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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가게 찰리의 행복하고도 슬픈 날들
다니엘 키스 지음, 김인영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4년 3월
평점 :
절판
원제는 "엘저넌에게 꽃을(Flowers For Algernon)".
어떻게 해야 저런 촌티나는 문구로 바꿀수 있는 지 모르겠다.
예전에는 원제로 책이 나온 적도 있던데, 그책이 절판되지 않았다면, 그 책을 샀을 것이다.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책표지와 뒷표지 또한 빵점감.
신호등 인간 둘이 끌어안다 만것같은 저런 그림은 도대체 뭐며,
뒷표지의 요상야릇한 수놓아진것같은 꽃병은 대체 무슨 의미로 박아놓았을까.
("엘저넌에게 꽃을"이라? 꽃을 바치는데 꽃병은 왜 있나?)
어쨌거나 조금도 마음에 들지 않는 포장이지만, 내용성에서는 명작이라 할수 있을 만한 감동이 있는 책이다.
몇년전 이책을 라디오에서 흘겨 듣고 굉장히 읽고 싶었는데,
제목이 기억나지 않았다가 얼마전에 기억나서 이번에 사보게 되었다.
아..무슨 생각으로 이런 가슴아픈 소설을 만들어냈을까.
읽다 읽다 결국에는 울어버렸는데, 아마도 내 인생 최초로 책을 읽다 울어본 경험이 될것이다.
영화를 보고는 종종 울기도 하지만, 상대적으로 이미지성이 약한 소설은
영화보다 가슴아프고 슬플지 몰라도, 읽다가 눈물이 잘 나지 는않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소개로 빵가게에서 일하게된 32세의 찰리는 아이큐 70의 이른바 "저능아"이다.
어느날 그에게 교수가 찾아와 실험대상이 되어주지 않겠냐고 제안한다.
아이큐 70짜리 저능아를 보통 사람 이상의 지능수준의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실험을 하고 있는 교수들은
실험쥐 엘저넌의 두뇌가 이 테스트와 수술로 인해 상당한 향상이 있다는 걸 알아냈고,
인체 실험을 해보려던 중 찾은 것이,
저능아라 들어도 들어도 잊어버리지만 배우려는 의욕만은 누구보다 투철한 빵가게 찰리.
실험의 성공으로 찰리는 점차 많은 지식을 습득하고, 결국은 아이큐 185의 초 천재가 되어버린다.
천하를 얻은 것같은 성취감후에 찾아오는 것은 그 자신에 대한 정체성의 혼란이었다.
수술전의 그는, 바보이나 행복했다.
사람들이 그에게 어떤 우월감이나 동정심을 가졌을지 몰라도,
그 시절의 그는 사랑받고 싶어하는 인간이었고, 사랑받고 싶어 노력하는 인간이었다.
머리가 좋아진 그는, 그가 바보였던 때를 모두 떠올려보게 된다.
그 이전에는 도저히 기억나지않아서, 아니, 기억하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에,
그는 언제나 모든 것을 잊었고, 모든 것을 사건의 형태로만 알고 있었다.
기억을 떠올리게 되면서부터, 그의 유년시절이 그에게 커다란 트라우마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되고,
자신의 주위에 있던, 언제나 상냥하고 자상해보이던 사람들의 행동에서
위선과 우월감과 거짓을 읽어내기 시작한다.
어린 시절, 찰리의 엄마는 그를 내버려두려 하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모자란 아들을 남들과 똑같이 대우하려는 강한 어머니 상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바보인 찰리를 인정할수가 없었고, 그런 저능아를 자신이 낳았다는 사실을 수치로 여겼다.
타인의 눈을 위해 찰리를 바보가 아닌 보통아이로 보이려고 애썼다.
남들에게 부끄러워서 특수학교에도 보내지 않았고,
남들에게 창피해서 손님이 오는 날에는 지하실에 찰리를 가두어버렸다.
기어코 남부러울 것없는 정상인 딸이 태어났을 때는,
괴물이라도 되듯, 여동생을 만지게 하지 조차 않았고, 결국은 앞으로의 딸의 인생을 위해
찰리의 인생을 희생시켜 집에서 내쫓아 버린다.
귀여운 동생이라 잘해주고 싶었던 여동생은 찰리를 창피하게 여기며 사라져주길 바랬고,
빵가게에서 함께 일하는 친절하고 자상한 동료는,
알고보니 빵가게 수입을 남몰래 횡령하고 있는 위선덩어리이었고,
함께 웃고 즐겼다고 생각하던 순간들은 사실 모자란 찰리를 조롱하며 비웃던 순간들이었다.
바보였을 때는 모르던 일들. 모두가 찰리가 사랑했던 사람들.
그들이 준 것은 상처일뿐이었다는 것을 찰리는 머리가 좋아진 다음에야 알게되었다.
자신이 세운 틀에 맞춰 아들을 맞추고 싶었던 엄마때문에,
찰리는 어디를 가든 눈밖에 나지 않으려, 사랑받으려 그토록 노력했다.
그것은, 그 자체가 만들어낸 성격이 아닌, 어린 시절의 억압받은 상처가 만들어낸 잔상이었다.
실험쥐 엘저넌의 미로는 끝없이 그를 성장하게 하지만,
결국은 벽에 부딪혀 엘저넌은 다시 퇴행하기 시작한다.
자신보다 먼저 천재쥐가 된 엘저넌의 미래를 보고 찰리는 자신의 미래를 직감한다.
결국 인간은 신을 이길수 없다.
바보로 태어난 인간이 천재가 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찰리는 다시 퇴행하기 시작한다.
철자도 제대로 모르고 문법도 모르기 때문에 서투른 초등학생이 쓴것같은 찰리의 일기는
초지식인의 학술 논문처럼 변했다가,
다시 철자와 문법이 엉망인 일기로 되돌아간다.
처음부터 선생님이었던 앨리스와의 사랑도 잊어버리고,
다시 바보가 된 찰리는 연인 앨리스가 아닌, 선생님으로 기억할 뿐이다.
다시 바보가 된 찰리를 본 앨리스는 울며 뛰쳐나간다.
찰리는 알수 없다.
조금 더 전에, 그들이 사랑을 했다는 사실을.
물질 만능 시대에 과연 잘난 사람이 행복한 것인가 하는 의문을 던져주는 책이다.
엄마가 끊임없이 찰리를 보통인간의 틀에 맞추려고 했던 것처럼,
바보가 아닌 우리들도 나보다 더 잘난 사람, 나보다 더 똑똑한 사람을 마냥 부러워하며,
되지도 않는 틀에 나를 맞추려고 해본적이 있지 않던가.
바보였기 때문에 행복했던 찰리는 천재가 된 후에 행복했던가.
매일같이 부딪혀오는 상처투성이 과거로 인해 사람을 믿을수가 없게 되어버리고,
결국 엘저넌처럼 폐기되고 말거라는 불안감에 휩싸여 자기안의 바보 찰리를 몰아내려 전전긍긍하며
매일을 아찔하게 불안한 천재 찰리는,
과연 행복했을까.
인간의 성장이란, 지식의 성장이 아니라 지혜의 성장이다.
지혜란, 머리가 좋아서 가지게 되는 것도 아니고, 머리가 나쁘다고 가질수 없는 것도 아니다.
풍부한 삶의 경험과 쓰라린 상처, 실패해가며 배우는 과정,
그 모든 것이 어우러져 지혜를 만들어낸다.
천재인 찰리에게 모잘랐던 것은 지식이 아니라 지혜였다.
그 상처가 아직까지 괴롭고 배신감을 느끼게 만들어도,
그 상처로 인해 바보였던 찰리는 충분히 행복했고, 누군가의 관심과 보살핌을 받았었다.
머리가 성장한 천재 찰리는 결국 수많은 배신감과 굴욕감으로 인간 불신에 빠져
가슴은 성장하지 못한 미숙아가 되어 결국은 자기자신을 파멸시켜 버리는 메마르고 피폐한 인간이 되어버린다.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어떤 것이더 행복핸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나는 바보도, 천재도 되어본적 이 없어서 일것이다.
나도 모르는 새에 무시당하는 바보로 남아 하루하루를 대충 만족하며 살아갈 것이냐,
아니면, 깊게 패인 상처를 가지고 살아가는 불행한 지식인이 될것이냐.
누구도 그 해답을 정확히 내리지는 못할 것이다.
때로는 귀엽고, 때로는 가슴아프며, 때로는 무섭도록 불안하며 때로는 슬픈 소설.
그래서 찰리의 인생은 행복하고도 슬펐다.
관심 있는 사람들은 기회가 된다면 꼭 읽어보길 바란다.
인간 심리의 묘사와 뼈아픈 고통의 기억이 주는 씁쓸한 맛과
결국 일그러져 버린 한 사람의 인생이 주는 슬픔을 모두 가지고 있는 멋진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