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트 워치 - 상 밀리언셀러 클럽 26
세르게이 루키야넨코 지음, 이수연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10월
평점 :
절판


만약 환타지나 환상 소설을 좋아하는데도 불구하고 이책을 읽기 망설이는 사람이 있다면,
작가 이름의 난감한 생소함이나 러시아 소설이라는 점에 대한 압박이지 않을까 싶지만,
세르게이 루키야넨코의 워치 시리즈는, 일단 1부 "나이트 워치"로
조금도 불편해할 필요없는 그야 말로 즐거운 "대중소설"로써 성공적인 발걸음을 내딛었다.


잠시 개인적인 취향을 말해보자면, 나는 주로 환상소설류를 읽는 편이고,
추리, 공포, 환상, 오컬트- 그 무엇도 가리지 않지만, 환타지는 꽤 가리는 편이다.
마법사와 요정이 등장하고, 무슨 무슨 종족이 등장하는 환타지 소설은
왜인지 모르겠지만 도저히 책장이 넘어가질 않기 때문인데,
그래서 남들 다 재밌게 봤던 반지의 제왕을 읽어보려 했을때도, 의미없는 몸부림으로 중도에 포기해버렸다.
어쩌면 오로지 중세스타일의 환타지에 대한 개인적인 거부감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어쩐지 오컬트 적인 냄새가 풍기는 나이트워치는 타 환타지 소설에 비해서
개인적인 호감도면에서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나이트 워치"는 책장을 펴는 순간부터 빠져들게 하는 마력적인 흡입력을 가진 책이다.
환타지라는 장르의 장점인 동시에 단점은 현실과 동떨어진 하나의 세계를 만드는 점이 아닐까 싶다.
잘쓰면 작가만의 세계가 확립되지만,  잘못되면 설정이 얽히고 마는 장르일테니.
이런 점에서 나이트워치의 무대는 바로 현실이다.
컴퓨터와 CDP, 네트워크와 지하철이 존재하는 바로 21세기의 현실의 모스크바를 무대로,
환타지의 이(異)세계로 "어스름"이라는 세계를 창조해내고 있다.
어스름의 세계는 현실과 동떨어진 음산하고 축축한 느낌의 영적인 공간이다.
이 공간에서, 주인공들은 텔레파시라던가, 천리안같은 초능력이라던가 영적인 힘을 사용할수가 있다.
현실의 도시의 건조하고 냉랭한 느낌과 어스름의 세계의 어딘지 모를 음울함이
이 소설 전체의 느낌을 대변한다고 할수 있다.

마법사, 마녀, 주술, 초능력, 변신자, 흡혈귀, 서큐버스, 인큐버스가 등장하는 가운데,
빛과 어둠이라는 개념도 등장한다.
누구나 예상하듯이 빛은 "선"이고, 어둠은 "악"이다.

빛의 마법사가 있듯이, 어둠의 마법사도 있는데,
책을 읽으면서 어째서 빛의 마법사나, 빛의 마녀나, 빛의 변신자는 있는데,
왜 빛의 흡혈귀나 서큐버스는 없을까 궁금했었는데,
잘 생각해보면,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 싶다.
흡혈귀나 서큐버스는 인간의 기를 먹고 살아야하니, 당연한 설정이다.

그러나 선의 쪽인 빛의 군단이 정확히 "옳다"라고 말하고 있지는 않으며,
악의 쪽인 어둠의 군단이 정확히 불필요한 존재라고 말하고 있지도 않다.
인간 세상에 선이 있듯이 악도 있어야 공평하니까.
그러니까 옭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그저 그 상태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쪽에서 볼때는, 인간에게 득이 되는 쪽은 "빛"이고, 해를 가하는 쪽은 "악"이지만,
그러나 이것은 다분히 인간의 측면에서 보았을 때 뿐이지,
결코 인간의 정의가 그들 "다른 존재들"의 정의는 아니다.
인간이 인간을 이롭게 한다고 산을 깍아 아파트를 짓는 것이 인간에게는 이득이나,
자연에게는 해악일 뿐인것 처럼-.
책을 보다보면 빛과 어둠이 공생하며 살아가는 원리가 나오는데, 뭐랄까.
납득이 가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하달까.
빛의 쪽에서는 "야간 경비대"를 만들어 어둠의 쪽을 감시하고,
어둠의 쪽에서는 "주간 경비대"를 만들어 빛의 쪽을 감시하는 이유는,
양쪽의 힘을 남용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악이 감시하지 않으면 빛의 군단은 선을 마음껏 부리게 되고,
선이 감시하지 않으면 어둠의 군단은 악을 마음껏 부리게 된다.
그래서 이 세상은 공평하게도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게 형평성을 가지고 있다는 원리이다.
어차피 선도 악도 존재할 바에는, 공평하게 "타협"하게 된것이다.
그래서 빛은 악의 최소한의 생존 권리를 보장해야만 한다.
이를테면, 인간의 피를 먹고 살아야만 존재할수 있는 흡혈귀에게는
정확한 횟수로 흡혈을 할수 있는 기간을 허용해둔다는 식으로-.

어쨌거나 오래전 크게 싸워오다가 타협한 빛과 어둠의 팽팽한 긴장속에,
CDP가 없이 길을 걸어다니는 것을 싫어하고, 다소 사색적이며, 때로는 우유부단한 평범한 주인공 안톤이 등장한다.
겉에서 보기에는 컴퓨터 프로그래머처럼 보이는 안톤은 사실은 야간 경비대로,
대단한 직위는 아니고 그저 신참에 불과하다.
우연히 지하철에서 커다란 저주기둥을 머리에 달고 다니는 여자를 발견하게 되고,
흡혈귀에게 잡아먹힐뻔한 이상한 소년 예고르를 구하게 되면서 소설은 시작한다.

주인공이 히어로인 블록버스터와는 다르게, 주인공인 안톤은 히어로가 아니라 보조자 격이다.
인간과 "다른 존재"임에도, 선의 기질도, 악의 기질도 완전히 타고나지 않은,
그래서 어떤 대단한 존재가 될수도 있을 가능성을 가진 소년 예고르,
모스크바를 완전히 날려버릴 법한 커다란 저주기둥을 달고 다니다가,
결국은 야간경비대에 들어왔으나, 별 능력을 보이지 않다가
점차 위대한 여 마법사의 운명을 타고난것이 밝혀지게 되는 안톤의 연인, 스베틀라나가 오히려 히어로에 가깝다.
아직 깨어나지 않은 천재적인 마법사들을 돕고 구하며 안톤 역시 능력의 향상을 보이지만,
그에게는 능력에 한계가 정해져있다.
"나이트 워치" 2권의 책은 3부로 나뉘어,각기 다른 사건을 진행해나가면서도,
소년 예고르의 등장과 스베틀라나의 위대한 여마법사의 운명이라는 커다란 주제로 움직이고 있고,
때로는 공격적이고, 때로는 사색적이기 때문에,
자극적이고 공격적인 대중소설을 매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다소 지루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세계와 어스름의 세계의 연관성을 설명하기 위해 설정해놓은 작가의 작은 센스들에 박수를 보내고 싶고,
(특히 안톤의 집에 세콤같은 경비시스템의 역활을 하는
"처용의 탈"부분에서는 피식-웃게 만드는 귀여운 센스가 있었달까.)
다소 딱딱하게 느껴지는 문체는 오히려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느낌을 베가시켰다.
한마디로 비쥬얼적으로 가오가 잡혔달까.(-_-)
책 전반적으로 흐르는 쿨한 냉소가 좋다.
대중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철학적인 사색을 놓치 않는 점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의 마력에 가까운 흡인력을 가지고 있는 점에 무한한 부러움을 느낀다.
앞으로 나올 "데이워치"와 "더스크 워치"도 열렬히 기대해본다.



p.s 1. 헐리우드에서 나이트워치, 데이워치, 더스크워치의 판권을 모두 사갔다던데,
러시아판 영화는 본 사람들 모두 무슨 얘기인지 도저히 모르겠다고 하던데,
어느 영화나 비교적 쉽게 풀이해놓은 해설집같은 헐리우드 판 영화는 괜찮지 않을까 싶다.
초능력의 사용이라던가, 세세한 어스름의 세계의 느낌을 자세히도 설명해놓은 책이니,
좀더 볼거리가 많다면 더더욱 좋겠고-.

p.s 2. 데이워치나 더스크 워치에서도 화자가 "안톤"일까?
아니면 다른 사람이려나?

p.s 3. 그래도 나도 한국사람인지라, 외국소설에서 우리나라 문화의 단면을 발견하면 무척이나 신기한데,
이 책에는 우리나라의 "처용의 탈"이 등장하기도 하질 않나, 컵라면이 등장하질 않나-
왠지 러시아가 가깝게 느껴졌다.-_-;(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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