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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부메의 여름 ㅣ 백귀야행(교고쿠도) 시리즈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 손안의책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전에 라디오에서 "측간신"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말 그대로 측간(화장실)에 사는 귀신인데, 대부분 머리가 길고 여자인 경우가 많으며,
겁이 많아 놀래키면 사람을 해한다고 하는 민담속의 귀신인데,
그 얘기 들으니, 누구나 익히 알고 있는 "빨간 휴지, 파란휴지 귀신"이 전혀 근거 없는게 아니라
나름대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귀신이라는 걸 알고 신기했다.
사회자가 덧붙이는 말로, 아마도 "노크"라는 개념이 없었을 옛날 우리나라의 시대상을 볼때,
안에 누가 들어있는지도 모르고 화장실 문을 벌컥 열어재끼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얘기일지도 모른다고 했는데, (잘 놀라는 귀신이라 놀라면 사람을 해한다고 하니-)
듣고 보니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이 책을 보면서 그 얘기가 생각났던 것은,
비교적 민담이나 전설속의 요괴에 대해서 정리가 잘 되어있는 일본에 비해
우리나라는 그런 정리가 너무 모자른게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다.
일본사람들, 참 뭔가를 모아놓기 좋아한다.
비교적 수더분한 스타일의 우리나라 사람들이 보면 편집증적으로 보일 정도로.
하지만 그런 정리는 쓸데없는 일이 아니라, 언젠가 다른 무언가를 탄생시킬 좋은 밑거름이 될지도 모른다.
그런 전설속의 요괴의 이야기에 추리를 접목시킨 이 책 "우부메의 여름"처럼 말이다.
이 책은 내게 "망량의 상자"를 읽기 위한 전초전이었는데,
(그 책을 사려고 했는데 이걸 먼저 읽는게 좋다고 해서-)
이책을 보고나니 망량의 상자는 더더욱 기대가 된다.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길 때에는, 일어나서 기립박수라도 치고 싶은 심정이었달까.
별점을 준다면 5개 만점에 4개반을 주고싶은 책이다.
딱 한가지, 두가지가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가 되지않는 부분이 있어서,
별 다섯개에서 반개를 뺐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에 존재하는 수많은 불가사의를 과학과 추리를 이용해서 원인을 밝혀가는
독특한 추리소설 "우부메의 여름".
민담과 미신에 가까운 이야기들을 조립해서 이 정도의 얘기를 이끌어냈다는 건 정말 높이 사야한다.
오컬트와 추리가 적절히 버무려져서 다분히 신비롭고 괴이한 분위기를 이끌어낸다음에
이 오컬트에 현실적인 원인과 결과를 부여해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다.
무려 20개월이나 임신한 상태에 있는 여자가 있다.
그리고 그녀의 남편은 빠져나갈수없는 밀실에서 증발해버렸다.
이 사건을 조사하는 것은 미스테리한 사건을 주로 다루는 잡지에서 글을 쓰고 있는 세키구치.
그의 친구들, 음향사이자, 논리가인 교고쿠도와
잘생긴 외모에 일종의 사이코메트리를 할수 있는 엉뚱한 형사 에노키즈.
전형적인 형사스타일의 기바가 사건을 풀이해나간다.
20개월이나 임신한 여자의 역사깊은 저주의 내력과 덮어놓을수 밖에 없는 집안 사람들의 비밀이 밝혀지는데,
얘기는 상당히 충격적이나 미스테리해 보일수 밖에 없는 사건을
교고쿠도를 중심으로 낱낱히 파해쳐본다.
우부메는 일본 전설속의 요괴이다.
여자의 모습을 하고 아이를 안고 하반신은 피투성이가 된 요괴.
이와 비슷한 고획조는 중국의 요괴인데, 이 요괴는 아이를 납치해가는 요괴이다.
고획조는 아이를 납치하고,
우부메는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아이를 건내준다.
이런 전설의 요괴들이 가진 특성을 이용해서 마지막 얘기를 꾸려나간다.
주인공 료코의 정신세계가 차츰 부숴져나가는 장면은 섬찟할 정도로 처연하다.
저주를 댓가로 번성해온 구온지가는 자기자신들에게, 그 자손들에게
저주를 되물려주고 있는 것은 자기자신들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현대에 와서는 가쉽거리밖에 되지 않는 집안 전통의 내력에 집착하고 있었던 것은 자기자신들이고,
전통이 허물어짐에 따라 전통적인 저주를 이어가고 있던 가족들은 붕괘된다.
마치 그런 세상을 견딜수 없는 것처럼.
세상에는 논리적으로 설명할수 없어보이는 일들이 참 많다.
우리는 그것을 "미신" 내지는, "미스테리한 현상"정도로 인식을 하고 있는데,
시야를 좀더 넓힌다면, 그런 설명할 수없는 일들에도 설명을 할수 있는 부분이 많지 않을까 싶다.
정신분석학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과학적으로나,
좀더 치밀히 이해해보려고 한다면 이해가 될수도 있는 얘기 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 현상들을 신기한 현상이라고 생각할 뿐, 이해해보려고 해보지 않았다.
상식과 이성에 틀어박혀서 인간은 이성에 따라서보다 감정에 따라서 움직이는 인간이라는 점을
잊고 살지는 않았나 싶다.
매우 두꺼운 소설인데, 책을 좀만 더 크게 만들었더라면 페이지의 압박에 시달리지 않아도 됐을 뻔했다.
초반, 교고쿠도의 궤변이 거의 100페이지가까이 이어지는데,
이 부분만 잘 참고 넘기면 쉴틈없이 읽어갈수 있는 소설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참 신비롭고 독특한 느낌의 추리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교고쿠도가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교고쿠 나츠히코의 요괴시리즈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