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착의 사각 - 201호실의 여자 오리하라 이치 도착 시리즈 2
오리하라 이치 지음, 권일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말장난을 좋아하는 작가 오리하라 이치의 도착시리즈 2편이다.
제목의 "도착"은 어딘가 도달한다는 뜻의 단어가 아니라 왜곡되고 변형된 것의 의미, 그리고 뒤에 붙은 "사각"은 사각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범위를 뜻하는 말이다. ("사각"이 그 사각인지 몰랐다. 사각형이 이어져있는 표지때문이기도 하리라.)
똑같은 뜻의 두가지 단어로 제목부터 혼란시키고, 전작 <도착의 론도>가 그랬듯, 이 책역시 막판에 가면 빙글빙글 뭐가 뭔지 모르겠는 어지럽고 화려한 텍스트 반전이 이어지는데, 사람 어지럽게 하는데 있어서는 최고의 작가가 아닐까 싶다. (게다가 말장난도 마음에 들고 말이다.)

<도착의 론도>에서와 마찬가지로 어딘가 불안정한 남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처음부터 뭔가 수상한 낌새가 보이더니, 알고보니 이 남자는 알콜중독자여서 재활원에 들어갔다가 나온 상태였다.
다시 재활원에 들어가면 그떄부터 끝장이라는 주인공의 독백이 이어지는 가운데 술을 마실지 안마실지 조마조마한 상태에서, 맞은 편 연립주택에 사는 여자가 신경쓰이기 시작한다.
그의 방과 마주보고 있는 201호 여자.
언젠가 그 방에 있던 여자가 살해당해 죽어있는 것을 목격한 남자는 괜시리 두려움에 떤다.
이 남자의 취미는 엿보기이다. 소심하고 어두운 성격에 드러내놓고 뭐라 말 할 수도 없으면서, 안보는 척 몰래 몰래 타인의 사생활을 지켜보면서 욕구를 해결하는 사람. 그런 취미에 걸맞게 밖에서 보이면 누가 지켜보는지도 모르는 다락방도 하나 가지고 있다.
안그래야지 안그래야지 하면서도 계속 눈이 갈수 밖에 없는 스물 두 살 젊고 아리따운 여자의 방.
보자 보자하니, 야한 비키니를 사와서 입어보질 않나, 목욕후에 수건 한장만 걸치고 돌아다니질 않나, 무방비한 상태로 잠들어있질 않나.... 고개만 돌리면 맞은 편 집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면, 어떤 남자라도 엿보기 욕망을 거부할 수 없으리라.
그리고 여기에 등장하는 한 남자. 주인공과 같은 재활원 출신의 도둑이 하나 등장하고, 우연히 발딛게 된 201호실 여자의 집에서 이 도둑은 그녀의 일기를 훔쳐보게 된다.
여러 사람의 시선으로 바라본 알수 없는 사건의 전말은 무엇일까?

오리하라 이치의 "~자"시리즈는 반전을 너무 화려하게 넣으려던 나머지 다소 실망스러운 감이 있었는데, 역시 도착시리즈는 마음에 든다. 여러가지 각도에서 바라본 사건의 사각-죽은 지대에는 과연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 소설을 보면서 찾고 또 찾았는데도, 나는 그 사각의 일부만 예측할 수 있었다.
변화무쌍한 시점변화와 감각적인 반전이 멋진 소설이었다.
역시 도착 시리즈는 퍼즐 맞추는 재미로 보면 딱 좋을 흥미진진한 시리즈이다.

책을 다 보고 나니, "엿보기"라는 행위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주인공 남자의 엿보기 취미는 어쩌면 누구에게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라도 앞집이 훤히 들여다보이고, 꽤 자극적인 장면들이 자주 노출되고 있는데 그쪽에서 누군가 보고 있다는 의심도하지 않고, 숨길 생각도 하지 않는 것같다면, 몰래 훔쳐볼 것 같기도 하다.
그 예로, 소설에 등장하는 도둑이 우연히 읽게 된 201호실 여자의 일기가 궁금해 틈날 때마다 방에 숨어들어가 일기를 "훔쳐보지" 않는가. 또 그 사각(死角)에 존재하는 또다른 주인공 역시 이 혼란스러운 상황들을 총체적으로 훔쳐보고 있다.
<도착의 론도>에서 "도착"과 "도작"이 어지럽게 반복되면서 혼란을 주었던 것처럼, <도착의 사각>에서는 엿보기 속의 엿보기같은 형식을 취하면서 긴장감을 유발하고 있다.
참 재밌는 뇌구조를 가진 소설가이다.
감각과 기억의 왜곡만으로 이런 어지러운 반전이 계속되는 소설을 쓸수 있는 것도 엄청난 재능임에 틀림없다.

책, 영화, 드라마, 만화, 미술, 음악... 모든 예술이 전해주고자 하는 것은 결국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내가 살아갔던 이야기, 또는 환상속에서 벌어진 이야기, 상상하다보니 재밌어져서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 등등,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가 그저 머릿속에 머물지 않고, 손끝을 통해 배출되기 시작하면서부터 그것은 예술이 된다.
그리고 그것들을 지켜보고 즐기는 독자나 청중, 관람객은 타인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그 예술들을 통해 어쩌면 그 관음증적인 욕망을 다소 건전한 방법으로 해소하는 지도 모른다.
그러고보면 사람은 얼마나 엿보기를 좋아하는 동물인가?
모두가 관음증 욕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부끄러운가?
당신 바로 옆에 있는 사람, 앞에 있는 사람, 길에서 그냥 스쳐지나간 사람 모두 그 "엿보기"욕망을 가지고 있다.
인간인 이상, 살아있는 이상은 어쩔수 없는 것 같다.
호기심을 버리는 순간, 그 사람은 죽은 것과 다름없는 사람이 되어버릴테니...

p.s 책은 무척 재밌었는데, 책 말미에 가니까 엄청나게 짜증이 났다.
아...빌벨린저의 몇몇 소설에서 보던 그 봉인형태가 다시 등장한 것이다.
제발 다음권부터는 봉인하지 말고 그냥 내달라고 출판사에 부탁하고 싶은 심정이다.
뜯는 동안 책이 지저분해지기 때문에, 왠만하면 책을 깨끗이 보관하려는 나같은 독자에게는 성가신 일이 아닐수가 없다.
그나마 종이 하나를 덧대어 완전히 감싼 빌 벨린저판 봉인보다 더 심하게, 책장이 한장 한장 붙어있는 바람에
 지하철에서 마지막 읽다가 살살 뗀다고 떼어도 페이지가 이상하게 뜯겨져 나가더라. 흐흑....
간간히 마지막부터 확인하는 독자들이 있긴 하지만, 그래서 뜻하지 않게 반전이며 범인이며 다 알게되는 독자들이 있긴 하지만,
그건 처음부터 읽는 재미를 포기한 그 사람들의 실수이지 출판사의 실수는 아니지 않는가.
제발!!! 봉인본은 다시는 안볼수 있기를 바란다!!!!!
(게다가 이건 빌 벨린저 소설보다 더 지저분하게 뜯긴다고!!!!ㅠ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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