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연쇄살인 - 희대의 살인마에 대한 범죄 수사와 심리 분석
표창원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05년 6월
평점 :
품절


연쇄살인에 대한 이야기가 판을 치고 있다.
대중매체속의 연쇄살인범은 언제나 섬뜩할 정도로 머리가 좋고, 사이코패스스럽게 타인의 고통을 알지 못하는- 어찌보면 신비한 매력까지 가지고 있는 사람들인데, 이것은 일종의 환타지 라는 것을 분명히 해두는 게 좋을 것 같다.
대부분의 살인범들은 천재적인 머리를 가지고 있지 않고, 오히려 일반 사람보다 지능이 낮은 경우가 많다.
그런데도 매체속의 연쇄살인범은 언제나 천재적이 이미지, 알수 없는 심연의 고독을 지닌 사람으로 미화되는 것일까. 마치 클라이브 바커의 소설처럼 일반인은 결코 이해할수 없는 세계에 대한 공포심과 경외심 비슷한 감정이 작용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러한 범죄자들이 우리 속에 섞여 살아가고 있는 보통사람 중의 하나라는 것을 인정하기 싫기 때문에, 우리들은 그들에게 환타지를 심어 상상하는 것이 더 편할런지도 모른다.
언제, 어디서 왔는지도 모를 괴물처럼, 외계인처럼 다루는 것이, 알수없는 시커멓고 새빨간 심연을 이해하는 것보다 간편하게 이해할수 있는 방법인지도 모르니까.


서점에 갔다가 조금 훑어보고 바로 사와버린 이 책 <한국의 연쇄살인>은 말그대로 이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우리 주변에 버젓이 살아갔던, 그리고 지금도 살아가고 있을지 모르는 연쇄살인범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결코 재밌게 보았다고는 말하지 못하겠지만, 보다 말고 잘수가 없어서 잠도 자지 않고 보았다.
이 책의 일부분, 몇몇 연쇄살인범들은 내가 살면서 실제로 뉴스에서 보았던 살인범들(경기남부 연쇄살인사건이라던가, 온보현, 지존파, 수원 여성 연쇄납치 살인 사건, 유영철같은 살인범들.)이라 더더욱 무서웠고, 여타 다른 범죄학서와는 다르게, 내가 알고 있는 동네, 가본적이 있는 동네, 이름있는 유명한 동네들이 줄줄히 등장해 더더욱이 무서웠다. 참 이기적이게도, 범죄가 자기 코앞에 와있다고 생각되면, 공포심이 더 증폭되나보다.
물론 연쇄살인은 세계 어디에나 있고, 어느 시대나 다 있었겠지만, 이 책에서 처음 다루는 우리나라의 연쇄살인 (욱해서 저지르는 대량살인이 아닌, 목적을 가지고 대상을 골라 연쇄적으로 저지르는 살인)은 일제시대 변태 성욕 연쇄살인이다.
이 책은 그 이야기로 부터 시작해, 1970년도 부터의 연쇄살인범들을 집중적으로 조명해서, 그들의 범죄 이유, 범행 수법, 그러한 범죄로 인해 얻어진 결론이나 반성등을 담고 있다. 대부분은 범인이 잡혀 완결된 사건이지만, 그중 일부는 아직도 범인이 잡히지 않고, 사건의 개요만 있을 뿐이라 공포심은 더더욱 크다.
현재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는 연쇄살인은 경기 남부 연쇄살인(통칭 "화성 연쇄살인")이라던가, 가장 최근이며 가장 많은 피해자를 냈고, 여러가지 사회 현상을 불러 일으킨 연쇄살인범 유영철 사건이 될텐데, 그러한 범죄 말고도 우리 삶에 이렇게 위험한 인물들이 많았다는 사실은 잠 못 이룰 정도로 불쾌하고 두렵기짝이 없다.
이러한 종류의 끔찍한 연쇄살인범 책에 흔히 나오듯이, 이러한 범죄자들은 반사회적인 인격과 불우한 가정환경, 주변의 멸시, 사회적인 냉대등의 모든 것이 나비효과처럼 쌓이고 또 쌓여서, 인간이 인간으로써 인간을 볼수 없는 괴물들을 탄생시킨다.

그들 중 일부는 영화나 뉴스등에서 등장하는 타 범죄를 모방하여 흉내낸 경우도 많다.
그렇기 때문에 가끔 잔혹성을 다루는 매체들이 비난 받기도 하는데, 이 책은 그러한 부분에 대해서 그것은 오해라고 말하고 있다.
상당수의 연쇄살인범들은 이미 잔혹한 매체를 보기전에 싹을 지니고 있었던 사람들이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인 것이다.
물론 잔혹성을 다루는 매체가 촉발제는 될수 있으나, 그런 사람들이 혹여 그런 매체를 접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언젠가 폭팔하게 되어버린다고, 책에서는 설명하고 있다.
당구는 치다가 사소한 싸움에 이성을 잃을 정도로 화가 나 그것이 촉발제가 되어버릴 수 도 있고,
"정두영 사건"처럼 사랑을 유지시키기 위해서 살인을 저지르는, 상식적으로 삐뚤어진 감정이 촉발제가 될수도 있다.
그들이 어떤 삶을 살더라도, 그렇게 자신의 폭력성을 폭팔시킬 계기를 언젠가는 맞딱뜨리게 되는 것이지, 그것이 잔혹한 매체를 접했기 때문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결코 살인범을 미화시키는 것도 안되지만, 그 살인범들의 잘못만을 탓할 만한 사회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최대한 없었으면 하는 사건이지만, 설사 일어난다 하더라도 그 사건을 통해 반드시 우리가 배워야하는 것도 있는 것이다.
한국의 연쇄살인마들은 대부분 사회에 대한 심각한 불만을 가지고 있고, 언제나 냉대받는 입장이며, 그렇기 때문에 또 범죄에 발들일수 밖에 없는 운명이 되어가는 것이다. 점점 갈수록 심해지는 빈부격차, 감성이 사라져 가는 시대를 살아가다보니, 옛날보다 연쇄살인의 숫자도, 극악범죄의 숫자도 늘어가고 있는 것이다.
불우하다고, 학대받았다고 반드시 삐뚤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 세상에는 자신의 힘으로는 어쩔수 없는 극악한 환경에서도 꿋꿋히 잘 살아가고 평범한 행복을 얻는 사람들의 숫자가 더 많다.
그런데도 이러한 범죄자들에게는 꼭히 부모가 아니래도 자신을 지탱해줄 사람, 올바른 어른으로써 존경할수 있는 롤모델이나, 다정한 친구 하나, 이런 사소한 것들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바른 가치관이나 이상향을 찾지 못하고 어두운 감정만 되풀이 하다가 괴물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그렇지만, 나는 이 책을 보고 죄도 밉고 사람도 미웠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을 계속 만들어갈 이 사회가 안타까웠다.
 
세상을 밝게 보고싶은 사람들에게는 참 불편한 책이 될 것이다.
여타 다른 외국의 범죄학서와는 다르게, 우리 주변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더더욱 처참하고 무섭다.
그렇지만, 무섭다고 도망가는 것만이 올바른 일일까 싶다.
어쩔수 없이 존재할 수 밖에없는 시궁창같은 현실을 직시해 볼줄도 알아야, 다시 그런 괴물들을 만들 확률을 줄일수도 있으며, 언제 내게 닥쳐올지 모르는 무서운 범죄를 피할 생각도 해보게 된다고 생각한다.
아시아권 국가들 중에 연쇄살인이 가장 많이 일어난 나라는 우리나라와 중국이라던데, 다른 아시아권 나라들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도 생각해 볼만 하다.
끔찍하지만, 이것은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이다.
우리 모두가 주위를 돌아보고, 뒤를 돌아볼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하나씩 줄여갈수 있지도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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