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8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네살 짜리 꼬마아이가 한 중학교 수영장에 빠져 익사해서 죽는다. 이 꼬마아이는 그 학교의 과학선생님의 딸아이이고, 이 선생님은 결혼하기 직전 남편이 될 사람이 에이즈에 감염되었기 때문에 미혼모로 살아가기로 한 여자이다.
아이는 익사된 걸로 세상에 알려졌지만, 곧이어 과학선생은 딸아이의 죽음이 익사가 아니라 살해라는 것을 알게된다.
그것도 열세살, 중학교 1학년 두명이 저지른 살해라는 것을.

미나토 가나에의 <고백>은 이 정해져 있는 사실을 사건과 관계된 각기 다른 사람의 이야기로 풀어나가는 소설이다.
처음부터 범인의 존재를 드러내고 시작하는 셈이기 때문에 범인의 존재를 두근거려 가며 읽어야하는 소설은 아니지만,
각기 다른 이야기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고백들이 하나 하나 저 나름의 충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조금은 서늘한 기분으로 신나게 읽어내려 갈 수 있는 소설이다.
구성의 참신함과 술술 읽히는 극강의 가독성 때문에 쉽게 쉽게 읽을수 있는 이야기이지만, 중반부까지는 재밌었던 이야기가 거의 마지막, 살인자 소년 슈야의 고백으로 오면서부터 설득력을 잃어버리고 시시해져버리는 점이 아쉽다.
소설의 첫번째 이야기 <성직자>는 미나토 가나에의 첫 단편이었다던데, 그 이야기를 좀더 넓은 시각으로 여러각도에서 풀이해낸 것까지는 좋으나, 살인을 저지르는데 필요한 이유 부분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터무니 없는 상상력을 발휘해버린 것이 이야기 자체의 밀도를 떨어뜨려 버린다. (어쩌면 소스가 떨어졌는지도 모르고...)
이 작가는 캐릭터의 상세한 이력서같은 것을 먼저 만들어놓고 소설을 시작한다던데, 어떤 캐릭터들은 설득력을 갖고 있는 반면에, 어떤 캐릭터들은 그들이 이런 행동을 저지르는 배경에 대한 연구가 얕아져 버려서, 상식적으로 이해할수 없는 캐릭터들이 되어버린다.

물론 추리소설에서 어떤 범인들은 꽤나 처절한 살인 이유를 갖고 있기도 하고, 어떤 범인들은 "아무 이유 없어. 그저 살인이 좋을 뿐."이라는 식의 비상식적으로 무절제한 욕망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둘 중 어느 쪽이 되어도 독자를 설득하게 하는 힘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복수를 할 거라면 확실하게, 구멍뚫려 있는 마음의 암흑을 얘기할거라면 그것도 그 나름의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소설이 조금 더 슬프게, 조금 더 무섭게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
소설에 등장하는 슈야라는 살인자는 불우한 가정환경+천재+타인을 낮춰보는 선민의식+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똘똘 뭉쳐있는 학생인데, 아무리 어린 아이라도 그 아이가 살인을 저지르기 까지의 과정이 너무 터무니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럴거라면 그냥 심심해서 죽였다고 하는 편이 훨씬 잔인하고 설득력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왜인지.
한사람 한사람의 사정 설명을 들으며, 이 얘기를 들으니 이쪽이 옳고 저 얘기를 들으니 저쪽이 옳다는 생각을 하면서 보다가, 슈야의 이야기에서 소설이 갑자기 변명과 자기변호 일색이라는 생각이 들어버리는 건 나뿐만의 생각이었을까.
거의 마지막 슈야의 이야기에서 맥이 풀려 버리는 바람에, 다시 과학선생의 이야기로 돌아와 그녀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마지막 한방을 노린 작가의 술수가 빤히 보이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하여 이 이야기가 얘기하고자 하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책을 다 보고 나서도 잘 모르겠다.
살인자의 심경고백이 주된 이야기일지, 아니면 법의 보호를 받아 어떤 죄를 저질러도 처벌받지 않는 열세살 소년들의 청소년 범죄에 대한 경각심인지, 아니면 한 어머니의 복수극인지.
뭔가 중간중간 "당신이 누구라고 살인자를 단죄하려 드는가. 그러는 당신은 깨끗한가."라는 답없는 질문들이 여러번 등장하긴 하지만, 작가가 소설을 쓰기 전, 어떤 답이나 문제의식을 가지고 썼는지는 알수 없을 정도로 그 화두들의 존재감이 페이지를 거듭할수록 희미해진다.

마음에 안드는 점들만 늘어놓은 것 같지만, 개인적으로는 적당히 재밌었다.
일본 소설들이 그렇듯, 쉽게 읽히고 재미도 어느 정도 있다. 그렇지만 그냥 그 정도에서 멈춰버린 것 같아서 다 보고나니 여러모로 아쉬웠다.
아마 이 소설은 오래도록 기억남지는 않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