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데이를 싫어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열광적으로 좋아했던 적도 없는 것 같다.
어린 시절 그린데이를 들었던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Basket Case같은 메가히트작 덕분인지 그린데이의 이미지는 "세상도 쫌 싫고, 난 좀 삐뚤어져있는 게 좋고, 누가 뭐래든 나 좀 냅뒀으면 좋겠는" 악동의 이미지가 다 일 뿐이었다.
딱히 싫어하지도, 딱히 좋아하지도 않는데, 어쩌다보니 앨범은 내내 계속 다 들어왔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그대로도 나쁘지 않았다. 그린데이 노래를 들으면 신났고, 그럼 그걸로 다니까.
그러나 나름 귀엽지만, 한없이 철없을 것 같은 가벼운 애송이의 느낌이었기 때문에, 중독적이라든지, 매력적이라든지, 정말 멋지다든지 하는 말은 갖다붙이기 힘들었다.

빌리 조의 말처럼, 그린데이가 한국까지 오는데는 21년이 걸렸다.
애송이같던 시절을 지나서, American Idiot 앨범부터 갑자기 어른스러워진 그린데이를 듣고 당황스러운 마음이 드는 한편, 이 앨범 꽤 좋아서 그해에 꽤 많이 들었더랬지.
2005년에 America Idiot 공연실황을 어디선가 보고 "우와..생각보다 진짜 잘하잖아?"하는 마음이 들어서
언젠가 그린데이 공연을 꼭 보고싶다고 생각했었는데, 뜻밖의 기회로 그린데이 공연을 다녀오게 되었다.

정말 잘한다! 그 말밖에는 할 말이 없더라!
애송이라고 생각했던 시절이 창피할 만큼, 노래, 연주실력(+체력) 뭐 하나 빠질 것 없이 너무너무너무너무 잘하고, 무대매너 끝내주고, 선동력은 세계최고인것같은 이 공연은 보는 내내 뜨겁고 즐겁더라.
(하긴 애송이라고 부르기엔 이제 이 옵빠들도 마흔줄에 접어들어버렸으니...ㅠ ㅠ)
너희들 모두 미쳤어!!! 라고 외치면서 자기는 더 미친듯이 공연장을 이리 저리 뛰면서도
음하나 안놓치고, 실수 하나 안하면서 뛰고 소리지르고 노래하는 빌리 조를 더이상 애송이라고 부를수가 있을까.
두시간 반 내내 앨범과 거의 똑같을 정도로 낭창낭창하게 목소리를 뽑아내는 걸 보니, 놀라울 지경이더라.
(그리고 예상외로, 락밴드들의 고질적인 버릇인 공연 지각 사태도 없었다. 성실하구나!)

2009년 새앨범에서 1,2,3번 트랙을 첫곡으로 연창 연주하더니,
2시간 반 동안 쉬는 시간 5분도 없이 줄기차게 여러 레파토리를 뽑아내는데,
나도 미치고, 너도 미치고, 그린데이도 미쳐서 지치는지도 모르고 다들 잘 놀았다.
여느 밴드와는 다르게, 그린데이는 공연중에 관객을 무대로 참 많이도 불러재꼈는데, 한 4,5명이 무대에 올라가서 빌리조와 함께 노래하고 슬램하고 포옹하는 영광도 누렸다. (물론 기사에 난것처럼 한 여성팬이 올라가서 갑작스럽게 기타치고 있던 빌리조에게 기습키스를 하기도 했다. 꽤 오래했던데....? 그 아이는 가문의 영광으로 여겼을 것이야.)
관객에게 물도 마구 뿌리고, (겨울이라 물 맞은 사람들은 나중에 고생들 좀 했을듯....? 그새 다 말랐을까?)
휴지도 마구 풀어대고, 총으로 티셔츠도 마구 쏘았다.
좌석에 앉아있었지만, 공연 시작과 동시에 좌석에 있던 사람들도 갑자기 일어나기 시작해서 어쩌다보니 모두 스탠딩 공연이 되어버렸는데, 다들 정신줄 놓고 개슬램에 떼창에 덩실덩실 좋구나 우루이히~*
이리 하라고 그러면 이리하고, 저리하라고 그러면 저리하는 관객 덕택에 빌리조도 신나게 이래라 저래라 하더라.
뮤지션이 자신의 권력을 자랑할 곳은 공연장밖에 없는게 당연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 잠깐의 시간 우리는 아티스트의 노예가 되어도 즐거울수 밖에 없는 것 아닐까.
이런 시간에는 뮤지션이 아무리 거만해도 다 용서가 된다.

이제는 펑크락 밴드라고 말하기가 뭣해진 그린데이의 음악은 어디쯤 와있을까.
음악을 들으면서 Muse와 Snow Patrol과 The Strokes의 중간쯤 와있지 않을까...싶었다.
여전히 그린데이의 음악이 무겁거나 중독적이지는 않지만, 그 나름의 매력과 원숙미를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는 것 같다.
여전히 악동이지만, 이제는 철없는 악동이 아니라 할말 다 하고 사는 악동오빠들로 변해가고 있는 그린데이.
멋있다! 당신들 진짜 멋있어!!!!

빌리조는 몇번이나 그랬다. 너희가 미국보다 훨씬 낫다!고...
아마도 우리나라 공연관객들의 뜨거운 반응을 그렇게 말하는 듯 싶고, 몇몇 밴드들은 그 반응을 잊지 못하고 우리나라에 계속 찾아오고 있기도 하고, 나 역시 우리나라 락팬들의 뜨거운 공연 열기는 참 자랑스럽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공연중에 사진 좀 그만 찍어주면 안될까...-_-;
작은 홍대 인디공연부터, 외국아티스트 공연들까지 우리나라 관객들은 마치 카메라가 없으면 공연도 못다니는 사람들처럼, 주구장창 사진들을 찍어대는데, 대체 공연전에 사진촬영 금지라고 말하는데도 왜 말을 들어먹지를 않나???????????????
좌석에 앉아서 내려다보니, 관객석에서 불빛들이 마구 떠있던데, 야광봉인줄 알았더니 알고보니 핸드폰이나 디카...
분명 공연 시작전에, 촬영은 금지해달라고 했는데, 아티스트에 대한 예의가 이 정도 밖에 안될줄이야!!!
이런 공연은 마음속에 남겨두자!!! 디카에 남기지 좀 말고!!!!


p.s 그나저나 무대까지 너무 멀어서 빌리조의 스모키 화장을 못본게 아쉬웠어....
p.s 2. 그래도....미안하지만....이번 앨범은 솔직히 좀 별로다.ㅠ ㅠ


Green Day - American Idiot MV (in "American Idiot"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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