 쿨한 소견이 마음에 들어서 보게된 소설 "시멘트 가든".
상당히 묘한 소설이었는데, 다 보고 나서 잠이 들었을 때는 정체모호한 꿈을 꾸었다.
이 책은 내가 가끔씩 꾸는 악몽이라고 말하기 뭣한,
꾸고나면 기분이 아주 이상야릇하고 기분이 안좋아지는 꿈과 아주 흡사한 느낌을 받아서,
보는 내내 그런 꿈을 꾸고 있는 듯한 생경하고 두려운 느낌이 들었다.
어느날 집에 시멘트 푸대들이 도착하고, 아버지는 자신만의 정원을 꾸미기 시작한다.
채 다 완성되기 전에, 아버지는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버리고,
뒤 이어 어머니 역시 시름시름 앓다가 세상을 떠나버려서,
이 커다란 집과 미완성의 시멘트 가든에 네 남매가 남겨진다.
어른이 되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아주 어린아이들도 아닌, 사춘기의 소년과 소녀들은
자기들만의 방식을 무의식중에 정해가기 시작하고, 점점 사회와 벽을 쌓아가기 시작하는데,
그들이 이렇게 고립되는 이유는 자신들이 그것을 원했기 때문이다.
당장 밖으로 나가면, 사람들이 있다.
늘 다니던 학교도 있었고, 정상적인 사회도 그 시멘트 가든 밖에는 존재하지만,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기자신들을 시멘트 가든에 가두고,
그 안락함에 취해버리고 만다.
화자인 둘째인 잭은, 거의 어른에 가까운 누나 줄리를 동경과 사랑에 가득찬 눈으로 바라보고,
누나는 그런 잭을 모호한 눈길로 응시하며,
셋째인 수는 책의 세상속으로 빠져들며,
막내인 톰은 나이 또래의 아이들에게 맞는 것이 싫어서 여자가 되기로 한다.
누구도 이것을 비정상적이라 느끼지 않는다.
시멘트가든 안의 네 아이들은 그것이 자신들이 만든 당연한 사회라고 생각하지만,
누나의 남자친구 데릭이 등장하면서, 이 고립된 사회를 비난하기 시작한다.
근친상간과 어머니의 시체를 시멘트로 덮어버린 지하실.
윗층에서는 어린 동생을 앞에 두고, 동생과 누나가 섹스를 하고 있고,
지하실에서는 데릭이 어머니의 시멘트 무덤을 파해치면서 끝이 나는 결말은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과연 이 아이들이 후에 보통 사회의 정상적인 규범을 따를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네 남매는 어릴때 부모님이 여행을 가고 넷만 남겨졌을 때를 떠올린다.
부모님이 문밖을 떠나는 순간, 기쁨의 탄성을 지르며, 부모님이 다시 돌아오기 30분 전에서야
난장판이 된 집을 치우기 시작한다.
어릴 때는 누구나 이렇다.
나 역시 사춘기 시절, 부모님이 집을 떠나고 혼자 남겨지면, 될수 있는 한 최대한 어질러 놓고,
부모님이 돌아오기 전에 재빨리 수습했었다.
이 아이들의 생활은 내게 이런 식으로 비춰졌다.
어른이 없는 생활. 고립된 채, 누구도 어떻게 해야하는지 명령해주지 않는 극한의 자유.
명령을 하는 사람은 단지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누나 뿐.
누나 마저 귀찮아져 버리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된다.
시멘트 가든 안에서, 어른 흉내를 내면서 대게의 사람들이 옳다 믿고 있는 규범을 어겨버리는 것이
과연 누구의 잘못이며 죄일까.
아버지의 만들다 만 시멘트 가든 처럼,
그들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완성시키지 못하고 떠나버린 미완성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또한 알 듯하면서 알수 없는 비밀스러운 사춘기 소녀다운 누나 줄리를 바라보면서
화자인 잭이 느끼는 감정이 단지 근친상간으로 치부될수 밖에 없는지도 생각해본다.
남자는 언제나 여자를 이기고자 한다.
어린 남자들은 더더욱 그렇다.
자신보다 일찍 커버린 누나를 바라보면서, 자기손으로 그녀의 비밀을 깨부수고 싶고,
자신을 마냥 아기처럼 대하는 누나를 이기고 싶다는 바람은,
보통의 동생들도 가지고 있는 감정이 아닐까.
여자가 되고자 여자옷만 입는 어린 동생 톰의 경우 역시 주위에서 아주 보기힘든 사례는 아니다.
누나들 사이에서 커온 남자들중에서는 간혹 누나들이 여장을 시켜주었다는
경험담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어머니의 시체를 지하실에 유기하는 것 역시, 매우 비도덕적인 일이라기 보다는
어머니를 타인의 손에 빼앗기고, 자신들도 뿔뿔히 흩어지는 것이 두려운 어린아이들의 시선에서는
그럴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은 좀 비틀어진 방식으로 나타나긴 했지만,
그들의 이런 감정이 전혀 생소한 규범의 타도인 동시에 악이라고 말할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그들은 단지, 미완성일 뿐, 악도, 비정상도 아니지 않나.
소설이 꽤 두꺼울 줄알았는데, 몇 시간이면 읽을수 있을 정도로 가뿐한 무게이다.
책을 읽으면서 내내 묘한 꿈에 내버려져서,
시멘트 가든 어딘가에 숨어서 네 남매를 방관하며 지켜볼수 밖에 없는 듯한 느낌이었다.
상당히 묘한 소설. 묘한 결말. 더 충격적인 아주 담담한 태도.
이안 매큐언의 다른 소설도 읽어봐야겠다.
p.s 이안 매큐언의 정보를 찾아보다가, 우연히 박찬욱 감독의 인터뷰가 검색에 걸려서 보게되었는데,
올드보이의 근친상간적인 모티브는 이 소설에서 받았다고 한다.
의도하지 않았는데 이런 사실을 알게되니 사실 좀 놀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