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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섬 악마 ㅣ 동서 미스터리 북스 145
에도가와 란포 지음, 김문운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4년 8월
평점 :
일어나보니 이책이 도착해있어서 낮시간을 투자해 한큐에 다 읽긴 했지만,
생각보다는 별로 였다.
어째서 에드가 엘런 포우의 이름을 패러디한 이름을 필명으로 내세웠는지는 책을 읽어보니 확실하게 알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에드가 엘런포우의 기괴함에는 따라가지 못하지 않나 싶다.
소재는 에드가 엘런 포우의 소설보다 더 엽기적이나,
에드가 엘런포우나 러브크래프트가 주는 음습함에서는 한참 밀린다.
소재가 전혀 다른데도 불구하고 얼핏 에드가 엘런 포우의 "아서고든핌의 모험"이 연상되는 것은
아서고든핌처럼 전체적인 내용을 두고볼때 딱 반으로 나뉘어지는 시점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기괴한 모험담 얘기를 하고 있어서일지도 모르겠다.
후반부 동굴 탐험은 러브크래프트의 "찰스 덱스터 워드의 비밀"의 마지막 부분과 어쩐지 겹쳐서 생각되기도 한다.
이 소설은 이제 서른도 안되어 흰머리가 된 청년의 회고로 시작된다.
비교적 소심하고 내성적인 주인공은 25살 시절, 회사에 새로 들어온 여사원과 사랑에 빠지게 되고,
비록 가난한 연인이지만, 조심스럽게 사랑을 키워가며 미래를 약속한다.
그런데 그녀에게 또다른 남자가 청혼해온다.
주인공보다 더 조건좋고, 잘생기고, 완벽한 남자가 나타나 여자의 부모가 홀딱 빠져버리게 된것이다.
그런데 사실은, 이 남자는 이여자가 아니라, 주인공을 좋아하는 남자였다.
고등학교 시절, 자취하던 하숙집에서 만난 두 남자.
어느 순간 자기에게 연정을 품은 같은 하숙집의 대학생 모로토와 알면서도 방관하고 있었던 주인공.
연인도 아니지만 친구도 아닌, 그저 짝사랑을 하고, 짝사랑을 묵과해주는 상태의 두 남자는
여자 하나를 놓고 결혼 경쟁을 벌여야하는 사이로 돌변해버렸다.
그러나 주인공은 알고 있었다.
모로토는 그 여자가 좋아서가 아니라, 주인공에 대한 복수심으로 그녀에게 청혼한거라는 사실을.
그러다가 여자가 살해당한다.
전형적인 밀실 살인으로 단도로 찔러죽인 범인이 들어갈 틈도, 나갈틈도 없는 방에서,
주인공의 피앙세가 살해 당한 것이다.
주인공은 당연히 모로토를 의심하고, 사랑하는 연인의 죽음앞에 복수를 다짐한다.
학생시절 선배였던 현직 탐정이 이 사건을 수사하려고 나섰으나,
퍼즐을 완전히 맞출때쯤에 탐정은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는 해수욕장 한가운데서
미스테리한 살해를 당한다.
탐정이 죽기전 주인공에게 몰래 보내준 증거물에는 샴쌍둥이로 보이는 한 소녀의 일기장이 있었고,
주인공을 사랑하는 모로토는 범인 쪽이 아니라, 역시 사건을 몰래 뒤쫓는 탐정쪽이었다는 사실을 알게되고,
샴쌍둥이의 일기와 연인의 죽음이 무관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한 두사람은
복수를 위해 외딴 섬으로 다다르면서 좀더 디테일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작가는 보통 사람으로 살아가면서 갖고 있는,
그것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단지 생경하기때문에 갖고 있는 공포들을 소재로 삼았다.
동성애. 샴쌍둥이. 기형아. 도착적인 성애.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소설속의 그런 생경한 존재들을 보면서 전혀 두렵지 않았는데,
낮에 봐서 일지, 아니면 개인적으로 와닿지 않아서일지는 잘 모르겠다.
생각보다 공포스럽지도, 기괴하지도 않았지만, 그러다고 재미없는 소설은 아니었다.
번역의 문제일지, 아니면 작가가 일부러 이렇게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묘하게도 글을 참 못쓴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디테일한 설명에 관해서는 정말 떨어지고,
현장 묘사라던지 외모 묘사라던지, 심리 묘사 또한 왠지 대충대충의 기색이 보여서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그러나 캐릭터들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평범하고 내성적인데, 묘하게 남자들에게 인기 있어서
그걸 뿌리치기는 커녕 살금살금 이용해먹는 주인공이나,
(아마도 미소년적인 분위기가 아닐까 생각된다. 여자에게도, 남자에게도 인기 있는 묘한 중성적인 캐릭터같으니까.)
이런 주인공을 오랫동안 짝사랑하고 죽을 때까지 주인공을 부르는 멋진 지식인 타입의 의학도 모로토.
열악한 상황속에서 핀 한떨기 백합같은 샴쌍둥이중의 소녀 히데짱.
캐릭터들에 대한 애정도가 보면 볼수록 높아져서 더 빨리 읽히는지도 모르겠다.
추리소설로 시작해서 공포소설로 마무리 짓는 독특한 소설.
생각보다 기괴하지는 않지만, 읽어볼 만은 하다.
단편집 "음울한 짐승"은 좀더 기괴하다니 이것도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