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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언저리의 부드러운 모래밭 위를 작은 사내아이가 발자국 하나 없이 걸어갔다.
해 없는 환한 하늘에 갈매기들이 울어대고,
소금없는 큰 바닷물 위로 송어들이 뛰어올랐다.
먼 수평선위로 바닷뱀들이 거대한 아치 일곱개를 그리며 잠깐 뛰어올랐다가



앞발을 변호사나 파리처럼 비벼대고 있었다.
집안에 있는 시계의 두팔은 10시 10분전을 가리키며 꼼짝도 하지 않았다.

"뭘 가지고 온거니, 디키?"
증류기 안에서 서서히 끓고 있는 토끼 스튜에 후춧가루 조금과 파슬리를 넣으며 엄마가 물었다.
"상자예요, 엄마."
"어디서 났니?"
엄마와 허물없이 지내는 친구가 양파가 줄줄이 달린 서까래에서 훌쩍 뛰어내려,
엄마 목에 여우 목도리처럼 우아하게 내려앉으면서 대답을 가로챘다.
"바닷가."
디키도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맞아요. 바다 저 멀리에서 밀려온 거예요."
"그안에 뭐가 들어있니?"
엄마 친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르랑 거리기만 했다.
마녀엄마가 뒤를 돌아 아들의 동그란 얼굴을 똑바로처다보며 다시 물었다.
"그 안에 뭐가 들어 있니?"
"어둠이요."
"오, 그래? 좀 보자구나."

엄마가 상자를 살펴보기 위해고개를 숙였을 때, 엄마 친구는 여전히 가르랑 거리며 눈을 감았다.
사내아이는 가슴에 상자를 꼭 껴안고 아주 조심스레 뚜껑을 열어 보였다.
"그래, 그렇구나.
자, 그럼 함부로 다뤄지지 않게 저리에다 치워놓자구나.
그런데 이 상자 열쇠는 어디있는지 궁금하구나.
지금 당장 뛰어가서 손을 씻고 오렴.
식탁, 이리와 앉아!"
아이가 뒤뜰에서 무거운 펌프 손잡이와 씨름을 하며 얼굴과 손에 물을 튀리는 사이,
작은 오두막집은 다시 접시와 포크의 재잘거리는 소리로 가득했다.

식사후, 엄마가 이른 낮잠을 자는 동안,
디키는 보물 선반에서 바닷물에 허옇게 탈색되고 모래 켜가 쌓인 상자를 내렸다.
그리고 그 상자를 가지고 바다에서 멀리 떨어진 모래언덕으로 출발했다.
거친 풀밭을 지나 오래위를 총총걸음 치는 아이 발뒤꿈치 바로 뒤로는
검은 친구가 따라오고 있었다.

아이의 단 하나뿐인 그림자 였다.

-어슬러 K.르귄 "바람의 열두방향" 중 <어둠상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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