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자 오리하라 이치의 ○○자 시리즈
오리하라 이치 지음, 김소영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남편에게 맞고 사는 두여자가 교환살인을 얘기한다. 각자의 남편들을 번갈아가며 죽이는 것으로 가정폭력에서 벗어나자고-그렇게 약속했는데, 우연히 그 기회를 얻게된 지에코는 친구의 남편을 죽이게 되고, 바로 붙잡히게 된다.
그리고 또 우연한 기회로 지에코는 구류생활에서 벗어나 도망치게 된다.
공소시효는 15년. 15년을 도망치며 살아가기로 한 지에코는 경찰에게서, 그리고 자신을 죽이러 끈질기게 쫓아다니는 남편 요지로부터 그리고 도모다케 지에코를 아는 세상으로 부터, 지에코는 도망치게 된다.

오리하라 이치의 새로운 면모를 볼 수 있는 <도망자>는 어떠한 꼼수도 부리지 않는 단도직입적인 도입부가 인상적인 책이었다. 시종일관 누군가의 인터뷰 형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살인자 본인의 입에서 나온 말이니 그 상황을 가장 거짓없이 정확하게 전달한다.
오리하라 이치의 소설은 언제나 비밀을 안고 시작하는 느낌이 드는데, 이 책은 유독 단도직입적이고 솔직했다는 느낌이 든다.
(그럼에도 후반부의 트릭들은 존재하지만 말이다.)

물론 살인은 나쁜것이지만, 이 책을 읽는 누구나 지에코의 도주행각에 공감하며 읽을수 밖에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새로 발견한 오리하라 이치 소설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는 오리하라 이치의 소설 그 어떤 주인공들에게도 공감할수 없었는데, 이번에는 여주인공에게 감정이입하게 만들고 악인을 증오하게 만들고, 그녀의 도주를 응원하게 만든다.
그도 그럴 것이, 오리하라 이치 소설의 주인공 치고는 상당히 매력적인 여자주인공이 만들어졌다.
나약한 여자의 몸, 한때 화류계와 보험계에 몸담고 있어 언변에 능하고, 어디가나 볼수 있는 평범한 얼굴은 화장이나 스타일에 따라서 어떻게든 변신할 수 있다.
도주생활이 힘들어 울고 병이 나기도 하지만, 자신을 놓거나, 자신이 해야할 것을 잊지 않는 강인한 여자가 도모다케 지에코.
운명에 자신을 맡기면서도 결코 운명에 순응하지 않고, 때로 울고 포기하고 싶더라도, 그녀는 묘하게 강해서 강렬했다.
겉으로는 사람 좋은 남자이지만 집에 들어오면 한없이 폭력적으로 변하는 남편 요지에게 증오를 품을 수 있게 만드는 것도 여자주인공이 매력적인 것과 마찬가지의 이유로, 오리하라 이치에게서 새로운 면모를 볼수 있는 부분이기도 했다.

동선을 직접적으로 화면으로 만들어 보여주지 않는데도, 이 책은 분명히 손에 땀을 쥐도록 만든다.
시야의 사각지대에서 얼핏 사라지는 추격자와 짐을 싸들고 기차를 타고, 전철을 타고, 택시를 타고 이리저리 이동하는 여자.
손에 잡힐듯 잡히지 않는 도모다케 지에코의 느낌들과 추격생활의 고단함과 두고온 가족들과 스치듯 만나는 장면들 같은 것들은 가히 아련하기도 해서, 때로는 먹먹했었다.  

후반부가 조금 급격하게 진행되는 것 같아서 아쉽긴 하지만, 대신 주인공 지에코에게 매력을 느낄수 있었고, 그녀의 도주에 정신없이 빨려들어갈만큼 흡인력있어서 아쉬운 후반부는 그야말로 아쉬운 정도랄까. 개인적으로는 이 책은 트릭이 없이 지에코의 도주 자체만 그렸더라도 상당히 매력적이었을 것 같은 느김이 든다.
<-자>시리즈만 놓고 본다면, <원죄자>가 제일 완성도 있다 볼수 있겠지만, 어쩐지 내게는 <도망자>가 가장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완벽하지 않아도, 매력적이다. 이런 이 책의 느낌 자체가 이 책의 히로인 지에코와 닮은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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