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때 토니는 일기를 썼었다.

매년 1월이 되면 일기장 맨 앞에 활자체로 자신의 이름을 쓰는 것이다.

'토니 프레몬트'.

그리고 그 밑에는 자신의 다른 이름을 썼다.

'트몬레프 니토'

그 이름에는 어쩐지 러시아어나 화성의 언어같은 느낌이 있었고, 그녀는 그것이 기뻤다.

그것은 외계인이나 스파이의 이름이었다.

때로는 쌍동이의 이름, 즉 보이지 않는 쌍동이 자매의 이름이기도 했다.

그리고 토니가 더 성장해서 왼손잡이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을때,

그녀는 자기가 실제로 쌍동이 였을지도 모른다는가능성과 마주치게 되었다.

 

즉, 그녀는 갈라진 수정란에서 왼손잡이 쪽의 절반에 해당하고 나머지 절반은 죽었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어렸을때는 그 쌍둥이 자매라는 생각도 하나의 허구에 불과했으며,

자신의 일부가 없어진 듯 하다는 막연한 느낌이 구체화된 것에 지나지 않았다.

둘은 쌍둥이였지만, 트몬레프 니토는 토니보다 훨씬 더 키가 크고 더 강하고 더 대담했다.

 

토니는 자신의 외면의 이름은 오른손으로 썼고

또다른 이름, 즉 내면의 이름은 왼손으로 썼다.

물론 공식적으로는 왼손으로 글씨를 쓰거나 그 밖의 중요한 일을 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

아무도 그녀에게 그 이유를 말해주지 않았다.

그녀가 찾아낼 수 있었던 설명중에서 가장 그럴듯한 것은

앤시아가-즉 그녀의 어머니가-해준 이야기에서 나왔는데,

그것은 세상이 왼손잡이들을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말이었다.

그녀는 토니가 어른이 되면 더 잘 이해하게 될 것이라는 말도 했었는데,

그것은 앤시아가 약속했던 말 중에서 나중에 이루어지지 않은 수 많은 일들 가운데 하나에 불과했다.

 

토니가 더 어렸을때 학교에서 교사들은 마치 그녀가 왼손으로 코를 후비다가 들킨 것처럼

그녀의 왼손을 손으로 철썩 치거나 잣대로 때리곤 했다.

어느 교사는 그 손을 책상 옆에 묶어두기도 했다.

그 일에 대해 다른 아이들이 그녀를 놀렸을 법도 한데, 그런 일은 좀처럼 없었다.

그녀와 마찬가지로 그들도 이유를 납득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 학교에서 토니는 금방 나오게 되었다.

대개 앤시아가 한 학교에 대해 넌더리를 내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8개월 남짓이었다.

토니가 철자를 별로 잘 쓰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었다.

어쨌든 교사들의 주장은 그러했다.

그들은 그녀가 철자를 꺼꾸로 쓰며 숫자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때마다 앤시아는 토니가 천재라고 대꾸했고, 그때마다 토니는 곧 변화가 생기리라는 것을 알수 있었다.

그쯤 되었다면 앤시아가 화가 나서 교사들을 모욕하기 시작하는 것도 시간 문제니까.

'얼간이'정도는 그녀가 교사들에게 퍼붓는 욕설 중에서도 비교적 점잖은 편에 속했다.

그녀는 토니가 변화되고 고쳐져서 올바르게 되기를 바랐으며,

그것도 하룻밤 사이에 그렇게 되기를 바랐다.

 

토니는 오른손으로 잘하지 못하는 일도 왼손으로는 쉽게 해낼 수 있었다.

오른손을 쓰는 생활에서는 늘 서툴었으며 글씨도 삐뚤삐뚤해서 볼품이 없었다.

그러나 그런 사실은 아무 상관도 없었다.

왼손은 아무리 일을 잘해도 멸시되었으며, 반면에 오른손에게는 뇌물과 격려가 주어졌다.

물론 공평하지 않은 일이었지만 앤시아는 인생자체가 공평한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남몰래 토니는 계속 왼손으로 글씨를 썼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서도 죄책감을 느꼈다.

그녀는 자신의 왼손에 뭔가 수치스러운 점이 있을거라고,

그렇지 않다면 그렇게까지 모욕을 받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그녀가 더 사랑한 것은 왼손이었다.

 

 

-마가렛 애트우드 <도둑 신부>

 

토니가 억압받는 왼손을 숨기듯이,

누구나 내면에 존재하는 자신보다 더 당당하고 공정하고 올바른 자기자신을 숨기면서 살아간다.

 

누구나 마음속에는 외면의 자기자신과 다른 모습의 자신이 살고 있다.

그러나 내면에 존재하는 더 당당하고 대담한 나의 왼손이 나타나는 순간,

타인들은 그것을 "인간의 악마성"이라고 매도하거나, 사람이 변했다고 하기도 한다.

오른손은 사람들에게 강요받고 권장받는 모습.

누구나가 기대하고 원하는 모습.

그리고 왼손은 타인에게 숨겨야 하는 수치심.

내면의 이기성과 대담성.

사실, 권장받는 오른손이든, 지탄받는 왼손이든,

둘다 내가 가진 손이라는 것은 마찬가지 인데도 말이다.

 

아무도 응원하지 않고 사랑해주지 않을,  누구나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왼손.

그러나 자기자신만은 오른손보다 왼손을 더 사랑한다.

그것이 좀더 솔직한 자기자신이며 진정한 자아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리고 왼손을 원하는 사람은,

자기자신 뿐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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