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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테라 6 - 완결
후루야 미노루 지음 / 북박스(랜덤하우스중앙) / 2005년 10월
평점 :
품절
시가테라를 다 읽고 나니, 낮 12시였다.
몸이 부숴질정도로 피곤했고, 눈이 빠질듯이 아팠지만 한동안 잠을 이룰수 없어서 이불을 덮고 누워 있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서 한참 당황했었다.
아아...이 만화책...정말 왜 이런거야...
숨막히게 암울하게 시작되었다가 복숭아 맛처럼 달착지근해졌다가 결국은 슬프고 행복해져버렸다.
시가테라가 무슨 뜻인지 검색을 해보았더니, 독어가 몸에 지니고 있는 독이라고 한다.
아, 참 잘 어울리는 제목이었구나.
목숨을 지키기위해 본능적으로 가지고 있는 내 안의 독.
누구나 세상 모든 사람들 가운데 자기자신이 가장 중요하기 마련이다.
날카롭고 비관적인 "두더지"에서 한발 더 나아간 후루야 미노루의 "시가테라"는
"두더지"에서보다 어른스럽고 성숙한 결론에 이르른다.
휘청거릴정도로 암울했던 청춘.
무서울 정도로 괴롭힘 당했고, 그런 린치에 익숙해져서 더이상 무언가를 바꿀 의지도 남아있지 않은-
그래서 행복이 찾아와도 행복인지 모르던 그런 얼빠진 노예같았던 청춘은,
사랑하는 오토바이와 사랑하는 여자친구에게서 도피처를 찾아낸다.
자신을 지키기위해 했던 행동은 자신을 짖누르는 독이 되어서 돌아오고,
수많은 상처와 배신과 아픔을 통해서 소년은 어른이 되어간다.
시가테라. 독. 독기품은 청춘.
아마도 후루유 미노루는 책의 마지막 청춘을 떠올리며 두카티에 다시 관심을 기울이는 오기노를 통해서,
그런 청춘의 독에 대한 애정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멋들어진 청춘이 아니어도, 모든 청춘은 그리움을 남기는 한때의 추억으로 남게 된다고-
"두더지"와는 정반대로 "살아남아서 그 깨달음을 가져라"라고 말하고 있는것이 아닐까.
누구에게나 청춘은 상처를 남긴다.
타인에게 받은 상처, 자신에게 받은 상처, 사회로부터 받은 상처.
그런 상처는 가끔 끔찍하게도 떨어지지 않는 상흔을 남기고 자신의 트라우마로 남아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독기품은 청춘의 시간들이 시체처럼 의미없이 죽어버린 기억이라고,
감히 누가 말할수 있을까.
이제는 굳이 떠올리지 않는 한은 몽상에빠져 폭주하는 오기노가 되지 못하는 심심한 어른이 되어버리겠지만,
그런 괴롭고 슬픈 청춘의 시간들이 미래에 자신에게 아무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고 누가 말할수 있을까.
그렇게 밟히고 차이고 까이면서, 인간은 성장해 나간다.
고교시절, 오기노를 그렇게 괴롭히던 타니와키가 서서히 오기노에게서 관심을 끊게 되는 것도,
저항의지로 가득했던 다카미가 서서히 오기노의 기억에서 사라지게 되는것도,
그렇게나 사랑하던 유미와 헤어지게 되는 것도,
소년에서 어른이 되어가는 사이 누구의 기억에나 모두 존재할 듯한
아주 평범하고 슬픈 이야기처럼 느껴져서 결국엔 무척 슬퍼졌다.
아마도 어린 아이들은 이 만화를 이해하지 못하지 않을까.
오기노가 왜 다시 두카티에 관심을 기울이는지,
그렇게 사랑해서 언젠가는 결혼하겠다던 여자친구와는 왜 사건도 없이 헤어져있는지,
죽도록 괴롭히던 타니와키가 왜 더이상 오기노를 괴롭히지 않는지,
어른이 되어 그런 비슷한 기억을 떠올리게 되지 않는 이상은,
꿈처럼 모호한 느낌을 받을뿐 정확히 잡히지는 않게 될지도 모르겠다.
시간이란 그런 것이라는 것을,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을,
시간은 그대로 머물며 흘러가지만, 언제나 변하는 것은 시간이 아닌 인간이라는 것을,
자라고 나면 이해하게 될 것이다.
아..정말 너무 재밌었고, 너무 감동적이어서 한동안 시가테라에 빠져서 지낼것 같다.
좀 잠을 자고 나서 다시 일어나니 "재미없는 어른이 되었다"라고 말하던 오기노의 말이
머릿속에서 맴돈다.
독처럼 나를 물들여가는 책.
초콜릿처럼 달콤한 인생은 되지 못할지라도, 가끔은 쓰고, 가끔은 단 청춘의 이야기.
가시가 있는 장미가 아름다운 것처럼, 청춘은 독기를 품기 때문에 아름답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후루야 미노루는-
천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