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들의 죄 밀리언셀러 클럽 127
로렌스 블록 지음, 박산호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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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스 블록의 <아버지들의 죄>를 읽다가, 내가 이 작가의 감성을 잊고 있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아, 맞아. 그래. 로렌스 블록은 이런 사람이었어. 하고 새삼스럽게 대단한 것을 깨우치는 듯이.

건조함과 어눌함속에 매우 강렬한 이미지들.

마치 주인공 매튜 스커더의 캐릭터가 말투는 어눌하고 계산빠르지도 못하면서 어딘가 굉장히 냉철한 느낌이 있듯이...

너무 오랜만이어서 내가 좋아하는 이 느낌을 잊어버리고 살고 있었나보다.

 

 

뉴욕에서 한 여자가 살해된다.

기이한 것이, 여자가 피투성이가 되어 칼에 찔려 사망했는데, 범인으로 추정되는 남자가 여자의 피를 뒤집어쓴 채

뉴욕 한복판을 돌아다니며 괴이한 짓을 하고 있었던 것.

금새 이 수상한 남자가 잡히고, 남자는 자신의 죄를 자백했지만, 구금되어있는 동안 자살해버린다.

너무도 명백한 사실들이었다. 살해당한 사람이 있고, 살해한 사람이 있다.

죽은 여자의 아버지는 사립탐정 매튜스커더를 찾아가 그녀의 삶이 어땠는지 알아봐달라는 의뢰를 하게 된다.

그도 그럴것이, 아버지 역시 그녀가 무엇을 하고 살았는지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어느날 다니던 대학을 때려치고 마이애미에서 한번 엽서를 보낸후, 뉴욕으로 이사간후에는 별다른 연락을 하지 않던 딸의 삶에

대체 무엇이 있었기에 부모에게도 행적을 알리지 않고, 살해당했는지,

부모로써도 궁금할 수 밖에...

 

경찰기반 탐정물들의 주인공들이 의례 그럿듯, 매튜 스커더는 어떤 사건을 겪고 나서 경찰을 그만두었다.

선이나 정의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인물.

경찰에 있을 때도 수없이 뇌물을 받아먹던 사람이며, 타인에게 뇌물을 권유하기도 하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악으로 정의할수도 없다. 그냥 그에게는 그것이 현실이고 살아가는 법이었으니까.

등장인물들의 의뢰에 터무니없는 정의감을 발휘하지도 않는다.

죽은여자의 삶을 알고 싶다고 한다면, 딱 그것만 알려주는 사람인 것이다.

매튜 스커더 시리즈는 그래서 의미가 있다. 정의롭지 않고, 그렇다고 완전히 비정하지도 않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흑도 백도 아닌 회색이듯, 그 역시 그렇게 도시에 흘러가며 살아가는 사람들 중 하나이다.

 

분량은 짧은데도 완성도 높고 재밌는 소설이었다. 아니, 재밌다기보다는 씁쓸했다는 표현이 옳겠다.

범인도 있고 피의자도 있는데, 그들의 인생 모두 씁쓸하다.

왜 씁쓸하냐고 물어보면 아무도 정확한 대답을 하지 못하리라. 사람일이란게 다 그렇지 않나.

단조로운듯하지만 저마다의 복잡한 감정을 가지고 퍼져나가는 사건들, 밝혀지는 여러가지 과거들,

기이하면서도 공감할수 있는 주인공의 처연한 심상들과 그 초라하고 부숴진 주인공들이 서로 위로하며 끌어안으려는 모습들이 쓸쓸해서,

책이 중반이 넘어가면서, 죽은 여자 웬디의 인생을 알게되면서 묘하게 슬퍼진다.

 

짧지만 버릴 곳 하나 없는 밀도높은 소설이었다.

그래. 매튜 스커더는 이랬지.

최고다 최고. 최고라고 밖에는 말할수 없어!

 

p.s 왜 나는 매튜스커더를 보면 브루스 윌리스가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알콜중독에, 세파에 찌들고, 씁쓸한 미소를 짓는 사람이어서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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