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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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는 잠을 자고, 노인은 자는 소녀를 지켜본다.
그는 소녀와 대화 한마디 하지 못한채, 소녀를 사랑한다.
아마도 대화를 했다면, 소녀를 사랑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최신작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은 올해 90세 생신(-_-;)을 맞이한
한 칼럼니스트의 뒤늦게 찾아온 첫사랑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좀더 쓸쓸한 분위기를 원했지만, 그런 소설은 아니었고,
다른 사람들은 이런 걸 어떻게 봤을런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좀 뻔뻔스럽게 보였다.

예전에 어떤 아줌마는 15살먹은 남자나 55살 먹은 남자나,
남자가 하는 생각은 비슷비슷하다고 한 적이 있다.
또 어떤 남자는 마흔이 넘어 중년으로 접어들면,
성에대한 강박관념과 시도때도 없는 욕망에서 좀더 자유로워진 자기자신을 뿌듯하게 여긴다고 했다.
또 이런 말도 있다. 사랑에는 국경도 나이도 없다고.

만약, 이 책의 주인공이 70살만 됐어도 이해했겠지만, 주인공은 아흔 살이다.
증손녀뻘도 안되는 여자아이와 사랑에 빠졌다.
이 관계를 더러운 원조교제로 폄하할 생각은 없고, 노인이 섹스를 생각한다는 것에 대해서 비판할 생각도 없다.
다만, 너무 비현실적이고, 남성 위주로 맞춰진 성에대한 생각이 짜증스러웠다.

주인공은 이미 쉰살이 되기전에 200명이 넘는 여자와 잤다.
그리고 아흔살이 넘어서 자기 생일을 자축하기 위해서 한번도 남자를 겪어보지 않은 "처녀"를 원한다.
그는 그런 자신을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그는 이 소녀를 사랑한걸까.
내가 보기엔 그저 (젊은) 처녀성에 대한 찬미에,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젊은 여자에게 매력을 느끼는 늙은 남자의 환타지로밖에 느껴지지 않는 걸.
(책 안에서 주인공을 평생 사랑해서 아직도 처녀인 가정부가 나오는데,
이 여자는 사랑하지 않더라....
소설이나 영화에서 젊은 여자와 사랑에 빠진 중년이상의 남자들의 얘기가 나올때마다
늙은 여자는 여자로 생각지도 않는 남자의 가슴속 깊숙히 존재하는 생각이 뻔뻔스럽게 느껴진다.
자기들은 안늙은 줄 알고, 자기들은 여전히 매력적인지 아나봐...)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덤벼든 모든 여자가 고분고분 넘어갔다는 식의 그의 추억담 역시
뻔뻔스럽기는 마찬가지.

또한, 그녀는 그를 사랑했을까.
찢어지게 가난해서 낮에는 공장에서, 밤에는 몸을 팔러 나갈수 밖에 없는 어리고 가난한 소녀가,
이 증조 할아버지보다 나이가 많은 노인을 진심으로 사랑했을까.
그저 잘해주는 것에 대한 고마움이나, 든든하고 다정한 아버지을 겪어보지 않은 소녀가
고마운 마음을 사랑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지 않았을까.
뭐, 당사자가 그렇게 느낀다면 그게 진짜겠지만,
지나치게 비현실적이다.

"섹스란 사랑을 얻지 못할 때 가지는 위안에 불과한 것"이라고 주인공은 말한다.
그렇다면 그는 평생 위안만 받고 살아온 철부지 어린아이나 다름없다.
마치 그의 주변에 있었던 여자들이, 그의 철없는 욕망을 그대로 받아주었던 것 처럼.

그를 유명하게 만든 "백년동안의 고독"에 대한 기대감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상당히 실망스러웠던 책이다.
남자가 이렇게 철이 안드는 구제불능의 동물인가.
주인공은 죽기직전에야 철이 들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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