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된 일인지, 몇년전부터 책 읽을 시간이 많이 사라진 듯한 느낌이 듭니다. 그렇다고 제가 딱히 그렇게 바쁘지도 않았던 것 같은데, 어째서 일까요. 그냥 애정이 덜해졌나...싶기도 합니다. 

그래서 2011년의 계획중 첫번째로, 책을 더 많이 읽자!라는 걸로 정하기로 했습니다. 책을 읽지 않으니 어쩐지 머리가 둔해진 것 같은 느낌은 저만 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최근에는 그렇다는 걸 좀 느끼고 있습니다.;  
올해 저를 즐겁게 해주었던 책들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딱 10권만 선정해보았는데, 저는 미스테리 계라서 그런지 거의 대부분이 역시 미스테리 소설이더군요..-_-;허허...



기리노 나쓰오- 메타볼라

 

올해의 시작을 기리노 나쓰오의 <메타볼라>로 시작한 애플양.-_-; 올해가 꼬인 이유는 바로 여기있는거냐며!!!
세상에서 제일 잔인한 작가중의 하나일 것 같은 기리노 나쓰오의 가장 최근작 <메타볼라>는 간단히 말해 암울한 청춘기라고 할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마모에>를 기점으로 기리노 나쓰오의 작풍이 조금 바뀐 듯한 느낌이 드는데요.
이전에는 마음속의 악의라던가 기이한 심리를 난도질하며 보여주었더라면, <다마모에> <메타볼라>로 이어지는 최근작들에서는 마음의 이야기보다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에 대한 이야기에 조금 더 귀를 기울이는 것 같습니다.

기억을 잃은 채 산을 내려오던 한 청년이 다른 청년을 만나면서 그들의 인생이 어떻게 꼬이고 흘러가는지 보여주고 있는 소설인데,기리노 나쓰오의 소설들이 언제나 그렇듯 추리소설의 카테고리로 들어가기엔 뭣합니다만, "기억을 잃은" 주인공의 잃어버린 기억에 무엇이 있었는가에 은근한 미스테리 비슷한 것을 느낄수 있는 소설입니다. 

이 소설은 두 청년의 이야기를 번갈아 가며 이야기해주며, 사회가 청춘을 어떻게 갉아먹어가는지를 보여줍니다.
쉽사리 깨어지는 허상들과 그후에 남겨지는 무력감들.
타인보다 조금 더 파란만장한 청춘을 보냈더라면 조금 더 잘 이해할수 있을런지도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도 공감할 여지는 충분히 있습니다. 세상에 절망해보지 않은 사람은 흔치 않을 테니까요.
이전작들과는 다르게 등장인물들에 대한 애정과 연민을 느낄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이전작들에서는 읽으며 공감을 하면서도 주인공들이 모두 엄청 싫었습니다;;;)
지나온 청춘을 돌아보면서 굉장히 마음 아파하며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희망따위 없는 책이지만, 뜬구름잡는 희망을 주느니 솔직하게 말해주는 게 저는 더 좋습니다.
 



베른하르트 슐링크-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

작년에 영화로 재밌게 보았기 때문에, 원작 소설도 읽어보리라 생각했는데 제 마음을 알고 애인이 이 책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그리고 책은 영화보다 100배쯤 더 재밌었습니다.
아련하고 서걱거리는 문장속에서 헤메이다보면 주인공이 한나를 만났던 어느 골목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미하엘이 열다섯이 되던 어느 해 만났던 한나라는 여자.
간염에 걸려 거리에서 구토를 하고 있던 미하엘을 무뚝뚝하게 돌봐주던 손.
뭔가에 홀린 듯, 그 여자의 집으로 걸어가면서 보았던 아무렇지도 않은 풍경들, 망설이던 생각들.
책 읽어주기, 샤워, 사랑 행위 그러고 나서 잠시 같이 누워 있기...
이런 것들이 대체 뭐길래, 그렇게 질기도록 평생을 가슴에 품어야하는 것인지, 그녀와 헤어진 후에도, 다른 사람을 만나도 이런 기억들은 미하엘을 과거의 어느 귀퉁이에 머무르게 합니다.
그리고 다시 나타난 한나와 말할수 없는 비밀과 그로 인한 여러가지 도덕적인 고민까지 안겨주는 소설이지만, 책속의 주인공들의 태도처럼 완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보다는 그냥 그 자체로 바라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결국은 사랑이야기이고, 사랑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니까...
이 소설은 오래도록 기나긴 먹먹함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읽으면서 내내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연인>과 겹쳐보인 것은 저뿐만은 아닐거예요.
 



노리즈키 린타로-잘린 머리에게 물어봐 

감각적이고 애잔한 필체나 감상보다는 (일본식의 감상주의는 저는 못봐주겠습니다;;) 흥미진진한 트릭과 기가막히게 꼼꼼하게 연결해놓은 유기적인 관계가 중요한 일본 추리소설에 있어서 합이 맞는다는 것은 정말 중요한 요소입니다. (적어도 저에게는 그래요.)
뿌려놓은 떡밥을 제대로 회수해가지 못한다면, 그건 즐거운 일본 추리소설은 되지 못할 거라는 것이 저의 의견!
그런 의미에서 오랜만에 합이 맞는 꼼꼼함을 느낄수 있었던 즐거운 소설이었습니다.

천재조각가의 유작이 되어버린 딸을 모델로한 조각상의 머리가 사라지는 기이한 일이 일어나고,
이와 연계된 조금 더 알수 없는 사건들이 이어지기 시작합니다. 사라진 조각상의 머리는 앞으로 일어날 어떤 사건들의 예고장이 되지 않을까 모두 노심초사하며 주변을 조사하던 중, 모델이 된 조각가의 딸이 사라지고 맙니다. 

의심과 오해, 오랜 증오와 잔혹한 이기심.
이 책의 키워드라고 할수 있는 이런 감정적인 문제들이 꼼꼼하게 만들어진 인물들의 유기적인 관계성과 공정하게 주어지는 복선들에 의해 효과적으로 나타나는 소설로, 원래 평론가였던 작가의 풍부한 예술적 견해도 놓칠수 없는 흥미로운 요소입니다.
 



리처드 매드슨-더 박스

반전의 매력을 효과적으로 느낄수 있는 건 장편에서보다 단편에서인 것 같습니다. 정말 한방에 끝나버리니까요!
리처드 매드슨의 <더 박스>는 그런 느낌으로 재밌게 볼수 있는 단편집인데, 대부분의 단편들이 아주 짧은데 비해 임팩트도 확실하고, 전달하고자 하는 바도 뚜렷해서 여러모로 배울 점이 많다고 느꼈습니다.
 "어라?"하는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시한번 생각해볼 여지까지 주는, 참 즐거운 반전들이 이 책에는 가득합니다.
이야기 읽듯이 읽어나가면 분명 재미를 느낄만한 책이 될 거예요.

단편에는 익숙하지 못할 사람들에게도 편하게 읽을수 있는 단편집이 아닌가 싶습니다.
 


 

  
프랜시스 호즈슨 버넷-소공녀

전 또 소녀심을 간직하고 싶은 여자이거든요-_-*
올해 펭귄 클래식에서 <소공녀>가 다시 출간되었는데, 표지가 마음에 들어서 동심을 떠올리며 읽어보자 싶어서 샀었더랬죠.
사실은 프랜시스 버넷을 엄청 엄청 좋아합니다!
<소공녀> <소공자> 그리고 <비밀의 화원>까지 이어지는 소설들은 저에게 초초초초초초 낭만주의 소설이거든요!!!
(이런 소설들 덕분에 저에게는 어린 시절에 고아에대한 환상까지 있었다구요..ㅎ)

어른이 된 후 이 소설을 읽고 있으려니 한편으로는 섬찟한 느낌도 들더군요.
상상으로 도피하는 수 밖에는 아무 희망이 남아있지 않은 상황속에 어린 아이가 내버려져 있다는 사실이, 한편으로는 짠하고, 한편으로는 섬찟했어요. (심지어는 <판의 미로>같은 암울한 영화도 겹쳐보이고...) 그리고 "세라"라고 각인되어있던 이름이 "사라"라고 씌어져있을 때의 문화적 충격이란...!!!!!
어쨌거나 다시 읽어도 너무 재밌는 소설입니다. 저에게는 이게 로망이예요, 로망!

빨리 빨리 제일 좋아하는 비밀의 화원이 펭귄 클래식에서 발간되었으면!!!!!
 



앤절라 카터-피로 물든 방 

올해 읽은 가장 기이한 책입니다. 결코 재밌었다고 말하지는 못할 책인데 뭔가 굉장히 인상적이라 자꾸 기억에 남습니다.
"피로 물든 방"은 동화 푸른 수염에 등장하는 아내들을 모아 놓은 방을 표현해놓은 제목인데, 이것만 봐도 알수 있게 이건 동화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한때 동화를 각색해서 이야기를 전복시키는 잔혹동화류의 소설들이 인기있었던 적이 있는데, 그렇다고 이 책을 "잔혹동화"라고 부르기는 뭣합니다만, 누군가 설명해 달라고 하면 간단하게 잔혹동화라고 말할수 있을 것만도 같습니다.(읭?)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동화들을 전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뻔히 있는 이야기를 "이런 식으로 생각해보면 어떨까?"하면서 또다른 방향을 제시하는 책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그림동화를 보고 들으면서 알수 없이 찝찝했던 느낌, 뭔가 야하고 무서운 느낌, 그것이 어디서 근거했는가를 조금 생각해본다면 이 책이 대충 어떤 이야기를 하려는지 아실수 있을거예요.
책소개에는 패미니즘과 연관지어서 설명해놓았던데, 개인적으로는 패미니즘보다는 소녀가 여자가 되어가는 과정과 여자라는 소녀와 마녀가 공존하는 존재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며 읽었습니다.
이런 말 하기 싫지만, 여자작가가 썼다고 생각하기에는 지나치게 기묘하고 날것의 냄새가 나는 면이 있습니다만,
저는 이런 여자작가들이 좋아요.



로버트 K. 레슬러-살인자들과의 인터뷰 


5,6년전에 교보에서 친구를 기다리다가 거의 절반을 읽어버린 책인데;; 올해에 세일 하길래 하나 사서 봤습니다.-_-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어서 범죄학서는 나오는 대로 읽는 편인데, 게중에서 가장 자극성에 치우치지 않고, 가장 핵심이 되는 개념과 사실들을 모아놓은 듯한 느낌이 드는 책이었습니다.
이 책의 저자는 연쇄살인(serial killer)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이라고 하던데, 저자의 인생 역경(?)을 따라가며 읽는 범죄와 범죄자들의 이야기는 참 흥미로웠습니다.
중간중간 저자의 자뻑도 보이니 그것도 참!!!!(물론 그만큼 잘난 사람이기도 하더군요.)

  





 

오리하라 이치-원죄자 
 

올해의 저의 마지막 베스트 책 오리하라 이치의 <원죄자>.

젊은 여성을 강간하고 교살해서 불에 태운 사건들이 이어지고, 용의자로 지목받던 남자는 감옥에 갖힙니다. 그리고 그는 원죄(죄를 뒤집어 씌인 것)라고 주장합니다. 이 원죄 사건을 조사하고 나선 사람들과 밝혀지는 이야기들이 이어지는 책입니다만, 아까도 말했듯이 잘 씌여진 일본 추리소설에서 느낄수 있는 합이 딱딱 들어맞는 쾌감을 느낄수 있습니다.

원죄를 다루고 있다고 해서 사회파 추리소설이라고 부르기는 어려운 것이 오리하라 이치는 원래 그쪽 방면으로 잘하는 작가가 아니라 현란한 서술 트릭을 구가하는 걸로 유명한 사람이니까요. 따라서 깊이감은 조금 떨어진다고 해도 오리하라 이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왜 좋아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딱 찾을수 있는 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작가에게 놀아나는 기분으로 읽으면 무척 즐거운 소설입니다.




마이클 코넬리-시인

아마도 양들의 침묵 이후였을까. 연쇄살인을 다룬 스릴러들이 우후죽순 쏟아지는데, 중요한 건 얼마나 잔인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설득력 있느냐, 얼마나 스릴있느냐, 얼마나 악의 심연으로 파고드느냐-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참 재밌는 스릴러입니다. 개인적으로 미국식 스릴러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마이클 코넬리는 명성만큼 재밌더군요. 작가의 뛰어난 필력과 더불어, 주인공의 결점또한 가리지 않는 냉철함같은 것이 가장 매력적인 스릴러로,장 크리스토퍼 그랑제나 막심 샤탕, 또는 필력내공 100%의 유럽스타일의 스릴러를 좋아한다면 분명 만족스러운 책이 될 것 같습니다.

시리즈 소설이기 때문에 단품(?)으로 끝나지 않는 찝찝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지만, 다음권을 바로 구매할 정도로 소설은 매력적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사놓고 읽지도 않고 있다능...........;;;;;

 
 



 
쿄고쿠 나츠히코-철서의 우리 

실로 오랜만에 돌아온 교고쿠도와 친구들(?)! <광골의 꿈>에서 엄청나게 실망을 했고, 책 출간이 너무 늦어져서 슬슬 교고쿠 나츠히코를 놓아버릴까...싶었는데, 오랜만에 등장해서 또 재미를 주셨지요...-_-
하코네로 여행을 간 교고쿠도와 세키구치(와 그들의 아내들)은 승려 살인사건을 만나게 됩니다.
이런 소설을 읽고 있다보면, 일본 사람들은 참 신기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지나칠 정도로 깔끔떨고 결벽스러울 정도로 예의를 중시하는 반면에 뭐라 말할수 없는 짐승의 본성이 함께 섞여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일본 특유의 기묘한 감성이라고도 할수 있는데, 묘하게 어떤 부분에서는 책임감이 희박한 점과 핑계대고 회피하려는 느낌이 강해서 더 그렇게 느껴질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스님들이 주구장창 등장해 한자를 읊어대고, 낭비라고는 찾아볼수 없는 간결한 움직임으로 움직이고 자시고 해도, 결국 인간은 거기서 거기.
우리를 벗어날수 없는 쥐의 꼴을 하고, 그들은 그 긴긴 시간동안 각자 무엇을 품고 있었을까요.
고인 물은 썩는다더니, 그 말이 딱 알맞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은 뭐에 씌인 것 뿐일런지도 모르지요. 그 "씌인 것"은 언제나 욕망과 집착으로 귀결되게 되어있고요.
집착의 정서에서 멀어져야할 스님들이 가지고 있던 욕망들은 인간이라 추했고, 인간이라 인간답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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